인생은 아름다워(995) - 삶을 성찰하며 걸은 버그내순례길
산책길에 만나는 산수유와 매화꽃에 봄기운이 가득하다. 벚꽃도 뒤따라 피네. 눈이 부시게 화사한 봄날이어라.
지난 토요일(3월 18일), 천안의 천사걷기가 마련한 당진의 버그내순례길을 탐사하였다. 이 길은 한국천주교의 자취가 서린 순교자들의 터전이자 신앙의 선배들이 걸었던 순례의 길로 솔뫼성지에서 합덕성당과 무명 순교자 묘역을 거쳐 신리성지에 이르는 유서 깊은 곳, 매월 좋은 탐사코스를 마련하는 주최 측의 노고가 고맙다. 참가자는 서울과 천안 등지에서 함께한 한국체육진흥회원 40여 명, 꾸준히 참여하는 동호인들의 열정과 호응이 대단하다.
버그내순례길 안내도
오전 10시 반에 천안역 서부광장에 집결, 대기 중인 버스에 오르니 집행부에서 미리 준비한 당진관광 안내책자와 팸플릿을 나눠준다. 잠시 후 천안역을 출발하여 목적지 행, 아산을 지나 당진시계에 접어드니 화창한 주말을 맞아 명승탐방에 나서는 행렬이 한데 몰려 도로가 막힌다. 한 시간여 만에 이른 곳은 당진시 신평면 도로변의 우렁쌈밥집, 안내책자에는 무기물이 풍부한 간척지에서 자란 해나루 쌀밥에 쌈장을 올려 신선한 채소와 함께 싸먹는 우렁쌈밥이 당진의 대표음식 중 하나란다. 덕장, 쌈장에 우렁무침과 돼지고기를 곁들인 식탁이 풍성하여라.
점심을 맛있게 든 후 버스에 올라 오후 1시경에 이른 곳은 버그내순례길의 출발지인 솔뫼성지다. 소나무 숲이 울창한 이곳은 한국 최초의 천주교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탄생지로 그의 생가와 기념관, 동상, 야외공연장 등이 조성되어있다. 30여 분간 경내를 돌아보며 1821년에 태어나 1846년에 순교한 25년의 짧은 생애를 통하여 한국은 물론 세계에 우뚝 선 선인의 발자취를 살피는 감회가 별다르다. 옆에서 걷는 김명중 씨의 말, ‘저는 논산의 대건고등학교를 나왔는데 대구, 인천, 논산 등에 대건고등학교가 세워져 있다. 2년 전 교황청성직자부 장관에 취임한 유흥식 추기경이 논산대건고등학교의 10년 선배다.’ 교명으로 이은 선인의 얼을 성지에서 새기누나. 기념관에 들러 김대건 신부가 대동여지도보다 16년 앞선 1845년에 제작한 조선전도를 살피고 그 원본이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과 함께.
솔뫼성지에서 기념촬영
오후 1시 반에 솔뫼성지를 출발하여 합덕성당으로 향하였다. 우강면사무소와 합덕버스정류장을 거치는 5km남짓 거리, 충청남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충청남도 기념물 제145호)인 합덕성당은 1890년 예산군 양촌성당으로 세워졌다가 1899년 당진시 합덕읍으로 이전하면서 합덕성당으로 바뀌었는데 그 앞으로 널찍하게 펼쳐진 합덕방죽과 그 주변의 경관이 한 폭의 그림이다.
고즈넉한 합덕성당의 모습
운치 있는 들판을 가로 질러 초창기의 천주교 무명 순교자 묘역을 지나노라니 시인으로 잘 알려진 이해인 수녀의 시, ‘무명의 순교자 앞에’라 새긴 시비가 눈에 띤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살핀 그 시의 한 구절, ‘흙 속에 묻힌 당신의 눈물은 이제 내게 와서 살아 있는 꽃이 됩니다.’ 이를 읊조리니 4년 전 조선통신사 옛길 걷기 중 안성의 죽산성지에 들렀을 때 적은 기록이 떠오른다. ‘죽주산성 입구에서 한 시간여 걸어 도착한 곳은 죽산성지,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이들의 영혼을 달래려 조성한 성지다. 일본의 엔도 회장이 묻는다. 당시에 천주교도들이 심한 탄압을 받았는가. 비석에 적힌 사연을 들어 25명의 이름이 알려진 순교자와 더 많은 무명의 성도들이 순교하였다고 설명한 후 내가 느낀 소감을 덧붙였다. 당시는 처참하였지만 지금은 너무나 평화롭고 안온한 기운이 감도는 낙원처럼 느껴진다고. 힘들게 살다간 초로인생들의 사후도 이처럼 평온하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걸으면서 성찰하는 삶의 의미가 숙연하여라.
무명의 순교자 묘역 지나 신리성지라 새긴 이정표 따라 걸으니 멀리 신리성지에 멈춰선 버스의 모습이 보인다. 일행 모두 신리성지의 정확한 위치를 몰라 머뭇거리던 중, 표적을 향해 열심히 걸으니 넓은 평원을 가지런한 잔디광장으로 꾸민 가톨릭 순교자들의 고향이자 안식처 신리성지에 이른다. 도착시간은 오후 4시, 두 시간 반에 걸쳐 걸은 거리는 12km 남짓.
신리성지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하며
당진은 중국과의 교역이 빈번했던 삽교천의 물줄기 따라 일찍부터 천주교가 전래된 역사의 현장, 안내책자는 선인들의 자취가 서린 이곳을 이야기와 풍경이 어우러지는 당진의 아름다운 길로 내세우며 ‘한국의 산티아고길’이라고 소개하기도. 상쾌한 봄바람 안고 도란도란 걸어온 순례길이 뜻깊어라.
버그내순례길 탐사를 마친 일행은 오후 4시 반에 버스에 올라 천안으로 향하였다. 도중 도로변의 휴게소에 들러 아이스크림파티, 오전의 출발 때 좋은 자료 배포하고 귀로에는 빙과로 힘을 돋우며 내내 유쾌하게 일행을 안내한 고재경 회장과 집행부의 친절에 박수를 보낸다. 오후 5시 반에 천안역에 무사히 도착하여 각기의 처소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