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깨칼국수
이월 셋째 금요일이다. 새벽에 일어나 서둘러 길을 나섰다. 집 근처에도 대중목욕탕이 있지만 나는 거길 가질 않고 온천장을 다닌다. 지난 일월 중순엔 낙동강 강변 본포까지 농어촌버스를 타고 나가 본포다리를 건너 부곡 온천까지 걸어가기도 했다. 이번엔 북면 마금산 온천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창원실내수영장 맞은편에서 첫차 운행 17번 버스를 타고 감계를 둘러 온천에 닿았다.
나보다 먼저 대중탕을 찾은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정한 절차를 따라 목욕을 끝내고 바깥으로 나왔다. 나는 대개 새벽에 온천장을 찾아 목욕을 끝내면 강변을 걷거나 들길을 걸었다. 그렇지 않으면 지인 농장을 찾아가 안부를 나누고 곡차를 들고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럴 사정이 아니었다. 지인 농장에 들리면 점심나절을 넘기기 일쑤인데 그 즈음 시내에서 약속이 있었다.
수 년 전 퇴직한 선배가 점심 때 식사를 같이하자는 연락이 와서다. 선배는 나처럼 초등교사로 시작해 중등으로 옮겨왔다. 남들보다 먼저 승진해 교육 행정가로써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교육국장과 연수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내 이후는 초등에서 중등으로 건너오는 경우가 없어졌다. 예전에는 야간강좌로 대학을 편입해 학업을 끝내면 전공 따라 중등 교단에 서는 기회가 주어졌다.
지난날 선배의 일화 가운데 도의회에서 당당한 태도가 돋보였다. 도의원들 앞에서 다수가 굽실거리는데 선배는 그러지 않는다고 했다. 예산권을 쥐락펴락하는 도의원 질의에 집행부는 고분고분해야 한다. 도지사나 교육감은 으레 ‘존경하는 의원님의 질의에 … ’로 답변을 시작한다고 했다. 그런데 선배는 의원들이 존경할 구석이 없어 그 말을 싹둑 자르고 본론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선배와는 점심나절 반송시장에서 만났다. 선배는 나를 시장골목으로 안내했다. 노점을 지난 칼국수 식당으로 나를 인도했다. 탁자에 마주 앉아 들깨칼국수를 같이 주문했다. 음식이 차려져 나오기 전 선배는 내가 거제로 근무지를 옮겨감에 격려와 성원을 보내주었다. 나는 정년을 얼마 앞두고 휴양지로 생각한다고 했다. 선배도 교직 중년 거제도에 4년 근무한 경험담을 전해주었다.
칼국수가 차려져 나와 맛있게 들면서 나는 선배 근황을 물었다. 아직 머리칼이 새카맣고 이마 주름이 하나도 없는 선배는 내보다 젊은 오십대로 보였다. 주기적으로 골프장에 나가고 색소폰 동호인들과 어울려 지낸다고 했다. 틈이 나는 대로 아파트단지 헬스장에서 몸을 단련한다고 했다. 교직에서 은퇴한 사모님은 출가한 딸이 사는 세종시로 외손자를 돌보느라 오르내린다고 했다.
점심을 같이 들고 선배는 이웃 아파트단지로 돌아가고 나는 남은 오후가 자투리시간이었다. 귀가 전 떠나온 근무지로 가 볼 일이 하나 있었다. 옮겨가는 학교에서 업무메일로 보내온 신학기 업무분장에 관한 회신을 해야 했다. 집 컴퓨터에선 업무메일을 열어볼 줄 몰라 학교로 가서 내가 쓰던 컴퓨터를 켜서 그쪽 학교 담당자가 보내온 메일의 첨부파일을 열어 빈칸을 채워 보냈다.
학교로 갈 때도 걸어가고 집으로 올 때도 걸었다. 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을 지날 때 잔디밭 바깥 트랙엔 걷거나 뛰는 사람이 몇 보였다. 미세먼지가 많지 않은 볕살이 포근한 오후였다. 나는 귀가를 서둘지 않고 보조경기장 둘레를 걸었다. 올봄부터는 낯선 곳으로 옮겨가기에 종합운동장으로 산책을 나가볼 겨를이 나지 않을 것이다. 트랙 바깥을 다섯 바퀴 걷고 원이대로를 건넜다.
반송시장을 지나다가 노점을 둘러봤다. 며칠 뒤 정월대보름이 가다와 묵나물과 부름이 더러 보였다. 여러 가지 푸성귀들 가운데는 어디선가 볕바른 자리에서 캐 왔을 쑥도 보였다. 나는 단골로 얼굴이 익은 할머니가 파는 자연산 콩나물을 2천원어치 샀다. 할머니는 내 인상착의를 알고 친절하게 맞아 팔아주어 고맙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등 뒤로 봄이 오는 길목 햇살이 퍼졌다. 19.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