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기스칸의 나라 몽골, 한때 세계를 호령하였던 영웅호걸의 기계가 흐르는 땅 몽골은 우리가 느끼는 것처럼 그리 멀리에 있지 않다. 인천공항에서 약 3시간을 비행하면 창 밖으로 곱게 늙은 할머님의 주름 같은 몽골의 초원이 보인다. 남동쪽으로는 중국과 북서쪽으로는 러시아를 국경으로 두고 있는 몽골은 면적이 156만 Km로 남한의 약 15배에 해당하며 세계에서 17번째로 큰 나라이다. 인구는 약250만으로 그나마 수도인 울란바토르 주변에 100만이 살고 있으니 그야말로 몽골은 사람이 귀한 나라이다.
몽골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끝없이 펼쳐진 초원이라 하겠다. 실제로 이 끝없이 펼쳐진 초원을 바탕으로 몽골의 기간산업은 목축업이며 몽골인 한 사람이 보유한 가축은 20마리에 이른다.
러시아에 이은 세계 두 번째의 사회주의국가 몽골... 사실 몽골의 경제는 낙후하여 있음을 부인할 수 없으나 구리, 몰리부덴, 금, 석탄, 우라늄등 풍부한 지하자원은 몽골을 세계 제 10위의 자원대국으로 떠받치고 있고, 1990년부터 도입된 시장경제체제는 이를 바탕으로 하루하루 몽골의 얼굴을 바꾸고 있다.
몽골의 심장 울란바토르(Ulaanbaatar).
20:30// Ulaanbaatar .
인천공항 비행 스케줄의 마지막을 울란바토르행 몽골항공의 비행기가 차지하고 있다. 인천에서 세 시간 반이 소요되는 울란바토르는 겨울이면 평균기온 영하 25도의 맹추위가 찾아온다. 내륙에 위치해 있는데다 평균고도가 해발 1500m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람이 불지 않고 건조한 탓에 실제로 느껴지는 추위는 우리가 걱정하는 그 만큼은 아닌 듯 느껴진다.
몽골어로 ‘붉은 영웅’ 이라는 뜻을 가진 울란바토르는 인구가 77만 3700명으로 몽골전체 인구의 28%에 해당하며, 인구의 약 70%가 학생을 필두로 젊은 계층이 차지하고 있다.
울란바토르는 Bogda khan, Chinge itei, Bayanzurkh, Khentii 산맥의 songino khair khan 이렇게 네 개의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래서 겨울이면 러시아시대부터 지어진 공단과 자동차의 매연, 게다가 몽골 전통 주거형태인 게르(Ger)에서 뿜어내는 갈탄의 연기가 처음 울란바토르를 찾은 이방자를 힘들게 한다.
우리나라의 중소도시 기차역을 연상케 하는 울란바토르 국제공항에 도착해, 너무도 간단한 입국심사를 마치고나면 저들마다 두툽한 털모자를 눌러쓴 환영인파가 기다린다. 가끔 한글로 쓰여진 피킷도 여럿 보이는데 현재 몽골에는 NGO와 선교단체에서 약 1000명의 한국인이 상주해 있다고 한다. “후--” 하고 멀리 입김을 내뿜어보면 마치 차력사가 내뿜는 불쇼처럼 저 멀리 까지 뿜어져나가 영하 30도의 맹추위를 실감케 한다.
울란바토르는 몽골 독립혁명의 시발지이다. 1688년 청나라에 복속된 이후 중국의 지배를 받아오다 1911년 중국의 신해혁명을 기회삼아 러시아의 지원을 등에 엎고 혁명을 일으켜, 우여곡절 끝에 Damdin-sukhbaatar의 지도하에 1921년 신정부를 수립하였다. 국회의사당 광장인 sukhbaatar광장에는 말을 타고서 민중을 지휘하는 그의 모습이 동상으로 남아있다.
sukhbaatar광장에는 겨울이면 얼음조각의 성을 볼 수 가있다. 관광발전의 일환으로 약 5년 전부터 시행되는 이 얼음조각성은 sukhbaatar광장 전역에서 조각가의 망치와 정소리가 울리다 크리스마스에 완성된다. 외곽은 얼음블럭으로 성이 쌓아지고 내부에는 여러 가지 동물의 형상과 함께 징기스칸과 그의 여섯 장군이 조각되어진다. 두툼한 외투에 털모자를 눌러쓰고 열심히 얼음의 성을 쌓아가는 그들의 땀방울에서 작지만 일본의 눈 축제나 캐나다의 겨울 축제처럼 키워가고픈 그들의 희망을 읽을 수 있다.
sukhbaatar광장은 울란바토르의 심장에 해당한다. 주변으로 중앙우체국과 자연사 박물관 국회 의사당 같은 건물이 들어서 있으며 퇴근시간이면 광장앞 도로는 정체를 빗기도 한다.
울란바토르의 자동차는 주로 러시아,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 수입되며 그중 한국의 자동차가 70%를 차지한다. 그러다보니 쏘나타, 엘란트라, 엑센트 같은 차들과 이제는 한국에서 보기 힘든 차들까지 쉽게 접할 수 있어 외국 같지 않게 친근한 모습이다. 게다가 러시아산과 함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한국산 버스에는 XX 교통, OO 운수 같은 글씨를 지우지도 않은 채 달리고 있어 시골 고향집으로 달리는 마을버스를 보는 듯하다.
성에로 흐릿하게 얼어붙은 차창을 고사리 손으로 녹여가며 차창 밖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망울이 너무도 정겹다.
울란바토르 시내관광의 시작은 제2차 세계 대전 승전탑이 있는 자이산 언덕에서 시작된다.
몽골은 제 2차 세계대전의 참가국으로 자이산 언덕으로 가는 길에는 독일까지 맹위를 펼친 탱크가 하늘로 포를 향하고 전시되어 있기도 하다.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지나 자이산 톨고이 전망대에 오르면 울란바토르 시내가 한눈에 펼쳐진다. 도심 한구석 공단에서 뿜어내는 뿌연 연기와 자욱한 매연은 안타까움을 전해 주지만 그리 만만치 않은 언덕을 오른 뒤에 맛볼 수 있는 상쾌함은 우리의 마음을 풀어준다.
승전기념탑에는 제2차 세계 대전때의 몽골군의 활약상이 모자이크 타일로 그려져 징기스칸의 후예인 그들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울란바토르의 외곽을 달리다 보면 마치 시골 서커스장을 보는듯한 구조물이 보인다. 이것은 7월 11일부터 펼쳐지는 나담 축제장으로 나담 축제가 열리는 7월은 울란바토르는 뜨거운 열기에 휩싸인다. 나담 축제는 활쏘기, 승마, 그리고 몽골식 씨름으로 나뉘어 지는데, 각각은 지혜와 용기와 힘을 상징한다. 사실 나담 축제는 지역의 전쟁훈련 수준을 갸늠하는 방편으로 시작되었는데 각 종목의 우승자는 승리자의 호칭과 영광을 누리게 된다. 가끔 몽골관련 TV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는 어린이들의 말달리는 모습은 가히 기마민족 몽골인의 위상을 보이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 외에 이색적인 날로 4월의 남성(군인)의 날이 있는데 이날에는 남자가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좋은날 이라한다.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국립 자연사 박물관은 必見의 장소이다.
자연사 박물관에는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몽골의 변천사가 시대별로 나뉘어 보여 진다.
흔히 몽골은 끝없는 초원만이 국토를 뒤덮고 있다고 생각하나 사실 몽골에는 4374m의 Nairamdal 봉을 필두로 4000m이상의 고산이 즐비하다. 동부에서 몽골 알타이 산맥과 고비 알타이 산맥이 이어져 내려와 중앙으로 한가이 , 헨티이 산맥이 펼쳐진다. 그러기에 몽골 동부에는 이름난 트렉킹 코스도 많다.
울란바토르의 북서쪽에 자리 잡은 홉스골 (Khuvsgul)호수는 세계최대 담수어로 유명한 바이칼호의 원천으로 두 호수는 지하수로 연결되어있다. 몽골의 대부분의 팩키지 코스가 바이칼호를 위주로 짜여진 것을 의식해서인지 몽골의 여행사들은 홉스골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데 힘을 다하고 있다. Forest지형의 홉스골호는 남북으로 120Km에 이르는 거대 담수호로 주변의 경치가 그림처럼 아름답지만 바이칼호의 명성에 가려져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Gobi사막은 우리가 생각하는 모래언덕만이 아니다. 고비사막은 초원과 모래언덕과 석림과 빙하를 가진 고봉도 어우러진 볼거리가 가득한 곳이다. 여름에는 40도의 뜨거운 사막이지만 겨울에는 영하 40도의 한파가 몰아닥쳐 눈 덮힌 사막을 연출한다.
이렇듯 다양한 자연환경을 가진 몽골이기에 자연사 박물관에는 흥미로움이 끝나지 않는다.
다양한 자연지형만큼이나 몽골에는 희귀한 동, 식물이 많이 분포한다. 사냥철에는 산양 한 마리당 25,000$에 사냥허가증이 발급되며 불법사냥에는 3배에 해당하는 벌금이 물려진다.
사람 키 보다 더 큰 물고기, 감탄을 자아내는 멋진 뿔의 산양류 박제들을 지나가면 공룡 전시관에 이른다.
몽골에는 다양한 공룡화석이 발굴되었는데 공룡알에서 집채만한 육식공룡류까지 정말 다양한 화석이 전시되어있다. 다른 박물관에 비해 특이한 점은 그 다양함도 다양함 이거니와 전시된 거의 모든 화석이 진품 그대로인 점이다. 어떤 것들은 살점과 핏줄까지 섬세히 남아있어 감탄을 자아낸다.
국립 자연사 박물관의 화석들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 이동 전시되고 있다.
울란바토르의 또 다른 볼거리 ‘캐시미어 공장’
울란바토르 시내관광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국영 캐시미어공장이다. 일본의 자본이 유입 되어있는 이 캐시미어공장은 시장경제의 도입과 함께 현재 민영화를 추진중 인데, 고비사막에서 방목해 키운 염소와 낙타의 털을 가공해 의류를 생산하고 있다.
우선 외부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그 규모의 방대함에 놀라게 된다. 스웨터, 숄, 머플러, 장갑 등 하나하나의 제품은 100여 가지 공정을 거쳐 ‘GOBI' 라는 브렌드를 달고 태어나며 공장 한 켠 에는 캐시미어제품 직영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 싼값은 아니지만 한국에서의 가격을 생각해 보면 자꾸만 손이 가게 될 것이다. 시내에서나 공항 면세점에서도 구입이 가능하지만 역시 공장직영점의 가격이 가장 싸게 살 수 있다는 현지 가이드의 귀뜸이다.
현재 캐시미어 공장에서는 MIAT항공사와 협의하에 공장방문을 관광상품으로 연계하여 비수기인 겨울철 방문자에게 50%까지 할인하는 방안을 강구중이다.
잃어가는 라마불교의 힘. ‘간등사’
승려대학이 있는 울란바토르의 간등사에는 높이 25m에 이르는 세계최대의 금동 여래불이 서 있다. 1911년에 만들어진 이 여래불은 제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치닫던 1943년 러시아에 의해 파괴되어 총포와 총알로 만들어졌었으나 1997년에야 순금과 구리, 각종 보석류로 다시 세워졌다.
몽골의 종교는 전통적으로 사물에 주술적 의미를 부여하는 샤머니즘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1688년 청나라에 의해 몽골이 복속된 이후 정책적으로 라마불교가 몽골에 들어오게 되었다. 중국은 물론 세계를 호령하였던 몽골인들을 그냥 두고 보기엔 너무도 무서운 존재였고 그렇다고 명분 없는 탄압을 했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긍긍하던 청나라는 정책적으로 라마불교를 몽골에 전파하여 수 많은 젊은이를 승려로 만들어 버렸다. 한때 울란바토르에는 인구 3만 인구중에 그 절반이 승려였다고 하니 그 정도를 갸름할 수 있다. 계속된 종교정책으로 몽골의 인구는 해마다 줄어갔고 오늘날에야 겨우 240만을 넘어섰다.
사실 외부적으로 알려지기는 몽골인의 90%가 라마불교를 믿고 있다고 되어 있으나 실제 라마불교의 힘은 이미 너무도 쇠퇴해 버렸다. 중국인을 증오하기 까지 하는 몽골인들의 역사적 자각에 의해, 또는 시장경제의 도입이후 하루가 다르게 밀려오는 서구의 문화에 의해, 이제는 몽골 라마불교의 중심 사원인 간등사에서 조차 쓸쓸함이 배어난다.
자연이 살아 숨쉬는 국립공원 ‘테를지’
울란바토르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약 1시간을 달리다보면 ‘거북바위’로 유명한 국립공원 테를지에 다다른다. 테를지에는 눈 속에 피는 꽃 에델바이스와 각종 초화류가 어우러진 초원과 길죽길죽 솟은 침엽수림에 덮혀 있다. 현재 테를지에는 30여개의 리조트가 밀집해 있는데 편안한 잠자리와 식사, 게르체험, 승마등 모든 것을 맛볼 수 있다.
게르에서는 몽골 전통 의상을 입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으며, 추위에 지친 나그네에게 내어오는 따스한 우유 한잔의 정을 느낄 수 있다.
뭐니 뭐니해도 몽골에서는 승마의 즐거움을 빼놓을 수 없다. 테를지에서는 헨티산맥의 기암괴석을 병풍처럼 두르고 강가를 말달리는 즐거움을 맛 볼 수 있는데, 여름철 초원을 달리는 것도 즐겁겠지만 겨울철에 하얀 설원을 입김 불어가며 달리는 낭만도 빼 놓을 순 없다.
일반적으로 몽골의 말은 야생마가 많지만 테를지와 같은 관광지에서는 훈련을 잘 시켜두어 초심자라도 안심하고 승마를 즐길 수 있다.
테를지에서 울란바토르로 돌아가는 길에는 나지막한 산등성이로 손모아 기도하는 어머니 형상의 바위가 보인다. 돌아가는 발길에 안녕을 비는 영락없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끝없이 펼쳐진 몽골의 초원을 달리노라면 어느새 곁으로 붉은 깃발 휘날리며 말달리는 징기스칸의 숨결이 느껴온다.
몽골관광의 터줏대감 'Juulchin 여행사'
동네 쌀집 아저씨 같은 푸근한 얼굴로 손님들을 맞이하는 몽골 최대 여행사인 'Juulchin' 여행사의 사장 ‘Nergui'씨.
몽골어로 ‘여행’을 뜻하는 줄친 여행사는 1954년 몽골 In-bound시장의 지원, 써비스 지원을 기지로 원래 국영 여행사로 출발했다. 시장경제를 도입한지 불과 10여년에 지나지 않은 몽골에서 사실 관광산업은 이제야 태동한 신 개척 분야라 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몽골의 여행시장이 개방된 것은 시장경제의 도입과 함께라 할 수 있다. 그와 함께 줄친 여행사는 1992년 민영화의 길을 걸었는데 현재는 몽골 In-bound시장의 80%를 핸들링하고 있다. 나머지 20%를 250여개의 군소 여행사가 담당하고 있어 몽골 여행시자에서의 줄친의 비중은 가히 막강하다. 이는 단지 몽골에서만 아니라 중국, 일본, 미국, 그리고 독일에 지사를 두고 관광객 유치에 힘을 쏟고 있음에 기인한다. 현재 12개의 자회사 또는 제휴호텔을 통해 967개의 객실을 확보하고 있으며, 24개의 여행자 캠프를 거느리고 있다. 또한 100여대의 지프와 코치, 60여명의 전문 운전기사로 구성된 운송체제를 갖춰 20개국에서 한해 7000여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줄친에서는 In-bound시장 주요국의 써비스를 위해 각국어에 능통한 매니저를 두고 있는데, 아직 몽골에서의 한국시장은 태동의 단계여서 한국 전담 매니저를 두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미 줄친의 직원이 한국에 파견되어 한국어를 포함한 문화연수를 받고 있는 터라 머지않아 한국시장의 증가와 함께 한국 전담 매니저가 생길 것이라는 줄친의 설명이다.
몽고로 가는 희망의 다리 국영 ‘MIAT'항공사
몽골 국영 항공사 MIAT의 역사는 몽골 공군창설과 함께 한다. 1946년 민간항공으로 처녀비행이 있은 후 현재 1202명의 종업원, 47대의 항공기를 거느리고 한국의 인천공항을 비롯, 일본, 중국, 러시아, 독일등 세계 7개 도시에 국제선을 취항하며 15개의 국내선 노선을 운항중이다.
1993년 대한항공보다 빨리 한국에 취항해 현재 주 3회 운항중이며 올 여름부터는 주 5회로 증편 계획이 있다.
MIAT항공에서는 줄친여행사를 포함한 여러 여행사와 공동으로 다양한 이벤트를 추진 중이며, 비수기/ 성수기 시장 항공요금의 탄력적 책정을 강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