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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도도한 물줄기, 중국은 거센 파도 장수영 도장과 거위홍 도장이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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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고 천천히 흐르는 물줄기'와 '시간을 두고 몰아치는 거센 파도' 거위홍 원장은 이런 말로 한국바둑과 중국바둑을 비유했다. 꼭 같은 뜻은 아니지만 지난 12년간의 꾸준한 노력을 통해 장수영 도장을 반석위에 세운 장수영 9단의 교육철학엔 이런 도도하고 장대한 물줄기가 연상이 되고, 녜웨이핑과 마샤오춘이라는 거물급들의 틈바구니에서 거위홍 도장을 순식간에 명문으로 끌어올린 거위홍 원장에게선 모든 것을 흡수하고 쓸어버리려는 거대한 해일 같은 느낌이 난다. 4월 3일부터 6일까지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자리잡은 '장수영 도장'에서 중국 거위홍도장의 프로기사들과 한국 장수영도장 출신 프로기사, 상위권 연구생들이 교류전을 밤낮없이 전쟁처럼 치르고 있다는 소식이다. 5일 아침, 지도사범 박병규 7단이 이때가 좋겠다고 말해준 시간이다. 지하철 6호선 마포구청역서 내려 5번출구를 나와 300미터쯤 직진하니 도로옆 우측에 장수영 도장의 현판이 보인다. 맨 처음 2층 연구실에서 눈을 맞쳐준 이는 오정아 초단과 연구생 김진휘다. 교류전은 3층서 열리고 있고, 장수영 사범님은 사범실에 나와 계신다고 일러준다. 일찌감치 3일과 4일 교류전을 치른 이들 두명은 오늘은 다른 프로들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 ▶ 마구포 망원동, 지하철 6호선 마포구청역 5번출구로 나와 300미터 직진, 장수영 도장이다 교류전 상대 거위홍 도장의 출현은 드라마틱하다. 한마디로 '어느날 갑자기'라는 표현이 알맞다. 2010년 마샤오춘, 녜웨이핑 중국바둑의 두 거물이 이끄는 도장을 제치고 전체 중국기원 프로입단자 20명중 14명을 배출하는 기적같은 일을 실현해 낸 것이다. 올해 41세의 거위홍 원장은 이런 면에서 입지전적인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프로기사가 아니지만 바둑을 지도하는 일에 있어 남다른 열정과 효과적인 교육체계를 개발해왔고, 다른 바둑도장과의 교류전, 혹은 다른 도장의 교육시스템을 배우는데도 적극적이다. 두 도장의 교류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봄 중국에서 왔으니 다음 시기엔 한국 장수영 도장측에서 중국을 찾을 것이라고 한다. 교류자체에도 목적이 있고, 서로간 도장 시스템의 장단점을 다른 시각에서 비교 파악하려는 의지도 엿보인다. 장수영 9단과 거위홍 원장을 만났다. 중간중간 따로 이야기도 했고 같이 이야기도 했다. -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어느날 보니 한국바둑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바둑도장이었다. 장수영 도장은 소리소문없이 커진 바둑도장같다. "(장수영)제 성격과 관련이 있다. 사업 측면의 운영에 재주가 좀 없다. 그러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재미도 있고 시간도 금방간다. 그래서 꾸준히 올 수 있었다. " - '장수영 도장'하면 생각나는 것을 바둑계에서 들어봤더니, '대기만성', '가족같은 분위기', '두터운 기풍'같은 낱말들이 나오더라. 이부분은 장 도장 특유의 철학인 때문인 것 같다. "(장수영)그런 이야기를 밖에서 듣는 것 같다. 물론 배우는 원생들의 재주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한 가지는 끝까지 공부하는 것이다. 전엔 연구생을 나오면 입단을 못한다고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었다. 그러나 연구생리그를 못나가는 것 뿐이지 도장에서 연구생처럼 공부를 할 수 있다. 강창배와 서중휘 같은 친구들이 연구생을 나 온 이후에 입단했고, 박영롱도 그랬다. 일찍 실망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평생 꾸준하게 가야 하는 것이지. 연구생 1조까지 오른 제자들중에 입단을 못한 경우는 없다. 다만 입단이후 공부를 덜 하는 경향이 있는데 더 열심히 해야한다." ![]() ◀ 장수영 도장의 연구생들, 홍무진(앞)군에게 교류전이 어땠는가를 물어보니 '강하다'는 표정과 '둘만하다'는 표정이 같이 스친다. "(장수영)원래 도장을 연 이유는 단순하게 프로 입단자를 배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제 스스로 준우승만 많이 했기에 정상에 오르는 제자를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입단 이후도 꾸준히 공부하고 도장에서 연구생때처럼 공부하기를 주문한다. 입단이후도 도장을 나가지 않고 다들 열심히 공부하는 분위기다. 꾸준히 노력해서 정상에 오를 수 있는 배경이 될 것이다." "바둑도 중요하지만 서로 이끌어주고 도와주고 해야 한다. 지도사범은 형의 마음으로 원생들을 돌봐야한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12년동안 도장을 운영하면서 강조한 것이었다. 그런 결과 여기 도장 원생들이 우애가 돈독한 것이 아닌가 한다. 요즘 사회추세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져 가는데 사회라는 조직에 개인이 조화롭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한다. 지도사범이라고 이런 면을 무시하고 바둑의 기술적인 측면만 봐서는 곤란하다. " - 거위홍 도장과 부딪친 전적은? 중국의 90후 세대도 다수 포함이 되어 있었나? "(장수영)첫날(3일) 많이 이기고 둘째날(4일) 많이 졌다. 그래서 총승수가 50:50이 됐다. 우리쪽은 최근에 프로예선이 많아서 연구생강자들과 프로기사들 혼성팀으로 거위홍 도장의 프로12명과 맞붙었다. 처음에 보고 약한 가도 했는데, 둘째날 보니 강한 거 같다. 표정들이 과묵해서 그런지 90후 세대같지 않고 다들 좀 더 들어보인다. 잘 몰랐는데 어린 친구들이 상당히 섞여있다. 전체적으로 입단한지 오래된 친구들은 없다. 실력이 느는 중일 것이다. 그냥 두면 시합같지 않다고 해서 대국자들은 서로 약간씩 걸고 둔다. 이게 은근히 경쟁이라 다들 이를 악물고 둘 거다. " - 거위홍 도장은 원래 규율이 강하고 '엄'하다고 소문난 신흥명문 중국도장이었다. 장수영 도장은 그와 달리 '부드러운' 느낌이 나는 도장인데 "(장수영)하하. 우리 지도사범들은 순하고 내가 대신 엄하다. 엄한 사람이 없으면 전체적인 원생들 지도가 어렵다. 엄하지 않으면 전체 선생님들의 뜻이 안통하는 경우가 많다. 더 크고 입단까지 한 경우야 다 잘 알아듣고 따라주지만 어린 원생들은 엄하게 하는 것과 자상하게 하는 게 적절해야 한다." "엄하게 해야 한다는 것은 인성때문이다. 나중의 사회생활을 위해선 인성이 중요하다. 우리 도장 출신들이 '예의 바르다'는 소리를 듣게되면 기분이 좋다. 일종의 '됨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입단을 했든 안했든 바둑만 가르쳐서 사회에 나갔는데, 오히려 오히려 사회나 바둑계에 해가 되면 안되지 않나, 입단을 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사회에 나가서 바둑계든 다른 분야든 일익을 담당해야하고, 그것이야말로 도장이 가르쳐야 할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다." ![]() "(장수영)처음에 잠깐동안, 그러니까 분당에 3개월 있었다. 그후 여기로 왔는데 특별한 연고는 없다. 다만 내가 결혼하기 전에 그러니까 1982년 전 신촌부근 기원서 사범으로 일을 했고 당시 경성중고등학교 선생님들과 학생들을 지도하고 같이 바둑대회도 한 인연이 있다. 그 인연으로 장수영 도장 기숙사 원생들의 교육은 경성중고등학교를 통해서 해결이 됐다. 돌이켜보면 도장을 하려고 인연을 맺은 것은 아닌데 이곳에서의 오래된 인연인 도움이 됐다. 강만우 사범은 교실을 접으면서 네명의 제자를 남겼다. 그중 하나가 초등학교 6학년때인가 우리 도장에 왔던 문도원이다. 바둑을 처음배우려는 어린이들이 오면 내가 손을 잡고 이정원 교실에 데려다준다. 이정원 사범이 어린이들을 좋아하고 워낙 잘 가르쳐주니까 믿을 수 있다. 마포구청도 바로 가까이 있는데 구청장 바둑대회나 구청 기우회 등이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잘 지내고 있다. 지역사회와도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 " - 거위홍 도장에 대한 하나의 궁금증, 중국은 녜웨이핑 도장과 마샤오춘 도장이 꽉 잡은 상태였는데, 베이징에 도장을 연지 2년만에 2010년 전체 입단자 20명중 14명을 입단시켰다. 어떻게 그런 게 가능했는지? 그것도 '관씨'가 지배하는 중국에서. "(거위홍)당시 녜웨이핑, 마샤오춘 도장은 낮에는 공부를 시켰지만 그 외의 시간엔 관리나 학습이 없었다. 공부량을 늘렸다. 밤이 늦도록 실전대국, 사활풀이를 시켰고 집중적으로 또 체계적으로 시간을 활용했다. 다른 도장에선 그런 시스템이 그때까지 없었다. 남들이 하지 않을 했던 것이다." (장수영) "제가 보기엔 그래도 거위홍 원장이 대단하다. 장수영 도장도 12년의 세월이 걸렸고 2007년도부터 끊이지 않고 입단자를 낼 수 있었다. 한국의 다른 도장들도 20년이상 바둑계 활동을 하던 분들이다" "(거위홍)저도 베이징에서 도장을 만들기 전에 지방도시에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가르친 경험이 있다. 물론 입단을 목표로 하는 아이들은 아니었다. 이런 속담을 들려주고 싶다. 사나이(영웅)는 예전의 업적을 꺼내지 않는다. 옛날에 대단히 잘한 일이 있어도 중요한 건 현재다. 현재의 거위홍 도장이 중요한 거다." - 거위홍 원장은 엄청나게 엄하고 독한 사람으로 소문나 있다. 프로기사가 아니면서도, 프로들을 그렇게 맣이 배출하는 도장의 원장으로서 독한 카리스마를 뿜는 엄한 사람이라는 그런 이미지다. 오늘 직접보니 굉장히 유하다. 진실은 무엇인가? "(거위홍)이전, 그러니까 지금보다 나이가 더 젊었을 때 엄했다. 입단자를 배출하기 시작하면서 나도 나이가 들기 시작했다. 자식을 키우면서 그렇게 엄하게 구는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느꼈다. 그렇다. 조금은 변화가 있었다. 아이를 낳아 내가 키우면서 느낀 점이다." ![]() "(거위홍)미위팅, 장웨이지에, 양딩신도 데리고 있었다. 그러나 입단할 때의 도장이 달라서 우리도장의 제자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 거위홍 원장, 과거의 업적이 아니라 현재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입단권에 달한 원생들은 여러 도장들의 스카우트 대상이다. 본인의 마음이 흔들리는 경우도 있고 부모의 마음이 흔들리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몇 년 십수년을 한 도장에 속해있다가, 다른 도장으로 옮긴지 3개월~6개월 내에 입단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선 예전부터 그런 일이 왕왕 일어나곤한다. - 오래같이 하던 원생들이 도장을 옮기는 것, 이런 경우가 중국도 있나? "(거위홍) 중국도 그런 경우가 많다. 그냥 이렇게 생각한다. 그들(재주가 뛰어난 원생)이 입단에 성공했으니 전체 바둑계로 보면 정말 '좋은 일'이다. 그러나 개인적 차원에서 보면 ... 마음이..좀 그렇다. (섭섭함과 서운함을 감출 수 없는 표정) "(장수영) 입단대회를 떨어지면 학부모들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일단 입단하고보자는 마음에 연락이 오는 어떤 도장이든 옮기는 경우가 생긴다. 사람사는 도리로 보면 바둑도장은 일반 학원과 달라, 선생과 제자의 연이 맺어지는 곳이다. 따라서 제자가 다른 곳으로 옮길 때 다들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때에 따라선 큰 충격이다. 그러나 이를 안으로 삼키고 모두 다 더 잘되기를 바랄 수 밖에 없다." "(거위홍) 장수영 도장은 잘 적응해 나가시는 것 같다. 최근 중국 최우수 영재들이 다니는 학교에 도장 소속 프로, 원생들과 참관을 다녀왔다. 여기에 다니는 학생들은 졸업후 거의 대부분 미국유학을 간다. 이곳의 교훈이 '세계의 시민이 되자, 중국의 심장을 가지고'라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장수영 도장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바둑의 중심에서 새로운 모델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 같다." - 인터넷 바둑도 많이 둔다던데, 사이버오로와 시나바둑은 매월 랭킹최강전을 열고 있다. 거위홍 도장 소속 프로들도 많이 참가하나? "(거위홍)거의 대부분 참가한다. 누구더라, 뚜양이란 친구가 우승까지 했다. 시나바둑이 협조해줘서 많은 프로와 원생들이 대회에 참여한다. 중국 프로들은 인터넷에서의 훈련량, 대국량이 매우 많다. 최근 1,2년사이 중국바둑의 선전에는 사이버오로 등 인터넷 대국이 도움이 됐다.(농담임을 드러내는 밝은 웃음)" - (장수영)하하, 오로바둑에서 중국프로가 10초바둑을 두는 걸 잠깐 봤는데 수읽기 훈련이 보통이 아니었다. 수읽기란 짧은 시간에 정확하게 읽어야 강한 것이다. 제한시간이 많아도 그걸 다 쓰면 결국 초읽기에 들어가는데 여기서도 결국엔 짧은 제한시간동안의 초속기 능력이 중요하게 된다. 중국 프로들이 빠른 수읽기에 숙달이 되어 있는 것 같다. 경험상 속기를 우승할 수 있는 사람은 본격기전도 우승한다." - 5년후, 혹은 10년 후 도장의 미래는? "(거위홍)실력만 센 게 아니라, 문화, 도(道)라는 소양을 가진 프로들을 키워내고 운영하고 싶다. '문화'라 부를 수 있는 그런 내용이 있어야 현재 가지고 있는 재주와 능력이 후대로 이어 내려져갈 수 있다. 그게 없으면 잠깐 흥해도 후진 양성이 어렵다. 결국 그런 문화가 전수되고 모아졌을 때 우칭위엔, 이창호 같은 대가들이 출현하는 배경이 된다. 1인자를 다투는 백가쟁명같은 문화 분위기에서 우칭위엔이나 이창호가 배출됐다." - 거위홍이 생각하는 문화가 무엇인가? "(거위홍)각 방면, 책을 쓰거나, 글을 쓰거나, (도장이나 교실을) 관리하거나, 바둑의 정수를 알리거나 하는 모든 방면을 뜻한다. 이런 것들이 모두 모아져야 대가가 출현할 만한 기반이 된다. (자신감이 없거나 부족하다는 그런 바둑기술적인 것보다는, 중국바둑은 아직 문화적인 면이 덜 성숙되어 있다는 뉘앙스다, 일례로 중국인이 직접 쓴 볼만한 바둑 책,교재같은게 별로 없고 한국이나 일본의 바둑책을 가져다 해적판으로 본다는 이야기 들이다.) ![]() ▶ 인성을 강조하는 장수영 9단 "(장수영) 잘 쓴 바둑책 하나 만들기가 실은 굉장히 어렵다. 직접 만들어 봤는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바둑도 초창기엔 일본 바둑책을 봤다. 한국에서 바둑책이 많이 나왔지만 또 현시점에서 볼만한 정석,포석 책들은 찾기 힘들다. 한국도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다른 이야기지만 이창호의 부득탐승 같은 책은 바둑수법을 이야기하진 않지만, 프로를 준비하는 연구생들과 학부모들에게는 꼭 읽어보라 권하고 있다." - 이세돌은 5년후면 중국바둑이 대세가 될 것이라고 했지만 더 짧게는 2~3년 후라도 대세가 될 수 있지 않겠나 "(거위홍) 장수영 도장을 보며 한국바둑에서 면면히 흐르는 물줄기를 연상했다. 중국은 파도가 한 번 몰아치고 끊겼다가 다시 파도가 몰아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최근에 성적을 바짝 내고 있지만 훈련과 공부를 몰아치는 분위기도 작용을 했다. 최근 미위팅 판팅위가 잘 두지만 또 몇년 후면 밑의 세대, 혹은 다른 선수들에게 밀려나 있을 수도 있다. 중국은 선수교체가 빠른 것 뿐이다. " "이제 이창호 같은 1인자가 다시 출현하기는 힘들겠지만 한국처럼 바둑도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동고동락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대가가 출현하는 풍토가 되야 한다. " ![]() ![]() ![]() | ||
첫댓글 거위홍도장의 거위홍선생과의 인터뷰때 통역을 제가 맡았습니다. 거선생님이 중국속담을 인용하거나 비유하시는 것들을 통해서나 어조나 억양을 통해서 느낀 바 그대로 말씀을 아주 잘 하시는 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