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이 이 금강삼매경은 부처님이 설하신 대승경전이라는 사실을 역사적 근거로 분명하게 제시한다.
먼저 도안대사가 채집한 經錄경록에는 이 경전이 오래전에 있었지만 한역한 자는 누군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정황으로 보면 이 경전이 그때 이미 있었다는 말이다. 안타깝게도 이 경록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다.
100여 년 뒤에 양나라 승우스님이 지은 15권짜리 出三藏記集에는 이 경전을 오래전에 잃어버렸다고 했다.
당나라 도선스님이 664년에 10권으로 지은 大唐內典錄에는 대승경전의 목록이 7천여 권이나 된다. 거기에는 이 경전이 빠져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있긴 있는데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그렇게 이 경전은 이름만 드러내고 그 내용은 용궁에 꼭꼭 숨어있다가 원효의 출현과 함께 이 세상에 완전한 모습으로 얼굴을 내밀었던 것이다. 마치 명장이 나오면 그에 맞는 명마가 나온다는 속담이 제대로 실현된 것과 같은 것이다
아무리 원효라 하더라도 용왕은 이 경전을 호락호락 쉽게 내어줄수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성사의 식견이 무르익고 보살행이 완숙한 만년에 가서야 드디어 그분께 전달한 것만 보아도 이 경전의 비중과 가치가 어떠한지 새삼 능히 짐작이 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도안대사가 처음으로 소개한 이 금강삼매경은 가끔씩 중국스님들에 의해 그 이름만 언급되다가 근 300년이 지난 후 아무 연고도 없는 신라에 혜성처럼 나타난 원효로 부터 그 내용이 만천하에 혁혁히 드러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 당나라 후기인 730년에 지승스님이 일체의 경전을 20권으로 편찬하였는데 그 책 이름이 開元釋敎錄이다. 거기에 보면 176명의 삼장법사가 나온다. 그분들이 번역한 대소승의 경률론 7,046권이나 된다. 거기에 사라졌던 금강삼매경의 이름이 드디어 정식으로 나오고 그 장수가 28장이 된다고 하였다.
그 이후 송나라 황제의 칙명으로 남산율에 정통한 찬영스님이 엮은 30권짜리 송고승전에는 이 경전이 30장 가량 된다고 했다. 그 속에는 533명이나 되는 唐宋당송 때의 모든 고승들의 전기와 그에 따른 저술들이 기록되어져 있다. 거기에 이 금강삼매경론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져 있다.
이런 사실적 기록을 무시하고 끝내 이 경전이 원효대사의 저술이라고 우긴다면 그것도 뭐 나쁠 것이 없다고 본다.
첫댓글 삼보에 귀의합니다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