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996) - 예년보다 빠른 벚꽃 풍광
춘분 지나고 완연한 봄 날씨, 대지에 봄기운이 충만하다. 때에 맞춰 지인이 보내온 메시지, ‘봄이 무르익어가고 있습니다. 하얀 목련이 활짝 만개하여 순백의 아름다움을 우아하게 뽐내고, 노란 개나리가 기지개켜듯 길고 가는 잎을 늘어뜨립니다. 봄봄봄, 가까운 날 뵐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광주의 지인은 우리가 25년 넘게 살았던 아파트단지에 활짝 핀 벚꽃풍광을 보내오고.
25년 넘게 살았던 남녘 아파트의 벚꽃터널
화사한 봄날을 선물하는 벚꽃이 예년보다 일찍 피었다. 기상청은 전국 13곳을 벚꽃 명소로 지정하고 이곳의 벚꽃 개화와 만개시기를 알리고 있다. 이에 따르면 지난주에 꽃망울을 터뜨린 벚꽃명소는 부산 남천동(3월 20일), 경주 보문관광단지(3월 21일), 진해 여좌천(3월 21일), 하동 쌍계사(3월 22일), 청주 무심천변(3월 24일) 등으로 이 중 부산·경주·청주는 관측 이래 가장 빠르게 꽃망울이 터졌다고 전한다. 아직 꽃망울이 터지지 않은 벚꽃 명소는 서울 여의도 윤중로, 인천 자유공원, 춘천 소양강댐, 강릉 경포대, 공주 계룡산, 전주~군산 간 번영로, 영암 100리 등이다. 진해에서는 주말부터 국내 최대 벚꽃축제인 진해군항제가 4년 만에 열리는 등 곳곳이 벚꽃잔치, 날마다 걷는 청주무심천의 벚꽃길이 아름다워라.
갓 피어난 무심천의 벚꽃이 화사하다
때에 맞춰 언론에서 살핀 벚꽃 정취를 살펴보자.
‘古都의 벚꽃
산책길에 이른 벚꽃을 만난 날, 분홍 꽃잎의 여린 아름다움이 종일 눈에 아른거려 잠자리에 들기 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고도(古都)를 펼쳤다. 그중 한 구절, 무엇보다 멋진 것은 신사의 정원을 분홍빛으로 수놓은 만개한 벚꽃이었다. “실로 이곳의 벚꽃 외에는 교토의 봄을 대표하는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사의 정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만발한 벚꽃의 분홍 빛깔이 치에코의 가슴 밑바닥까지 가득 피어나는 듯했다. “아아, 올해도 이렇게 교토의 봄을 만났구나” 하고 치에코는 그 자리에 선 채 미동도 않고 바라보았다.
소설 고도(古都)는 교토를 배경으로, 갓난아기 때 헤어진 쌍둥이 자매의 엇갈린 운명을 이야기한다. 소설은 쌍둥이 자매 중 한 명인 치에코가 친구와 함께 헤이안 신궁(平安神宮)의 벚꽃 구경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가와바타는 “꽃을 남김없이 다 보고 싶다”는 치에코의 눈을 통해 특유의 감각적인 문장으로 교토의 봄 풍경을 그려낸다. 이를테면 이런 구절. “서쪽 회랑 입구에 서자 온통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분홍빛 벚꽃 무리가 홀연히 봄을 느끼게 한다. 이것이야말로 봄 그 자체다. 축 늘어진 가느다란 가지 끝까지 여덟 겹의 분홍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그런 꽃나무 무리는 나무가 꽃을 피웠다기보다는 가지가 꽃들을 떠받쳐주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책갈피 속에 만개한 봄을 즐기다가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본다. 저 산의 봄빛은 아직 아련하지만, 이내 소설 속의 봄처럼 선명하게 요염해지겠지요.(조선일보 2023. 3. 25 곽아람 기자의 글, '古都의 벚꽃'에서)
인터넷에서 살핀 교토의 벚꽃풍경
* 지난주 집에서 가까운 교회의 봄철특별집회에 참석하였다. 초청강사는 일본 식민지배 시절 신사참배에 항거하다가 순교한 주기철 목사의 손자, 한국기독교역사에 큰 자취를 남긴 목자의 후예가 담담하게 전하는 순교자의 삶이 청중의 가슴을 울린다. 때마침 역사와 법정에서 죄인으로 단죄 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가 할아버지의 행적을 부끄럽게 여기는 언행으로 화제에 오른 것과 대조되는 행보, 우리 모두 자손에게 부끄러움을 끼치는 선대가 되지 않도록 유의할지어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의 죄는 아비로부터 삼사 대까지 이르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애굽기 20장 5~6절) 동양의 고전인 주역에서는 적선지가 필유여경 적불선지가 필유여앙(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 선을 쌓은 집안에는 경사가 넘치고 불선을 쌓은 집안에는 재앙이 뒤따른다)이라 경고하며 그 시효가 선행은 천대까지, 악행은 삼사대까지로 똑같은 점이 흥미롭다. 어제(3월 26일)는 안중근 의사의 순국일, 월간잡지에서 살핀 글 한 토막으로 추모에 가름한다. ‘안중근은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에 사형이 집행됐다. 영웅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그해 8월 29일 조선은 한일합방을 당했다. 하지만 안중근의 거사는 당시 나라 잃은 백성들에게 쾌거였고, 두고두고 가슴에 담아 키웠던 희망이자 등불이었다.’(월간 중앙 2023년 4월호, ‘안중근 순국 113주기, <하얼빈> 작가 김훈에게 묻는다’에서)
3월 26일 오전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순국 113주기 추모식에서 참석자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