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꿈

[智行(지행)]

 

 여실히 드러난 나의 행위를 지켜 보는 있는 자(者)가 있다.

난, 좀 유식 하다는 언어론 유영(有影) 이라고 불리운다. 그러나, 남들은 아주 쉽고 편하게 '그림자' 라고도 부른다. 이 여백의 시간이 지나면 출근에 나서는 저 남자에게 붙어 살 그림자이다. 아니, 저 남자라고 하니까 어색의 울림이 너무 진하다. 그냥 '녀석'이라고 부르기로하자 어짜피 난, 네 모습의 끄트머리 동일의 존재 이니까.

녀석은 나에게 애틋한 감정이나 각별한 느낌을 가지고 살지는 않는 것 같다. 서운하지만 난, 녀석의 계산법과 좀 다르다. 40여 불혹의 애틋함은 가슴의 울림통으로 듣고, 오매일여 화두 챙기는 마음으로 녀석을 그느려 왔다. 이것이 비록 나의 숙명적 태생의 한계라 해도 거부치 못하는 내 운명의 편린 같은 모습이다.

우리 둘은 쌍둥이다. 쌍둥이엔 분명코 서열이 나열 되지만, 우린 누가 앞 서고 뒷 설게 없는 동급의 존재다. 어쩌면 녀석은 엄마 몸 밖으로 머리를 먼저 내 밀었다는 우짐질로 서열의 압박을 가할 지도 모른다. 내 훗날 이 억측의 논리를 대비해 가늠자의 잣대로 서열의 비밀을 자세히도 기록해 놓았다.

세월의 태엽을 40여 바퀴만 되돌려 보자. 네겐 이미 생태학적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됐지만. 조산원 백 촉 희미한 등불 아래에서 네 처음 우렁찬 날숨을 토해 내던 날, 난 이미 네 옆에서 한 탄생의 경의로움을 보고 있었네. 그 뿐이던가 지금 같지 않게 유리 알처럼 맑은 살결과 영롱한 눈빛을 가진 너의 돌쟁이 시절, 어름 한 걸음거리로 얻은 팔꿈치의 평생 상흔과, 아빠 목에 처음 오른 너의 희열과 두려움까지 난 생생히 기억해 두었다네.

나 역시 서열의 동급을 제 밑동생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 간절하나, 그래도 한 모태에서 한날 한 인연으로 맺어진 운명이니 내 억울함은 적히 인고 할 수 있다네. 

난, 비록 너의 길라잡이로 움직이는 피동적 검은 그림에 불과하지만, 묵묵히 너의 뒤편에 서서 네겐 망각된 환희와 아픔까지 훔쳐 본 유일한 증 좌인 이고, 네 일생의 행위가 여과 없이 투영된 처절한 너라 할 수 있다. 무릇 우리의 명(命)이 무위로 흩어져 홀씨의 밥이 될 때까지 함께 해야만 할 숙명공동체라 할 수 있다.

7년 전. 녀석은 도시의 화려한 유혹을 버리고, 무릇 사람은 사대(地. 水. 火. 風)의 기운을 받고 살아야 한다며 어려운 귀촌을 결행했었다.

식객들의 걱정은 뒤로 한 채 흙으로 돌아감이야말로 무너진 감성의 끈을 복원하고, 틀 속에 갇힌 영혼을 풀어낼 유일한 탈출이라며.

귀촌 후, 코를 여미는 듯한 분뇨 악취와 삶의 불편 부당한 시설의 부재들은 사랑이란 든든한 인내로 참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해만 기울면 시공이 멈춰 버린 듯한 암흑과 적막감은 절규에 가까운 외로움 이였고, 산으로 둘러싸인 시야의 갑갑함과 아직은 도시에 두고 온 향취 증은 시공(時空)의 정체성을 넘어 삶의 의미조차 의심케 하는 고통이였다.

그러나 녀석은 식객들의 이 절실한 원성조차 시간으로 약방문 삼자며, 마른 미소에 허당한 위로만 보여 주어였다. 그땐, 참으로 어찌 겁박조차 해 볼 수 없는 최후의 사후약방문만 받은 듯한 허탈감이였다.

그렇게, 몇 년. 이끌리 듯 살다 보니 흙으로 귀루한 녀석의 결행에 조금은 경외로움을 느낀다. 갑갑증의 약방문은 화타의 손 빌린 듯 시간이 정수해 주었고, 철마다 치장된 산마루의 지엄한 풍광은, 무지로 산 내 삶의 동화요, 면경을 보는 듯했다.

오늘도 동네 어귀엔 반 천 년 된 느티나무가 서 있다. 오백 세류를 다 겪었을 할아버지 나무 위로 밤꽃(栗 花) 향이 흐른다. 그 옛날 김진사 댁 과수 며느리도 몸서리림에 지쳐 밤새 울게 했다는 밤꽃 향이. 지금은 희귀해져 거의 사라졌을 과수댁을 찾아 오늘도 밤향은 온 마을에 서릴 것이다.

할아버지 나무 위에 열 구름과 푸른 별이 옛 동심을 나누듯 반짝인다. 녀석의 화려한 꿈의 귀환에 찬사를 보내며.

도시에서 빌어(경제활동) 촌로에서 이리 삶을 영위 할 수있다 함은, 실타래 같이 엉킨 현재의 삶들을 풀어낼 표본실의 꿈이 아닌가 한다.

이젠 여기도 말이 시골이지 모습의 절반은 도시의 옷과 빛으로 갈아입었다. 행정 구역도 군(郡)에서 시(市)로 승급 된 지도 벌써 수 삼 년이 지났단다. 집 수만도 오천 세대가 넘는다니 말 그대로 아파트 홈 타운이 된 거다.

도시에선 사람들이 개발과 뉴타운이란 웅장한 비수에 찔려 쫓기듯 밀려나왔다고 한다.

요즘은 건설 기계 소음으로 온 마을이 편할 날이 없다. 창 너른 논밭은, 괴물 같은 굴착기의 긴 혓바닥에 난도질을 당했고, 마지막 항전 결의까지 보였던 야산은 불도저의 버팀력에 평야로 무릎을 꿇는 처절한 굴욕을 겪어야 했다.

꿈이 이질화된 요즘, 다시금 삶에 채집되어 살아지는 듯한 엄습 감에 숨이 차오른다. 꽉 채움에 불안까지 덧댄 아침. 진한 하루의 출근은 변화될 저녁이 올가 망하고 두렵다.

누릴 수 있는 것을 다 같이 누림은 행복의 당위이고 권리다. 하지만, 무질서로 덧댄 행복의 이면엔 영원성을 잃는 또 다른 눈물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화려한 안착에 성공한 외객의 눈부신 등 밑엔 토착 인들의 어두운 장렬함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

허리 급은 노인만 뜨문이 채우던 채 밭엔, 사람 수만큼 밀려든 학교가 대형마트가 홍등 빛 술집과 헬스장 골프장 따위로 가득 채워져 버렸다.

검은 개발의 명분을 내세워 달려든 인간의 욕심 앞에선 나직한 자연은 결코 위대하지 않았다.

요즘, 녀석은 가끔 '또....,어디로...,' 비 맞은 노승의 중얼거림보다 낮은 한탄을 조아린다. 더 갈 수 없는 길임을 알기에 마음 졸임도 큰 눈치다. 이제 절반의 화려함으로 겨우 치유된 서울부인의 그간  진저리는 염두에도 없이.

짧은 치마로 뒤똥뒤똥 차에 오르는 아가씨의 엉덩이가 아슬해 보인다. 버스에 오르는 사람의 표정도 사뭇 많아진 동네다.

자리 수 꽉 찬 버스가 정류장에서 할머니 한 분 태우길 한참. 할머니 등과 양손엔 채 밭에서 일군 땀의 보따리로 고단해 보인다.

어른이 오르면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예전 배운 도덕의 당위가 힘을 얻어야 할 순간이다. 본능적으로 자리를 비켜선 녀석의 행위는 획일화된 교육을 받아 온 무수한 흔적 중에 절대 지워 지지 않을 각인 이였다.

획일적 교육의 후유는 긍정과 부정이 극일 하지만, 녀석의 무조건적인 각인 이야말로 획일화한 교육의 큰 잉여물이 아닐 수 없다.

요즘 아이들 듣는 버릇이야, 내 어릴 적 듣던 버릇과 다를게 없지만, 눈은 멀뚱하고, 행동은 더딘 치마 길이만큼 짧은 젊은 도덕이 눈 거칠어 짐은 당연한 상정이다.

얼마 전부터 녀석에겐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책이라 하면 수면용으로만 긴히 쓰던 녀석이 요즘은 책을 아주이고 산다. 옭아맨 가방 속에 들어앉은 두어 권의 책 속엔 수십의 삶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예전, 녀석의 대중교통 속에서의 소일이란 몇 부의 무가지 신문만 되돌기 해 읽다가 긴한 하품을 동반한 졸기 인사가 전부였다. 그것도 지겨워 지면 섬광 같은 눈빛으로 아낙들의 휘황찬 맵시를 음미하기도 했지만, 이젠 넘실대는 인파 속에서 책 안의 다른 삶을 만나기 바쁘다.

그 마중 물 같은 이끔들을 통해서 이제는 자신의 꿈을 그려 내기 시작한 것이다. 조금은 변했다. 꿈이 생겨 녀석은 변했다.

꿈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고 한다.

불혹인 나에게 꿈을 묻는다면, 세상 모든 이가 여여 한 마음으로 다 같이 잘 사는 세상이라 하기엔 한참을 밑도는 인생 용량이라 실현 불능의 꿈일 테고, 우매한 소리로 로또에 당첨되어 몸뚱이 하나 편하자는 맹랑한 삶의 횡재는 공허한 지능의 전라라 내 놓지 못할 꿈이다.

진부 하나 망각되기 쉬운 가족들의 건강권과 행복권을 지켜 줄 가장의 의무가 당면한 꿈일 것이고, 덤으로 답하면 한 생각 돌이켜 알음알음가 응축 되어 여러 이들에게 행복을 나눠 줄 전령의 전위가 되어 보는 것이 꿈이라면 꿈 일 것이다.

꿈을 이룬다는 건 먼 산에 가부좌 틀고 손짓하는 게 아닐 것이다. 꿈꾸듯 변해 가는 세류 속에서 나를 찾아 재 발견 하고 일보 해 나갈 수 있는 삶을 영위 하는 것일 거다.

문득, 밖에서 구하지 말고 안에서 구하자 라는 묵중한 진리가 새삼 빈 마음으로 들어와 앉는다.

손사래를 흔드는 녀석에게 아슴히 묻는다.

"너, 혹 예전에 묻혀 버린 작가의 꿈을 찾으려 하는 거지?".

"웃기시네...,작가는? 작가는 아무나 하냐?". 훗날 반갑지 않은 치매나 미리 면해 볼 요량이라 했지만, 난 안다. 녀석의 손사래 사이로 비친 눈빛엔 그렁한 좌절의 꿈이 다시 활활 요동쳐지기 시작했음을.

어린 날에 꿈이 있었다.

마음 질박한 푸른 구름 빛이 서린 촌 골에 선생이 되어, 아이들에게 담록빛 꿈을 안겨 줄 작가가 되는 것이였다. 복잡 요란하고 채색 화려한 도시는 감성적 알레르기증후군 이였다.

땅거미 내려 어둑해진 촌집 굴뚝에 피어오르는 흰 내음을 꿈 꾸었고, 도둑눈 내린 새벽 들녘에 울리는 첫 닭 울음소리를 그려 내고 싶어했다. 아마, 촌으로의 화려한 탈출은 녀석의 좌초된 꿈이 생생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였을 것이다.

녀석의 좌절된 꿈엔 시디도록 아린 슬픔이 서려 있다.

녀석의 고등시절은 가세의 고단함으로 마음의 고락(高落)이 무척 심했다. 대학입학은 윷판의 막장 행위처럼 '모 아니면 도'의 극단적 선택만 해야 했다. 비켜 돌아갈 길은 전혀 없었다. 장학생으로 환희의 만선에 올라 꿈의 깃발을 꽂던가. 아님, 땅 깊은 차가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 지던가였다.

몹시 추운 겨울날.

녀석은 대학 성적표를 움켜쥐고, 터벅이 뒷산을 올랐다. 흐르는 눈물엔 쓰디쓴 소주만이 위로다. 허공을 가르는 술 부음 질이 커질수록 그렁한 녀석의 눈 방울도 커졌만 갔다. 비켜 갈 수 없는 현실이 너무나 원통해서 울었다. 단번에 사라진 꿈이 시리도록 억울해서 까맣게 울었다. 휴지가 된 성적표를 노을에 던져 불 태우고, 세상을 향한 끝없는 원망의 절구질을 해 댔었다.

그 날은 나도 시리도록 울었고,  산도 울었다.

지금, 난 찰라의 포말로 널브러졌던 잊혀진 꿈을 찾아 가고있다. 시공을 훌쩍 넘은 옛 꿈 이였지만, 여 남은 절반의 희망을 찾으러 오늘도 글 줄에 미치고, 삶에 미칠 것이다.꿈은 소멸이 아닌 잠재로 침잠되어 남아 있었기에.

앞으로, 다가설 삶의 여정 길에서도 내 그림자는 내 곁을 떠나 주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여실행]

지난시절이 여실이 들어나는 글을 감명깊이 읽었습니다 그 꿈이 이루어지길 바래봅니디 ~

[태휴(泰休)]

나에겐 언제나 나만 있는게 아니었습니다.. 내 의식의 한편에서 꼭 나를 보듯 내려다보는 그 친구가 오늘따라 그립습니다~~좋은 글 대할 수 있어 행복한 시간 머물다 갑니다~~^^

[여실행]

전 오늘 그친구가 옆에 꼭 붙어있어서 더 더운가봐요~ㅎ

[버들]

누구에게나 돌아 가고픈 고향이 있는듯 합니다...그것은 그리움일수도 희망일수도 있습니다...지금 내 귓가에 들리는 오빠생각 하모니카 소리가 잊었던 내 지난날의 고향을 마음으로 만나 봅니다....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