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 되시길
겨울방학이 봄방학으로 이어진 지난 주 금요일이었다. 재학생들은 일월 초 방학에 들어 삼월 초 신학기를 바로 맞는다. 학교 건령이 오래되어 보수 공사가 있어서다. 졸업생들만 이월에 하루만 나와 정한 의식을 가졌다. 이후 신학기 인사이동으로 근무지를 옮겨가는 동료들을 위한 송별회를 가졌다. 학교에서 멀지 않은 세코 연회장 예약 자리로 이동 전 동료들이 시간을 같이 보냈다.
이번에 정년을 몇 해 앞둔 나하고 같은 연령대 보건교사가 명예 퇴임을 했다. 사실 나도 이번 학기로 잔여기간을 다 채우지 않고 퇴임을 할까도 망설였다. 지난해 여름 명예 퇴직자 수요조사 공문이 왔을 때 내 이름도 칸을 채워 보냈다. 그 이후 주변에서 한사코 정년까지 완주해주십사는 권유가 있어 마음을 되돌려 눌러 있게 되었다. 그러고 지역 만기인지라 근무지를 옮기게 된다.
나하고 같은 아파트단지에 예전에 같은 학교 근무했던 동료가 살고 있다. 몇 해 전 평교사로 정년을 마치고도 아주 정정한 분이다. 생활 속에 내가 남기는 글들을 메일로 보내주면 꼬박꼬박 읽고 회신을 보내주는 애독자이기도 하다. 이분과 어느 날 아파트단지 상가 주점에서 만났더니 내가 이번에 퇴직하는 줄 알고 있었다. 사연인즉 명예퇴직 수요조사에 내가 거론 된 적 있어서다.
앞서 언급한 송별회가 있던 날이었다. 으레 학교 행사는 교무부장이 진행하나 송별회는 친목회장이 사회를 봄이 관례다. 친목회에서는 송별회식을 갖기 전 간단한 의식을 가졌다. 주인공은 물론 명예 퇴직하는 분이다. 단체석으로 예약된 홀 전면 ‘지나갈 모든 길 꽃길 되시길’이라는 펼침 문구가 걸렸다. 그 아래 작은 글씨로 ‘○○○선생님 명예 퇴임을 축하드립니다’가 적혀 있었다.
뷔페 연회장에서 식사 전 짧게 진행된 의식에서 그날의 주인공은 교단을 떠나는 한 마디를 사양했다. 그 이전 교무실 직원회의 때 인사로 갈음한다고 했다. 곧 이어 근무지를 옮겨 가는 이들을 소개 받았다. 나를 비롯해 여남은 명 되었다. 친목회는 약소한 금액이지만 규정 따라 전별금 봉투를 건네받았다. 친목회장은 나보고 이임 인사를 권하기에 짧게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보내는 교직 생활에 학생들 앞에서 섬이 당연하지만 전체 동료들 앞에서 설 기회는 좀체 없는 편이다. 아마 같은 학교 동료들로 나를 바라보는 생각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삼년 전 이맘때 이월 부임 인사차 들렸던 전체 회식자리에서 그 당시 사회를 보던 교무부장이 부임해 오는 교사를 대표에 나를 보고 건배 제의가 와 나는 얼떨결에 ‘이 모습! 그 대로!’로 잔을 든 적 있었다.
나는 송별회식 연단에서 사회자의 청을 받아 짧게 한 마디 나누었다. 오늘 퇴임하는 분을 축하하고 앞날의 건승을 기원했다. 남아 계신 분들이 나와 함께 떠나는 이들에게 보내주신 성원과 따뜻한 마음 오래도록 잊지 않겠노라고 했다. 그리고 몸담았던 학교의 무궁한 발전과 여러 선생님 강녕을 빈다고 했다. 이어 진열된 음식을 담아와 취향 따라 술이나 음료를 한 잔씩 비웠더랬다.
송별회가 마치고 이튿날이었다. 그 자리 함께 있었던 교장과 교감이 약속이나 한 듯 나에게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왔다. 그 전날 송별회식 때 내가 연단 앞으로 나가 이임 인사를 나누는 장면을 폰 카메라로 담은 모습이었다. 나는 마이크를 잡고 인사를 나눌 때 누가 사진을 찍고 있는지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교장과 교감이 보내준 내 모습이 담긴 사진을 휴대폰에 저장시켰다.
봄방학이지만 근무지를 옮겨야 하기에 몸도 마음도 바쁘다. 그런 정중동 속에 교장 교감이 보내준 사진을 각별하게 지내는 친구나 지인에게 날려 보냈다. 현수막 큰 글씨만 보면 내가 퇴임하는 줄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며칠 전 대학 동기가 내가 이번에 퇴임한 줄 알고 아쉬워하는 회신이 왔다. 오늘 저녁에도 멀리 떨어진 지인이 내가 퇴임인 줄 알고 뒤늦게 안부 문자가 날아왔다. 19.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