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이 사고를 쳐 검찰청에 다녀오니 하루종일 힘이 빠진다. 작년부터 세상살이에 부대껴하는 녀석인지라 사정을 알 지만 속이 많이 상했다. 담임으로서 해줄 수 있는게 없어 미안하다. 각서를 쓰는 녀석과 그녀석의 어머니. 어머니는 연신 눈물을 손수건으로 감추는데 녀석은 그런 어머니에게 미안하기나 한건지 연신 건들건들이다. 주의를 주고 검사실로 향했다. 검사는 이뻤다. 담임까지 올 필요까지는 없는데 아침부터 교장선생님부터 담임까지 오는 걸 보니 학교가 대단하단다. 아침에 교장선생님께 사건개요를 설명하면서 얼마나 식은 땀을 흘렸는데...ㅠㅠ
이러구 저러구 기숙사 주말근무를 바꾸고 산으로 향했다. 원래 계획은 일요일 아침 조우하여 산행하기로 하였으나 급한 마음은 오늘 당장 떠나고 싶었다. 먹을거리와 짐을 싸니 두시가 넘어선다. 순창쪽으로 하여 국도를 달려 육모정에 이르렀다. 마천에 "소문난 짜장"집이 있다면 이곳엔 "지리산짜장면"이 자리를 잡았기에 들어가 짬뽕밥을 청한다. 날씨가 쾌청하여 능선이 시원하다. 짬뽕을 얼큰하게 하여 달라하였으나 아침을 비운 뱃속이 요란해진다. 천천히 천천히 차를 몰아 구비진 골짜기에 이르렀다. 고기리 계곡은 댐을 짓느라 모두 파헤쳐졌고, 흉한 자리엔 댐관리탑이 들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사진 촬영장소가 되었다.
다시 길을 재촉하는 중에 구룡폭포 표지판이 보였으나 무심이 지나쳤다. 그러다 맘을 바꾼다. 어차피 백야를 꿈꾼다면 일러봐야 기다림의 시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차를 돌려 구룡폭포를 향한다. 가옥이 있고 바로 옆으로 구룡계곡 상단이 나오는데 구룡폭포는 약 100미터 아래 위치해 있었다.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음이 불찰인지 비온 후 구룡폭포는 웅장하기 그지없다. 골짝 전체가 폭포로 이루어져 물이 쏟아지는데 가히 장관이다. 폭포옆으로 철계단이 만들어져 폭포 상단에서 구경케끔 해놓았는데 맨윗부분은 밋밋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폭포하단으로 이어진 계곡 하단부는 흰 바위가 펼쳐져 별경을 이루었다.
선유폭포에 들러 사진을 찍고 숨한번 크게 들이키니 정령치다. 5시 30분이 되었는데도 주차요원은 퇴근을 하려는 기미가 없다. 그리하여 다시 차를 달려 뱀사골까지 가서 먹거리를 더 준비한다. 아무래도 바가지를 쓴 듯한 느낌 지울 수 없다. 스팸 하나에 오천원이면 좀 비싼 듯 싶다.
달궁 제2주차장에도 임시 매점이 생긴 듯 쭈쭈바를 먹는 아이가 나의 구미를 당긴다.
현실형에게 전화하니 오늘 운봉에 온단다. 어차피 내일 만날 형이지만 시간이 되니 밤에 만복대로 온단다. 만복대에 이르니 어둠이 깔리는데 주능위로 둥그런 달이 뜬다. 사진을 찍었으나 역시 실력탓만 했다.
짐을 들고 입구로 들어서니 벌써 어둠이 깔린다. 귀찮음으로해서 렌턴을 빼지않고 길을 걷는다. 길이 미끄러웠으나 걸을만 하다. 억새가 핀 곳을 지나는데 인기척이 들린다. 기침 한번 하니 화들짝 놀란다. 덩달아 나도 놀란 행동을 취했다. 시간을 잘못 계산해 서두른단다. 얼마 안남았으니 조심히 가라며 인사를 했는데 영 찝찝하다. 랜턴이 없다고 했는지 안했는지...렌턴이 없다면 돌아서 정령치까지 동행해야는데...허나 여기서도 무성의한 마음에 렌턴이 있겠지 하고 내갈길만 가는 나의 싸가지.
평지가 나타나면서 안개가 밀려오기 시작한다. 렌턴을 빼고 담배 한대 피고 천복이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길을 재촉했다. 바로 앞도 안보이는 상황이다. 만복대가 보였다 가렸다 한다. 거의 다 오긴 하였다.
만복대에 이르러 숨한번 크게쉬는데...
옥반지를 껸 듯한 달이 모습을 드러낸다.
말을 잃게 하는 풍경.
달을 둘러싼 달무리가 사라지고 하얀 창백함을 드리우는데, 구름을 몰고 간 바람이 반야봉에 이를 무렵에 눈앞에 펼쳐진 구례, 곡성, 산동, 남원, 운봉, 인월, 그리고 마천인 듯한 곳.
산동의 네온싸인의 형형색색이 마치 눈앞에 펼쳐진 듯한 황홀경.
구름을 몰고 가는 바람이 보이는 그 느낌.
마치 하얗게 드리웠던 장막을 순간에 걷어낼 때 내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이내 영화 속 주인공처럼 주머니를 뒤져 입에 문 담배 한 대...돌탑에 기대어 하얗게 내뿜는 연기.
현실형이 올 때가 된 듯하여 전화를 시도했으나 터지지 않는다. 그러다 한번 터진 새에 어딘지 확인도 못하고, 오지 말란 말을 못하고 끊었다. 다시 불안증이 도진다. 안개가 왔다 갔다 하면서 더 불안하다.
형이 오기로 했으니 샘에서의 노숙은 다음으로 미루고 다시 정령치를 향한다. 쌀쌀했던 안개바람이 숲속을 지나니 다시 땀을 빼게 한다. 중간쯤 남자 3인조, 그리고 뒤를 이어 개를 대동한 남녀혼성 4인조를 뒤로하고 잡풀을 헤치는데...
어디선가 무식한 인간의 외침이 들린다. 산에서 고함을 치다니. "규태냐~~~"...반갑다. 초소에서 내리비치는 불빛이 그리 반가울 줄이야. 배한번 두드려주고 정령치로 내려선다. 오랜만에 걸어서 초소까지 올라오는데도 힘들다는 현실형의 말에서 현실형의 현실이 참 현실적으로 다가옴을 느낀다.
밥먹을 준비를 하려는데 한사람 노숙준비중이다. 그러고 보니 아까 처음 마주친 분이다.(망치형님)
마침 식사준비중이라 함께 식사를 하는데 반찬준비도 깔끔하다. 아까는 렌턴이 없는줄 알고 핸드폰 불빛으로 내려왔단다. 고생했다는데 자꾸 웃음이 났다. 위기가 지나면 평안이 찾아오는 오묘한 인간의 심리인가 보다.
산얘기 인생얘기 하다보니 형님도 카페 식구다. 주로 눈팅만 한다면서 반가움을 나타낸다. 그새 술이 비어간다. 산에서 먹는 만두의 새로운 맛이며, 알차게 준비한 술안주들...
열한시가 넘어서니 잠이 온다. 먼저 잔다니 안된단다. 좀만 버티란다. 결국 잠은 열두시 반에야 잘 수 있었다. 행복한 꿈나라였다.
점심쯤 다시 만나리라는 말을 주고받고 망치형님과 헤어진다. 차를 학생수련원에 대놓고 현실형의 집으로가 푸짐하고 맛난 아침을 먹고. 냉해로 논을 갈아엎었다는 말이 눈앞에 펼쳐진다. 특별재해구역이 되어야 농약값이라도 보상이 된다는데...
아버님 어머님은 여전히 정정하시다. tv를 보는데 자운영님의 전화. 벌써 주차장이란다. 마트에 가서 커피 한벵씩 하고 주차장으로 이동. 신발끈을 매는데 택시가 한대 오며 국악소리 형님이 내리신다. 검은 얼굴에 건장한 모습이다. 인사를 하는데 맥주를 열두병이나 얼려오셨단다. 게다가 열알 정도의 사과...^^888.
국악형님과 난 계곡을 택하고 현실형과 자운영님은 임도. 국악형님과 산얘기 이런얘기 저런얘기 하다 쉬엄쉬엄 임도를 만나는 지점에 이르렀는데...예상외로 현실형은 바로 앞에 있고, 자운영님은 진작에 올라갔단다...ㅠㅠ...
소리쳐 불러보아도 이름은 허공에서 산산히 부서지고 주인없는 메아리는 대답이 없다. 그래서 얼린 맥주를 껍데기를 찢어서 한캔 나누고.
임도를 대리석으로 말끔하게 정리해놓고, 주변은 목책을 둘러놓았으니 내년은 장관이겠다. 이국적이기도 하겠지만, 흙길을 밟고자 하는 우리들의 바램도 하나 사라진 셈이다. 중간에 탈진하겠다고 엄살을 피는 자운영님을 만나 맥주 한캔씩, 그리고 기념사진을 찍고...
쉬엄쉬엄 오른 바래봉 초소엔 웃통을 벗어제낀 건장한 중년 아자씨가 계시는데 자운영님은 연신 멋있단다. 태극종주를 하고 마지막 한나절이라는 아자씨는 내가 봐도 멋있었다. 흰머리가 희끗하심에도 비속을 뚫고 여기까지 오셨단다. 부럽다.
주먹밥만 잘싸는줄 알았더니 초밥도 맛나다. 게다가 후식으로 배까지 깎아온 정성임에랴*^^*
맥주 샤베트에 사과에 유부초밥에 옥수수캔에 커피한잔의 여유까지. 행복한 바래봉이다.
팔랑을 지나 부운에 이르러 현실형이 내려선단다. 세동치까지 가야하는데 나도 기숙사로 돌아가야 하는시간이 어중간하다. 국악형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부운에서 내려선다. 5분정도 내리막 후 임도에 이른다. 꾸불꾸불 임도를 따르는데 갑자기 하늘이 새까매지며 소나기가 내리는데 무섭게 내린다. 화훼 비닐하우스에서 잠시 비를 피하고 우의를 입고 출발하자마자 비가 그친다. 검은 구름이 서북릉에 걸친 것이 산에선 꽤나 내렸을 듯 하다. 망치형님과의 인연은 다음을 또 기약하였다.
형의 집으로 와 차를 타고 주차장으로 이동. 손을 서로에게 흔들어주고 헤어진다.
여원재를 넘어서는데 내리붓는 장대비는 차마 떨치어 무서웠다.
첫댓글 오늘 가을하늘만큼이나 맑고 푸른 산행기...재미나다.. 원추리님 산행기가 부러워서, 오늘 하늘이 아까워서 땡땡이치고 놀러가고 싶어요..ㅋ
여기서 또 놀란 사실 국악소리님이 남자분이였넹^^? 나도 꼭가보리라 ,,다시 느껴진다는 또 다른 지리산의 맛이라는 그곳 꼭 가리라 ,,
억새가 그때 올라왔었는데...이번주말이나 다음주쯤 활짝 필 듯한데...갈대의 순정...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