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소폰소고 14.
데킬라 이야기.
음악하는 사람들치고 술 안 좋아하는 사람이 드물고
(물론 Girl 도 좋아하더만..)
술 좋아하는 사람치고 사람(인간성) 나쁜 사람도 드문데
유독 술을 좋아하시던 음악 선배분들이 생각 난다.
내가 지금 이나이 까지 살아 있는것도 술을 늦게 배운탓이고
부모님이 술을 극도로 싫어 하셨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나이들어(히히히 .. 20대 후반...)
술을 배운 덕도 있다고 본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예전 사람처럼 무지막지하게 술을 마시는사람도 별로없고
또 모든것이 풍족해져서
별로 아쉬울게 없는 好時節이지만,
우리들 젊은날들은 전국민이(거의 대부분의 남자들이) 술을 즐겼다.
오죽하면 대폿집이라고,
나이든 할머니나 과부댁들이 큰막걸리 단지를 땅에 묻어 놓고
커다란 대접에 대포한잔을 팔고
안주로 콩나물, 무침이나 볶은콩, 생고구마 깍은거
같은거를 조금씩 주는 대포집이
거짓말 안 보태고 길 가에 골목에 10m 간격으로있었고,
또 차들이 별로들 없던 시절이라 길을 가다가 아는사람을 많이도 만나게 되고
그러면 누가 먼저랄 겄도없이 사이 좋게 대포집으로 갔다.
양은 주전자 (용량1L?)짜리가 (물론 약간 찌그러진데가 있어야 멋스럽다.)
1되이고
나무로된, 때에 찌들어 새카만 의자에 앉자마자
"아줌마 막걸리 1되 주소!!"
외치면 주인이 동그런 알미늄 소반에다
볶은 콩, 콩나물 무침이며 간혹 노가리 조림도 내오고..
둘이서 큰 대접에 한잔씩 콸콸 따라서 새끼 손가락으로 휘 ~휘 저어서
큰 대접 (지금의 냉면 그릇 보다 약간 작은)에
담긴 막걸리를 꿀떡 꿀떡 마시고 손으로 입가를 쓱 닦으면
고팟던 배가 슬슬 불러 오면서 눈옆이 약간 따뜻해오면서
갑자기 삼라 만상의 이치가 환히 보이고,
시가 이해되고, 철학은 물론이요, 정치,경제, 형이상학적인 차원까지 논하며
갑자기 우리가 세상의 현자가되는
놀라운 경험도 하고...
그렇게 둘이서 한 6~7되를 해 치우고나서
막걸리집을 나와 옆골목의 담의 담장에다
뽀얀 오줌줄기를 같이 갈기기라도 하면
그 친구와 나는 한층 더 가까운 사이가 되는 것이였다.
나는 늘 왜? 뿌연 막걸리를 마시는데도 흰 맑은 오줌이 나올까??
그게 좀 의문스러웠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알콜이 몸에 들어가면 알콜을 분해할때 많은 양의 수분을 필요로 하고
그게 오줌으로 나오게 된다는걸 나중에 알았다.
막걸이 술값은 한되에 30원정도 였고 짜장면 1그릇 값이 50원 정도였고
버스비가 15원 정도였으니지금으로 치면
막걸리 한 주전자가 1000원 ~1200정도 라고 하겠다.
다들 돈들이 없던시절이라 내가 혼자 처음,
향촌동에 밤일을 나갔을때 친구들은 거의 다 백수였고
간혹 학생..
(21~22세.ㅎㅎ)
돈 들이 없어서 내가 귀가하는 시간쯤에는 시장통 막걸리집에서
친구 몇놈이 술을 마시면서 교대로 내가 오는가 내다 보고
(12시 통금이 있던시절이라)
내가 저 멀리서 걸어오면 친구 지간인데도 달려와서
깍듯이 "형님(물주님) 오십니까?
하고 허리를 90도로 굽히고 절들을 했다.
(물론 장난이다..)
막걸리집에 들어가면 주인 할머니가 삐뚤삐뚤한 글씨로
다 갈라진 칠판에다
" 촛. 탁" 하고 쓰시고,
그옆에 正 T 이라고 써 놓은게 보인다.
그 뜻은, 촛대와 (키가 큰놈은 촛대라 불렀다 180이 넘으면 무조건 촛대이던 시절,
심지어 나도 20대 때에는 촛대로 불렷다..히히 175정도인데도.)
그 일행이 막걸리를 바를 正 ,하나면 5되, 그옆에 T는 2되,
합 7되의 막걸리를 쳐? 드신것이다 라는 뜻이고
꼴들을 보니 분명히 돈이 없어 보이는데..
자주 나타나 결제를 책임지던 내가 나타나면 반색이였다.
그러면 나는 호기롭게 그날 번 (일당이 한 500원은 되였다..)
돈 중에서 350원을 이미 친구들이먹은 막걸리값으로 지불하고
남는 잔돈은 " 애들 막걸리 한되 더 주시요."
하고는 호기롭게 집으로 갔다..
돈이 좀 아깝기도 했지만 친구들은 평소 내게 더 많이 마음을 썻다..
(남자 아이가!!!)
막걸리집이 10m 간격으로 있다보니 선배중에
약간 사?짜 기질이있는 선배는 도처에 외상을 깔아놓고 다니시는데,
신기하게도 자기집으로 가는 동선에는(길목)
절대로 외상을 깔지않아서 집으로는 안 걸리고 편안히 곧잘 가곤했다.
막걸리집을 하시는 할머니나 아줌씨들은
山戰水戰, 空中戰,肉薄戰, 化生放戰을 다 겪은 분들인지라,
산전수전= 산에서 술먹다가 싸움이 붙어서 치고 박다가 물에 빠져서도 계속 싸움.
공중전 = 지붕위를 뛰어 날아다니며 싸움.
육박전 = 말그대로 웃통및 바지까지 다 벗고 싸움.
(간혹 거시기가 튀어 나오기도 ...)
화생방전= 간혹 싸우다 밀리면 김치깍두기 국물을 뿌리기도 하고
독한놈은 푸세식의 똥을 퍼서 뿌리기도..거의 핵무기..
애들이 술을 먹고 왠만큼 박 터지게 싸워도 (머리가 깨진다는..)
눈도 꿈쩍않고 (이때는 술 먹으면 서로 자주 싸웠다..
아무겄도 아닌걸로도 ..그래서 우리는 동네 養兒治들이었다..)
주방용 식칼부터 감추고 "이놈들아 싸우려면 나가서 싸워라.." 하곤
쫓아 내곤 했는데 외상값을 제때 안 갚고
돌아 다니다가 걸리면 깝데기(외투) 라도 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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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또 길어 졌는데, 그만큼 술들을 잘하던
그 시대에도 군계일학, 술의 최고 고수경지에 오른 선배가 있었는데,
왠만큼 막걸리를 마셔도 취한 기색이 전혀 없고 ,
소주 맥주,등등, 오만걸 다 마셔도 꽂꽂히 집으로 가던 선배였는데.
어느정도냐 하면,
한번은 둘이서 저녁 8시에 시작해서 새벽 4시까지 마시고
(그 선배가 나중에 무슨 사업을하다 망해서 조그만 선술집을 했다..)
헤어지는데, 자기는 아직 덜 취한다면서 맥주를
큰거 한두병 그대로 나팔불고
집으로 가는걸 보고 나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한번은 무대에 올라 가기전에 큰냉면 그릇에
소주(25도짜리)2병을 똘똘똘 부은다음 그대로 원샷하고 안주로
굵은소금을 조금 먹는걸보고 내가 오바이트 쏠려 죽는줄 알았다.
이 선배가 파트가 드럼인데 곧잘 쳤고, 유도도 오래해서 몇단이되엿고
거기다 인물도 아주 잘 생겨서 나는 따라다니면서
이삭만 줏어먹어도 쏠쏠하게 배가부르던 시절 이였다.
미군부대에서 일을 했는데 (대구 K2 비행장).
그때는 미군들이 많이 있었고
(나중에 이베이에서 악기를 사는데, 파는 미국사람이 6.25때 한국 K2에서 조종사로 근무 했다고 해서
내가 동촌 부근의 사진을 보내주니 참으로 많이 발전했다고 감격해 하면서 좋아 하던게 기억남..
근데 악기값은 안 깍아줌..)
그 미군들이 놀러오는 술집에 한국인 밴드들이 있었고
그 외에도 잡역을 하는 한국인이 많았는데
무슨 날인지는 기억이나지 않지만 일년에 하루는 미군들이 호스트가 되어
한국인 종업원들을 대접하는 그런 날이 있었다.
그날은 미군들이 바탠에서 우리가 원하는 술들을 공짜로 주고 Bingo 게임도 하고
하여튼 술은 평소에 못 먹던 맥주, 양주 마음껏 먹는날이였는데
우리의 이 술고래 형님이 바텐에 쓱 ~하고 나타났다...
"Wolud you like driking some beer?"
미군이 물었고 (그선배는 얼굴은 잘 생겻지만 뽀얀게 게집아이같고
키도 별로 크지 않아서 미군이 보기엔 맥주나 주면 될것 같아 보였나 보다..)
"No!" 그 선배는 단호하게 말하고,
슥 바텐을 둘러보니 오만가지 술 중에서 유독 데킬라가 눈에 확들어 왔다.
그래서 "I want Tequila " 그 선배는 짧게 말하면서
새롭게 맛볼 데킬라생각에 속으로 군침을 삼켰다.
흑인 싸진(상사)은 속으로 애가 덩치도 그렇고 또 데킬라가 좀 독한 술이냐?
해서 조그만 양주잔을 꺼냈다.
그걸 본 선배는,
" No! I want bear Glass!!" 라고 외쳤다.
그 선배는 나를 뭘로 보고 고따위 눈깔만한 잔을 꺼낸단 말이냐?
이런 기세로 맥주잔으로 데킬라 마시기를 원했다.
그말을 들은 흑인상사이하 그 외의 미국인들이 일순간 조용해 졋다..
세상에.... 데킬라를... 맥주잔으로 마시려는 한국인이 나타났다..
그겄도 예쁘게 생긴 얼굴이 뽀얀 드럼치는 애가...
눈알이 뒤룩 거리는게 보이면서 흑인 상사는 데킬라를 맥주잔에 따랐다 콸콸...
(흑인이 뭔가 궁금해서 눈알을 굴리면 얼굴색과 눈알이 대조되어 뭔가 코믹하다..뒤룩 뒤룩?)
(원래 데킬라는 독해서 조그만 잔으로 홀짝마시고
신 레몬이나 손등에 묻힌 소금을 쓱 핱는게 보통이다..)
그리고는 주변의 미국인들과 함께 흥미롭게 그 선배를 쳐다 봤다.
속으로는 "넌 이제 죽었다.. " 였겠지..
맥주잔에 찰찰 넘치는 데킬라 잔을 받은 선배는
흠~ 하고 늘 마시던 소주처럼 입을 잔에 갖다 대었는데 아뿔사..
독하구나.... 이넘.. 종래의 배갈보다 더 지독한 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오와 폼생폼사,
그리고 내 외국인이 자기만 쳐다 보는 상황에서
전혀 밀리고 싶지 않았다..(臨酒無退..)임주무퇴..
마셨다 꿀꺽.... 지독한 타는듯한 느낌이 식도를 타고 흘렀지만
애국심과 오기, 가오로 뭉쳐진 선배는
그 데킬라를 완샷으로 비웠다 ...순간!
"Wow~ Fantastic!! "Great!!""what a strong man"등의
외국인등의 환호속에 그 선배는호기롭게 외쳤다.
("One more bear glass of Tequila!!" )
데킬라 맥주잔으로 한잔더 주쇼..
이미 살아있는 酒神을 본듯한 외국인들의 놀라는 시선을 즐기면서
그 선배는 데킬라를 맥주잔로 한잔 더 원샷 한다음,
시계를 보며 바쁜척하고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
그 결과가 궁금한 외국인들은 애가 탓지만 밀려드는
다른 한국인 손님때문에 따라 가볼 수는 없었다.
그 선배는 정확히 5분후에 먹은걸 평생 처음,
화장실에서 깨끗하게 반납 했으며 그 길로 뻗어 버렸다.
한국남자의 주량과 배포를 미국인들에게 심어 주었다는 자부심을 안고..
그 다음부터 그 선배는 연주할때 "데킬라"라는 레파토리가 나올때마다
울컥 거리며 몹씨 싫어 하는건 물론
아예 그 곡을 연주조차 않으려고 했다 한다.(씨바 딴거하자..)
그 선배는 이제 몇년전 하늘나라로 가셨고,
그가 행했던 모든 애국적인 행동은 지금도 나를 경건하게 만든다.
데킬라!!!!
다음에..
빰바바 빠바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