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멜라니 클라인(1882~1960)의 생애
멜라니 클라인은 1882년 비엔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모리츠 라이제스 박사는 정통 유대교 가문 출신의 의사였다. 그는 아들이 랍비가 되길 바라는 부모로부터 독립해 의사가 되었고, 그때 아내와도 이혼을 했다. 40이 넘어서 리부사 도이취와 결혼을 했는데, 이 결혼에서 얻은 네 아이 중 막내가 멜라니였다. 멜라니는 늙은 아버지와는 그리 가깝지 않았지만 10개 국어를 할 줄 알고, 폭넓은 독서를 즐겼던 아버지에게서 지적인 자극을 많이 받았다. 아버지는 그녀가 열여덟 살 때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어머니와 더 가까웠다. 어머니는 돈을 잘 버는 편이 아니었던 아버지 대신 가게를 운영해 가족을 부양했으며, 따뜻하고 용기 있는 인물이라 멜라니에게 큰 인상을 주었다. 멜라니는 그다지 종교적이지 않았고 무신론자를 자처했지만, 자신의 유대교적 뿌리를 잘 알고 있었고, 정통파만 아니면 유대 전통을 좋아했다.
멜라니는 위로 언니 하나와 오빠 둘이 있었는데, 무척 따르던 오빠 두 사람이 어린 나이에 죽었다. 네 살 위 오빠인 시도니는 자신이 연주창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 9살에 죽을 때까지 동생에게 읽고 쓰기를 가르쳐주려 하였다. 20대 중반에 심장병으로 죽은 엠마뉴엘은 멜라니의 후견인 역할을 했다. 지적 흥미를 가지게 해 준 두 형제의 죽음으로 멜라니는 우울증에 걸리게 되었다.
오빠의 소개로 만난 아더 스테판 클라인과 21살에 결혼한 클라인은 처음엔 지적인 자극이 없어 불행한 생활을 했다. 1910년 남편이 부다페스트에 일자리를 잡은 후 그녀의 인생이 크게 전환하게 되었다. 여기서 그녀는 프로이트의 「꿈에 관하여」(On Dreams, 1901)를 읽고 정신분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정신분석학자 페렌찌에게 분석을 받은 클라인은 그의 지원을 받고 어린이 분석을 시작해, 1917년 프로이트에게 소개받고, 1919년 첫 논문 “아동의 발달(The Development of a Child)"을 발표했다. 1924년에는 베를린에서 스승 칼 아브라함에게 분석을 받기 시작했는데, 그가 14개월 후에 죽어서 이 분석이 중단되었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 베를린 학파에서는 클라인의 지원 세력이 없어졌다. 클라인의 연구는 이즈음 어린이 분석을 시작한 안나 프로이트에게 밀려 계속 공격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후에 어린이 정신분석 기술에 대해 쓴 논문이 어니스트 존스에게 깊은 인상을 주어서, 클라인은 1925년 영국으로 초대를 받는다. 이 시기에 클라인은 불안의 근원을 추적하고, 그것을 대상관계라는 관점에서 분석했다. 1927년에 영국에 자리를 잡은 클라인은 이후 죽을 때까지 그곳에 머무르면서 영국정신분석학회의 중요한 일원이 된다. 이 시기 어린이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영국정신분석학회는 클라인의 이상적인 무대였다. 그리고 1935년 그녀가 ‘우울적 자리’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영국의 전반적인 정신분석학과 구별되는 클라인 학파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1940년대 말에는 나치를 피해 많은 정신분석학자들이 영국으로 건너왔는데, 그 중에는 프로이트 가족도 있었다.
이후 안나 프로이트와 멜라니 클라인 사이의 논쟁이 1943년 1월부터 1944년 5월까지 격렬하게 벌어지면서, 클라인과 동료들의 그들의 견해를 엄격하게 이론화하게 되었다. 이 토론이 있은 후 클라인은 ‘편집-분열증 자리’의 개념을 발견하면서 그녀의 이론은 원숙기에 들어가게 된다. 1952년에는 클라인 학파의 인물들이 쓴 논문들이 「정신분석의 새로운 방향」(New Directions in Psycho-Analysis)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 멜라니 클라인은 1960년에 암으로 사망한다. 본인의 요청으로 장례절차에는 어떤 종교적인 의식도 행해지지 않았다.
2. 어린이 정신분석
클라인이 1927년 런던에 도착했을 때, 이미 놀이기술이라는 어린이 분석 기술이 완전히 정립되어 있었다. 어린이에게는 자유연상을 적용하기가 곤란하므로 놀이를 통해 분석을 행하는 것이다. 이처럼 아이들의 놀이를 분석에 포함시키는 기술은 프로이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클라인은 놀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분명히 깨닫고 놀이를 아이의 무의식에 접근하는 주요한 통로로 파악하였다.
클라인에 의하면, 아이는 놀이를 통하여 자신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며 따라서 놀이는 아이들과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 아이들에게 놀이는 작업이며, 외부세계를 탐험하고, 정복하는 수단일 뿐 아니라 불안을 탐구하고 정복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놀이 속에서 아이는 자신의 환상들을 극화함으로서 갈등들을 정교화하고 극복한다.
또한 안나 프로이트를 비롯한 분석가들은 아이들은 질병에 대한 인식이 없고,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아직 부모에게 의존되어 있으므로 전이가 발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어린이 분석은 초자아를 강화시키기 위해 교육적이어야 하고, 부정적인 전이는 가급적 피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클라인은 아이들 역시 심한 불안을 겪고 있으며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는 성인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였고, 자연스러운 분석을 방해하는 교육적인 방법을 거부하였다.
3. 대상관계
클라인은 초기의 연구에서 프로이트와 아브라함의 이론을 발전시키며 몇 가지 새로운 견해를 제시한다. 그녀의 이론은 기본적으로 후기 프로이트의 구조적 모델(Id-Ego-Super Ego)을 확장시키고, 전-성기기 단계에 대한 아브라함의 연구를 계승하는 것이었다.
①불안과 방어기제
프로이트는 리비도가 억압에 의해 좌절되어 변환된 것이 불안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이후의 임상적 증거를 통해서 반대로 불안이 억압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불안은 외적 위험에 대한 반응이다. 그에 의하면 기본적인 위험은 네 가지로 대상의 상실, 거세 공포, 초자아의 불안, 대상이 베푸는 사랑의 상실이다. 클라인은 특히 불안을 아이가 자신의 환상 속에서 자신의 공격을 받은 부모가 자신을 박해할 거라는 두려움이라고 보게 되었다. 위험을 느끼면 자아는 심리적 방어기제를 발동시켜 위험을 막는다. 억압도 그 중의 하나고, 클라인은 여러 방어기제 중 투사, 내사, 동일시, 자아의 분열을 특히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였다.
②대상관계와 아이의 내적 세계
프로이트는 대상(object)이라는 개념을 본능적 충동의 대상으로 보았다. 하지만 클라인은 그것을 좀 더 유아적인 대상으로 보고 본능적 충동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의존의 대상이며, 사랑하고 미워하는 심리적인 대상으로 보았다. 그 대상은 성격을 나타내며 인간적인 특성을 가진 것이다. 또한 아브라함에 의하면 아이는 처음에 어머니의 젖가슴이나 아버지의 페니스, 자신의 대변과 같은 부분 대상과 관계를 맺는다. 클라인은 부분대상관계에 대한 아브라함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한편, 아이가 후기 항문기까지 자기애적 상황에 머문다는 두 사람의 의견과는 달리, 매우 초기부터 대상과 심리적인 관계를 맺는다고 주장하였다.
초기의 부분대상관계는 그의 내적 대상, 초자아, 그리고 환상 생활의 구조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다. 아이는 젖가슴, 페니스, 부모 신체의 다른 부분들을 내사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결합된 부모상, 성교 중인 부모상, 독립적인 사람으로서의 부모가 내사되면서 이들이 모두 내적 대상이 된다. 이 내적 대상들은 상호관계를 가지며 아이 자신과 관계를 가지다. 초자아 역시 이런 내적 대상이다.
③환상과 상징
클라인은 프로이트의 무의식적 환상이나 상징과 같은 근본적인 개념들을 확장-변화시킨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적 환상을 현실원리가 확립된 이후에, 쾌락원리가 계속 작용하면서 나타나는 후기의 산물이라고 본 반면, 클라인은 무의식적인 환상이 그들의 초기 정신 안에 편재해 있으며 모든 아이들의 인식과 대상관계에 역동적 영향을 끼친다고 보았다. 어린 아이들은 대상을 식별하는 순간부터 실제 대상과 환상 대상 모두와, 특히 환상대상과 관계를 맺는다.
아이들은 자신의 무의식적 환상을 놀이와 학교활동 등 모든 활동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학교 건물은 어머니의 몸, 그 몸 안에 아버지를 상징하는 선생님, 학교활동은 어머니의 몸을 침투하는 것...) 상징은 모든 환상과 승화의 토대가 되며 주체와 외부 세계 및 일반적 현실과 관계 맺게 하는 기초가 된다. 예를 들어 지식욕은 어머니의 몸을 탐구하고자 하는 내적인 소원은 세계를 탐구하는 지식 추구의 근원이며 상징은 이 둘 사이를 연결해 주는 도구이다.
클라인이 외적 및 내적 대상과의 관계를 강조했기 때문에 그녀의 견해는 대상관계이론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4. 멜라니 클라인의 이론
1910년부터 1919년까지 부다페스트에 살고 있는 동안 클라인은 프로이드의 저작에 매료되었다. 그 후 그녀는 페렌찌에게서 정신분석을 받았으며, 페렌찌의 제안에 따라 정신분석 원리들과 기법들을 아동 치료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이미 많은 분석가들이 아동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클라인의 초기 연구들은 정신분석적 공동체 안에서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클라인의 옹호자들: 클라인이 프로이드의 개념들을 확장시키고 완성시켰다.
?클라인의 비판가들:
① 클라인의 이론이 프로이드의 이론과는 거의 무관한 것으로 그리고 고도로 추론적이고 가
상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② 클라인은 다른 동기들을 제외한 채 공격성에만 관심을 보였고, 아동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이고 환영적인 내용에 집착한 나머지 실제 사람들이 가지는 중요성을 무시했다.
5. 클라인 이론의 발달단계들
클라인은 놀이가 아동의 심리경제에 핵심적 기능을 하며, 아동의 가장 깊은 무의식적 원망들과 공포들을 표현한다고 느꼈다. 클라인은 아동이 놀이에서 역할들을 배정하고 그것들에 대해 말하는 것을 관찰하고 해석함으로써 아동이 타자와 갖는 다양한 갈등과 빗나간 동일시를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왔다.
① 초기 논문: 리비도적 문제
그녀의 초기 논문들은 리비도적 문제들에 전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클라인은 아동 세계의 도처에 성기적, 오이디푸스적인 성이 작용하고 있음을 보았다.
예) ?직선과 원: 남근의 질 ? 산수에서의 나누기: 격렬한 성교
?음악: 부모의 성교하는 소리들
클라인의 이론에서 리비도의 발달은 아동의 알고자 하는 추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아동은 어머니의 몸의 내부와 그 안에 담긴 음식, 배설물, 아기와 같은 신비한 내용물들에 대한 정교한 환상을 창조한다. 이 시기의 클라인의 이론에서 모든 금지는 거세공포, 즉 성적 만족과 지식을 추구한 데 대한 예상된 처벌의 공포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모든 정신병리는 아동의 성의 요소들이 억압된 결과로부터 발생한다.
프로이드는 오이디푸스콤플렉스가 구강기, 항문기를 거쳐 성기기에 도달할 때 발생하는 유아기 성의 절정 현상으로 간주한 반면, 클라인은 오이디푸스적인 관심들과 환상들이 훨씬 더 일찍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오이디푸스적인 감정이 더 이른 시기에 발달된다고 보았으며 마침내는 그것의 기원이 생후 1년경인 이유기 즈음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프로이드는 아동기가 끝나는 시점에서 오이디푸스적인 갈등이 해결되고 그와 더불어 초자아가 형성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클라인은 성기기전에 이미 오이디푸스적인 환상에 뒤따르는 가혹하고 비판적이며 자학적인 초기 초자아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② 두 번째 국면: 리비도에서부터 공격성으로 전환
처음 보였던 그녀의 리비도의 관심은 공격성으로 전환되는데 이때 그녀에게 있어 리비도는 공격성인데 대한 반동적인 동기로 여겨진다. 그녀는 오이디푸스콤플렉스도 금지된 쾌락과 처벌의 공포로 둘러싸인 분투가 아니라 권력 파괴 그에 따른 보복의공포를 둘러싼 분투로 간주 되었다.이처럼 아동은 성욕 때문이 아니라 그의 리비도적 충돌들을 수반하는 공격적 환상들 때문에 불안하고 죄책감을 느낀다.
환상: 아동은 직접적으로 만족을 얻을 수 없을 때 환상을 통해 만족을 구한다. 클라인은 환상에 대한 프로이드의 이론에 새로운 개념들을 도입함으로써 정신적 삶에서 환상이 차지하는 영역을 확장하였다. 이것으로 무의식적인 환상이라는 개념을 정교화 하였다. 그녀는 환상이 아동이 소유하고 있는 무의식적인 상들과 지식의 저장소에서 나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환상이 실제 만족의 대체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만족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클라인은 환상(fantasy)이라는 일반적인 용어와 구별하기 위해서 환상(phantasy)이라는 철자를 사용한다.
또한 클라인은 프로이드의 '내적 대상'이라는 개념을 확장시켰다. 그녀는 아동의 정신적 삶이 부모에 관한 정교한 환상들로 가득 차있으며 그것들은 대부분 가학적인 것들이라고 주장한다.
③ 세 번째 국면: 초기와 다른 리비도
(1930년대 중반~1945년)이 시기동안 그녀는 다시 리비도적 주제들에 초점을 맞춘다. 전에 고전적 욕구모델인 신체적 쾌락과 성의 내용이 이 시기에 그녀는 리비도에 대한 문제를 더욱 복잡한 사랑의 정서 및 보상에의 갈망과 관련된 내용이 된다.
④ 편집-분열적 자리(Paranoid-Schizoid Position)
편집-분열적 자리는 시기적으로는 우울적 자리보다 늦게 발견되었지만 발달단계로 보면 우울적 자리보다 앞선다. 클라인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죽음본능이 발달한다고 보았다. 또한 유아의 자아는 불안을 경험하고 방어기제를 사용할 만큼 충분히 발달한 상태에 있다. 원래 프로이트의 생명본능과 죽음본능의 이론에 의하면, ‘유기체’는 죽음본능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음본능을 바깥으로 ‘투척’한다. 반면 클라인에 의하면 원초적 ‘에고’가 죽음본능을 대상을 향해 ‘투사’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유아의 원초적인 자아는 나쁜 대상의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삶이 시작되면서부터 생명본능과 죽음본능 사이의 투쟁이 시작된다. 분열, 투사, 내사는 최초에 사용되는 방어기제들로, 생명본능의 명령에 따라 자아는 분열되고, 죽음본능을 밖으로 투사해 버린다. 동시에 생명본능도 어떤 이상적인 대상을 창조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투사된다. 이런 방식으로 혼돈 상태에서 원시적 자아 조직이 출현한다. 이제 자아는 리비도적인 부분과 파괴적인 부분으로 나위어지고, 분열된 대상들과 관계를 맺는다.
이 단계에서 자아의 목표는 이상적인 대상을 내사하고 그것과 동일시하는 동시에 파괴적인 충동을 담고 있는 투사된 박해자들과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 시기에 중심적인 갈등은 이상적인 대상들과 동일시된 선한 리비도적 자기 vs 박해자들 사이의 투쟁이다. 이 단계의 중심적인 불안은 박해자들이 자아와 이상적인 대상을 파괴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이상적인 대상과 나쁜 대상 사이의 분열이 심화된다.
초기 투사에서 발전한 것이 투사적 동일시라는 심리 기제다. 이것은 자기의 부분들이나 배설물, 혹은 자기 전체가 환상 속에서 대상 안으로 투사되는 것이다. 이것의 목표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제거해 버리고, 대상을 차지하고 대상이 가진 것을 퍼내거나, 대상을 조종하는 것 등이다. 그 결과 중 하나가 대상과 투사된 자신의 일부분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나쁜 부분들이 투사되면 그것은 무서운 박해자가 되고, 좋은 부분이 투사되면 특별한 의존이 생긴다.
편집-분열적 자리는 심리발달 단계이다. 유아는 젖가슴을 내사하고 젖가슴과 동일시함으로써 해체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다. 최초의 분열은 좋음과 나쁨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형성하기 위한 첫걸음이며 투사적 동일시는 외부 세계와 관계 맺는 능력을 형성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하지만 방어기제들은 모두 자아를 고갈시키고 약화시킨다. 이 시기에 방어기제를 너무 과도하게 사용하면 유아는 우울적 자리에서 직면하게 되는 새로운 불안에 대처할 수 없다. 네 번째 국면에서의 과제는 편집적 과정에 대한 초기연구를 조화롭게 통합하는 것이다. 여기에 페어 베언의 분열적 상태개념을 첨가해 편집분열적 자리라는 용어를 탄생시킨다. 분열에 관한 초기 논문들은 대상들이 좋거나 나쁜 대상으로 혹은 외부나 내부 대상으로 분열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인 반면 후기 논문은 자아의 분열을 초점을 맞춘다.
⑤ 시기심
클라인의 연구 최종 단계에서 확장된 그녀의 중요한 개념은 바로 '시기심'이다. 클라인은 시기심의 원인이 유아의 선천적인 공격성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초기의 원시적인 시기심을 악의적이고 파괴적인 타고난 공격성의 한 형태로 증오와는 달리 시기심은 좋은 대상들을 향한다. 클라인은 시기심은 결코 충족될 수 없는 강렬하고 탐욕스러운 아동의 욕구가 좌절됨에 따라 발생한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⑥ 우울적 자리
1935년 클라인은 자신의 논문에서, 생후 첫 해의 4분의 2분기 동안에 아이의 통합적 인식 능력이 자라면서, 아이가 어머니를 하나의 전체적인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한다고 기술했다. 이것이 우울적 자리의 시작이다. 이제 어머니는 젖가슴과 같은 부분 대상이 아니라 전체적인 인격체로 인식된다. 아이는 전체적으로 내사된 어머니가 자신을 박해로부터 지켜줄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리 박해적 대상과 이상적 대상으로 분열되지 않는 어머니는 만족감의 근원인 동시에 좌절과 고통의 원천이기도 하다. 따라서 어머니에 대한 아이의 사랑은 양면성을 지니며 증오의 감정으로 쉽게 변하기도 한다. (아이의 증오가 투사된)환상 속의 박해자들과 아이 자신의 증오의 감정에 의해 어머니는 언제나 파괴될 수 있는 존재다. 파괴되는 어머니가 계속 내사된다면, 유아의 내적 세계는 황폐하고 혼돈스러워진다. 반면, 사랑 받는 어머니와 자신을 동일시하면, 아이는 그녀의 상실에 대해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끼게 된다.
상실감, 슬픔, 그리움, 죄책감과 같은 감정이 이 자리에서 생긴다. 자아는 대상에 대한 증오가 강할 때 박해불안을 느끼고 대상에 대한 사랑이 강할 때 우울불안을 느낀다. 우울적 자리의 발달에 있어 유아의 중심 과제는 좋고, 안정적이고, 전체적인 내적 대상을 자아의 핵심에 확립하는 것이다. 또한 새로운 방어기제로 조직적 방어기제들이 생긴다. 그것의 주요 특징은 우울적 고통과 같은 심리적 기제를 경험하지 않기 위해서 심리적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또한 좋은 대상들이 파괴된 것에 대해 그것을 복구하고자 하는 보상 충동이 발달된다. 성인의 애도는 우울적 자리의 갈등을 다시 일으키는 과정이다.
클라인은 우울적 자리와 오이디푸스콤플렉스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도 주목한다. 우울적 자리에서 부모는 아이들에게 좋은 전체 대상이며, 아이의 환상 안에서 공격 받는 대상이 된다. 특히 그들이 성교를 통해 결합되어 있을 때에는 더욱 그렇다. 아이들이 오이디푸스 소원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은 거세 불안만이 아니라 부모에 대한 사랑과 그들을 해치지 않으려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우울불안에 따른 보상욕구는 아이들로 하여금 부모를 회복시키고 그들의 성적 행동을 사랑과 상호 창조적인 행동으로 회복시키게 한다. 회복 환상 속에서 소년은 어머니를 회복시키고, 성교를 통해 그녀에게 아이를 주는 능력이 있는 아빠와 자신을 동일시하려 하고, 어린 소녀가 만족스런 성교를 소망하는 것은 자신의 만족만이 아니라 내적 어머니의 회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클라인은 우울증 자리라는 개념을 확장시켜 오이디푸스콤플렉스를 포함시킨 후 이것은 완전히 극복될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한다. 사람은 갈등에 직면하면 자신이 대상을 파괴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히고 그의 모든 상실이 자신의 파괴성의 대가라고 느낀다. 만약 이것이 상실이 아닌 타자와의 좋은 경험은 회복시킬 능력을 믿고 용서가 가능하게 된다.
정리: 클라인의 이론의 마지막 국면에서 그녀는 자신의 초기 연구들을 종합하려고 했다. 그녀는 삶을 '사랑과 보상에 의한 통합'과 '증오와 시기심에 의한 분열 사이의 투쟁'으로 보았다. 대상의 좋은 측면과 나쁜 측면을 함께 결합하는 것은 고통스럽고도 힘든 작업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울적 불안과 죄책감에 직면해야 하며 자신의 사랑이 지닌 한계와 모순을 인정해야 한다. 클라인은 생애 마지막 시기 동안에 유아를 자아의 통합 과정이 가져오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대상을 파편화 시키는 자신의 파괴성과 시기심에 대항하여 대상을 통합시키려고 분투하는 존재로 그려낸다.
6. 대상의 기원과 본성
① 초기 대상의 형성
클라인은 후기에 편집-분열적 자리와 우울적 자리 개념을 도입하면서 자신의 대상관계론을 일관성 있게 정립한다. 이전에는 자신의 모든 발견을 프로이트의 아브라함의 리비도 발달단계 이론과 일치시키려고 노력했으나, 심리적 자리 개념은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자리(position)"라는 용어는 자아의 상태, 내적 대상관계의 본질, 불안의 본질과 방어의 특성들과 같은 자아의 구성 상태를 일컬으며, 이와 연관된 현상들을 특징적으로 설명한다. 그녀는 정신의 발달과정을 생명본능과 죽음본능 사이의 갈등을 극복해가는 과정으로 설명했다. 즉, 정신발달을 생명본능이 파괴적 욕동을 점차로 극복해 가는 과정으로 본 것이다.
대상이 어떻게 성립되는가에 대한 그녀의 가장 잘 알려진 첫 번째 가설에 따르면 대상들은 외부세계의 현실 대상과는 상관없이 정신 안에 원래 존재하고 있으며 역동들에 의해 창조된다고 하는데 이것은 "아동의 최초 현실은 전적으로 환상적이다"라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리고 아동은 외부세계에 대한 선험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이것으로 대상의 지식을 갖는다고 한다. 이 말은 아동이 최초로 대상관계를 갖는 특정 신체기관의 이미지를 설명할 수 있다. 설명하자면 아동이 실제 현실에서 실제 신체기관을 반드시 경험하지 않는다 해도 내면의 보편적 기제들이 작용하여 후에 현실과 접촉함에 따라 현실적인 요소를 지니게 되는 것을 말한다.
② 두 번째 이론: 죽음본능의 표출방식
초기 대상들에 대한 클라인의 두 번째 이론은 최초의 죽음본능이 어떻게 표출되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다. 그녀는 죽음의 본능은 생명의 본능(에로스)가 개입되면서 그 파괴성이 완화 되며 가학주의 피학주의 외에 또 다른 세 번째 기제에 의해 조절된다고 한다. 이것은 죽음의 본능 일부가 외부세계로 굴절되거나 투사되는 것을 말한다.
③ 세 번째 이론
초기 대상들에 대한 세 번째 이론에서 클라인은 내적이 및 외적 대상들에 대한 첫 경험은 지각적 오해로부터 자라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녀는 아동이 투사 같은 특정한 기제 없이 무서운 대상에 대한 지식이나 이미지도 없이 자신의 내면의 죽음본능을 낯선 사람에 의한 공격으로 경험한다고 주장한다. 아동의 내적 추동이 그로 하여금 외부에 대상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추정하도록 만든다.
이것은 두 번째 이론에서 초기 대상들이 부분적으로 외부세계의 현실 인물들에 의해 발생된다는 것과 달리 투사와 내사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보다 유동적인 기제임을 보여주고 있다.
7. 주요 초심리학적 전환: 추동의 본성
클라인에게 있어서 추동은 본래적으로 대상을 지향하고 있으며 대상과 분리될 수 없다. 클라인은 추동이 대상에 매우 강력하게 밀착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녀는 유아가 기존의 정신분석 이론이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더 현실과 깊고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다고 주장한다. 클라인이 말하는 추동은 본래 대상과 관련성을 가지며 추동은 타자들과 현실을 지향하며 추동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대상들에 관한 정보를 간직하고 있다.
클라인과 프로이드의 '추동'개념의 차이는 단지 추동이 대상을 지향한다는 점뿐만 아니라 추동의 성격에 대한 두 사람의 입장에서도 드러난다. 비록 추동이 심리적인 표현과 결과를 가지고 있자만 프로이드에게 있어서 추동은 신체적인 힘으로 발생한다. 그러나 클라인에 있어서 추동은 본질적으로 심리적 세력이며 이 세력은 신체를 통해서 표현된다.
클라인은 아동과 성인의 경험에서 신체가 갖는 중요성을 과소평가하지 않았다. 그녀의 이론에서 신체 부분과 신체 기능은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광범위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신체는 추동의 원천이 아니라 추동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추동자체는 근본적으로 지향성을 지닌 정신적 현상이며 복잡한 정서들로 구성되어 있다.
클라인의 체계에서 추동 에너지는 한정된 것도 아니고 미리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며 신체에서 파생된 일정한 양의 에너지가 아니라 타자를 포함하는 복잡하고 복합적인 열정들이다.
8. 클라인 이론체계의 공헌과 한계들
클라인은 정신분석학 이론과 임상 모두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온 인물이었다. 그녀의 두 자리 개념은 정신병리 뿐만 아니라 건강한 정신 기능에 대해서도 새로운 빛을 던져주었으며, 많은 학문 분야에서도 유용하게 적용되고 있다. 두 자리 개념은 철학 분야에서는 윤리학의 심리적 기초와 같은 문제를 조명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정신 기구의 성장을 투사와 내사라는 관점에서 이해하는 그녀의 생각은 사고에 관한 이론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승화와 창조성의 뿌리에 대한 그녀의 연구는 예술 비평과 미학 분야의 연구를 위한 자극제가 되었다. 집단 심리학과 사회학 분야에서 대상관계론은 특히 유용하다. 집단과 사회제도들은 공동의 집단 방어를 사용하여 개인의 정신병적 불안에 대처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다. 집단 안에서 작용하고 있는 방어기제들은 우리를 이상화하고 나쁜 것을 외부로 전가하는 투사, 집단 내의 갈등을 양극으로 나누는 분열, 대집단 안에서 작용하는 조적 방어 등이 있다. 이러한 연구는 크고 작은 집단으로부터 보다 광범위한 사회 구조, 혹은 종교 등을 연구하는 데에 적용될 수 있다.
공헌
① 정신분석학의 관심을 성기기의 오이디푸스적인 구도에서 성기기 이전의 유아와 어머니의 사이의 관계로 전환시켰다. 그녀는 오이디푸스 시기 이전에도 내사와 동일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환상에 대한 프로이드의 확장했다.
② 내적 대상과 내적 대상세계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이 개념들은 유아 초기의 대상관계에 대한 정신분석학 연구를 위한 강력한 임상적 도구가 되었다.
③ 놀이치료를 발달시키고 분석 상황에서 탐욕과 시기심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제공함으로써 분석치료의 범위와 방법에 크게 기여했다.
④신경증적 정신 과정과 정상적 정신과정에 대한 연구에 공헌-놀이치료를 발달시키고 탐욕과 시기심에 대한 예리한 통찰로 분석치료의 범위와 방법에 기여.
한계점
① 클라인은 정신구조 형성에 미치는 환상의 영향력을 분명히 설명하지 못하였다.
② 용어적 불확실성 때문에 설명이 모호하다.
:환상과 구조 사이의 관계를 분명히 밝히지 못했기 때문에 내면화된 대상들과 본성과 그것들의 운명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 할 수 없었다.
:클라인은 자신의 구조 이론에서 내적 대상들이 어떻게 발생하며 또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분명히 설명하지 않고 있다.
③ 부모의 성격이 지닌 결점이나 특별한 장점이 아동에게 미치는 영향을 인정 안함
⇒ 클라인의 이론적 한계는 내적 대상관계이론에 대한 자신의 복잡한 설명을 고전적인 추동 구조 이론 안으로 끼어 넣으려고 한데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잘못된 시도 때문에 그녀는 환상에 대한 개념과 유형화되고 구조화된 성격이라는 개념 사이의 간격을 메우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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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lanie Klein (1882-1960)
1946년 클라인은 어린이와 유아에게서 목격했던 분노와 증오의 위기들(crises)에 대해 숙고했다. 이 위기들은 많은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공격성의 한 가닥이 항문기와 소변기 충동으로부터 나오는데 이것은 위험한 물질(배설물)을 자기 바깥으로 축출하여 어머니 안으로 집어 넣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 해로운 배설물과 함께, 증오심과 함께 내쫓긴 자아의 분리된 부분들 또한 어머니에게 또는 어머니 내부로 투사된다. 이 배설물과 나쁜 자기의 부분들은 대상에 상처를 입힐 뿐 아니라 대상을 조종하고 대상의 소유물을 빼앗는다.
클라인은 이런 현상을 ‘투사적 동일시’라고 불렀다. 앞에서 제시된 스키조이드 환자와 정신병 환자의 많은 예들은 이 현상을 가리키고 있다. 예를 들면, 광범위하게 확장된 남자의 사례(p. 105)에서 환자는 그의 인격 혹은 자기가 자신의 분리된 부분들을 나타내는 많은 외적 대상들로 ‘광범위하게 확장되는’ 것으로 느꼈는데, 그 때 외적 대상들은 자신의 각 부분들을 의미한다. 그 과정에서 그의 정신은 공격당하고, 손상을 입거나 혹은 분열되었다. 그리고 그 부분들은 환상속에서 투사에 의해 다루어졌다.
클라인은 이것을 아주 초기의 공격적 관계의 원형으로 서술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자기의 나쁜 부분들을 가지고 있는 한, 그녀는 독립된 개인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나쁜 자기로 느껴진다(클라인, 1946, p. 8). 이들 재배치된 자아 부분에 대한 환상들은 항문기 충동, 즉 배설물의 배출과 관련된다. 그러나 유아에게 있어서 그것들은 실제로 일어나는, 실재하는 무의식적 환상들이다. 유아는 그것들을 전적으로 믿는다. 실제로 유아의 부분은 자아 경계의 외부에 있는 어떤 다른 대상 안에, 즉 외적 대상 안에 있다. 그 때 거기에는 특별한 정체성이 존재한다. 어떤 점에서 유아는 외적 대상이다. 그러나 대상(그의 어머니)은 단순히 유아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유아의 일부분이다.
이 믿음들이 결정적으로 중요해진다. 주체는 그 부분을 상실했다―그때 자신의 감정을 잃어버린 남자와 필요한 자신의 능력을 상실한 여자의 사례에서처럼 그 또는 그녀는 실제로 고갈되었다고 느낀다(pp. 99, 101)―고 믿거나 혹은 외적 대상이 자기의 부분으로 경험되고 그리고 자기에게 합병되었다(확장된 남자)고 믿는다. 실제 관계 상황에 영향을 미칠 만큼 그렇게 강하다고 믿는 환상들은 ‘전능’이라고 불린다. 이 환상들은 외적 대상이 내적 대상으로서 신체적으로 자리잡는 것으로 느끼는 ‘전능’환상들의 짝이다(5장을 보라). 이 환상 과정들은 종종 많은 공격성의 표출과 함께 발생한다. 그리고 그 환상에 대한 믿음의 강도가 마치 그러한 공격성의 구체적 표현이 실제로 현실 속에서 있었던 것처럼 대상을 두려워하게 하는 요인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종류의 경험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 느낌은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클라인은 이 경험들을 이해하고, 말로 표현하고 그리고 소통하는 것에 대해 아주 비관적이다. 왜냐하면 환상들은 아직 유아가 언어를 사용하여 생각하기 이전에 발생하므로, 그러한 원시적인 과정을 묘사하는 것이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클라인, 1946, p. 8, 각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목적은 이 경험들에 관한 어떤 개념을 제공하는 것; 혹은 적어도 어떻게 정신분석가가 그것들에 접근하는가를 서술하는 것이다. 다음 환자의 자료는 정신 내용의 축출 경험(의식 혹은 무의식)을 설명해 준다.
사례: 변기로서의 대상
Herbert Rosenfeld는 정신병 환자, 즉 주기적으로 강렬한 동성애 활동 기간들을 가졌던 편집증 환자에 대해 말한다:
…아버지의 무릎 위에 신나게 올라탔던 기억이 있는 데, 이 때에 그는 자신의 속옷에 배설하는 환상을 가졌으며, 아버지는 이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 기억이 떠오르기 이전에 그는 종종 자신의 정신 안에 있는 어떤 사고와 감정들에 관해 염려와 우울한 감정을 자주 느꼈다.
나는 이 사례를 항문기 기능, 즉 배변과 관련된 심리적 활동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로 선택했다; 아버지의 무릎이 마치 변기였던 것과 관련된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정신 안에서 해방감을 느끼고 흥분을 느꼈다고 나에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한 것이었다.
그 연결 관계―분석가에게 말로 자신을 표현하는 해방과 어린 시절 아버지의 무릎에다 배설물을 내보내는 것 사이―는 자극적인 것이다. 거기에 그의 부분(정신적으로 그의 정신의 부분; 혹은 신체적으로 그의 창자 안에 있는 것)이 실제로 옮겨지는 배출 환상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그가 내 안에 배변하는 것처럼, 나에게 그것을 축출하는 과정(투사)을 통해서 스스로 자신의 우울증으로부터 해방된 것처럼 보였다. 그는 스스로 이 전이 과정을 항문기 과정에 결부시켰다.
그는 마치 그의 정신의 부분(염려스럽고 우울한 어떤 것)이 화장실에서 배변하듯이 구체적으로 제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환자의 말하기가 화장실에서 그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과 유사한 흥분된 기능을 갖는다:
우리는 또한 명백한 항문기 투사 방어기제와는 별도로, 그는 흥분된 시기 동안 자신의 페니스를 내 안으로 밀어 넣는 성적 환상이 있었다는 것을 인식했다.
우리는 이 남자의 강제적인 침입 환상이 여러 가지 형태―배설물을 아버지/변기로 강제로 밀어 넣기; 분석가에게 말하기, 그리고 언어를 분석가 안으로 밀어 넣기; 그리고 자신의 페니스를 분석가의 항문으로 넣는 자극적인 동성애적 환상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이 기본적 환상의 변형은 이 남자에 있어서 여러 가지 상상적인 형태로 거듭 나타난다.
내가 기술한 방식으로 어떤 정신적인 내용물을 몰아내는 것처럼 보였던 각각의 경우 뒤에, 그는 먼저 흥분이 고조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나중에 박해 불안이 그의 음성에서 드러났다. …그는 자신의 생각 속의 내용물들을 몰아낸 후에 두려워했고, 따라서 내가 시도했던 모든 해석으로부터 거리감을 유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들어가는 환상(투사적 동일시)의 공격적 성질이 그를 두렵게 했고, 그리고 분석가―공격적이고 변과 관련된 어떤 것을 그 안으로 억지로 밀어 넣음으로써―가 그에게 실제로 보복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게 했다; 그리고 그는 해석과 공격적 침범을 구분하지 못했다. 이것은 우리가 친숙하게 아는 바, 클라인이 서술한 두려운 편집적 순환이 되었다(4장); 이 환자 자신의 활동―그것들을 지배하고, 이용하고 비우는―은 그가 그것을 행했던 사람으로부터 똑같은 대우를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다시 나타났다.
Rosenfeld는 바람직하지 못한 자신의 성격 측면들을 다른 사람의 내부에다 버릴 수 있다고 믿는 정신분열환자에 대해 보고했다. 그는 처음에 환자의 성적 느낌에 대한 투사를 서술하지만, 나중에 보다 과격하고 비참한 다음과 같은 종류의 환상에 대해 보고한다.
사례: 대상을 점유하는 것
이 시간에 환자의 감정은 매우 불안한 상태였다. 그리고 종종 다른 사람들이 그녀의 어떤 부분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였다.
이 과정에 대한 간단한 예를 제시하면; 그녀와 가장 친한 친구의 남편인 데니스는 둘째 아기를 출산할 예정인 부인과 떨어져 있는 동안 신경쇠약증에 시달렸다. 그는 나의 환자를 전력을 다해 유혹했다. 처음에 그녀는 그의 접근을 물리치느라고 무척 애를 썼다.
그런데 그를 그의 부인으로부터 빼앗으려는 소원이 곧 의식적 충동으로 나타났다. 그녀는 이 소원을 직접적으로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의 모든 불안은 그녀가 그의 소원과 주장들을 통제할 수 있을지에 관한 것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데니스의 주장들을 되풀이하여 말했고, 데니스는 그녀가 대처하기 어려웠던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투사했던 그녀 자신의 탐욕적인 성적 욕구를 상징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Rosenfeld는 그녀가 아직 실제로 데니스의 것이라고 믿는, 데니스의 성적 유혹이 어떻게 환자 자신을 나타내는가를 볼 수 있었다. 특정 정신 상태들(집요한 성적 감정들)이 이 환자의 어려움이었다. 그녀는 그것들(성적 감정들)을 데니스 안에 둠으로써, 거리를 두고 좀더 효과적으로 그것들을 다룰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만일 필요하다면, 그를 회피함으로써 그 감정들 전부를 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때때로 이 환자는 다른―두드러진― 투사적 동일시의 형태를 보여주었다. 우리가 방금 보았던 것처럼, 그녀는 자신의 부분이 분리되어 외적 대상 안에 놓여 있는 것을 경험했다; 그러나 다음 자료에서 그것은 그 이상이었다: 때때로 그녀는 자신 전체를 거기에 두었다. 그것은 기괴하였고 그것을 이해하고자 하는 분석가에게는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Rosenfeld는 이것에 대한 환자 자신의 경험을 진술한다:
…그녀가 심한 정신병 상태에서 겪은 적이 있다고 전에 말했던 증상이 다시 나타났다. 그녀는 자신보다 12배나 큰 풍선처럼 부풀었다. 동시에 그녀는 자신이 이 풍선 안에 있는 아주 작은 존재라고 느꼈다. 환자는 이 상태를 아주 불쾌한 것으로 묘사했다. 그녀가 나에게 제공한 유일한 실마리는 기대(expectancy)가 그것과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녀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혹은 그녀 자신으로부터 어떤 것을 기대하거나 또는 어떤 누군가가 그녀로부터 어떤 것을 원할 때, 이 증상이 심해졌다.
Rosenfeld는 환자가 분석가에 대해 심한 편집 공포를 느꼈을 때, 어떤 특정한 시기와 관련시켜 생각했다고 덧붙여 말했다; 그가 그녀에게 말할 때마다 혹은 그녀에게 말할 것을 기대할 때마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그녀 안으로 억지로 밀어 넣는다고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다. 욕구가 극단적(성적 욕구의 예에서처럼)이며, 글자 그대로 정신을 날려 버리는 결과를 가지는 것처럼 보였다. 욕구―아직 도달하지 않은 어떤 것을 기대하는 경험―는 이 여성에 의해 담겨질 수 없는 경험들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그녀를 침범하는 것과 침범 당하는 아주 다른―그리고 기괴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이 상담의 시점에서 그녀는 또한 어떻게 그녀가 애인에게 얽매어 있는지를 보다 분명히 의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애인이 외국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가 떠나가는 것과 관련된 좌절은 그녀의 탐욕적 공격 욕구를 일으켰다. 그것은 그녀가 원하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데니스에게 그녀의 의지를 강요하는 환상의 형태를 취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는 자신이 데니스 안에 있는 좋은 모든 것을 비워 냈다고 느꼈다. 이 탐욕적인 공격의 결과 그녀는 자신이 데니스 안에 있다고 느꼈다.
우리는 다소 비범한 경험을 상상하도록 요구받는다: 바로 그것은 그녀가 자신의 정신의 부분을 그에게 투사한 것만이 아니라, 그녀가 자신을 위해 데니스 전체를 징발하기 위해서 그녀 자신 전부를 데니스 안에 두었던 것처럼 보였다:
큰 풍선이 갖는 의미는 그녀가 자신을 억지로 밀어 넣었던 대상이 그녀의 구강기적 욕구를 통해서 죽었고, 비워졌고 그리고 그녀의 항문기적 공격을 통해서 공기로 가득 찼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그녀는 대상과의 투사적 동일시를 통해서 죽음을 느꼈다.
Rosenfeld는 이것들이 아무리 환상적인 것으로 보일지라도, 그것들은 환자에게 있어서 실제의 사실들이라고 기술한다. 일단 그녀가 대상 안으로 들어가서 그 내부를 점거하면, 대상에 대한 그녀의 관심은 사실상 대상의 정체성 그 자체가 된다. 이 사례에서 그 정체성은 불안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애인은 탐욕적으로 그를 삼키는 공격 환상에 의해 죽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 안에 있고; 그는 죽어 있다.
비록 최후의 산물들―공포, 혹은 죽은 느낌―이 의식에 떠오를 수 있다 하더라도, 이 환상적 믿음들은 의식되지 않으며 숨겨진 무의식적 환상으로 남는다. 이 환상적 믿음들은 의식된 내용이 아니다. 그녀의 이 기괴한 환상들에 대한 Rosenfeld의 해석을 살펴보겠다:
…그녀는 긴 침묵으로 들어갔고, 그때 나는 그녀가 내가 지적한 것을 감당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드디어 그녀는 다시 말하기 시작했고, 곧 나의 해석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깨달음과 함께, 그녀는 너무 지쳐서 몇 분간 의식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 혼자 힘으로 다시 그 상태에서 빠져 나왔다. 우리는 이 반응이 나의 해석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고, 이 무의식의 상태와 그녀 자신의 완전한 상실은 내 안으로 완전히 들어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거기에서 그녀 자신을 상실할 것이라는 두려움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환자의 자기 전체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분석가의 해석은 면담에서 실제로 일어나는―환자가 분석가 안으로 사라지는 것―현상을 통해서 확인된다. 대상 안으로 사라지면서, 그녀는 의식―의미―을 잃었고, 그것은 그녀가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것이라고 우리는 이해한다:
자신의 느낌을 상실하는 것과 개성의 상실에 대한 그녀의 당면한 두려움은 스키조이드 붕괴 상태에서 그녀 자신을 완전히 상실하는 것과 양적인 면에서만 달랐다는 것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만약 자신의 탐욕적 욕구로 인해 그녀가 완전히 다른 대상 안으로 들어갔다고 느꼈을 때, 그녀는 잠이 들거나 혹은 심하게 분열된 상태에 들어갔다. 만약 보다 적은 자기의 부분들이 같은 과정을 거쳤다면 그녀는 여전히 자신에 관한 자각을 보유했고 감정의 상실만이 발생했을 것이다.
Rosenfeld의 환자로부터 우리는 중요한 것을 배웠는데, 투사적 동일시는 정도―그녀 자신의 부분, 혹은 모든 것을 상실하는 것―가 다양하다는 사실이다. 다양한 종류의 투사적 동일시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보다 최근의 클라인 학파의 치료실제의 발전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
투사적 동일시의 또 다른 변용이 클라인의 사례 중 하나에서 나타난다. 다음 사례는 상실된 부분이 멀리 보내지는 거리에 있어서 다양성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이 사례에서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왜곡 정도는 근저에 있는 환상의 난폭성 정도에 비례한다.
사례: 자신의 공격성을 분리시킨 남자
클라인의 환자는 꿈꾸는 동안 투사적 동일시의 정도를 완화시켰다.
…그는 다음의 꿈을 보고했는데, 그 꿈은 정신의 통합과정에서 발생하는 우울 불안의 고통으로 인한 변동들을 보여준다. 그는 2층에서 있었는데 그의 친구의 친구인 ‘X'가 길에서 함께 산책하자고 그를 부르고 있었다.
당신은 꿈꾸는 자 자신의 그리고 환자 인격의 부분―분리되고 버려진 그리고 자신의 경계밖에(길거리에) 두었던 부분―의 일반적 표상인 친구의 친구에 친숙할 것이다. 산책에 초대한 것은 이 두 부분의 통합을 향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환자는 ‘X’와 함께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파트에서 검은 개가 튀어 나와 차에 치일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개를 쓰다듬었다. 그가 창 밖을 보았을 때, ‘X’가 멀어지고 있었다.
만약 당신이 내가 제시했던 상징적 의미를 인정한다면, 그때 꿈에서 시도했던 통합은 성공적이지 못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환자의 한 부분인 ‘X’는 그 자체를 보다 멀리 이동시켰다―투사가 증가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분리된 이 인격의 부분들은 무엇인가? 그리고 왜 그들은 꿈속에서 더 멀어지게 되었는가(‘X’가 멀어진 것)? 클라인은 환자가 개 그리고 또한 고양이를 분석가와 관련시켜 생객했던 연상 내용들을 보고했다. 그녀는 계속 말했다:
…개-고양이―분석가―에 대한 위험은 그녀가 X에 의해 덮쳐지는 것(말하자면 상처 입음)에 대한 위험이다. 개-고양이의 안전에 대한 환자의 관심은 X에 의해 표현되었고, 그리고 이미 부분적으로 치유되었던 분리를 일시적으로 확장시켰던, 그 자신의 적대적이고 탐욕적인 성향에 대해서 분석가를 보호하려는 소원을 나타냈다.
클라인은 X가 환자의 공격성, 특히 분석가를 향한 환자의 공격성을 나타낸다고 추론했다. 그때 분석가를 보호하기 위해서(그리고 그것은 그가 내부에 담고 다니는-아파트 안에 있는- 분석가이다), 그는 사랑의 감정―개를 쓰다듬는 것―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는 그의 공격성을 보다 크게 분리시켜야만 한다(거리가 멀어지는 X).
먼 곳으로 공격성을 이동시키는 것은 비록 환자의 행동이 덜 공격적일지라도 정신 장애의 심화를 의미한다. 환자의 입장에서 공격 충동을 상실하는 것이 매우 유익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분리는 정신에 대한 해로움 그 자체이다. 환자는 그가 회복하지 못할지도 모르는 실로 압도적인 어떤 것 때문에, 더 정확히 말하면, 대상이 공격을 살아남지 못할지 모른다는 것 때문에, 자신의 공격성을 두려워한다. 이런 식으로 그것(공격성)을 멀리 보내는 것은 대상에 대한 보호일 수 있고, 또한 환자에 대한 보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정신의 극단적 분리를 가져오기 때문에, 그것은 개인의 통전성에 해롭다. 이 사례를 요약해 보면: 환자는 자신의 파괴성을 자신과 분리시킴(그것을 그 자신으로 부르는 것 대신에 ‘X’로 부름)으로써 다룬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자신 바깥(아파트 밖)으로 투사했다. 그가 그것(X가 산책에 초대한 것)을 언뜻 보았을 때, 그는 자신의 파괴성 때문에 두려워졌다. 게다가 자신이 분석가를 상처 입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느꼈다. 분석가를 차로 칠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그녀를 사랑한다(개를 쓰다듬음)고 자신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그녀와 그의 사랑의 감정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파괴성을 보다 멀리 투사했다(X를 보냄).
투사적 동일시는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그것은 모든 무의식적 환상 전체와 관련된다. 그리고 그것은 분열, 폭력적이고 전능한 분리의 다양한 정도 및 그것의 다양한 의도와 관련된다. 내적 세계에 대한 깨달음과 존경심을 갖는다는 것은 정신과정에서 폭력성의 정도가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분리가 보다 적을수록, 친구의 친구인 X의 정체성에 대해 보다 많이 인식한다. 이 사례에서 투사적 동일시는 덜 공격적이다. 그것은 우리가 논의했던, 앞의 사례에서 알 수 있는 아주 난폭한 제거와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속에서 분명히 묘사된, 자기의 안이 아니라 바깥에 자리잡고 있는 환자의 부분은 여전히 결정적으로 분열과 투사적 동일시 과정이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꿈의 시작 부분에서 ‘X'가 주체에 접근하고 그리고 산책으로 초대하는 것은 인격 통합의 시작을 암시한다; 그것은 억압과 같은 새로운 배치를 향한 이동을 가리킨다. 그 억압 안에서 부분들이 함께 살기 시작할 것이다. 클라인의 용어에서 성격이 발달할 때, 투사적 동일시의 성질이 변화한다. 폭력적 투사적 동일시 형태가 완화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어떻게 그것이 우울적 자리를 향한 이동과 관련되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최근 클라인 학파 정신분석의 주요한 발달 과제의 하나가 되었다.
환상이 지닌 폭력성의 정도의 변화와 관련해서, 투사적 동일시를 위한 수많은 동기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완전한 목록은 아직 수집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얼마의 일반적인 범주들을 확일할 수 있다: 즉 감당할 수 없는 경험의 방출; 감당하기 어려운 정신 기능과 원하지 않는 것, 특히 현실의 어떤 것을 나타내는 것들을 없애버리는 것; 대상으로부터 분리시키는 방어―혹은 투사된 것이 실제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에 대한 방어―의 결과로 대상이 침범 당하고 점유되는 것; 타자들의 정신에 대한 통제를 지속함으로써 전능 경험을 유지하는 것 등이다. 그밖에도 자기의 좋은 부분들을 그들이 보다 안전할 수도 있는 대상 안으로 투사하는 것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최근 클라인 연구와 치료 실제에서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특별한 신뢰를 제공하는 환경, 즉 ‘담아 주는’경험을 제공하는 의사 소통으로서의 투사적 동일시 형태가 있다.
투사적 동일시와 의사 소통
1950년대에 몇몇 클라인 분석가들은 파괴와 공격성과는 별로 관련성이 없는 투사적 동일시의 형태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 장의 앞의 사례에서 다루었던 투사적 동일시들과 다른 목적을 가진 것이었다.
사례: 이해하지 못하는 어머니
비온은 생생하게 재구성된 몇 개의 사례들을 요약했다.
분석적 상황은 내 생각에 아주 초기 장면의 느낌을 갖게 했다. 나는 환자가 유아기에 유아의 정서적 표현에 의무적으로 반응했던 어머니를 목격했다고 느꼈다. 의무적인 반응은 그것 안에 참을 수 없음의 요소 ‘나는 어린아이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쩔쩔매며 아기의 상태를 이해하지 못한 어머니를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특별히 그와 같은 어머니에 대한 아기의 경험을 숙고해야만 한다.
나의 추론은 아기가 원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어머니는 유아의 울음을 그녀의 현존에 대한 요구 이상으로 취급해야 한다. 유아의 입장에서 볼 때, 어머니는 아이를 자신 안에 받아들여야 하고 그래서 아이가 죽어 간다는 두려움을 경험해야 한다.
여기에서 어머니는 아기가 내사를 위해 필요한 인격이며 아기가 투사한 부분을 알아주는 자로서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기가 스스로 담을 수 없는 것은 이 두려움이다. 그는 두려움을 인격의 부분과 함께 분열시키고, 어머니 안으로 투사하려고 노력한다. 이해해 주는 어머니는 투사적 동일시를 통해 아기가 다루고자 하는 공포 감정을 경험할 수 있으면서도 균형된 관점을 유지한다.
환자는 투사적 동일시―의사 소통의 형태로서의―에 특별한 역할을 부여한다. 그것은 단순히 축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투사적 동일시는 일종의 의미를 지닐 수 있고, 어머니는 그 의미를 이해할 것으로 기대된다. 투사적 동일시가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어떤 비움의 기능을 수행한다. 어머니는 이 어려움에 직면한다: 어머니는 아기가 견딜 수 없고 비울 필요가 있는 어떤 것에 대한 투사적 동일시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에 의해 압도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항상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이 환자는 그러한 감정들을 경험하는 것을 감당할 수 없고 그것들의 진입을 부정하거나, 혹은 아기의 감정을 내사함으로써 불안의 희생물이 되는 것으로 반응(reacted)했던 어머니를 다루어야 했다.
우리는 정신분석에서 이와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심리분석가 역시 환자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담아 주어야 할 것이다. 환자는 그 자신 혹은 그녀 자신의 투사된 부분을 감당하는 대상을 경험하고자 노력한다. 이것은 단순한 축출적인 투사인 비움을 능가하는 경험이다. 이런 식으로 그들의 불안과 씨름한 어머니(그리고 정신분석가)에 관한 환자의 환상, 그리고 그것들에 기초하여 특별한 활동을 수행하는 어머니/분석가에 대한 환자의 동경은 증오하는 외적 대상에 대한 정신의 부분들의 파괴를 강요하는 무절제한 공격성과는 아주 다르다(시력을 상실한 남자의 사례와 변기로서의 대상 사례를 보라, pp. 109, 120).
투사적 동일시는 종종 타자의 인격에 어떤 충격을 준다. 예를 들면, 아기가 울 때, 어머니는 즉시 긴장한다. 그녀는 놀라면서 그 울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판단한다. 그리고 그때 울음이 의미하는 욕구 혹은 무드가 무엇이든 그것에 대처하기 위해 노력한다. 어머니가 종종 유아 안에 있는 공황불안을 느낀다고 해도 그것은 과장된 말이 아니다; 그때 그녀는 그녀 자신 안에서 생겨나는 공황불안의 느낌을 가지고 그 상황에 직면해야만 한다. 정말로, 어떻게 어머니가 이런 식으로 아기에게 맞출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신비이다; 아기의 울음에 대한 반응에는 선천적이며 생물학적인 어떤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우리는 버스를 기다리는 행렬에서 혹은 가게 안에서 우는 아기가 있을 때 함께 불안해하는 사람의 모습을 본다.
물론, 우리가 7장에서 보았던 비움의 형태에서처럼, 그것이 이러한 목적들을 위해 어머니 안으로 혹은 분석가 안으로 투사할 때, 거기에는 아직 환자의 정신(혹은 유아의 정신)의 분열작용이 있다. 그것은 여전히 자아에 대한 공격성, 자아의 부분을 분시켜 그것을 외적 대상 안으로 투사하는 것을 수반한다. 또한 우리가 다음의 비온의 사례들에서 보게 될, 이러한 종류의 투사의 힘 역시 매우 난폭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그중에 마지막 사례는, 투사적 동일시가 의미 형성의 원시적 방법, 혹은 의미 형성을 위해 어머니의 정신의 도움을 불러내는 원초적 방법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것은 생각의 잠재력, 그리고 그 능력을 생성시키는 잠재력을 포함한다. 정신분석은 함께 의사 소통의 능력을 회복하고 그 능력을 생생한 상들을 창조하는 상징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포함한다. 때때로 이 능력은 정신분석가의 정신 안에 보존되어 있어야 하며, 환자에게 되돌려질 수 있어야 한다(정신분석가는 그것을 재 투사하고, 환자는 그것을 재 내사한다). 그러한 과정은 담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리고 정신분석 상황 안에서 그것의 형태는 10장에서 연구될 것이다. 담아 주는 것에 대한 비온의 개념은 연결하는 것에 관한 그의 생각에 대한 정교화의 하나이다(7장을 보시오). 담아 주는 사람과 담겨진 사람 사이의 연결은 하나가 다른 것 안으로 들어간―여러 종류의 정서적 특색, 그리고 정서적 결과와 함께― 결과이다. 담아 주는 것은 어머니와 아기, 혹은 분석가와 환자 사이의 연결을 포함한다; 그것은 또한 여성과 남성 사이의 활동과 분명히 관련된다.
담아 주기
환자의 의도는 그의 마음에 있는 부분들을 분석가의 마음에 투사하고자 하는 것이다. 만약 그것들이 거기에 충분한 기간동안 머무를 수 있다면 그것들은 분석가의 정신에 의해 수정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안전하게 내사될 수 있을 것이다(Bion, 1959, p. 103). 이것은 상당히 확장된 환상이며, 그것은 하나의 외적 대상을 포함한다: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 경험을 수정해 줄 수 있는 사람; 그 경험들은 일단 수정되면 재 내사될 수 있다. 그리하여 두개의 다른 환상 집단이 두 종류의 다른 투사적 동일시에 관련된다. 거친 축출의 형태로 내보내진 마음의 부분은 무의미한 것이며 전적으로 거부된 것이다; 대상의 상태는 고려되지 않는다. 다른 한편 의사 소통이 가능한 형태의 특수한 질적 요소들이 있다: 기꺼이 전능을 포기하고자 하는 요소, 그리고 어느 정도 특정 기능들을 수행할 수 있는 대상에 의존하는 것을 허락하고자 하는 요소가 그것이다.
비온은 이 의사 소통이 가능한 환상이 때때로 실패할 수도 있음(앞에서의 경우처럼)을 알게 되었다 - 대상은 항상 그 환자의 부분이 내면에 충분한 기간동안 머물도록 허용하지 않았다. 환자는 대상(분석가)이 불안을 담아 주고 환자를 위해서 그리고 그것을 수정해 주기 위해서, 이 정신 기제를 사용하도록 허용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예민하게 알고 있다.
사례: 속임 당한 환자
앞의 사례에서 다룬 비온의 환자는 그가 투사적 동일시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것은 그가 충분히 사용할 수 없었던 정신 기제였다고 끈질기게 암시했으므로; 분석은 그에게 그가 속임 당했던 정신 기제의 활용을 위한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나는 이 인상에만 의존할 필요는 없었다. 환자 자신의 인격이 감당하기에 너무 강력하게 느껴지는 죽음의 공포를 제거하고자 노력했을 때, 그는 그 공포를 분리하여 내 안에 집어넣었다. 이 생각은 만약 그것들이 거기에 충분히 오랫동안 머무르도록 허용되었다면, 그것들은 나의 정신에 의해 수정되었을 것이고 그러면 안전하게 재 내사되었을 것이 명백하다. 때때로 나는 환자가 느꼈던 것을 내 마음에 가지는데 …나는 그것들을 나는 재빠르게 비움으로 해서 그 감정들은 수정되지 못하고 더 고통스러워진다.
만약 대상―분석가 또는 어머니―이 이런 존재 상태를 허용하고 감당해 주지 않으면 불행한 일들이 발생한다:
따라서 그는 더욱 절박하고 폭력적으로 그것들을 내게 강요했다. 그의 행동은 분석 상황을 떠나서 본다면 일차적 공격성의 표현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의 투사적 동일시의 환상들이 폭력적일 수록 나에 대한 그의 두려움은 더해 갔다. 면담 중에 이유 없는 공격성이 표현되는 행동이 나타나는 경우들도 있었다.
이 투사적 동일시의 등장은 단지 공격적으로만 보이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거기에는 이해해 주는 대상을 찾는 요구가 있다:
…나는 그것들이 환자를 다른 빛에서, 즉 그의 폭력적인 반응이 나의 적대적인 방어에 대한 그의 느낌이라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해 주었기 때문에 이 사례들을 인용한다.
담아 주는 사람의 실패는 정신 발달에 있어서 잘못된 많은 경우들에 대한 이유가 된다. 그것은 무반응한 대상에 직면해서 촉발되는 공격성의 근원일 수도 있다. 분석가는 이 좌절로 인한 공격성―환자의 투사를 받지 못하는 그 또는 그녀 자신의 실패―을 공격할 것을 찾는 공격성과 주의 깊게 구분해야 한다.
사례: 담아 내는 데 실패한 환자
다음 사례에서 비온은 자신의 부분들이 수용되고 있는지 어떤지에 대해 민감한 또 다른 환자에 대해서 기술한다:
그 면담은 …날씨가 덥다, 자신이 탔던 기차가 만원이었다, 그리고 그 날이 수요일이었다 등의 서너 가지 사실을 말하면서 시작되었다. 이것이 삼십 분이나 걸렸다. 이것에 대해 알아보았을 때, 그는 자신이 미칠 것 같아 두렵다고 말했으며, 이것은 그가 현실과의 접촉을 유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인상을 확인해 주었다.
비록 정신분열환자의 말같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실 별 의미 없는 말들이 오고 갔다. 그러나 실제로 환자는 미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집착했다. 그의 절망이 점점 더 커졌다:
잠시 후 그는 내가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가 나를 나쁘다고 느끼고 있으며, 그가 내게 집어넣고 싶어하는 것을 내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느끼고 있다고 해석했다.
비온은 그의 설명에 덧붙여서, 이 해석은 지난번 면담 자료에 의해 안내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 때 환자는 해석들이란 자신이 분석가 안에 집어넣기를 원했던 감정들을 축출시키고자 하는 시도라고 느꼈다.
내가 의도적으로 이와 같이 해석한 것은, 지난번 면담에서 그가 나의 해석을 나에게 집어넣기를 원했던 자신의 감정들에 대한 축출 시도로 느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내 해석에 대한 그의 반응은 두 개의 개연성의 구름이 면담 공간 안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그 반응이 나의 해석에 대한 확인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분명히 분석가는 그 개연성의 구름은 바로 그가 마음속에 그렸던 그림―환자 주위의 공기 안으로 배출시켜 버린 분석가에 대한 환자의 불확실성(개연성)의 남은 부스러기―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분석가는 이 의미(환자의 불확실성)룰 재구성하려고 시도했다:
나는 그가 나의 나쁨을 제거하고자 시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석했다. 그것은 그가 내가 정말로 나쁜지 또는 그의 내부로부터 나온 어떤 나쁜 것인지 알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나는 말했다. …나는 그 환자가 자신이 환각 안에 있는지 아닌지를 확실히 알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분석가는 되어진 말들의 전후 관계를 통해서 충분한 의미를 재구성하는데 성공했다. 나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환자는 미칠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그는 그 두려움의 불확실성을 감당할 수가 없었기에 그것을 파편화시켰고, 마찬가지로 그가 불확실하게 느꼈던 대상을 파편화시켰다; 그리고 나서 그는 그것과 불확실성(개연성)을 인식할 수 있었던 그의 정신의 한 부분을 배출시켰다; 나아가 그는 이번에는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그를 담아 주고 이해하는 데) 그의 내면에 있어야 할 대상의 파괴를 경험했다:
분석 안에서 반복되는 이 불안은 이해의 능력에 대한 그의 질시와 증오가 좋고 이해심 있는 대상을 파괴하고 그것을 축출하는 데로 인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연관되어 있었다.
면담 사례에서부터 가져온 이와 같은 자료가 보여주는 것은, 안전감과 정신적 안정의 기초가 되는 좋은 내적 대상(좋은 대상과의 동일시를 보라. p. 71)이 하나의 특수한 기능―외적인 어머니 또는 분석가가 그렇게 하듯이 정서 상태를 담아 주는―을 가지며, 그 내적 대상은 어머니 또는 분석가의 정서 상태를 내사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이 경우 질시로부터 유래하는 파괴적 환상은 내면화된 담아 주는 대상에 손상을 입힘으로써 산산조각이 나는 불안에로 인도한다. 이것은 접근이 불가능함으로써 생기는 좌절과 다른 공격성이다. 그러나 환자가 그의 손상된 내적 대상(내면에 있는 담아주는 대상)을 투사한다면, 그는 외적인 담아주는 대상이 실제로 실패를 했는지 아니면 그가 단지 자신의 내적 대상의 상태를 투사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알 수가 없다. 이제 주어진 실제의 해석은 분석가에 대한 환자의 의심에 관한 것이다. 이 어려움이 분석가에 의해서 해석을 통하여 이해되고 수용된다―담겨진다.
이름 없는 불안
투사적 동일시의 거절은 이미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환자에게는 심각한 장애를 가져다준다:
만약 투사가 어머니에 의해 수용되지 않으면 유아는 자신이 죽어 가고 있다고 느끼며 동시에 그 죽음의 의미를 벗겨 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그는 감당할 수 있게 된 죽음의 공포가 아니라 이름 없는 불안을 재 내사하다 한다(비온, 1962a, p. 116).
이 과정에서 비온은 의미를 더해 주거나 회복시켜 주는 대신 의미를 벗겨 버리는 특별히 박해적 대상―기괴한 대상―을 서술한다.
하나의 내적 정신 과정인 투사적 동일시는 역시 하나의 내적 정신세계를 지닌 다른 사람들과 정서적인 접촉을 하는데 있어서 중심적이고 필수적인 요소인 듯하다.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하나의 의사 소통의 형태로 기능 하는 데 그 의사 소통은 비상징적인―언어 이전의 것이라는 의미뿐만이 아니라 상징 이전의 것이라는 의미에서― 형태이다. 유아기의 아주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발생하는 것은 이미 유아가 대상이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가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정신적 삶이 시작되면, 그것은 전적으로 정신적인 기초를 갖고 있으며 모든 것이 마음에 있다는 사실을 지시하는 듯하다. 구체적이고 신체적인 실재는 나중에 알게 되는 것으로 발전한다. 이것은 정신 발달에 대한 보다 일반적인 개념들을 혼동시킨다. 일반적인 개념은 신체적 지각의 초기 단계로부터 훨씬 후의 더 성숙한 단계의 다른 정신들에 대한 감수성에로 발달한다는 것이다(물론 이 단계에서는 신생아 정신이 지닌 실제의 성질에 대하여 불가지론적인 입장을 유지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만약 투사적 동일시가 축출로부터 의사 소통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면, 긍정적인 방향의 맨 끝에는 공감, 또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는’ 행동 밑에 있는 투사적 동일시의 형태가 있다. 공감이 주체나 대상의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왜곡 없이 발생한다. 이 경우 원시적 형태의 폭력성은 많이 완화되어 사랑과 관심의 충동에 의해 통제된다. 물론, 어떤 경우에―또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공감적 질문이 침범으로 느껴질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만약 질문을 받는 대상이 비협조적이라면 그 공감적 질문은 의도적인 침범으로 변할 수 있다. 투사적 동일시의 형태가 성숙해 가는 과정은 다음과 같이 하나의 연속성으로 요약될 수 있다:
―. 공격적 관계를 보여주는 폭력적인 원형 ―. 다른 정신과 의사 소통을 원하는 보다 호의적 형태 ―. 공감, 또는 누군가의 정신 안에 그를 이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비폭력적으로 들어가는 것
이 연속되는 과정은 이것이 우울적 자리 그리고 관심의 능력의 성취와 평행적으로 나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울적 자리와 관심의 능력의 성취 이 두 단계들은 물론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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