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룡물용(潛龍勿用)
물에 잠긴 용은 쓰지 않는다는 뜻으로, 조용히 때를 기다린다는 말이다.
潛 : 잠길 잠(氵/12)
龍 : 용 룡(龍/0)
勿 : 말 물(勹/2)
用 : 쓸 용(用/0)
대통령 선거철이 되면 너도나도 혹은 자천타천으로 거명되는 후보들을 보통 潛龍(잠룡)이라 부른다.
초기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거론돼 정작 용이 헷갈릴 정도다. 상징적 영물인 무적의 용이 수없이 명멸하니 어지러울 만하다.
물에 잠겨 그 속에서 하늘을 날 수 있는 때를 기다리는 잠룡은 왕위를 잠시 피해 있는 임금이나 기회를 아직 얻지 못하고 묻혀 있는 영웅을 비유적으로 일컫는다.
이 잠룡을 쓰지 않는다(勿用)는 것은 영웅이 자신의 능력을 배양하며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것을 비유한다.
유교 삼경의 하나인 ‘易經(역경)’에는 잠룡을 비롯한 용의 단계를 설명하고 있다. 乾卦(건괘)를 해설한 文言傳(문언전)에서다. 건괘는 용이 승천하는 기세로 왕성한 기운의 남성적인 기상을 표현한다.
물속에서 힘을 비축한 용이 세상 밖으로 나오면 見龍(현룡)이고, 하늘로 솟았다가 다시 못에 잠기면 躍龍(약룡), 하늘 높이 날아올라 정상에 오르면 飛龍(비룡)이 된다. 하늘 끝까지 올라 더 이상 오를 지위가 없으면 亢龍(항룡)이다.
현룡은 李栗谷(이율곡)의 어머니 申師任堂(신사임당)이 아들을 출산할 때 흑룡이 집안으로 날아왔다 하여 지은 아명으로도 알려졌고, 항룡은 극에 달했을 때 만족할 줄 모르면 일을 망치게 된다는 亢龍有悔(항룡유회)란 성어로 유명하다.
잠룡에 대한 설명을 보자. ‘잠룡이란 것은 용의 덕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아직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숨어 있는 것을 말한다(潛龍勿用 龍德而隱者也/ 잠룡물용 용덕이은자야).
세속에 영합하여 자신을 바꾸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不易乎世 不成乎名/ 불역호세 불성호명).
세상에 숨어 살아도 번민하지 아니하고, 옳음을 인정받지 못해도 억울함이 없다(遯世无悶 不見是而无悶/ 둔세무민 불견시이무민).’ 나라가 태평하면 나서고, 어지러우면 물러나는 것이라 했다.
‘淮南子(회남자)’의 人間訓(인간훈)에도 ‘잠겨있는 용을 쓰지 말라는 것은 시기가 행해질 만하지 않다는 것(潛龍勿用者 言時之不可以行也/ 잠룡물용자 언시지불가이행야)’로 인용되어 나온다.
난립하는 후보들 때문에 잠룡이란 말이 많이 퇴색되었지만 실제로 뜻을 펴기 위해 조용히 실력을 배양하는 것은 권장할 일이다.
자신의 수준을 알고 때를 기다리는 것은 바쁜 현대세계서도 필요하다. 다만 인물됨이나 일을 처리할 그릇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기의 공이 있다며 설쳐대는 것은 어느 면으로든 지양돼야 마땅하다.
▶️ 潛(잠길 잠)은 ❶형성문자로 潜(잠)의 본자(本字), 濳(잠)은 와자(訛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삼수변(氵=水, 氺; 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꿰뚫다는 뜻을 나타내는 글자 朁(참, 잠)으로 이루어졌다. 물속을 꿰뚫고 간다는 뜻이 전(轉)하여 물속에 들어가다, 잠기다의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潛자는 '잠기다'나 '가라앉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潛자는 水(물 수)자와 朁(일찍이 참)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朁자는 사람들이 크게 하품을 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潛자는 본래 '자맥질하다'를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였다. 그래서 하품하는 모습을 그린 朁자를 응용해 수영하며 숨을 내쉰다는 뜻을 표현했다. 다만 지금의 潛자는 자맥질을 하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보이지 않는다 하여 '감추다'나 '숨기다'라는 뜻으로도 쓰이고 있다. 그래서 潛(잠)은 ①잠기다 ②가라앉다, 마음을 가라앉히다 ③자맥질하다(물속에서 팔다리를 놀리며 떴다 잠겼다 하는 짓) ④감추다, 숨기다 ⑤깊다 ⑥소(沼) ⑦고기깃(물고기가 모여들게 넣어두는 풀) ⑧물의 이름, 한수(漢水)의 이칭(異稱) ⑨몰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잠길 침(沈), 잠길 침(浸), 묻힐 인(湮)이다. 용례로는 속에 숨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음을 잠재(潛在), 요란하거나 시끄럽지 않고 조용함을 잠잠(潛潛),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몰래 숨어 엎드림을 잠복(潛伏), 남몰래 들어옴을 잠입(潛入), 물 속으로 들어감을 잠수(潛水), 종적을 아주 감춤을 잠적(潛跡), 남몰래 숨어 있음을 잠거(潛居), 남몰래 다님이나 숨어서 감을 잠행(潛行), 몸을 물위로 드러내지 않고 물 속에서만 치는 헤엄을 잠영(潛泳), 마음을 가라앉히고 깊은 생각에 잠김을 잠사(潛思), 법으로 거래가 금지된 물건을 몰래 파는 장수를 잠상(潛商), 가만히 웃음을 잠소(潛笑), 몸을 감추어 나타내지 않음을 잠신(潛身), 마음을 가라앉힘을 잠심(潛心), 정신을 모아서 잘 들음을 잠청(潛聽), 몰래 내통함을 잠통(潛通), 몰래 침입하여 약탈함을 잠략(潛掠), 남 몰래 매장함을 잠매(潛埋), 분한 마음을 숨김을 잠분(潛憤), 사람을 만나기 위하여 남 몰래 찾아 감을 잠예(潛詣), 남 몰래 숨기어 지님을 잠지(潛持), 남 몰래 문질러 지워 없앰을 잠찰(潛擦), 단단히 붙여 봉한 것을 남 몰래 뜯음을 잠탁(潛坼), 물 속에 깊이 잠겨 있는 물고기를 잠린(潛鱗), 몰래 달아나 깊숙이 숨음을 잠찬(潛竄), 성정이 가라앉아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음을 침잠(沈潛), 물러나 가만히 있음을 퇴잠(退潛), 물에 잠겨 있는 용은 쓰지 않는다는 뜻으로 아무리 천하를 품을 만한 영웅이라도 자신의 능력을 배양하며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것을 비유하는 말을 잠룡물용(潛龍勿用), 남이 알아보지 못하게 미복으로 넌지시 다닌다는 말을 미복잠행(微服潛行) 등에 쓰인다.
▶️ 龍(용 룡/용, 언덕 롱/농, 얼룩 망, 은총 총)은 ❶상형문자로 竜(룡)의 본자(本字)이다. 머리 부분에 辛(신) 모양의 장식이 있는 뱀을 본떠 용의 뜻을 나타냈다. 몸체(月=肉)를 세우고(立) 꼬리를 흔들어서 날아 오르는 용의 모양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龍자는 ‘용’이나 ‘임금’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용은 소의 머리와 뱀의 몸통, 독수리 발톱과 같이 다양한 동물들의 신체를 조합해 만든 상상의 동물이다. 용은 신비의 동물이자 신성함을 상징했다. 그래서 고대 중국에서는 용을 신비의 대상으로 삼아 수많은 신화나 전설을 만들어냈다. 龍자는 바로 그 전설의 동물을 문자화 한 것이다. 갑골문에 처음 등장한 龍자는 용의 머리와 몸통이 간략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그러나 소전에서는 문자의 형태를 갖추게 되면서 다양한 글자가 조합되었다. 따라서 龍자에 쓰인 立(설 립)자나 月(달 월)자는 단순히 용의 모습을 한자화한 것일 뿐 글자가 가진 의미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래서 龍(룡, 롱, 망, 총)은 ①용(龍: 상상의 동물) ②임금, 천자(天子) ③임금에 관한 사물(事物)의 관형사 ④비범한 사람 ⑤훌륭한 사람 ⑥명마(名馬) ⑦별의 이름 ⑧파충류(공룡) 그리고 ⓐ언덕(롱) 그리고 ㉠얼룩(망) 그리고 ㊀은총(恩寵)(총)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입신 출세의 관문을 용문(龍門), 옛날 임금이 타던 수레를 용거(龍車), 임금의 얼굴을 용안(龍顔), 폭포가 떨어지는 바로 밑에 물받이로 되어 있는 깊은 웅덩이를 용소(龍沼), 용의 아들을 용자(龍子), 용의 형상을 새긴 종을 용종(龍鐘), 전설에서 말하는 바다 속에 있다고 하는 용왕의 궁전을 용궁(龍宮), 용의 꼬리를 용미(龍尾), 용이 소리를 길게 뺌을 용음(龍吟), 숨어서 아직 하늘에 오르지 않은 용을 잠룡(潛龍), 누워 있는 용을 와룡(臥龍), 애꾸눈인 용이라는 독안룡(獨眼龍), 용문에 오른다는 등용문(登龍門), 머리는 용이고 꼬리는 뱀이라는 용두사미(龍頭蛇尾), 누운 용과 봉황의 새끼를 이르는 말을 와룡봉추(臥龍鳳雛), 하늘에 오른 용은 뉘우침이 있다는 말을 항룡유회(亢龍有悔), 용을 죽이는 기술이라는 말을 도룡지기(屠龍之技), 용과 호랑이가 서로 싸운다는 말을 용호상박(龍虎相搏), 장승요가 벽에 그린 용에 눈동자를 그려 넣은 즉시 용이 하늘로 올라 갔다라는 말을 화룡점정(畵龍點睛) 등에 쓰인다.
▶️ 勿(말 물, 털 몰)은 ❶상형문자로 장대 끝에 세 개의 기(旗)가 달려 있는 모양으로, 음(音)을 빌어 부정, 금지의 뜻의 어조사로 쓴다. ❷상형문자로 勿자는 ‘말다’나 ‘아니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여기서 ‘말다’라고 하는 것은 ‘~하지 말아라’라는 뜻이다. 勿자는 勹(쌀 포)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싸다’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갑골문에 나온 勿자를 보면 刀(칼 도)자 주위로 점이 찍혀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칼로 무언가를 내려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勿자는 이렇게 칼을 내리치는 모습에서 ‘~하지 말아라’와 같은 금지를 뜻을 나타내고 있다. 파편이 주변으로 튀는 것을 나무라던 것이다. 그래서 勿(물, 몰)은 ①말다, 말라, 말아라 ②아니다, 없다 ③아니하다 ④근심하는 모양 ⑤창황(惝怳)한 모양, 부지런히 힘쓰는 모양 ⑥분주(奔走)한 모양, 그리고 ⓐ먼지를 털다(몰)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말할 것도 없음을 물론(勿論), 하려던 일을 그만 둠을 물시(勿施), 생각하지 말음을 물념(勿念), 개개거나 건드리지 못하도록 함을 물침(勿侵), 내버려 두고 다시 묻지 아니함을 물문(勿問), 적용하지 아니함을 물용(勿用), 들어가거나 들어오지 마시오의 뜻으로 쓰이는 말을 물입(勿入), 조심성이나 삼감이 없음을 물렴(勿廉), 가리지 아니함을 물간(勿揀), 받아들이지 아니함을 물봉(勿捧), 새어 나가지 않게 함을 물설(勿洩),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음을 물실호기(勿失好機), 조그만 일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뜻으로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여야 한다는 물경소사(勿輕小事), 은사를 입지 못할 무거운 죄를 물간사전(勿揀赦前), 작은 일에 정성을 드리지 않는 일을 물성소사(勿誠小事), 약을 쓰지 아니하여도 병이 저절로 나음을 물약자효(勿藥自效), 비밀한 일이나 또는 상스러운 일이어서 들어 말할 것이 없음을 물위거론(勿爲擧論), 증인으로서 물어 볼 수 없음을 물위증질(勿爲證質), 기밀한 일을 공포하지 아니함을 물출조보(勿出朝報) 등에 쓰인다.
▶️ 用(쓸 용)은 ❶상형문자로 감옥이나 집 따위를 둘러싸는 나무 울타리의 모양 같으나 卜(복; 점)과 中(중; 맞다)을 합(合)한 모양이니 화살을 그릇에 넣는 모습이니 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물건을 속에 넣는다는 뜻에서 꿰뚫고 나가다, 물건을 쓰다, 일이 진행되다의 뜻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用자는 ‘쓰다’나 ‘부리다’, ‘일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用자는 주술 도구를 그린 것으로 보기도 하고 또는 걸개가 있는 ‘종’을 그린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用자의 쓰임을 보면 이것은 나무로 만든 통을 그린 것이다. 用자가 ‘나무통’을 뜻하다가 후에 ‘쓰다’라는 뜻으로 전용되면서 여기에 木(나무 목)자를 결합한 桶(통 통)자가 ‘나무통’이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用자는 부수로 지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상용한자에서는 관련된 글자가 없다. 다만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나무통’이라는 뜻을 전달한다. 그래서 用(용)은 (1)용돈 (2)비용(費用) (3)어떤 명사(名詞) 뒤에 붙어서 무엇에 쓰이거나 또는 쓰이는 물건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쓰다 ②부리다, 사역하다 ③베풀다(일을 차리어 벌이다, 도와주어서 혜택을 받게 하다), 시행하다 ④일하다 ⑤등용하다 ⑥다스리다 ⑦들어주다 ⑧하다, 행하다 ⑨작용(作用), 능력(能力) ⑩용도(用度), 쓸데 ⑪방비(防備), 준비(準備) ⑫재물(財物), 재산(財産), 밑천 ⑬효용(效用) ⑭씀씀이, 비용(費用) ⑮그릇 ⑯도구(道具), 연장(어떠한 일을 하는 데에 사용하는 도구) ⑰써(=以)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버릴 사(捨)이다. 용례로는 볼 일을 용건(用件) 또는 용무(用務), 무엇을 하거나 만드는데 쓰는 제구를 용구(用具), 기구를 사용함을 용기(用器), 쓰고 있는 예를 용례(用例), 용도에 따라 나눔을 용별(用別), 사람을 씀을 용인(用人), 쓰는 물품을 용품(用品), 생산과 소비에 필요한 노무를 제공하는 일을 용역(用役), 어떤 일에 쓰기 위한 토지를 용지(用地), 사용하는 방법을 용법(用法), 사용하는 말을 용어(用語), 돈이나 물품 따위의 쓸 곳을 용처(用處), 쓰이는 곳을 용도(用途), 대변이나 소변을 봄을 용변(用便), 긴 것이나 짧은 것이나 다 함께 사용함을 용장용단(用長用短), 돈을 마치 물 쓰듯이 마구 씀을 용전여수(用錢如水), 대롱을 통해 하늘을 살핀다는 용관규천(用管窺天), 마음의 준비가 두루 미쳐 빈틈이 없음을 용의주도(用意周到), 일자리를 얻었을 때에는 나가서 자신이 믿는 바를 행하고 버리면 물러나 몸을 숨긴다는 용행사장(用行舍藏)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