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의식은 어데에 꽃혀있나?
사람은 自意識을 가지고 있다.
의식의 범위는 넓지만, 같은 시간에 두 개의 의식을 동시에 붙잡아 두지는 못한다.
시간의 빠른 흐름만큼이나 감정은 쉽게 바뀌고,좋은 감정과 좋은 의식을 유지하면
삶은 한결 가벼워지지만,현실은 늘 그렇게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비교를 통해, 혹은 시선을 달리함으로써 새로운 감정의 전환을
시도하게 된다.
생명체에서 種이란, 교배를 통해 2세를 낳고 그 대(代)를 이어갈 수 있느냐로 구분된다.
지구에는 기록된 것만도 수백만 종(동물130만,식물39만)의 동식물이 존재하지만
우리는 개체 하나하나의 차이를 굳이 따지며 살지는 않는다.그 거대한 생명의 흐름 속
에서 ‘나’라는 존재 역시 인간이라는 하나의 種에 속한, 약 80억 개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굳이 이렇게 부연하는 것은 자기라는 개체가 소중하지않다는게 아니라 자기가
당면한 처지만 어렵다고만 생각하지는 말자는 취지이다.
그렇다면 너무나 유명한 갈릴레오의 경우는 어떠 했을까.
그는 정식 결혼을 하지 않았고,1남 2녀를 두었으나 두 딸은 수도원에 맡겨졌으며 특히
장녀 마리아 첼레스테는 말년의 그에게 정신적 지주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그는 그 딸을 먼저 떠나보내야 했고,1633년 종교재판 이후에는 가택연금이라는
굴레 속에서 삶의 후반을 보내야 했다.
1637년 무렵부터 시력은 급격히 나빠졌고, 1638년경에는 사실상 시력을 잃은 채
약 4~5년을 어둠 속에서 살아야 했다.
위대한 과학자로 기억되는 갈릴레오의 개인적 삶은 결코 평탄하거나 행복한 일상의
연속이라 말하기 어렵다.그럼에도 그는 관측과 사유를 멈추지 않았고,시력이 사라진
뒤에도 과학적 통찰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의 위대함은 업적 그 자체뿐 아니라,불완전한 삶의 조건 속에서도 사유를 지속해 나
간 태도에 있지 않을까. 이제 아래에서 그의 연도별 과학적 여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갈릴레오의 경우는 어떤가?
우선,그는 정식 결혼도 없었고,1남2녀중 장녀는 자기보다 먼저 죽었고,그 무서운 종교
재판속에서 가택연금을 선고받았고, 그 자신은 5~6년간 시력이 안좋거나 실명이었다.
그는 대단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가족상황,개인의 일상적 행복은 평범한 사람의 수준도
못되는 것 으로 보인다.그럼에도 그의 일상이었던 과학적 통찰을 지속했다는 것은
그의 과학적 업적 못잖게 우리의 살아가는 자세에 긍정적 교훈을 주는게 아닐가 한다.
아래에 그의 연도별 업적을 살펴본다.
1. 갈릴레오의 생애 한눈에 보기
ㆍ출생: 1564년, 이탈리아 피사
ㆍ사망: 1642년, 아르체트리(피렌체 근교)
ㆍ직업: 수학자·물리학자·천문학자
ㆍ대표 업적
망원경 개량 및 천체 관측,목성의 위성 발견.금성의 위상 변화 관측.관성·낙하 운동 연구,
태양 흑점 관찰
ㆍ의미: “자연은 수학의 언어로 쓰여 있다”는 인식으로 경험과 실험 중심의 과학 방법을 확립
2. 가족관계와 사적인 삶
ㆍ부모 아버지: 빈첸초 갈릴레이 — 음악 이론가·류트 연주자
→ 권위보다 실험과 검증을 중시한 태도가 갈릴레오에게 큰 영향
ㆍ어머니: 줄리아 델리 암만나티 — 보수적 성향
ㆍ배우자:정식 결혼은 하지 않음,,사실혼 관계: 마리나 감바
ㆍ자녀 3명
1) 비르지니아 갈릴레이 (장녀)
수도명: 마리아 첼레스테,수녀가 되어 아버지와 깊은 서신 교류,갈릴레오의 정신적 버팀목
2)리비아 갈릴레이 (차녀)
수도명: 수오르 아르칸젤라_
3)빈첸초 갈릴레이 2세 (아들): 말년에 갈릴레오가 합법적 아들로 인정
특히 마리아 첼레스테 수녀의 편지들은 오늘날 갈릴레오의 인간적 고독과 애정을 전하는
가장 귀중한 기록입니다.
3. 실명 이전의 말년 상황
ㆍ1633년: 종교재판에서 지동설 옹호 혐의로 유죄.
ㆍ형벌: 종신형 → 가택연금
ㆍ거주지: 아르체트리의 별장 일 조이엘로(Il Gioiello)
이 시기 갈릴레오는 외부 활동 제한,출판 검열,
제자와의 접촉도 엄격히 통제되지만,그럼에도 학문 활동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4. 실명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갈릴레오는 1637년경부터 시력이 급격히 악화되어 1638년 완전 실명에 이르렀습니다.
주요 원인으로 추정되는 것들
ㆍ백내장:당시 기록에 가장 부합.노년층에서 흔함
ㆍ만성 안질환.안압 상승, 염증 가능성
ㆍ태양 관측의 후유증
망원경으로 태양 흑점을 관측하며,보호 장비 없이 직접 태양을 본 경우가 많았음
당시에는 눈 보호 개념이 거의 없음
현대 의학적 판단으로는 백내장 + 태양 관측 누적 손상의 복합 원인이 가장 유력합니다.
5. 실명 후의 삶 — “보이지 않아도, 생각은 보았다”
놀랍게도 갈릴레오의 대표 저작은 실명 이후에 완성됩니다.
ㆍ실명 후의 생활:완전 가택연금 상태,마리아 첼레스테의 간호 (1642년, 그녀가 먼저 세상
을 떠남).제자들이 구술을 받아 적음(비비아니, 토리첼리 등)
ㆍ실명 후 주요 업적
『두 개의 새로운 과학에 대한 대화』(1638)
운동학·재료역학의 기초 정립
뉴턴 역학의 토대
그는 눈으로 보는 과학자에서 사유로 보는 과학자로 전환했습니다.
6. 갈릴레오 말년의 모습 (인간적으로)
ㆍ눈은 멀었으나 지적 열정은 끝까지 유지
ㆍ종교에 대한 개인적 신앙은 포기하지 않음
다만, 자연을 해석하는 권위는 인간의 이성에 있음을 끝까지 주장
그가 남긴 태도는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성경은 하늘로 가는 길을 가르치지만,하늘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가르치지 않는다.”
7.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갈릴레오는 시력을 잃었지만,인류는 그의 눈을 통해 우주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실명은 그를 침묵시키지 못했고,오히려 과학을 ‘보는 학문’에서 ‘생각하는 학문’으로
완성시켰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