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宮)의 여자 ●
"그런 일이 왜 일어난거지."
"…."
"말해줘."
"왜 알고 싶은거지."
"훗. 흠…. 지금 내가 궁금하지 않게 생겼어? 지금 내 약혼자가 저 상태라고! 내 나라가
위험하단 말이야!!!"
나는 때도 아니게, 약혼자 행세를 했다. 하지만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이 무거운 분
위기는 나로 인해 약간 깨졌다. 류가 이 와중에서도 뭐라고 할 태세였지만, 입은 곧 다물어
졌다.
"사실. 세이시온 너에겐 미안하다. 우리의 실수다."
"쿡."
세이시온의 실소가 들린다. 나는 마족이 더 이상 세이시온의 곁으로 다가가지 못하도록
제지했다. 그리고 그는 나의 행동에 피식 웃더니 말을 이었다.
"천년 전의 사건이다. 마계는 천지대전을 마치고, 유쾌한 생활을 시작했다. 너희도 알겠지
만 마족이 승리할 때 받는 대가는 어마어마하다. 패한 천계는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배상금
을 지불했지. 그런데, 천지대전 중. 대전에 참가하지 않은 어떤 세력이 있었다. 그 세력은
마족의 규율을 어겼던 반역자들이지. 그들은 지하감옥에 있으면서 권력을 잡고 싶어했다.
그리고 위험한 선택을 했지."
천년전의 천지대전이라면 나도 잘 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엄청난 활약을 했던 대전이니
까. 하지만 그런 반역자들을 마계에서 가만둘리가 없잖아? 나는 궁금해지는게 너무나도
많았지만 그가 계속 말을 이을 것 같아 입을 꾸욱 다물고 있었다.
"쿡. 그들의 선택은 가장 멸시받는 족인 할프족이었지. 인간도 아니고, 마족도 아니다. 하
지만 할프들의 힘은 가늠을 할 수 없다. 그리고 힘들은 어떻게 키워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인간과 마족과의 만남 자체가 금기시 된 것도 이걸 두려워한 마족들의 짓이었지."
그는 끔찍하게 차가운 눈동자로 세이시온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왼쪽 손으로 세이시온의
턱을 잡아 들어올렸다.
"원래 너희 같은 할프들은 마계에서 태어나 평생 마족의 노예로 살며, 자신의 힘을 자각하
지 못한다. 훗. 그 지하감옥 새끼들이 어떻게 차원 이동 마법을 실시했는지 나도 궁금하다.
여하튼, 그들은 이동 마법이라는 금지된 장난을 시작했다. 할프를 태어나게 하지 않으려고
막아놓았던 차원계 이동 금지 마법벽을 그들이 깨부수었다. 점차 균열도 잦아졌지."
내가 이곳으로 오게 된 것도 생각이 났다. 내가 마계에 있었을 때 가끔 균열이 열리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난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난…."
내가 한창 어떻게 하면 차원계 이동 금지벽을 부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을 때, 옆에 있
던 세이시온의 절망스러운 목소리가 흘러 들려왔다.
"세이시온님?"
"난… 태어날 때부터 멸시의 시선을 받았어."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색이 다른 두 눈. 미래와 과거를 넘나드는 무서운 눈. 자신의 힘
을 자기도 제어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슬프고 착잡한 기분일까.
"죽도록 노력했어.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그. 사안(死眼)만으로는 변하지 않으려고 죽도록
노력했다고!!!!"
세이시온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마족의 초록색 눈동자를 뚫어지라
쳐다보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나라고. 인간계에서 제국이라 불리우는 카젠 제국의 황자가 바로 나 세이시온님이라고!
근데 그 인간이 인간이 아니래. 인간계에 황자면서 인간이 아니란 말야!!"
정체 모를 액체들이 사방에 흩날렸다. 그의 지옥 같은 20년의 시간이 예상이 간다. 누구도
이런 세이시온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갑자기 신성력이 느껴졌다. 에릭이 정신이 빠
지려하자 프레시안이 기를 넣는 것 같았다. 마족은 세이시온에게서 눈을 떼더니 신력이 느
껴지는 프레시안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흠칫하는 프레시안이었다.
"신관이군."
"안녕하십니까."
프레시안의 인사를 무시하고 나에게로 시선을 주는 마족이다. 이 눈빛의 의미를 모르겠다.
나를 비웃는 듯한 눈. 젠장.
"세이시온님을 죽일 생각인가?"
"훗. 마계였더라면 그는 노예야. 님자는 빼도 괜찮잖아?"
이 마족. 나를 놀리고 있었다. 그에 나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어차피 알려지겠지만은 지금
은 알리고 싶지 않다. 점점 어둠이 짙어졌지만, 우리는 어둠에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성은
더 찬란한 흑빛을 띄며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예지력. 시도 때도 없이 날 찾아와 괴롭혀 주었지."
다 알고 있다. 세이시온은 다 알고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의 말에서 절망이 베어나온다.
사실 세이시온이 나와 함께 이 곳으로 온 것도 어찌보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이렇
게 만든 마족인데, 나는 마족인데 그는 나에게 웃어주었다.
"세이시온님…."
눈물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얼굴이 젖어간다.
황자라는 직분을 갖고 있으면서, 예지안을 갖고 있던 세이시온. 그런데 나는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시, 유시는 어딨냐."
"유시? 그게 누구냐."
그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바람에 날려 벗겨진 그의 후드 덕에 얼굴이 더욱 잘 보였
다. 그의 얼굴에서는 달무리가 지나가고 있었다.
"모르는 척 하지마. 유시는 왜 데려갔어. 어디있냐고!"
아무리 인간이고, 몸종이라지만 내 사람이다. 내가 지켜야 할 사람. 나는 눈을 부릅뜨면서
갸르릉 거렸다. 그 모습이 털을 곤두세우고 있는 고양이를 연상케 했다.
"그런 여자 따윈 몰라. 세이시온이 목적이라는데, 그딴 인간 여자는 필요없어."
"…."
나는 마족이 유시를 '그딴'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서 매우 불만이었지만, 또 다른 걱정이
나를 엄습해왔다. 그럼 유시는 어디 있는거지.
"마족."
"비몬이다."
"비몬."
"…."
그는 부름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말이 '말해라'라는 것으로 멋대로 단정지어 놓
고는 세이시온의 옷자락을 꾸욱 잡으며 입을 열었다.
"세이시온님을 데려갈거냐?"
"…훗. 여태까지 뭘 들은거냐."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아까 말라버렸던 눈물이 다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인계에 와서
달라진 것이 너무 많아 내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비몬은 눈물에도 눈 깜빡하지 않았
다.
"…네가 무엇 때문에 이곳으로 온지는 모르겠지만, 돌아가려면 함께 가는 것이 좋을거다."
"입 다물어."
그의 말을 일행 중 그 누구가 알아챌까봐 급하게 말했다. 나의 말에 피식 웃는 비몬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토시하나 틀린게 없었다. 나는 균열 때문에 이 곳에 왔고, 균열이 열린다
면 나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이젠 마을도 어둠으로 덮혀있었고, 일행의 얼굴도 어둠으로 덮혀
져 있었다. 그들에게 걱정 말라는 듯 씨익 웃어주고는 고개를 돌렸다.
"만약 세이시온님을 내놓지 않겠다면, 우리와 싸울거냐."
"세이시온은 이곳에 있으면 안 된다. 인간계가 위태로워져. 마족들이 더 쳐들어올 것이고
균열은 더 잦아지며, 보통 마족들까지도 차원계 이동을 시도 할 것이다."
"마황실의 고지식한 학자님 같군."
나는 조그맣게 읊조렸다. 그 말에 피식 웃는 비몬이었다. 눈빛이 그나마 풀려있었다. 이 사
람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나는 모른다. 내 몸하나 지킬 수 있고, 이곳저곳 피 보면서 이 놈
을 이길 수 있다 치더라도, 나는 누구도 못 지킨다.
스윽-
그 때 유에가 내 앞을 가로 막았다.
"건드리면 용서 안 해."
나는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유에에겐 미안한 말일지, 칭찬의 말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비몬과 그는 닮았다. 머리 색깔도 눈색깔도 달랐지만, 그 분위기가 무척이나 닮
았다. 나는 유에의 팔을 잡았다.
"유에, 무리하지마. 비몬. 마기 좀 어떻게 해보겠어? 다 죽겠어."
나는 아직까지 깨어나고 있지 못하는 류블과, 힘들어하는 프레시안을 보고 말했다. 마의 어
둠의 기운이 조금씩 조금씩 줄여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몬은 내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거의 무시처럼 보였다.─ 나름대로 우릴 배려하고 있었다.
"오늘은 산에서 머물다 가야할 것 같네."
"뭐라고?!"
누워있던 에릭이 미쳤냐면서 팔딱팔딱 뛰어댔다. 언제 누워있었냐는 듯, 팔팔한 모습이었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고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말은 안하고 있었지만
에릭과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이 밤에 이 험한 산을 내려가면 우린 꼼짝없이 죽어버릴거야."
마족 앞에서 지킨 목숨을, 애꿎은 산한테 뺏기긴 싫다는 말투로 말했다. 아무 말도 없었다.
그에 나는 피식 웃으면서 비몬과 눈을 맞췄다.
"당신의 마성에 우릴 초대하지 않겠어?"
대담한 제안이었다.
터벅 터벅-
그런 제안을 한 나도 이상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문을 여는 비몬도 이상했다. 하지
만 그렇게 순순히 우릴 들여보내주는 비몬과 달리 마성을 굉장히 경계하는 다른 일행들이
었다. 어느 새 깨어난 류블은 자신은 자연과 함께 하겠다면서 고집을 피웠지만, 비몬의 한
마디에 꼬리를 내렸다.
"너희가 올라 올 때 마물은 없었겠지만 지금은 보호벽을 풀어서 조금 위험할거다, 인간."
프레시안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계속 기도를 하고 있었고 에릭과 유에는 꽤나 덤
덤했다. 류와 세이시온은 뭐랄까, 마성을 엄청나게 꺼려하고 있었지만 제일 먼저 발을 들
여놓았다.
비몬은 만약 우리가 세이시온을 순순히 넘겨주면 아무런 해도 가하지 않을 듯 싶었다. 실드
가 쳐져 있지 않다는 것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세이시온님."
에릭, 유에, 프레시안과 함께 보조를 맞추던 나는 앞서 가던 세이시온과 류의 사이로 끼어
들었다. 류는 아직 아까 약혼자 행세를 한 것 때문에 삐쳐있는 것 같았지만, 세이시온이 먼
저였기에 나는 류의 팔을 꼬옥 잡으며 고개는 세이시온을 향하게 했다.
"왜."
가래가 끓는 목소리. 아까 울었던게 창피해서인지, 아님 내가 마족이란 걸 새삼스레 느껴서
경계하는 건지, 세이시온은 나와 눈을 맞추지 않았다.
"창피하세요?"
"…."
창피해서였구나. 나는 밝은 마성 안에서 샹들리에의 빛에 자세히 보이는 세이시온의 빨게지
는 얼굴을 잘 포착해냈다. 그러고는 피식 웃었다.
"아아- 십년 감수했네. 화나신 줄 알았거든요. 헤헤."
"내가 너한테 왜 화를 내냐."
이젠 덤덤히 앞을 보면서 말을 하는 세이시온이었다. 나는 좋다고 웃으면서 오랜만에 느껴
지는 흑기의 친근함을 느끼며 비몬의 안내에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근데, 여기 마성 맞아?"
보통 성보다 훨씬 화려하고, 조각상도 많으며 하나의 왕궁을 생각나게 하는 그와 다르다면
그저 구조가 드럽게 복잡하고, 드럽게 큰 성을 보면서 에릭이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훗. 마족들이 어둠을 좋아한다고, 어둠에 갇혀사는 것은 아니다."
가소롭다는 듯, 웃으면서 말하는 비몬이다. 그의 말투에 발끈하는 에릭이지만 그의 강한 기
운에 깨갱-하면서 사납게 침대에 몸을 굴렸다.
작가말☆
꺄아. 이제 한편만 더 쓰면 30편이에요ㅠㅠ 감동감동.
28화 때 코멘 남겨주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ㅠ
새로 보이는 분도 계시고, 정말 오랜만인 분들도 계셔서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답니다. 헤헤.
이번 편 약간 짧긴하지만, 30편 길게! 쓸게요~
중3이라 맨날 수업도 안하고 영화만 본답니다.
아. 공부하는 애들도 있긴 해요=_=;
내일은 3학년 전체가 영화관을 빌려서 영화를 봐요.
해리포터를 본답니다. 헤헤.
그럼 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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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판타지소설
[판타지]
궁(宮)의 여자 - [제 29 화]
빙수가좋아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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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01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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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재밌게 읽었어요^^ 빙수님도 좋은하루 되시고요 ㅎㅎ 해리포터 갠적으로 보고싶다는 ㅠ
★ 볼트모트의 콧구멍이 붙어있어요=_=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전 유에가 좋답니다. 헤헤. 다음편은 내일 올려드릴게요. 오늘은 갈 곳이 있어서ㅠ; 죄송합니다.
잼있게 영화보시궁여 사실 저두 낼영화를 보러갑니당^^ 다음편을 기대하공 있겠어여^^*
★ 아아! 영화 잘 보고 오세요! ^^ 내일 올릴게요~
30편 기대해요~~ 새로보는데 ^-^ 넘 재밌어요,,, 유에랑 비현이랑 잘됬으면 해요~~
★ 감사합니다! ^^
30편 기다릴게요~~ 열심히 써주시고요 저희는 님의 글을 열심히읽는 독자 되겠습니다!! 헤헤 홧팅이요~~
★ 곰탱이님! 오랜만이에요ㅠ 화이팅 할게요. 음. 좀 늦어질 수는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