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말, 주한 미군부대가 주둔한 그 마을은 전쟁이 만들어낸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물이 흐르지 않는 웅덩이 같은 곳이다. 그곳에는 마을사람들에게 외면당한 채 혼혈아인 창국(양동근 분)과 함께 빨간버스에서 사는 양공주였던 창국이 엄마(방은진 분)가 있고 6. 25전쟁 때 얻은 다리부상이 유일한 자랑거리인 생활력 없는 지흠 아버지, 그리고 난폭하지만 유일하게 창국이 모자를 이해하고 돌봐주는 개눈이 있다.
개눈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창국이 엄마를 대하지만 자기 엄마에게 함부로 구는 창국에게는 분노를 느낀다. 그런데 창국이 엄마는 늘 우체부 아저씨편에 미국에 가서 곧 초청장을 보내주겠다던 창국이 아버지 즉 미군에게 편지를 보내어도 그 편지들은 ‘수취인 불명’이란 우체국 직인이 찍힌 채 되돌아오곤 한다.
그리고 그런 편지를 쓰고 또 미군 아버지로부터 답장을 기다리는 엄마를 창국은 늘 비웃곤 한다. 그런데 어린 시절 한 쪽 눈을 다친 가난한 집의 딸 은옥은 콤플렉스 때문에 폐쇄적인 성격이 되어 순수한 지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강아지하고만 사귀다가 ‘결혼하면 눈을 고쳐주겠다’는 미군 제임스의 제의를 못내 받아들인다.
창국은 ''튀기''라는 말에 주먹을 휘두르고 엄마에게 발길질을 하는 거친 성격이면서도 나약하고 선량한 친구 지흠에게만은 진한 우정을 보여준다. 개장수 개눈에게 벗어나고 싶지만 아무도 그를 받아주지 않는다. 지흠은 그들을 도우려할수록 현실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나약함을 깨닫고 절망하는데...
주: 영화 제목 ‘수취인 불명’에 대한 김기덕 감독의 말: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시골 길거리에는 주인을 잃은 ‘수취인 불명’이란 우체국직인이 찍힌 편지들이 많았었다. 그 편지들은 대문에 하염없이 꽂혀 있다가 바람에 이리 저리 날려 다니다 논바닥, 시궁창에 버려지기 일쑤였다.
나는 그 편지들을 볼 때마다 왠지 열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고 간혹 열어본 적도 있었다. 편지의 내용은 대부분 애절한 사연이 많았다. 나는 영화 [수취인 불명]의 주인공 은옥, 지흠, 창국이가 ‘주인이 없이 나뒹굴다가 버려진 편지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은 ‘시대 자체로 수신되지 않은 아이들’이다. 그냥 버려진 편지 마냥 황량한 들판에서 창국은 완전히 짓밟혔고, 은옥은 반쯤 짓밟혔고, 지흠은 거친 잡초처럼 자라날 것이다. 나는 이 아이들의 삶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의미로 [수취인 불명]이란 영화제목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