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나오니 얼굴에 확 불어오는 아침공기가 겨울처럼 제법 쌀쌀했다. 2주전 중앙일보 마라톤대회를 위해 출발할 때와는 달리 마음이 무척 가벼웠다. ‘SUB-3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서일까?’, 2주전 풀코스를 완주했으니까 오늘은 편안한 마음으로 달려보리라는 생각으로 아침밥까지 느긋이 챙겨먹고 운전대를 잡았다.
‘마라톤을 시작하지 거의 3년이 되가는 것 같구나....’ 그동안 달리기가 좋아서 뛰었고, 뛰는 사람들이 좋아서 만났고, 뛰다보니 마라톤 풀코스를 몇 차례씩이나 완주하게 되었고, 또 그러다 보니 일반 마라토너들의 꿈인 써브쓰리가 어느새 자연히 내 목표가 되어있었다.
그래서 올봄 동아일보 서울국제마라톤대회 써브쓰리 실패 후 올해 써브쓰리 꿈을 이루기 위해 지난 11월 12일 중앙일보 마라톤 대회를 목표로 여름부터 준비에 들어갔다. 7월에 천안으로 이사하게 되어 수요일 한강에서 동호회원들과 함께 하는 운동을 포기하고 개인훈련에 돌입했다. 무더운 여름 천안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을 혼자서 몇 바퀴씩 돌면 온몸에 땀이 줄줄 흘러내렸지만 나름대로 연습을 꾸준히 하고 , 스피드업 훈련을 위해 하프코스 대회도 몇 차례 출전했다.
이렇게 나의 꿈 써브쓰리를 향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의 발목을 잡는 큰 어려움이 두 가지 있었으니 첫째는 서울 천안 간 장거리 출퇴근 이었다. 하루에 거의 4시간을 기차나 전철 안에 꼬박 갇혀있어야 하다니. 나 같은 달리기꾼한테는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그리고 둘째는 “아빠 !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 하는 노래처럼 응원단은 없더라도 바가지만 좀 긁지 말아주었으면.....
늦게 집에 도착해서 저녁밥만 먹고,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있으면 벌써 뒤에서 아내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하루라도 좀 빼먹을 수 없어. 어제는 찬휘가 아빠 집에 들어왔냐고 하더라. 일주일에 한 두번이면 몰라도 매일이면 어떡해. 나도 하루 종일 일 하느라, 애들 볼랴 힘들어 죽겠다고요......”
옆에 있던 초등학교 1학년 아들도 거든다. “ 아빠, 마라톤 하러가요? 나도 따라가면 안돼요?” 그리고 그 옆에는 연신 “아~빠, 아~ 빠, 아~빠”를 불러대는 11개월짜리 둘째 아들.
이런 가족들을 뒤로하고 운동화 끈을 맬 때마다 “아빠 이번대회에서 써브쓰리하면 마라톤 은퇴한다.” 라고 소리쳤는데. 더군다나 아이들이 감기에 걸렸다고 각방까지 써가면서 몸 만들고, 컨디션조절에 최선을 다 했것만. 지난주 중앙일보대회에서 3시간 15분으로 조용히 꿈을 접어야 했다.
처음 마라톤을 시작 할 때는 가족들의 호응이 좋았다. 우선 운동을 열심히 하니까 건강해져서 좋고, 주말이면 가족들이 함께 마라톤대회에 참석해서 집에서 딩굴거리지 않고 또 어디 놀러갈까 고민도 안하고..
아내와 아들은 5km 건강마라톤에 출전하고 나는 하프나 풀코스에 출전해서 서로의 완주를 축하해 주고, 각 지역의 맛있는 것도 먹고 가슴에 메달을 달고 흐뭇한 하루를 마감했다. 그러나 아내가 둘째아이를 갖게 되고, 나의 운동량이 점차 늘어남에 따라 갈등이 커지기 시작했다. 평일저녁엔 거의 동호회 모임이나 혼자서 연습을 하고, 주말에도 마라톤대회에 혼자 참석하는 빈도가 늘어났다. 나의 써브쓰리에 대한 열망이 켜질수록 점점 가족들한테 마라톤은 천덕꾸러기가 되어갔다.
하루는 아내가 “가족이 우선이냐, 마라톤이 우선이냐?” 양자택일하라고까지 하면서 더 이상 못살겠다고 메일을 보내왔다. 나는 다소 충격적이기는 했지만 늘 들어왔던 잔소리였기에 우선은 미안하다고 달래서 마무리 지었지만, 참 아이러니한 것은 내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꼭 마라톤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야 할 텐데 , 꼭 써브쓰리를 한 번 해보고 말겠다는 생각밖에 안나니 나도 마라톤 중독자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큰 소리를 치고 각별하게 준비한 대회인 만큼 아내의 대응도 만만치 않았다. “ 당신은 써브쓰리 못해. 사람들마다 다 신체특징과 소질이 있는 거야. 무조건 열심히만 뛴다고 해서 써브쓰리 하는 건 아니지. 그럼 내가 매일 밥만 먹고 골프 치면 박세리 처럼 치겠네. 마라톤 한다고 저 비싼 운동화며 운동복을 사대더니, 이제는 마라톤 보약에, 그리고 1년 마라톤대회 출전비도 만만찮고 .....” 언제나 모든 잔소리는 돈으로 막을 내린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8시 30분 공주종합운동장에 도착했다.
자동차에서 30분정도 시간을 보낸 뒤 몸을 풀기 위해 운동장으로 나갔다. 운동장을 6바퀴 천천히 돌고 2바퀴는 고교선수들과 함께 뛰었다. 20분정도 몸을 풀고 스트레칭을 20분정도 하고 나니 벌써 시계바늘이 9시 40분을 가르키고 방송에서는 풀코스 물품보관소가 복잡하다는 멘트를 계속해서 흘려보내고 있었다. 아무리 바빠도 파워젤 하나 먹고 물마시고 물품보관소로 향해 갔다. 정말로 사람이 너무 많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5km코스의 물품보관소에 짐을 보관하고 50분에 출발선으로 이동하여 스타트라인에 섰다. 다른 대회와는 달리 부담이 없었다. 출발 후 내리막 200m, 곧바로 오르막이 계속되었다. 날씨가 추워선지 숨이 가쁘지 않았다. 힘들지 않을 정도의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오르막을 오른 뒤 5km 지점에서 시간을 보았는데 20분34초 좋은 페이스였다. 5km 후 앞서가는 달림이 중에서 품이 너무나 멋진 서울마라톤 소속 임OO씨의 뒤를 계속해서 따라가면 함께 달리는 기쁨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아 마음먹고 함께 뛰기 시작했다. 10km 지점에 도착하여 시간을 보니 41분47초였다. 잘 뛰고 있다는 생각을 속으로 하고 함께 하는 이들과 30km까지만 가자고 맘을 먹고 힘차게 달렸다. 농촌의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도로변에 나와서 손을 흔들어 주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응원에 기운이 저절로 생기는 듯 좋았다. 13km 지점쯤에서 뒤따라오던 60세 이후 SUB-3 하신 서울마라톤클럽 ooo씨가 그룹을 지어서 우리를 따라잡아 함께 달렸다. 서로를 경쟁하듯 점점 속도가 빨라졌다. 여기저기서 너무 빠르다고 외치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각자 최선을 다해서 뛰었다. 초반이라 한명의 처짐도 없이 똑같이 스피드를 내서 달렸다. 주위에선 2시55분대 주자들이라고 볼멘소리도 한다. 금강대교를 건너 공주시내로 들어서니 많은 시민들의 응원에 선수들이 힘을 내어 점점 더 빨라졌다. 공주고등학교를 돌아서는 순간 선두그룹의 선수를 인도하는 차의 모습이 보이고 선수들이 그룹을 지어 달려온다. 내리막길인 것을 선수들 달리는 모습을 보고 알았다. 우리그룹도 더욱 힘을 내서 오르막을 힘차게 올라 20km지점에서 턴하고 내리막을 힘차게 달려서 21km에서 시간을 보았다. 1시간26분대 절반의 성공이었다. 서브쓰리는 생각하지 않고 이대로 힘껏 달리자는 맘으로 도로를 힘차게 박차고 달렸다. 우리그룹도 선두와 후미로 나누어지기 시작했다. 서울마라톤 60세 서브쓰기 하신 분이 이끄는 그룹과 우리만의 그룹으로 분리되었다. 나도 도저히 따라 갈수 없어 나만의 길을 가기로 맘을 먹고 달렸다. 날씨도 상쾌하고 코스도 너무나 좋았다. 25km지점에서 파워젤을 먹고 힘을 내서 달렸다. 달리는 건지 스피드가 떨어진 건지 시간이 얼마나 흘렸는지 점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몸에서 느끼는 마라톤 고통이 왔다. 그러나 2km 정도 달리면 회복이 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별로 겁먹지 않고 달렸다. 내 뒤쪽에서 뛰는 달림이에게 뒤쳐지는 것은 괜찮아도 내 앞에 가는 사람은 꼭 잡아야 한다는 맘으로 달렸다. 30km 지점에서 턴 한 후에는 시계를 보지 않았다. 시간에 쪼기면 달리기를 즐기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스피드가 많이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을 마시고 좋은 생각으로 달렸다. 선두그룹이 옆을 지나갔다. 35km 지점까지 좀처럼 스피드가 나지 않는 것 같았다. 내 주위에 뛰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조깅정도의 스피드로 달리고 있는 듯하였다. 그런데도 나는 그들을 딸 수가 없었다. 35km 도착 물을 마시고 왠지 최선을 다하지 않을 것 같기에 시계를 보지 않았다. 힘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 뒤쳐져 있던 누군가가 힘차게 앞으로 치고 나갔다. 지금 이 순간 그들 따라가지 않으면 서브쓰리 도전은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그때 처음으로 들었다. 힘을 내기 시작했다. 다리에 힘이 생기는 것 같았다. 스피드도 느껴졌다. 공주대교다리에서 경찰의 교통통제 미숙으로 앞서가던 주자가 그만 갈팡질팡하다 나와 충돌을 하고 말았다. 충격이 좀 있었지만 그래도 앞만 보고 뛰었다. 37.5km 스폰지로 목을 적시는 사이에 충돌했던 그 달림이가 핑하고 앞으로 치고 나간다. 다리가 떨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포기 할 수는 없었다. 여기저기서 달리기를 포기하고 걷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육교 및 버스 정류장에서의 시민들의 응원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직 내 다리 무게만 천근만근 느껴졌다. 39km지점에 도착했을 쯤 뒤에서 오는 누군가가 “서브쓰리 가능성 있다. 힘내자 ”라고 소리친다. 서산천수만 마라톤클럽에서 함께 온 선수가 클럽의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 넣는 소리였다. 3km 남은 거리. 그들만 따라가면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았다. 힘이 다시 생겼다. 그들과 나만 그 그룹에서 뛰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주자들을 해치고 지나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도로를 지탱하는 다리에 힘이 느껴졌다. 40km 도착해서 마지막으로 시계를 보았다. 2시간50분5초 파란 하늘같은 희망이 보인다. 통계상으로 2시간 50분대 통과하면 95%이상이 서브쓰리를 달성하다는 잡지책의 한 구절이 생각이 났다. 서산천수만 클럽의 주자가 물을 건네준다. 한 모금 마시고 힘차게 레이스를 펼친다. “마지막 오르막이 고비다”는 말을 한 서산마라톤클럽의 페이스메이커의 힘찬 외침이 들린다. 다리에 힘이 생기고 엄청난 속도의 빠르기가 느껴진다. 누구나 할 것 없이 5km 마라톤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처럼 스퍼트를 하기 시작한다. 드디어 출발 1km 안내 표지판이 보였다. ‘다 왔다.’마지막으로 시계를 보니 2시간54분36초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는 느낌과 할 수 있다는 맘으로, 그리고 폴-터캇이 세계기록경신 후 땅에 키스하는 멋진 장면을 머릿속에 연상하면서 힘껏 달렸다. 골인지점이 눈에 들어온다. 함께하는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스퍼트를 외친다. 마지막 오르막 200m를 힘차게 뛰었다. 함께 한 이들도 힘을 다한다. 내가 제일먼저 골인하여 두 손을 높이 들고 골인지점의 시계를 보았다. 3의 숫자가 아닌 아직도 2시간59분대의 숫자가 있는 것 같았다. 골인~~ 바로 바로 해설자의 멘트가 흘러나온다. 얼마의 시간의 지난 후 들어오는 주자에게 “3시간5초를 가르킵니다. 정말 아쉽내요!!”
멋지게 공주의 땅에 입맞춤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꿈을 이룬 이 순간 내마음속엔 늘 바가지와 사랑으로 당근과 채찍을 주었던 아내와 귀여운 두 아들, 그리고 추울 때나 더울 때나 늘 함께 달려주고 격려해준 우리공단의 달림이 가족 및 런조이여의도회원님들의 얼굴들이 떠오르면서 왠지 모를 뜨거운 것이 가슴에 흘렀다.
“여보, 나 드디어 써브쓰리했어. 꿈을 이뤘다고.....”, “아들아, 아빠 써브쓰리했다. 마라톤 은퇴는 못하지만 대신 아빠가 많이 놀아줄게. 그리고 내년엔 온 가족이 마라톤대회에 나가자!! ”
돌아오는 차안에서 맑은 늦가을하늘과 마라톤을 알게 해준, 그리고 마라톤을 할 수 있게 해준 모든 것에 감사하며,
열렬히 응원해준 공주시민과 마라톤관계자 여러분 또한 함께 뛴 서산천수만 마라톤클럽회원님들께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첫댓글 이론! 머여...? 글 좀 짧게 씁시다 우리! ㅎㅎㅎ,, 부탁 드립니다! 실명으로 바꾸어 주십시요.지발~! ,, 다 읽고나서 꼬리는 다시!!!
움...대단..집에가서 읽어야쥐~
석주씨 축하드립니다,,, 결국 해냈군요,,, 정말 대단한 의지의 성공입니다. 오래도록 여운을 즐기세요,,, 힘
sub-3 달성.. "축하"드립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동안 가족들과~소홀했던 시간들 ~사랑으로 행복한 나날~~마음껏 누리세요~~
감동적인 글입니다. "꿈을 이룬 이 순간 내마음속엔 늘 바가지와 사랑으로 당근과 채찍을 주었던 아내와 귀여운 두 아들"이대목에서 울컥하는 맘이..제발 부탁드리오니 송년회때에 가족과함께오셔서 행복한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영화로 만들어도 될듯합니다 취미로 시작한 초보달림이가 중독자가되어 가족을 팽게치고 섭3에 몇번실패후 드디어 섭3를 달성후 가족에게 회귀하여 행복한 가장으로 돌아간다는......음 "말아톤"보다 대박일듯.ㅎㅎㅎ
좋은 글 입니다.......강석주님 말톤수기에요???? 넘 인상적 입니다. 내년에도 계속 섭3이 하시기 바랍니다. 화이팅.
아직도 다 못 읽었당~~ 다 읽고 추카 할려면 몇날은 걸려야 될것같고,,, 추카추카해용~~ 미리 추카하고 담에 또 나머지 읽어 가야쥐~~~^&^
형 눈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 목전의 골인 지점에선 그토록 힘이 나나봐. 찌~잉 했어, 작은 감동! 수기 마저도 섭스리처럼 길게 빨리 쓴 흔적.
감동의 실화드라마 한편 잘 감상하고 부럽기도... 나도 가능 하겠슈? 그렇게 열망하던 꿈은 이루어지고 이제는 예비 섶3리 주자를 위해 봉사해 주시면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