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웰컴 투 동막골’ 촬영장은 오래전 과거의 두메산골에 와 있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탄광촌이던 미탄면 율치리 제작사, 영화 촬영 위해 인공마을 ‘동막골’ 조성
집·빨래터 등 잘 보존돼 있어 팝콘 날리던 명장면 눈에 선해 100년 된 ‘진부장’ 구경도 쏠쏠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올해로 68년.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전쟁의 상처는 크고 깊다. 이런 현실을 볼 때면 전쟁도, 이념도, 상처도 없는 낙원을 그린 영화가 떠오른다. ‘웰컴 투 동막골(2005년)’이다.
작품의 주요 무대인 ‘동막골’을 찾아 강원 평창을 다녀왔다.
서울에서 차로 두시간을 달려 닿은 강원 평창군 미탄면 율치리. 과거 탄광촌이던 이곳은 영화 촬영을 위해 제작사가 인공마을을 만들면서 관광지로 떠올랐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기쁨도 잠시, 실제 영화를 촬영했던 세트장에 가려면 비포장도로를 따라 2㎞ 정도 더 들어가야 했다. 덜컹거림이 익숙해질 무렵 드디어 촬영지임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웬걸, 산길을 따라 150m 더 걸어야 한단다. ‘대체 어떤 모습이기에 이렇게 꽁꽁 숨어 있나’ 하는 궁금증에 힘든 줄도 모르고 비탈진 산길을 올랐다.
긴 여정 끝에 마주한 촬영장은 6·25전쟁이 났을 즈음의 두메산골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너른 마당엔 허름한 집 10여채가 사이좋게 모여 있고, 그 주변엔 빨래터·대장간·방앗간 등이 자리를 잡고 있다. 영화를 촬영한 지 10여년이 훌쩍 흘렀지만 세트장은 온전한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영화에서처럼 길모퉁이를 돌면 마을 아이들이 해맑게 놀고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마을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촌장이 살던 집을 발견했다. 영화의 백미로 꼽히는 ‘팝콘’ 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늦가을, 낙오한 인민군 리수화(정재영 분) 일행과 자군 병력에서 이탈한 국군 표현철(신하균 분) 일행이 동막골에서 우연히 만난다. 두 일행은 촌장집 마당에서 평상을 가운데 두고 한참 동안 대치한다. 일촉즉발의 상황. 인민군이 실수로 떨어뜨린 수류탄은 곳간으로 향한다. 몇초 후 옥수수가 하늘로 치솟으며 새하얀 눈처럼 팝콘이 내린다. 그 순간 극으로 치닫던 서로에 대한 적대감은 사그라든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군과 인민군은 빈 곳간을 채우기 위해 함께하면서 서서히 가까워진다. 팝콘이 긴장과 불안을 없애고, 나아가 화합의 장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그 명장면을 떠올리며 마을 주민인 양 평상에 걸터앉았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맞으며 삼림욕을 즐기고 있자니 이 세상에 오롯이 혼자 있는 듯한 기분이다. 바쁜 일상에서 얻은 스트레스와 고민은 어느새 딴 세상 이야기가 됐다.
진부장
1950년 동막골에서 빠져나와야 할 시간. 꼬불꼬불 왔던 길을 되돌아 동막골에서 60㎞ 떨어진 진부면으로 향했다. 평창을 찾은 날 때마침 열린 진부오일장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형성된 지 100여년도 더 된 진부장은 3·8일 열린다. 시장은 사람들로 복작거렸다. 그들을 비집고 좁은 시장통에 들어서니 사방에서 고소한 냄새가 진동했다. 코를 킁킁대며 냄새의 근원지를 찾았다. 시장통 끝에 올챙이국수·찐옥수수·메밀부꾸미를 파는 가게가 모여 있었다. 망설임 없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복잡한 머리는 비우고 허기진 배는 채우는 여행.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힐링 여행이 아닐까. 긴 여정을 기꺼이 감수하고서라도 다시 한번 평창을 찾고 싶은 이유다.
평창=최문희, 사진=김덕영 기자
영화 ‘웰컴 투 동막골’
첩첩산중 마을서 그리는 한국전쟁의 갈등과 평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강원도 첩첩산중에 있는 ‘동막골’을 배경으로 남과 북의 화해를 그린 영화다.
이 마을은 실존하는 곳이 아니라 화해와 행복을 상징하는 가상세계다. ‘아이(童)처럼 막 사는 곳’이라 해서 동막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영화 속 주민의 설명대로, 국군·인민군·연합군은 이곳에서 순수한 모습으로 돌아가 평화로운 한때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