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국립공원 동대봉산 무장봉(624m) 암곡탐방로 억새산행 #2
08:40 무장사지 계곡 데크쉼터
08:44 무장봉 3.9km, 무장사지 0.9km, 암곡 1.5km 지점 이정표와 간이화장실
저지대구간은 높게 데크로드를 설치하였다.
08:53 무장봉 3.4km, 무장사지 0,4km, 암곡 2.0km 지점 이정표
암곡동 깊은 숲속의 계곡
08:58 무장사지 쉼터
2년전 힌남노의 흔적이 아직도 군데군데 남아 있다.
09:02 무장사지 갈림길(해발 330m)
제1공영주차장에서 3.5km, 1시간 소요
무장사지까지 100m로 들렸다 가기로 한다.
무장사지 0.1km 데크로드 방향으로 진행한다.
09:01 무장사 사적비 이수 및 귀부, 무장사지 삼층석탑 이정표
무장사지는 경주시 암곡동 산골짜기에 통일신라시대 사찰 무장사(鍪藏寺)가 있었던 절터이다.
무장사는 신라 원성왕(元聖王)의 아버지 김효양(金孝讓)이 지은 절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전쟁에 지친 태종 무열왕이 투구와 병기 등을 묻은 골짜기에 지은 절이라서 무장사라고 불렀다고 한다.
1915년 이곳에서 신라 소성왕(昭聖王)의 왕비 계화 부인(桂花夫人)이 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아미타불상을 만들어 무장사에 봉안한 내력을 새긴 사적비가 발견되면서 무장사 터임이 밝혀졌다.
일대에 무장사지삼층석탑(鍪藏寺址三層石塔, 보물 제126호)과
무장사 아미타불조상사적비 이수 및 귀부(鍪藏寺阿彌陀佛造像事蹟碑螭首─龜趺, 보물 제125호)가 남아 있다.
09:02 지금은 터만 남아 있고 보물인 무장사지 3층석탑은 볼 수 있다.
경주 무장사지 삼층석탑(慶州 鍪藏寺址 三層石塔)
경상북도 경주시 무장사터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건립된 3층 석조 불탑으로 1963년 보물로 제126호로 지정되었다.
석탑의 조성 시기는 9세기 경으로 추정된다
이전에 무너져 석재의 일부가 없어졌지만 1962년에 일부 석재를 보충하여 복원하였고
석탑이 자리한 절터는 암곡동의 깊은 골짜기에 위치하는데 주변은 제법 넓은 편이다.
2단 바닥돌과 3층의 몸돌로 구성된 신라시대 일번적인 형태이다.
위층 바닥돌에는 기둥 모양대신 면마다 2개씩의 안상을 새겨 넣었다.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2층부터 높이가 급격히 낮아진다.
머리 장식부는 모두 없어졌던 것을 1963년 복원하면서 머리장식의 닫침돌이 노반(露盤)과 보주(寶珠)를 보충해 넣었다.
경주 무장사지 아미타불 조상(造像) 사적비
이 사적비는 신라 제39대 소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계화 부인이 아미타불상을 조성할 때 세운 비석이다.
건립 연대는 801년으로 추정되며 불상을 조성한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1914년에 절터 주변에서 비석 조각들이 발견되어 이 절이 무장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삼국유사」에 무장사는 태종 무열왕이 삼국을 통일한 후 이곳에 병기와 투구를 감추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비석은 파손이 심하여 절터에는 부서진 머릿돌과 받침돌만 남아 있고 비석에서 떨어져 나간 조각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비석조각들을 참조하여 2011년에 몸돌을 다시 만들어 이곳에 세웠다.
두 마리의 용이 앞발로 여의주를 잡고 있는 모양의 머릿돌에는 '阿彌陀佛□□' 이라는 여섯 글자가 2행으로 새겨져 있다.
머릿돌 왼쪽 면에는 1817년 4월 29일에 이곳을 답사하다가
이 비석 덩이를 발견하여 탁본한 김정희의 감회를 기록한 조사기(調査記)가 별도로 새겨져 있다.
받침돌은 두 마리의 거북 모양인데 거북의 등 중앙에는 몸돌을 끼울 수 있는 장방형의 받침이 있다.
받침의 네 면에는 십이지신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거북모양 받침돌에 십이지신상을 조각한 것은 매우 특이한 경우이다.
비석의 머릿돌은 용의 문양이 뚜렷하다
쌍거북 비석받침은 경주박물관의 승복사 터 쌍거북 받침과 유사하다. 다만 머리부분이 파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