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 메신저 - 청보리 | 🎈우리 불교, 무엇이 문제인가?[7] / 3-2.출가우월주의, 이것이 문제다 - Daum 카페여기를 눌러 링크를 확인하세요.cafe.daum.net
#우리불교무엇이문제인가? 7
🎈종교사에 유례없는 급격한 쇠락 !
우리 불교, 무엇이 문제인가?[7]
- 김재영(불교학박사)
3-2.출가우월주의, 이것이 문제다
- 우리 모두 함께 살아나는 길
1. 역사에 없는 이 허망한 추종(追從)불교
(1) 이 캄캄한 출가우월주의
41) 행위(kamma, 業)의 법칙
대평등의 정의(正義)
사부의 빠리사–출가 재가의 평등 공동체
아딴 권위–우월주의도 용납되지 아니 하는 평등 공동체
여기서 솟아나는 대중/민중들의 자발적 동기–헌신
출가–재가 서로 의지하고 서로 공경하며 함께 법바퀴 몰고 달려가는 개척 동반자
끝없이 끝없이 열려가는 붓다의 세계
찬란한 ‘Buddhist India', 실크-로드(silk-road), 장엄한 부처님 나라(佛國土)의 역사 -
지금 어디 있는가?
지금 어디서 이 장엄한 역사 볼 수 있는가?
지금 이 땅에 행위의 법칙 - 평등의 정의 살아 있는가?
지금 이 땅에 사부의 빠리사 존재하는가?
서로 의지하고 서로 공경하며 함께 달려가는 출가 - 재가의 평등한 공동체 존재하는가?
목숨 걸고 불국토 열어가는 대중/민중들의 거친 개척정신 살아 있는가?
42) 이 첩첩한 우월주의
이 캄캄한 출가승 우월주의
불교도를 지배하는 이 카스트적 우월주의
소수 독점의 탐욕스런 지배구조
도처에서 벌어지는 권력 투쟁
출구가 막혀버린 분열 갈등
탕진되는 불교 에너지
산산이 부서진 대중/민중들의 자발적 동기 잃어버린 국민적 신뢰
교단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사람들 시민들 민중들은 끝없이 끝없이 떠나가고
불교도는 아무 역할도 못하는 초라한 사회적 주변세력으로 내몰리고
고귀한 불교문화재는 수입용 관광 상품으로 전락하고
아름다운 불교적 전통 - 불교적 감성은 참담하게 망각되고
이차돈 원효 일연 김윤후 서산 사명 만해 용성 … 선사(先師)들의 위업은
까맣게 빛을 잃고
잠 못 이루며 고뇌하는 선량한 불자들
정처 없이 헤매는 많은 청정한 수행자들
정신적 고향 잃고 방황하는 이 땅의 동포들 -
43) 출가승 우월주의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비정상적 상황
세계 종교사에 유례없는 출가승들의 독점적 우월주의
모든 것이 승단(僧團)에 의하여 독점되고, 모든 제도, 모든 자원, 모든 에너지들이 오로지 출가승들의 지위를 높이고 출가 우월주의를 강화하는 데 초점이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출가승들의 독점적 우월주의는 이른바 ‘정화불사’ 이후 더욱 의도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출가승들의 배타적 우월성을 높이는 것이 불교중흥의 길로 인식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출가는 승보(僧寶)로 미화되고, 출가승들에 대한 삼배가 공공연히 요구되고 있다.
‘내가 삼보다.
내가 삼보를 대신한다.
내게 삼배하라. - ‘
(2) 무력(無力)한 추종(追從)불교로
48) 역사적으로 관찰해보면, 이 출가우월주의는 그 뿌리가 깊고 완강하다.
‘붓다의 불교’에서는, 이미 관찰한 바와 같이, 담마(Dhamma)의 길 - 해탈의 길은 만인 앞에 활짝 열려 있다.
‘해탈의 문제에 있어서 출가와 재가 사이에는 어떤 차이 차별도 없다’고 붓다 자신에 의하여 선언되었다.
실제로 재가의 아라한, 재가의 존자(尊者), 재가의 법사(法師)들이 많이 출현하고, 전법 개척의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궁중의 미천한 하녀 쿠줏따라(Khujjuttara)가 붓다로부터 ‘학식 제일의 제자’라고 인가 받았다.
재가법사 찟따 장자(Citta 長者)가 출가 장노들 앞에서 법을 설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쌍윳따니까야에서는 출가 장로들과 찟따 장자 사이에 벌어진 ‘검은 소 흰 소의 법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찟따 장자] ‘존자들이여, 이와 같이 시각은 형상에 묶여있지 않고 형상은 시각에 묶여있지 않습니다. 그 양자를 조건으로 생겨나는 욕망과 탐욕이 있다면, 그것은 거기에 묶이는 것입니다.’
[장로 수행승들] ’장자여, 유익했습니다. 장자여, 매우 유익했습니다.
그대의 지혜의 눈은 심오한 부처님의 법에 정통했습니다.‘
49) 그러나 기원전 544년, 불멸(佛滅) 이후, 불교는 승단(僧團)에 의하여 독점되고 출가(出家)는 곧 승보(僧寶)로 미화되고, 재가는 아웃 사이더(outsider)로 소외되고 배제되었다.
모든 것이 출가 중심으로, 출가우월주의로 왜곡되고 변질되면서 ‘붓다의 불교’로부터 멀어져갔다.
이러한 변화는 상좌부를 중심으로 하는 부파불교들에 의하여 의도적으로 주도되었다.
‘상좌부(上座部, theravada)’라는 명칭 자체가 ‘보수적 출가승 중심의 집단’이란 뜻이다.
경전 결집부터 출가승 우월주의로 편집되었다.
깨달음 - 해탈은 오로지 출가들의 전유물로 독점되었다.
아라한은 출가승들에게만 열려 있는 특별한 경지로 신비화되고 체계화, 전문화되어 갔다. 수많은 논서(論書)들이 편찬되고 심오한 선정법들이 고안되었다.
이렇게 해서 ‘붓다의 불교’는 급속히 출가승 중심의 교학주의, 선정주의로 변질되어 갔다.
이와 더불어 재가대중들은 점차 불교의 전면에서 퇴장되어 갔다.
‘재가 아라한’ ‘재가 존자’ ‘재가 법사’는 경전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고, ‘빠리사’ ‘사부대중의 평등한 빠리사’는 이름조차 망각될 정도로 무시되었다.
출가승들의 승가만이 우월적 존재로 홀로 우뚝 서고, 모든 교리 모든 제도들이 동원되어 출가의 권위가 합리화되고 출가우월주의가 공고히 구축되어 갔다.
55) 출가우월주의
홀로 우뚝 선 출가승 우월주의
아웃사이더로 밀려난 재가대중들
불교 안에서 설 자리를 잃어버린 재가대중들 시민들 민중들
빠리사의 망각 - 공동체의 붕괴
출가 - 재가의 분열 갈등
이렇게 해서 대중 민중들은 불교로부터 이탈하고, 불교는 민중적 지지기반을 상실한다. 이것이 인도불교가 자멸한 근본원인이다.
이슬람 침공 이전에 인도불교는 이
렇게 자멸로 치닫고 있었다.
50) 이러한 출가우월주의는 역사적으로 더욱 강화되어 갔다.
이후의 불교사를 통하여 더욱 깊이 더욱 광범하게 뿌리내려갔다.
대승불교도는 ‘대승(大乘, mahayana)’을 자처하면서 '일체중생성불‘의 기치를 내걸었다.
그러나 그 화려한 구호, 현란한 사상에도 불구하고, 그들 역시 교학, 선정주의, 출가우월주의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 현란한 사상체계와 미로 같은 수행법들로 인하여 불교는 대중들 민중들로부터 더욱 멀어져갔다. 중국의 선(禪)불교 또한 그 전철을 밟아왔다.
그들은 모두 대중을 잃어버렸다.
사회적 역할을 잃어버렸다.
대승불교도 선(禪)불교도, 인도불교처럼, 대중 민중을 잃고 소수 출가승들의 우월주의속에 칩거해 왔다.
한국불교 중국불교의 현실을 보면, 이러한 불교사의 모순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대중 민중을 잃어버렸다는 점에서는 북방불교가 남방불교보다 더욱 심각하다.
대승이 ‘소승(小乘, hinayana)'이라고 폄하했던 남방불교는 지금도 여전히 민중들
속에서 큰 역할을 담담하고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침략으로부터 불교 잘 지켜내고, 출가승들은 민중들의 정신적 중심으로서, 사찰들은 지역 주민들의 생활 센터로서 기능을 비교적 잘 수행하고 있다.
이것은 출가우월주의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남방 출가승들이 청정한 행위의 전통을 잘 지켜내고 민중들과의 신뢰관계를 잘 유지해 온 때문이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