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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8: 1 제자들과 함께 - 요 18: 5 나사렛 예수
제 18 장 : 잡히신 예수와 베드로의 부인
1. 잡히신 예수 ( 18: 1- 9 )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 2 그 곳은 가끔 예수께서 제자들과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 곳을 알더라. 3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4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이르시되,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5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 6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7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그들이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하시니 9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요 18: 1 제자들과 함께 -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 (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나가시니 거기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다. )
예수께서는 유월절 식사와 그 후에 제자들에게 주신 여러 교훈과 기도를 마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셨다. 기드론 시내는 예루살렘 북쪽에서 시작하여 사해로 이어지는 골짜기를 가리킨다.
이 시내는 평소에는 물이 없고 겨울의 우기(雨期)에 물이 흐르는 ‘와디’라는 시내이다. 그는 거기에 있는 동산에 들어가셨다.
그것은 감람산, 좀 더 좁게는 겟세마네 동산이다. 다른 복음서들은 예수께서 그 밤에 거기서 약 3시간 기도하셨다고 증언하는 것 같다(마 26: 40, 44. 막 14: 37, 41). 사람이신 예수께서는 그 밤에 간절한 기도로 그의 연약한 마음을 굳세게 하셨던 것 같다.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여기서 지시하는 예수의 말씀은 17장에서 언급된 예수의 기도를 의미한다. 그래서 공동 번역에서는 "이 기도를 마치신 뒤에 예수는"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따라서 본 장은 예수의 중보기도(17장)에 이어 수난 기사에 관한 내용이 언급되고 있다.
요한은 공관복음에서 공통되게 다루고 있는 겟세마네 기도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아마 요한은 17장의 기도를 겟세마네 기도와 대체시키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함으로써 요한은 예수의 인간적 고뇌와 갈등을 노출시키지 않고 대신 17장의 기도문에 나타난 예수의 위엄을 강조하려고 의도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2]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예수가 기도를 마치고 이동한 장소의 방향으로 언급되는 기드론 골짜기(공동번역)를 말한다. '시내'로 번역된 '케이마르로스'(*)는 '겨울에 흐르는 시내'라는 의미를 지닌다.
예루살렘과 감람 산 사이에 있는 골짜기로 "시내" (ceimavrrou 케이마르로위)는 '겨울에 흐르는 시내'의 의미가 있으며 실제로 겨울 우기 동안에만 약간의 물이 흐르고 다른 계절에는 말라 있는 건천(乾川)이다.
이곳은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키자 반란군을 피해 다윗이 이 시내를 건널 때에 친구인 아히도벨에게 배신당하여 감람 산으로 간 적이 있다.
* 삼하 15: 23, 30-31 – 23 온 땅 사람이 큰 소리로 울며 모든 백성이 앞서 건너가매 왕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니 건너간 모든 백성이 광야 길로 향하니라. 30 다윗이 감람 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니라. 31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알리되, 압살롬과 함께 모반한 자들 가운데 아히도벨이 있나이다. 하니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옵건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하니라.
기드론은 '백향목'이라는 뜻을 가진 지명인데 구약 시대의 우상들이 불태워지던 곳이다.
3] 그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
(1) 동산
"동산"으로 번역된 (kh'po 케포스)는 "정원"이라는 의미로 아마 어떤 울타리가 쳐진 곳일 것이다. 마태와 마가는 이 곳을 "겟세마네"라고 기록했다.
* 마 26: 36 -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 막 14: 32 –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누가는 "감람 산"으로 기록했다.
* 눅 22: 39 -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그러나 마태나 마가가 말한 곳도 cwrivon(코리온) "어떤 지점"을 말하는 것으로 네 기자의 기사를 종합해 볼 때 감람 산에 있는 "겟세마네"라고 부르는 "정원, 농원"을 말하고 있다.
기드론 시내 건너쪽에 있는 동산이라고 저자는 언급하고 있다. '동산'(*, 케포스)이라는 말은 요한만이 언급한다. 또 '들어가다'는 말이나 4절의 '나아가'(*)라는 말로 보아서 이곳에 어떤 울타리가 있음을 암시하므로 '케포스'나 '코리온' 둘다 '정원' 또는 '제한된 장소'로 이해할 수 있다(C.K. Barrentt).
특히 이곳은 2절에 언급된 바와 같이 예수와 제자들이 자주 찾았던 곳으로 이 장소를 가룟 유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곳은 감람산에 있는 '겟세마네'라는 이름을 가진 '정원' 또는 '농원'을 지칭한다.
(2) 그의 제자들
저자는 제자들을 복수로 언급할 분 누구인지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 점은 공관복음서에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의 이름을 언급하여 세 명의 제자를 강조하고 구별한 것과 대조된다.
요 18: 2 제자들과 모이는 곳 - 그곳은 가끔 예수께서 제자들과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곳을 알더라. ( 거기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가끔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곳을 알더라. )
그곳은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종종 들려 기도하시던 곳으로 유다도 알고 있었다.
1] 그곳은 가끔 예수께서 제자들과 모이시는 곳이므로
요한은 예수와 제자들이 이 동산을 처음 찾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여러 차례 방문한 곳임을 밝히고 있다.
누가는 보다 더 자세하게 이곳을 '늘 하시던 대로' 찾으신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 눅 22: 39 -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2]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곳을 알더라.
유다가 군대를 이끌고 예수를 체포하기 위해 찾아올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해 준다. 즉 유다가 예수의 일행이 머문 장소를 알았던 것은 유다 자신도 예수와 함께 이곳을 여러 번 방문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요 18: 3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 유다가 군대와 및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하속들을 데리고 등과 홰와 병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
1] 유다가 군대와
본문은 공관복음서와 다르게 유다가 예수를 체포하기 위해 이끌고 온 사람들의 신분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공관복음서는 유다가 이끌고 온 사람들이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보낸 '무리'(*, 오클로스)라고만 밝히고 있다.
* 마 26: 47 -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 막 14: 43 -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곧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 눅 22: 47 - 말씀하실 때에 한 무리가 오는데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라 하는 자가 그들을 앞장서 와서
요한은 군대와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의 종들이라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언급된 '군대'(*, 스페이라)는 로마군 600명으로 구성된 한 부대 단위를 나타내기도 하며 또한 200여명으로 구성된 보병 중대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C.k>Barrentt).
혹자는 '스페이라'를 안토니아 성에 주둔해 있던 작은 부대로 추측한다(Robertson, Lenski). 그러나 12절에서 지휘관으로 천부장이 언급되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그렇게 작은 부대는 아닐 것이다. 그들은 예수와 그의 11제자와 다수의 백성들이 함께 있을 것을 대비해 많은 수의 하속을 동행했을 것이다.
2]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공관복음서와 같이 요한도 역시 예수를 죽게 한 주동자로 대제사장 계급과 바리새파 계급을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언급된 하속(下屬)들(*, 후;페레테스)은 성전 경비를 맡은 일종의 경찰로서 이해된다. (C. K. Barrett).
예수를 체포하러 온 무리 중에 대제사장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은 산헤드린이 보낸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Lenski) 이는 예수의 죽음에 대해 유대의 지도층 전체가 개입되어 있음을 시사해 준다.
3]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공관복음서에서는 '검과 몽치'라고만 언급하였다.
* 마 26: 47 -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 막 14: 43 -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곧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다른 복음서들은 사람들이 강도라도 잡을 자들처럼 ‘검과 몽둥이’를 가지고 왔다고 증언한다. 그 상황은 누구나 두려워 떨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본문에서는 등과 홰까지 언급된다. '등'과 '홰'는 고대에 동의어였으나 후대에 와서 등불과 횃불로 구분하여 사용되었다(C.K. Barrett).
이때는 유월절(니산월14일) 전날이며 당시 월력(月曆)을 사용했던 정황으로 보아 거의 만월의 상태였을 것이다. 따라서 불이 필요치 않을 수 있으나 당시 상황이 구름으로 인해 흐린 날씨였거나 아니면 예수의 체포 시간이 한밤중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등과 홰를 언급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요한은 당시의 장면을 생생하게 목격했던 장본인이기에 일기와 관련된 상황을 잘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후자보다는 전자의 추정이 본 절에 더 적합한 것 같다.
요 18: 4 당할 일을 아시고 -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이르시되,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가라사대,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
예수께서 죽음을 준비하고 계셨고 이제 그것을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시행하시기 위해서 스스로 나아가셨다.
이런 일이 닥치게 될 줄 아시고 계셨던 예수께서는 이 자리를 제자들처럼 어두움을 이용하여 벗어나실 수 있었지만, 구속 사역을 이루기 위한 필연적인 일임을 알고 계신 예수께서는 잡히시는 일을 피하지 아니하시고 스스로 나아오셨다.
1]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예수께서는 그 당할 일을 다 아셨다. 그러나 그에게는 마음의 안정과 담대함이 있으셨다. 그것은 기도로 준비된 담대함이었을 것이다.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자신을 증언하셨다.
(1) 당할 일
이 말은 예수의 초자연적 예지(豫知)를 부여하기 위해 언급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예수는 사역 초기부터 죽음의 위협이 있음을 예측하고 이를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리고 사역 도중 위협에 직면했을 때 예수는 자신이 예측하고 이를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예수는 자신이 예측하고 있는 그 고난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음을 아시고 위험한 피해 자리를 옮긴 적이 있었다.
* 요 10: 39 - 그들이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 요 11: 54 -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유대인 가운데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시고 거기를 떠나 빈 들 가까운 곳인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가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머무르시니라.
그러나 지금은 때가 이르렀기 때문에(17: 1) 피하지 않고 담대히 맞부딪치고 있다.
(2) 아시고
혹자는 '아시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도스'(*) 대신 '이돈'(*, '깨닫다')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C.K. Barrett). 그 근거는 '에이도스'보다 '이돈'이 신적 예지와 관련된 용어이며 요한이 예수에 대한 신적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독특한 용어를 많이 애용했다는 점이다.
본 절에서 '이돈'이 사용될 경우 2절의 '에데이'(*, '알다')와 구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목적어 '그 당할 일을 다'(*,판타 타 에르코메나)란 표현에 이미 예수의 신적 예지가 암시되어 있으므로 굳이 '이돈'으로 본문을 변경시킬 필요가 없다.
2] 나아가 이르시되,
예수는 동산에서 나가셔서 잡으로 온 무리들과 정면으로 맞서게 된다. 이 같은 묘사는 공관복음서와는 달리 예수의 자발적 체포를 강조하고 있으며 당당하고 권위있는 예수의 모습을 부각시키고 있다.
요한은 이렇게 표현함으로써 예수의 죽음이 적대자들에 의한 단순한 처형이 아니라 구원사적 맥락에서 진행되는 하나님의 섭리이며 예수가 섭리를 자발적으로 수용했음을 강조한다.
3]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예수께서 체포하러 온 자들 앞으로 나아가 '누구를 찾느냐'라고 질문하신 것에는 예수의 권위있는 위엄이 나타나 있으며, 예수가 무기력하게 체포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다하기 위해 당당하게 체포됨을 묘사하기 위한 저자의 의도가 암시되어 있다.
이에 따라 본 절을 읽는 독자들은 예수의 체포나 죽음을 위엄있는 구속사적 드라마로 이해하게 된다.
요 18: 5 나사렛 예수 -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 (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가라사대, 내로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저희와 함께 섰더라. )
예수의 질문에 무리들은 나사렛 예수를 찾는다고 대답했다.
나사렛 예수는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예수를 전할 때와 예수의 십자가 명패에 쓰였다. 예수의 이름에나사렛을 더함으로 분명히 그들이 알고 체포하려고 하는 신분 확인으로 이해된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짧고 간결했다.
1]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예수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언급된 본문은 나사렛(*, 나조라 이온)이란 형용사를 첨가하고 있다. 이와같은 형태는 본서에서는 예수의 명패에 쓰인 칭호에서(19: 19), 그리고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예수를 전할 때(1: 45, *, 아포 나자렛, '나사렛에서 온') 언급되고 있다.
이처럼이 이름 앞에 지명을 붙여 사용한 것은 아마도 예수의 출생지를 밝히려 했던 의도에 따른 것임과 동명이인(同名異人)과 구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성경에서 이 말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이 말이 예수에게 붙은 한 가지 칭호로 쓰였기 때문이다.
* 마 26: 71 -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 눅 18: 37 – 그들이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하니
나사렛은 예수께서 자라나신 곳으로서, 구약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다.
* 렘 31: 15 -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 때문에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어져서 위로받기를 거절하는 도다.
* 마 2: 23 -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이 말은 또한 초기 기독교인을 멸시해서 가리키는 표현으로도 쓰였다.
* 행 24: 5 -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2]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예수는 '나사렛 예수'가 자신임을 아주 짧은 말로 밝힌다. '내가...이다'(*, 에고 에이미)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간결하면서도 권위 있는 것이다.
* 출 3: 14 –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여기서는 예수께서 단순히 자신의 신적 권위를 나타내시기 위해 이 표현을 사용했다. 요한은 예수의 자기 계시를 강조하기 위해 공관복음서 저자와 달리 이 표현을 부각시켰다.
3]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
의인에게는 담대함이 있다.
* 잠 28: 1 -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
의로우신 예수께는 담대함이 있으셨다.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왔다. 이는 유다가 예수의 맞은편에 적대자들과 함께 서 있음을 묘사해 준다. 정면으로 예수와 마주하고 있는 유다는 배신자로서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공관복음서와 구별되는 점은 유다가 예수에게 입 맞추어 예수를 체포하게 하는 행위가 언급되지 않고 예수가 스스로 자신의 신분을 밝힘으로써 예수의 권위와 위엄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묘사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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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별일 없이 사는게 큰 행복입니다.
오늘도 순탄한 하루 되시고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