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다해 1월1일 화요일
[(백)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세계 평화의 날)]
제1독서 민수기 6,22-27
제2독서 갈라티아서 4,4-7
복음 루카 2,16-21
◈ [서울] 천주의 모친 성모 마리아 대축일
‘친구 따라 강남 간다.’라는 말처럼 친구 따라 미국에서 새해를
시작하였습니다. 2019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10년 전인
2009년에는 시흥 5동 성당에서 지냈습니다. 20년 전인 1999년에는
적성 성당에서 지냈습니다. 30년 전인 1989년에는 군대를 제대하고
신학교에 복학하였습니다. 40년 전인 1979년에는
고등학생이었습니다. 50년 전인 1969년에는 어린아이였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50년도 의미 있겠지만 저의 어머니에게 저의 50년은 각별한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에게는 늘 자식인 제가 자랑스럽고,
똑똑하고, 대견하게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80이 넘으신
어머니께서는 새해가 시작되는 오늘도 변함없이 자식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계실 것입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드리는 것도 좋겠습니다. 하늘나라에 계시는 부모님을 위해서는 미사
중에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의 전례는 새해의 첫날에 두 가지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참된 평화를 주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세계
평화의 날’로 정했습니다. 평화는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것입니다. 성모님처럼
겸손과 순명으로 삶의 모든 파도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참된 신앙인이며,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을 위한
날로 정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우리 모두는 어머니의 몸에 10개월간
머물다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는 어머니의
몸이 우리의 세상이었고, 우리는 어머니의 태중에서 모든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물론 우리는 세상에 나와서도 어머니의 끊임없는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자랄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새해의
첫날,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신,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역사는 막강한 군대의 힘으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 것도 아니었습니다. 치밀한 계획과 조직에 의해서
이끌어 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약육강식, 적자생존, 자연도태와 같은
무서운 법칙에 의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마리아의 ‘예’라는 응답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법대로 살던 요셉이 하느님의 뜻대로 살기로 마음을
바꾸면서 싹트기 시작하였습니다. 시골의 말구유에서 한 아이가
탄생하면서 구원의 문은 열렸던 것입니다. 양들을 지키던 목동들이
구원의 역사에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만큼이면 충분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세상에서
아기 예수님을 처음 받아 준 손은 목수 요셉의 거친 손이었고, 그분을
처음 맞아들인 장소는 누추한 구유였습니다. 그분께 찬미와 찬양을
드린 첫 번째 사람도 밤을 지새우던 가난한 목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 강생의 짧은 이야기는 약하고 보잘것없는 곳, 비천한 사람들
안에 우리가 믿고 있는 신앙의 핵심 진리가 있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 그들 가운데
단 한 사람만이라도 내 안에 깊이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그곳이 나를 구원할 내 ‘인생의 구유’입니다.
하느님께서는 2019년이라는 도화지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 희망, 사랑, 나눔, 희생, 친절, 온유의 물감으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것입니다. 때로 고통, 절망, 아픔이라는 얼룩이 질지라도
그 그림은 하느님께서 어여삐 여기시는 그림이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욕망, 분노, 미움, 시기, 질투, 편견이라는 물감으로
볼썽사나운 그림을 그릴 것입니다. 재물, 권력, 명예가 화려하게
보일지라도 그 그림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그림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보호자 성모님 불쌍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귀양살이
끝날 때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뵙게 하소서. 천주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 서울 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어머니의 자격
2019년 다해 1월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어머니의 자격>
복음:루카 2,16-21
더운 여름에 세계 곳곳에서 아이를 차에 방치해 두어 아이가 사망하는
사고가 종종 발생합니다. 이에 우리나라 한 초등학생 아이가 그런
아이들이 불쌍해 한 앱을 개발하였습니다. 아이가 차에 그대로 있는
채 차 밖으로 나가면 핸드폰에 알람이 울리게 하여 아이가 차 안에
있음을 알려주는 어플리케이션인 것입니다. 그 아이가 이 일로 발명왕
상을 받은 후 정말로 이런 기능을 갖춘 차량들이 출시되었습니다.
물론 이 아이가 아니더라도 그런 장치가 장착된 차량들이 나올 수는
있었겠지만 그래도 자신과 같은 아이들에게 더 이상 안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그런
장치들을 개발해 낼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그 아이의
머리가 뛰어난 것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 아이는 아이지만 엄마의
마음을 벌써부터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어머니는 아이를
차에 방치해 두지만 어떤 아이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기계를
발명합니다. 누가 더 어머니의 자격이 있을까요?
어머니의 자격 중 가장 중요한 자격은 모성애입니다. 남성은 밖에서
일을 하고 밖에 신경 써야 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어머니만큼
자녀에게 관심을 기울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한 시도
자녀에게 눈을 떼지 않아야하도록 모성애를 지니고 있습니다.
모성애가 있어야하는 이유는 아이가 어머니의 관심이 없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아주 약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한
시도 신경을 떼지 말도록 만드는 모성애가 어머니의 가장 큰 자격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신 성모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새해 첫
날 성모 마리아 축일로 지내는 것만큼 적당한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 아드님의 어머니가 되신 이유는 그 자격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자격은 자녀의 존재를 잊지 않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세상 누구도 갖지 못했던 이 모성애를 성모 마리아만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안에 매우 강력한 모습으로 거하시지 않고 그저
마구간의 힘없는 아기처럼 거하십니다. 그러니 내가 신경써주지
않으면 예수님은 내 안에서 잊혀진 존재가 되고 그렇게 시간이 너무
흐른다면 돌아가실 수도 있습니다. 성체를 영해도 모든 사람이 구원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신경써주지
않으면 돌아가실 수도 있는 매우 약한 모습으로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잘 지켜낼 수 있을 때 그분이 지닌 영원한
생명도 내 안에서 지켜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체를 영하더라도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너무 자주 잊어버립니다. 이것이 성모 마리아와 다른 점입니다. 한
순간도 그분의 현존을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을 때 성모님처럼
누군가를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 덕분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분을 모실 자격을 갖춘 어머니가
될 수 있는 우리 노력 때문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목동들이 아기 예수님을 보고 기뻐합니다. 그 이유는
아기 예수님이 강력해서가 아닙니다. 구세주께서 살아‘계심’을 보고
기뻐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모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엘리사벳과 그 태중의 아기가 기뻐 뛰놀았습니다. 자신들에게 큰
보화를 줄 분이 오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구원자께서 한 인간 안에
잉태되어 ‘계심’ 때문이었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그리스도의
‘현존’을 지켜줄 수 있는 모성애가 있어야 주위 사람들에게도 기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분의 현존을 잊고 내가 아무리
누군가에게 잘해줘 봐야 고생만 하고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저는 신학생 때부터 주님의 현존을 잊지 않기 위해 손에 묵주를 쥐고
다녔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축구를 할 때도 심지어 술집에 가도
묵주를 쥐고 있었습니다. 묵주 때문에 조금 불편함을 느낄 때마다
주님의 현존을 기억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제가 된 이후로는
교만해져서 그런지 그냥 그분의 현존을 느끼며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것들에 너무 정신이 팔려 주님의
현존을 잊고 사는 시간이 매우 많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즘 다시 손에 자그마한 묵주를 쥐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에 맞춰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그 시간을 통해 주님의 현존을
규칙적으로 되새길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주님의 현존을 위해
우리처럼 약한 사람들은 손에 그분의 현존을 알려주는 어플 하나
정도는 지니고 다닐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핸드폰이 있나
없나를 신경 쓰는 반 정도만 그분의 현존을 기억해 낼 수 있다면
참으로 좋을 것입니다. 이렇게 한 해를 시작한다면 우리 성탄 때
만났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함께 살아가시며 나와 이웃들에게
행복을 주실 것입니다.
-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 [수원] 세계 평화의 날 / 조욱현 토마스 신부 강론
2018년 다해 1월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세계 평화의 날
교회는 성탄 후 제8일에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지낸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사람이 되시는데 유일한 도구가 되셨던
마리아를 이 기쁨의 시기에 기억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생명의 탄생이란, 아기뿐 아니라, 아기에게 자기 생명을 전해준
어머니에게도 큰 기쁨이기 때문이다. 또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심으로써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신 성모
마리아의 축일을 오늘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별히 오늘은 성탄 후 제8부 축일이며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라는 것이다. 교회는 이날, 예수님을 우리에게 낳아주심으로써
가장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신 마리아의 이름으로, 그리고 그분의
전구에 힘입어 자녀들의 행복과 평화와 축복을 기도한다. 당신의
자녀들인 우리에게 성모님께서는 어느 것도 거절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인생의 모든 여정을 마리아의 모성애적인 전구와
돌보심에 맡김으로써 인생의 여정 중에 위험, 불안, 실망, 고통 등이
닥치지 않기를 기도한다.
복음: 루카 2,16-21: 목자들의 경배와 할례 받으신 예수.
오늘 복음에서는 목자들이 천사의 기쁜 소식을 들은 후 급히
베들레헴으로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 목자들은 아기를 보고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다.”(16-20절)
여기서 보면 주인공은 바로 그 ‘아기’이다. 목자들이 급히 달려간
것은(16절) 그 아기를 보기 위한 것이었고(17절) 천사들로부터 들은
그 모든 것도 그 아기에 대한 것이었으며(17절) 목자들이 돌아가면서
‘듣고 본 모든 것’(20절) 말하는 내용들도 그 아기에 관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기쁨에 넘치면서도 깊은 생각에 잠기는 어머니의 모습이
나타난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19절) 이 표현은 성전에서 예수를 찾는 장면
(루카 2,51 참조)에서도 나온다. 마리아는 당신 아들에 관계되는
어떤 사건에서 놀라고 계심을 암시한다. 마리아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누가 목자들을 그리로 보냈을까? 마리아는 여기서 무엇을
알아들었을까? 하느님께서는 이 아기에게 어떤 뜻을 가지고
계시는가? 하는 것에 잠기었을지도 모른다.
마리아는 어머니로서의 역할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에 대해 깊이 묵상하며 마음 깊이
받아들이면서, 그 아드님 위에 펼쳐지는 하느님의 계획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깊이 새겨 마음에 간직하는 모습이
우리의 마음을 감동케 한다. 이렇게 마리아는 서서히 어머니의 역할을
이루어 가시며 그 역할은 아드님의 성장과 더불어 무르익어 간다.
“여드레가 차서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게 되자 그 이름을 예수라
하였다. 그것은 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 준 이름이었다.”
(21절) 할례를 통해서 비로소 그 아기는 율법으로 선민이 되며
(창세 17,2-17 참조) 계약에서 자신의 역할을 표현하는 이름을
받는다. 여기서 어머니인 마리아는 천사가 일러준 대로 이름을
지어준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루카 1,31) 이름은 그 사람의 역할을 말해준다.
‘예수’는 ‘여호수아’와 같으며 그 뜻은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
라는 의미이다.
이 이름이 천사가 알려준 것이며 그것은 그분의 사명이
하느님께로부터 주어졌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어머니의 역할은
하느님의 구원계획의 중재자이며 해설자일 뿐이다. 여기서 마리아가
하느님의 아들이 마리아의 아들도 된다는 사실은 이미 깊은 신비를
포함하고 있다. 마리아의 마음과 믿음이 그리스도를 잉태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하느님의 어머니가 도실 수 있지 않았을까? 그분을 하느님의
어머니로 들어 높임은 바로 우리 모두의 어머니로 들어 높임이다.
그래서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로
선포하셨다.(1964년 11월 21일)
이렇게 보면 마리아는 ‘모든 사람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 이 평화의
날, 제1독서는 사제가 모든 백성들에게 축복을 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24-26절)
여기서 평화는 우리를 하느님과 형제들과 올바른 관계에 있도록
해주는 모든 영적인 선으로부터 먹을 것, 입을 것을 포함하여 모든
물질적인 선에 이르기까지 모든 선의 충만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 이 세계는 절망적일만큼 평화가 깨어지고 있다. 즉 전쟁,
불의와 억압, 수많은 폭력과 테러 등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무력감을 느낀다. 그렇지만 우리는 평화가 없이는
인간성도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도 더 절감하고 있다. “인간성이
전쟁의 종말을 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쟁이 인간성의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다.”(J.F. 케네디)
이렇게 희망과 두려움이 교차되는 이 새해의 문턱에서 우리는
하느님만이 온 세상을 평화로 이끌어 가려 노력하는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따뜻한 미소가 악마의 모습으로 줄달음치고
있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 서로가 한 형제라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기를 간절히 바라시지 않을까?
오늘 새해 첫날이며 세계평화의 날 미사를 바치면서, 진정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어 세상의 평화를 위하여 한 역할을 할 수
있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도록 결심하고 언제나 깨어있는 우리가
되도록 기도하자.
- 수원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 [수도회] 예수 그리스도입니까? 마리아입니까?
2019년 다해 1월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예수 그리스도입니까? 마리아입니까?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성모님은 신화적인 인물이 아니라, 개인적인
역사를 지닌 참 여인이셨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전해진 ‘수태고지’란 엄청난 초대 앞에,
마리아는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온 몸으로 떨었을 것입니다. 요셉과
꿈꾸던 단란한 신혼생활을 접어야 하는 데서 오는 서운함에, 눈물도
흘렸을 것입니다. 나자렛의 한 처녀가 나름 계획하고 있었던 인생에
대한 소박한 기대와 희망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도 컸을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마리아의 ‘Fiat’에서부터 시작해, 영광스런 승천을 통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고달프고도 험난했을
것입니다.
소년 예수님을 양육하는 과정에서 목격하게 된 정말이지 이해하기
힘들었던 수 없는 사건들 앞에서, 성모님께서 느꼈던 난감함과
당혹스러움은 참으로 큰 것이었습니다. 때로 비수처럼 느껴지던 아들
예수님의 말씀 앞에 인간적인 상처도 많이 받으셨을 것입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마태오 복음 12자 48절)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복음 2장 49절)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요한 복음 2장 4절)
예수님과 함께 시작된 성모님의 신앙 여정은 약간의 힌트라든지,
사업계획서라든지, 로드맵 같은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었습니다. 언제, 무엇이, 어떻게 전개될지 아무 것도
명백하지 않았습니다. 단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을 걷는
불확실한 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엄청난 도전 앞에 뒷걸음질치지 않았습니다.
불확실한 초대였지만 물러서지도 않았습니다. 회피하고 외면하지도
않았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었지만, 기도하면서, 희망하면서
당당히 직면했습니다.
“그래 지금은 내가 부족해서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모든 것이
희미하지만, 주님께서 언젠가 내 눈을 밝혀주실 것이다. 그때가 되면
모든 것을 알게 되겠지.” 그렇게 성모님은 오로지 주님께 의지하고
신뢰하면서, 하루하루 살얼음판 같은 여행길을 걸어가셨던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평생에 걸친 철저한 순명으로 당신의 뜻을
너그럽게 수용하시며, 당신의 인류 구원 계획에 충실하게 협조한
마리아를 ‘천주의 어머니’요 ‘교회의 어머니’ ‘인류의 어머니’로 높이
들어올리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성모 신심과 관련해 우려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 성모님, 성모님! 하고 외치다보면, 참 하느님이시요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위치를 손상시키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입니다.
그러나 그런 두려움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두려움입니다. 성모님
옆에는 언제나 예수님이 계십니다. 성모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성모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열쇠입니다. 성모님의 신비를 이해하면 할수록
예수님의 신비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깊어질 것입니다.
성모님이 공경받으실 때, 그것은 아들 예수님께 영광이 됩니다.
성모님이 찬미받으실 때, 그것은 아들 예수님께 영예가 됩니다. 두
분을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 속에 계십니다. 인류 구원
사업이라는 사명과 운명을 공유하신 분들이기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성모님에 대한 제2차바티칸공의회의 가르침을 늘 염두에
둬야겠습니다. “신앙과 사랑과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일치에 있어서
천주의 어머니는 교회의 모델이십니다.”(교회 헌장 63항)
오늘도 성모님을 잘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따집니다. “빨리
선택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입니까? 마리아입니까?”
성모님은 인류 역사상 모든 신앙인들 가운데 가장 완벽하고 모범적인
신앙인이어서 우리는 그분을 공경합니다. 성모님은 오랜 교회 역사를
빛낸 수많은 성인성녀들 가운데 첫째 가는 성녀요, 가장 빛나는
별이기에 우리는 그분을 사랑합니다. 성모님은 몸소 예수 그리스도를
낳아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신 것을 칭송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하느님의 뜻을 잘 실천하셨음을 더욱 칭송합니다.
천주의 어머니이며 동시에 이 세상 모든 나그네들의 어머니이신
성모님, 우리의 고통과 슬픔을 나몰라라 하지 않은 성모님께서, 올
한해 우리 나라와 모든 가정, 모든 공동체를 보호하시고, 좋은 길로
인도해주시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신부 -
◈ [수도회]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기타] 1월1일(화) – 말씀
오늘은 “말씀”에 대하여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시편 119편 105절 말씀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재외한인구조단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해외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또 한국으로 귀국시켜 치료해주며 보호해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업을 하게 되는데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한국말을 하는 분들과 사업을 하기를 참
선호합니다.
그래서 현지 한국인이나 재외동포들의 사업가들로부터 말을 듣게
됩니다. 그런데 대체적으로 사기를 당하거나 사업 실패의 원인이
됩니다. 바로 믿고 맡겼던 한국인에게 당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은 우리가 걸음을 걸어가는데 등불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길을 가는 데 저 멀리에서 빛으로 비추어 준다는 것입니다.
캄캄한 밤에는 내 발에 등불처럼 환히 밝혀주고 또 때로는 어디로
갈지 방향을 알지 못할 때에 멀리에서부터 빛을 비추어 그 빛을
따라가게 해주는 것, 이것이 바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믿을 수 없는 세상, 사람들을 믿지 마십시오.
말씀의 진리를 따라 믿고 따르는 성도가 되십시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