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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에 도착하자마자 찾아간 마트·백화점·슈퍼 등에선 그의 말대로 한국산 김·과자·음료·라면 등을 제법 많이 취급하고 있었다. 한국산 가공식품은 중국시장에 꽤 깊숙이 진입한 것으로 보였다. 농심·오리온 등 대형 식품기업은 아예 현지에 법인과 설비를 두고 제품을 생산하는 수준. <신라면>이나 <초코파이>는 이미 현지인들에게 익숙한 브랜드였다.
민항구에 소재한 대형 슈퍼 상하이용휘는 매장 한쪽에 한국관을 따로 설치해 한국산 과자·사탕·김·라면·음료 등을 진열해두고 있었다. 점원은 “한국인이 와서 사가는 경우도 있지만 주고객은 중국인”이라고 했다.
푸둥 진시우루에 있는 회원제 마트 샘스클럽에서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한국에서 만들어온 과자류가 눈에 띄었다. 다만 이같은 가공식품은 한국산이라 해도 밀·설탕 등 주원료가 수입품인 경우가 많아 농가소득 향상으로 연결되기엔 한계가 있어 보였다.
◆신선우유 인기…현지생산 제품도=다음날 까르푸 구베이 매장. 중국의 대형 마트 중 매출액이 가장 높다고 알려진 곳이다. 매장의 유제품 코너엔 치즈·버터 등 수입제품이 가득했다.
한국에서 수입한 신선우유와 바나나맛 우유도 눈에 띄었다. <연세우유>는 1ℓ에 40위안(한화 약 7000원). 일본 <아사히>가 중국 현지에서 생산한 제품은 같은 규격에 25위안이었다. 한 소비자는 “시판되는 우유는 유통기한이 긴 멸균제품 위주”라면서 “신선우유가 건강에 이로울 것 같아 한국산 우유를 종종 구입한다”고 밝혔다.
조제분유 코너에도 한국산 제품이 진열돼 있긴 했지만 사는 사람은 없었다.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분유 소비자들은 익숙한 브랜드를 신뢰하는 편인데 한국 분유는 인지도가 낮아서 그런지 판매가 신통치 않다”며 “수입분유는 유럽산이 잘 팔린다”고 귀띔했다.
한인촌으로 발길을 옮겼다. 홍췐루 1004마트에서 파는 한국식품은 실로 다양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김치와 된장·고추장 등은 중국 현지에서 제조한 제품의 가짓수가 훨씬 많고 가격은 저렴했다. 같은 190g짜리 <종가집김치>라도 한국산은 20.9위안, 중국산은 8.9위안으로 값 차이가 컸다. 고추장도 500g짜리가 한국산은 35위안, 중국산은 10.9위안에 팔렸다.
교민 김성민씨(46)는 “김치나 장류는 한국산과 현지생산 제품의 값 차이가 크다보니 교민들도 한국산 구입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며 “중국인들은 생산지에 따른 미세한 맛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쌀·삼계탕 갈길 멀어=한국산 쌀은 중국시장이 열린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먼저 택시를 타고 가다 한국쌀에 대해 물어봤다. 기사 자오핑씨(60)는 “일본쌀은 더러 팔리지만 한국쌀은 슈퍼에서 한번도 못 봤다”고 했다. 그는 “동북지역 쌀이 500g에 6위안쯤 하는데 일반쌀보다 비싸긴 하지만 부담되는 수준이 아니어서 맛이 좋으면 사먹는다”고 말했다.
까르푸 구베이 매장에 진열된 수십개의 브랜드쌀 가운데 <동북 오상향미> 등 유기농쌀이 5㎏에 88~128위안으로 최고 가격대였다. 무게를 달아 파는 남방지역 쌀은 5㎏에 20위안. 태국산 향미도 있는데 5㎏짜리가 50~105위안이었다. 한국쌀은 보이지 않았다. 점원은 “한국쌀을 찾는 사람은 못 봤다”면서 “동북쌀이 인기가 좋고 특히 유기농 동북쌀은 비싸지만 꽤 잘 팔린다”고 전했다.
한국쌀은 지난해 상하이 외에도 베이징·선전 등으로 진출했다. 베이징에선 어느 정도 판매가 됐지만 선전으로 향했던 물량은 중국의 검역기준에 따른 훈증처리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정상적인 판매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길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상하이지사장은 “상하이에선 외곽지역의 한 마트에 한국쌀이 풀렸는데 서민 위주의 중저가 상권인 데다 중국산에 비해 값이 4~5배 높아 판매에 고전을 겪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중국의 프리미엄 쌀시장을 뚫고 들어갈 브랜드 전략과 지역별 마케팅 수단이 필요하단 소리로 들렸다.
삼계탕도 중국 대륙에 안착한 상태는 아니었다. 현지 업계에선 “삼계탕에 대한 중국 소비자들의 반응이 괜찮아 TV 홈쇼핑 판매와 종합병원 구내식당 입점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해 마케팅이 중단됐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그러나 삼계탕 포장제품(한마리) 판매가격이 90위안 수준으로 높아 소비확대를 기대하긴 쉽지 않아 보였다.
제너시스 BBQ 중국법인 관계자는 “매장에서 45위안에 제공하는 삼계탕이 고객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면서 “산둥성 칭다오지역에서 생산한 포장제품을 저렴하게 공급받고 있는데 한국산 제품을 파격적인 가격에 공급해준다면 구입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고급매장서 세계와 경쟁=마지막날에 상하이 최대 번화가인 난징시루의 지우광백화점에 들러봤다. 식품매장에 한국산 김치·라면·과자·어육·소스류 등이 제법 많았다. 시식코너에선 일본업체가 선보인 한식 양념으로 떡볶이를 만들어 판촉활동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고급 수입식품을 취급하는 씨티슈퍼에서도 다양한 한국 농식품을 볼 수 있었다. 유기농 현미로 만든 영유아 간식과 과자류도 있었다. 이 매장엔 한국식품 말고도 품목별로 인기와 지명도가 높은 외국산 식품이 많았다. 호주산 쇠고기·일본산 쌀과 사과·독일산 소시지·프랑스산 와인·스페인산 올리브유 같은 것들이다. 2016년 10월엔 한국산 <캠벨>포도가 판매됐다고 한다. 매장 관계자는 “한국포도가 중국산 품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르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젊은층 소비자들의 반응이 괜찮은 편이었다”고 전했다.
반현 NH무역 상하이유한공사 동사장은 “한국 농식품은 가격대가 높아 대중화마켓 판매에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2016년 하반기부터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및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의 영향으로 통관 강화 움직임마저 나타나 한류 마케팅이 타격을 받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는 “안전성을 강조해 고급매장에서 입지를 다지고 향후 한국산 딸기·파프리카 등의 현지판매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상길 지사장은 “상하이는 세계 최고의 상품이 각축을 벌이는 격전지여서 우리 농식품이 세계일류 농식품과 경쟁한다는 상징성과 한계를 동시에 지닌다”며 “개척의 여지가 있는 중국의 중소도시 시장을 공략하고 한국산 원료를 사용한 농식품을 계속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출처 농민신문 상하이=홍경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