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인터넷 펌 .
내일이 어버이 날이다. 나는 자식 손주들한테 대접 받는 것보다 나의 아버지 엄마가 보고 싶다.
찾아갈 산소도 없이 바람이되어 구름이 되어 흐르는 내 부모님의 안부를 묻고 싶어 산으로 가고 싶다.
예전에 할머니는 일구월심 내 아버지 하나만을 건지기 위해 늘 손비빔을 하며 살아오셨다. 그 덕에 아버지는 잘 성장해 할머니께 효도하며 일본인 회사를 다녔다. (아마도 기술직?) 그런데 일본이 망하자 아버지는 집안 내력답게 큰돈을 벌겠다고 다시 어딘가 투자를 하신 모양이다.
설마 떼돈을 벌겠다고 뗏목타고 물길따라 서울로 오가는 뗏꾼은 아니실테고 일확천금을 위해 광산에 투자를 하셨나?
돈을 다 잃고 아버지는 미친사람이 다 되어 마지막 집을 팔려고 하는데 어느 쓰레기통에 아주 어린 웬 예쁜 계집애가 사과 껍질을 보고 침을 삼키며 있었단다.
그 여자 아이가 바로 나였다. 아버지는 내 그런 모습에 이러다간 처 자식 다 굶기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 뒤집혔던 눈이 제 자리를 찾았단다.
성실한 아버지는 다시 정상적인 일을 찾아 열심히 사셨다.
그런데 6.25전쟁이 났다. 정말 피난살이 중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며 다시 우리식구는 고향인 서울로 왔다.
아버지는 다시 종업원 몇명을 두고 사업을 하셨다. 아버지 사업은 금방 불길 일어나듯 잘 됐다. 우리집은 새집으로 이사를 갔고 엄마는 일제 재봉틀을 사서 주위에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한가지 걱정이 생겼다. 할아버지가 미아리의 공동 묘지에 썼는데 날마다 정부에서 파 가라고 했다. 엄마는 시집 집안이 하루 아침에 망한 것이 선조 무덤 이장한 이유라고 생각했기에 할아버지 묘를 건드리는 것을 극구 반대했지만 아버지는 정부 협박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화장을 하려고 맘을 먹었다. 아버지는 일꾼을 데리고 미아리 공동묘지에 갔다.
내가 그 곳에 왜 있었을까? 아버지를 늘 붙어 다녀 아마도 내가 울고 불고 발버둥을 치니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가신 모양이다. 어쩌면 내 뿌리이기에 보여 주려고 하셨나?
나는 산소를 보면 동그란 초록 도자기 빛깔 밥그릇을 뒤집어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거부감 보다는 동그란 묘지는 산 능선이나 꽃잎처럼 늘 예쁘다고 생각한다.
할아버지의 산소 봉을 건디리자 난 보았다. 흙 속에서 하얀 연기가 스스르 안개 피듯 피어나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것이다. 나는 당시에도 무서운 것을 모르고 할아버지의 혼이 하늘로 올라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할아버지 뼈는 뾰얗고 깨끗했다. 지금 내 생각에 땅이 명당인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화장되었다.
그 아래 길을 내려 오는데 어느 여인이 통곡을 하고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었다. 묘지가 물길이었나 시커멓게 썪은 뼈들을 진흙 속에서 추려내고 있었다. 묘 앞에서 땅을 치던 여인이 말하였다. 이런 곳에 묘를 썼으니 6.25 때 8남매 중 다 죽고 자기만 남아 이 묘를 처리하고 있단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산소를 건드린지 만 일년 후 생때 같은 아버지가 쓰러졌다. 미아리 공동묘지에 가서 일했던 일꾼이 말하길 저 집은 좋은 산소자리 건드려 집안에 탈이 났다고 했다.
6.25난지 만10년 아버지는 나이 48살. 우리 4남매는 다 어렸다. 엄마의 나이는 41살 한창 때지만 원래 가녀렸고 더욱 아버지 죽음으로 늘 파김치가 된 채로 살았다.
그래도 엄마는 선비집 딸이라 나중에 콩나물 장사를 해도 배워야 한다고 모두 대학에 보낼 생각을 했다. 우리는 늘 숨어서 우는 엄마의 울음소리를 들어가면서 잘 자랐고 잘 배웠다.
엄마가 쓰러지는 날. 나는 너희 아버지를 화장했다. 산에 올라가 구름 위로 네 아버지를 훨훨 날렸다. 나도 태워 바람에 묘지를 쓰라고 말했다.
나는 바람이 되어 흐르련다. 그러다 보면 구름이 된 네 아버지도 만날 것이다.
아버지는 서울의 아주 높은 싱그러운 산에 뿌려졌고 엄마는 경기도 양주군이 고향이라 근처에 자주 찾았던 감악산의 산바람이 되었다.
5월 어버이 날이면 나는 자식을 가르치느라 몸이 송곳처럼 말라 가엾이 가신 엄마를 그리면서 산을 오른다, |
첫댓글
조상(祖上)을 잘 섬기면 자손들이 발복(發福) 합니다.
좁은 국토에서 의미도 없는 화강석으로 치장한 묘지문화는
개선해야 할 여지가 있습니다.일본은 100% 화장을 하고
공원묘지(公園墓地)에 유골을 안치(安置)하고 규정된 크기의
비를 세웁니다.전국시대 일본 천하를 호령했던 오다노부나가의
묘도 오다노부나가의 가신출신으로 우리에게 7년의 고통을
안겨준 도요토미히데요시의 묘도 전설의 검객 미야모토무사시의
묘도 모두 소박하고 검소(儉素)한데 놀랐습니다
선배님 여여 하시죠?
의미 있는 글 즐감합니다
마초님의 글을 대하면서
제 글에 공감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명당 자리가 있는지 없는 지를 떠나
산 천은 죽은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기 보다는 살아있는 사람이 이용하며 살아야겠지요,
댓글 감사합니다.
과거를 회상하며쓰신글 잘 보았습니다
사과껍질보고 침을 흘렷다는 내용은 저와 비슷한데가 있습니다
어릴적 엄마치마자락잡고 잘사는 외가집에 갔는데 손님접대한다고 사과를 내 왔더군요
울엄니는 벗긴 사과껍질까지 잡숫는걸보고 어린 마음이었지만
보기 안좋았죠
저는 죽으면 화장을 하여 수원광교산에 그 유골을 뿌리라고 10년전에 유언을 했습니다
오개님
사과 껍질로 인해 지난 세월을 돌아보게 되네요.
수원의 광교산이 참 좋지요.
자주 놀러 갔었지요,
제 나이가 오개님보다 더 들었어도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시니 반가운 생각이 듭니다.
늘 건강하십시요
전 나중에 사후 바닷물에 뿌려달라 울딸 울아들 울동생들에게 미리 말 해 두었습니다.
묘지나 수목장도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탁한 것 입니다.
요즘도 인천 쪽에는 합법적으로 바닷물에 뿌릴 수 있는 곳이 있다 들었습니다.
조장도 괜찮은 방법이란 생각도 가지고 있읍니다. ^^~
수피님
요즘 열심히 여기저기 활동하시는 것을 보고
늘 반가운 마음이 들어요,
우리가 나이가 드니 우리 사후 생각을 안 할 수 없지요,
그래도 비슷한 생각을 하니 세태가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늘 예쁘게 멋있게...
내 묘지는 바람에 써라 늘 흐르고 싶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문장입니다.
사후장기 기증과 생명연장 거부에 서명을 하였기에
나의 아들에게도 내 고향 바다에 뿌려 달라고 하였답니다.
바다를 부유하며 세상 구경을 하고 싶어서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늙어가는 것이 아닌 늘 나는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야 지금의 저의 삶이 즐거울 수가 있고 힘있게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이랍니다.
가족의 이야기 파묘에 관한 이야기 가슴에 담으며 갑니다
선배님의 건강과 행복을 기도드리면서요~~^^
어머나 박희정님
사후 장기 기증과 생명 연장 거부에 서명을 하셨네요,
정말 훌륭하십니다.
전 생명 연장 거부는 했는데 사후 장기 기증은 안 했는데 그것도 한번 생각해 보아야겠어요,
늘 건강하십시요,
낭만선배님
살아오신 장문의 역사를 쓰셨네요. 긴 글을 쓰느라 수고 하셨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고생했던 이야기 선배님의 살아온 이야기를 읽으며 가슴이 뭉클해 집니다
그땐 다들 어렵게 살았었지요
영화 파묘가 생각납니다
묘를 잘쓴다고 자손들이 잘될까요~?
그리고 사후가 있는지 늘생각해봅니다
지금 묘를 잘 쓰건 못쓰건 다 부질없는 생각 같습니다.
단 아름다운 산천은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들이 이용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금송님
말씀대로 사후가 있는지는 저도 늘 회의적이기도 합니다.
댓글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십시요,
감악산을 자주 찾으신 양주땅이면 신암리나 황방리 근처인가 봅니다.....(지금 양주에 사는 사람입니다.)
제 외갓집이 가래비 삼거리에서 몇십리 더 들어가 효촌리에서도 들어가는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엄마가 늘 산나물을 뜯으러 감악산을 자주 찾으신 모양입니다.
흐르듯이님
양주땅에 계시다니 반가운 마음이 가슴에 가득합니다.
옛 생각이 많이 납니다. 많이 변했겠지요,
댓글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십시요,
@낭만 그 가래비에서 45 년 째 살고 있습니다.
효촌리에서 더 가면 매곡리, 신산리, 신암리가 나옵니다.
반가운 마음입니다.
@흐르듯이(無香) 그 가래비 삼거리.
외갓집을 갈려면 시외 뻐스가 꼭 한번씩 쉬었다 가는 곳이 가래비 삼거리
한참을 더 가면 정류장에서 내려 접어 들면
아! 꿈에도 잊지 못할 산 모롱이를 접어들면 풀 향기 가득 넘치는 별천지 산골이 시작되죠
한 10리를 걸어 산 골을 두어개 넘어가면 큰 냇물을 만나고 또 산골을 접어 들어가면 작은 동네 효촌리가 있죠
이 곳이 제 외갓집이죠.
또 10리를 더 가면 신산리가 나오고
그리고 더 들어 가면 남면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영어선생님이 제 외사촌 오빠였죠,
방학 때마다 외갓집을 찾아 올망 졸망 논둑을 따라 다니다
풀숲 속에 숨어 흐르는 실개천을 넘나들며 즐겨 놀던 곳
깊고 깊은 산 속의 꽃 향기를 맡으며 푸르디 푸른 청청의 공기를 마시던
꿈 속에서나 볼 듯한 아름다운 곳
자그마치 70년 60년 전 인데 지금을 어찌 변했을까요,
가래비에서 45년을 사셨다니 정말 혈육을 만난 듯 정겹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요,
@낭만 남문중학교 남문고등학교였지요.
지금 남문고등학교는 요리 전문 특성화학교로 바뀌었습니다.
@흐르듯이(無香) 제 외사촌 오빠가 저의 엄마가 고모인 저의 집에서 서울대학교를 나왔어요,
그리고 남문 중, 고등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있었어요,
지금은 돌아가셨지요.
하여간 옛 고향을 찾듯 흐르듯이님을 만나 반갑웠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자유노트님
저의 할머니도 엄마도 한 많은 세상을 사셨습니다.
또한 옛날 모든 어른들이 고달픈 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여백의 삶을 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세상사의 도를 깨우치신 분들 같습니다.
댓글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버님을 화장해서 모셨고
어머님도 그리할 예정이죠
같은 추모공원에
저희부부집 안치할 곳도 장만할까 합니다
존경하는 피터님.
제 생각과 공감하신 생각에 넘 감사하는 마음이 듭니다.
현재 살아 계시는 모습도 잘 계신 것 같은데
사후 관리도 안정되고 편안하게 잘 하시는 것 같습니다.
댓글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머니의 유언이 시 같으군요 조상의 묘는 함부로 이장하기도 겁나고
명당 자리가 존재 하나 봅니다 하얀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걸 보셨다니 놀랍군요
집안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 어버이날 다가오니 부모님 생각 나시지요 저도 그렇답니다
안단테님.
어버이날을 맞으니 제 부모님 생각이 나서 긴 글을 올렸습니다.
제 할머니나 엄마나 또한 우리보다 1세대의 많은 분들이 세월을 잘 못 만나 고생을 하며
너무나 한스러운 세월을 사셨기에 지금 제가 너무 미안하고 죄스런 마음이 듭니다.
안단테님.
저도 명당자리가 있는지 없는 지를 모릅니다.
다만 옛날 이야기는 접어두고 우린 아름다운 5월을 즐기면 되겠죠
늘 곱게 예쁘게 그대로 이시길 바랍니다.
마음이 찡하는글이네요
이제는 평장이나
수목장을 많이들 하는데
그냥 헐헐 날아다니게
바람처럼 ᆢ
그방법도 좋을것 같아요
채송님
온갖 수난을 다 겪으신 지난 세대 분들 이야기는 늘 우리들 마음을 아프게 하죠,
사후야 어찌 되었건 무얼 알겠습니까
단 현재의 땅은 산 사람들이 잘 이용하며 아름답게 살아야 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댓글 감사드리며 늘 곱게 예쁘게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일단 누님께서 인사부터 드립니다 다시 돌아왔다고 ㅎㅎ
글을 읽으면서 누나의 마음과 제마음을 교차해 보았습니다 몬가 통하는게 있는거 같아서요...
안녕하시지요?
지존님
너무나 반가워 눈물이 날 정도죠.
이제는 사실에 근거도 없는 쓸데없는 남의 말에 휘둘려 남의 집으로 이사 가지 마세요,
얼마나 좋아요 내 집을 찾아오시니...
그저 건강을 지키며 늘 즐겁게 지낼 생각만 하세요,
명당자리 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듣고 자랐지요
저희 부모님도 매장 했다가 화장 해 훨훨 날려 드렸어요
훗날 묘지 돌봐드릴 오빠도 남동생도 없으니
딸 셋 우리 형제 대에서 정리 해 드려야 했어요
두분다 주님 영접 하시고 천국 가셨으니 너무 감사 할 따름 입니다
복매님 어버이 날입니다.
이날 우린 먼저 부모님을 생각하게 되죠.
부모님을 잘 날려드리셨습니다.
육신은 으례 날아가지만 혼은 주님 품에 계실 것이니 자손의 입장으로 얼마나 든든하시고 편안하시겠어요.
아주 잘 하셨습니다.
늘 예쁘게 늘 곱게 그대로 이시길 바랍니다.
집안의 역사를 고스란히
산 증인이 된 듯 써 놓으셨군요.
나이도 어린데 묘를 파내는 일을 직접 보시고
참 예쁜 따님이십니다.
저도 묘지가 무섭지가 않고 평화롭더라고요.
감사합니다.
별꽃님
우리 나이가 아니면 공감하기 어려운 글이죠.
이런 글을 길게 세세히 쓸 필요가 있을까 했지만 산소 문제도 있고...
아름답지도 않은 글이라 미안해요.
대신 오늘을 위한 아름다운 사랑의 표시를 받으셨으니 맘껏 즐겁게 보내세요.
글을 읽으면서
명당터는 있는걸까?
후손이 발복하려면
고인을 명당터에 모시는 일인데
그게 어디 뜻대로 되는것도 아니고
고인 사후의 복인가 싶네요
지금은 화장하는 문화인데 무슨 명당터?
낭만님의 가족사에 얽힌 얘기
숙연해 집니다
금빛님
이 글은 제 집안 이야기지만
옛날, 우리나라의 통속적인 풍속과 내려오는 관습에 의한 이야기 중 하나 일 것입니다.
저도 무조건 화장을 권합니다.
이 작은 나라의 금수 강산을 즐기며 행복하게 사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이라 생각하기에...
금빛님 객관적으로 옳으신 말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곱고 아름답게 생활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