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冊의 장례식_성윤석(1966 ~ )
바다로 가기 위해 가진 모든 책을 버렸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곳으로 가기 위하여
수천의 문장을
버리는데 육조 혜능慧能¹이 게송偈頌²을 들려주고
굴원屈原³이 리어카를 밀어주었네
나 두 대의 오토바이를 양쪽에 세운 뒤 네트를 만들고 하는
냉장 창고 서기들의 족구 시합에 참석하기도 했네 킬킬거리며
멘델레예프⁴가 적당한 도수를 만들어 황제에게 바쳤다는
보드카에 취해 밤새 서기들이 추는 오징어 춤 해파리 춤을
구경하였다네
새벽이 되자, 서기들은 다시 생선들을 기록하고
나는 버린 1.5톤의 책들 속 멸치 떼처럼 튀어 오르던
명징한 문장들을 지우려 애썼다네
나 이 바다로 오기 위하여 책을 버렸네
더 이상 숨을 수 없는 곳으로 가기 위하여
수천의 시詩들을 버리는데
횔덜린이 요양 병원 창가에서 내다보고
김소월이 자신의 시詩 「비단안개」에 누가 곡을
붙였다며, 불법 테이프를 건네주었네
나 책 한 권 가진 게 이제 없다네 이 장례식엔
아무도 조문 오지 않고 킬킬 빨간딱지를 가지고 온
집달리만 도대체 책들을 어디다 버렸냐고
고함을 지르고 있다네
[2014년 발표 시집 「멍게」에 수록]
¹慧能 : 중국 당나라의 승려(638 - 713). 중국 선종의 제六祖로서, 남선종(南禪宗) 파 형성
²偈頌: 부처의 공덕이나 가르침을 찬탄하는 노래.
³屈原: 중국 전국 시대 초나라의 정치가ㆍ시인(B.C.343? - B.C.277?) 초사(楚辭) 운문 형식을
처음으로 시작. 모함을 입어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하다가 마침내 물에 빠져 죽었음.
⁴멘델레예프: 제정 러시아 화학자(1834~1907). 원소 주기율의 이론을 발표
아래 曲은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요...
황옥곤 작곡은 가요 버전이고, 이영조 작곡은 가곡 버전입니다.
《비단안개》
김소월 詩/ 황옥곤 작곡, 조경옥 노래입니다.
https://youtu.be/RzjlN6X9m4Q?si=nfktet42GHiiyF1y
김소월 詩/ 이영조(1943 ~ ) 작곡, 테너 심송학 노래입니다.
https://youtu.be/Cnqcw8Ehl1A?si=vRzbYfuPS4in4aEj
*비단緋緞안개_김소월(1902 - 1934)
눈들이 비단안개에 둘리울 때,
그때는 차마 잊지 못할 때러라.
만나서 울던 때도 그런 날이오.
그리워 미친 날도 그런 때러라.
눈들이 비단안개에 둘리울 때,
그때는 홀목숨은 못살 때러라.
눈 풀리는 가지에 당치맛귀로
젊은 계집 목매고 달릴 때러라.
눈들이 비단안개에 둘리울 때,
그때는 종달새 솟을 때러라.
들에랴, 바다에랴, 하늘에서랴,
아지 못할 무엇에 취할 때러라.
눈들이 비단안개에 둘리울 때,
그때는 차마 잊지 못할 때러라.
첫사랑 있던 때도 그런 날이오,
영이별 있던 날도 그런 때러라.
*비단안개: 비단을 펼쳐 놓은 것과 같은 안개라는 뜻으로,
희뿌옇고 가볍게 낀 안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첫댓글 ㅎㅎ
안녕하세요
책벌레이신 저희 아바지도
이사 다니면서 책을
수십 가마니 버리셨대요 ㅠ
우리도 아름다운 가게에
많이 보냈고요
멋진 시
멋진 음악
잘 감상했습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
미지 님 아버님처럼 많이 버리지는 않았지만
저한테도 비스무리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고두고 후회가 남는 일이지요.
평안한 하루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