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가운데 북한의 위조지폐 제작 및 매매가, 그것도 북한군의 개입 정황들이 드러나면서, 향후 우리 정부의 대북관계 및 6자 회담 등에 큰 파장이 미칠 전망이다.
북한측으로부터 슈퍼노트를 직접 구입한 핵심인물인 황 아무개가 밝힌 지난 1월 13일 당시의 정황을 그의 말에 따라 재구성했다.
"남조선 동무, 다음부터는 100장씩 하자우"
때는 2006년 1월 13일 새벽 2시 중국과 북한 국경 부근에 위치한 모처의 두만강가. 전날 내린 눈으로 강가는 온통 하얗게 눈이 쌓여 있었다. 황 아무개의 대리인인 남성 두명(이하 A·B로 기명, 그 중 A는 중국 조선족.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중국 조선족은 중국 공안과 연결돼 있다)은 중국 국경을 넘어 접선장소인 두만강 모처의 버들방천(버들이 빼곡히 자란 강가)으로 들어섰다.
- ▲지난 1월 13일 당시 황 아무개의 대리인인 B가 북한측으로부터 직접 구입한 슈퍼노트. 크기 비교를 위해 일본 잡지 위에 올려 놓았다.
여기서 하나 지적하고 넘어갈 것은 화폐 교환이 중국 공안을 끼고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황 아무개는 대리인이 거래에 나선 것에 대해 "일반인이 접선장소에 가기에는 위험하다. 국경도 넘어야 되고 잡힐 위험도 있다"고 이유를 설명한 뒤 "브로커를 통해 연계된 중국 공안이 수수료를 받고 화폐 교환을 도와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과의 거래 자체는 중국 공안이 아닌 위조지폐를 사고자 하는 개인이나 브로커가 진행시키고, 중국 공안은 중간에서 도와주는 역할만 담당한다. 황 아무개 역시 직접 북한에 전화를 걸어 거래를 성사시켰다. (황 아무개는 소위 ´북한통´으로 알려진 사람이며, 더 이상의 자세한 신분은 신변보호 차원에서 발설하지 못함을 양해 바랍니다)
황 아무개는 "북한도 웬만한 고위층은 전부 휴대폰을 사용한다"며 "보통 전화를 처음 걸때부터 위조지폐를 넘겨받기까지는 5일 정도 걸린다"고 상황을 전했다.
다시 1월 13일로 돌아가서. 황 아무개의 대리인인 A와 B가 약속장소에 다다르자, 북한측에서는 군인 두 명(이하 L과 M으로 기명)과 N이라는 남성이 나와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북한 군인 중 한 명인 L이 "누구요"라고 물었다. 이에 조선족인 A가 "응. 나야. 이쪽으로 오라우"라고 응답했다.
황 아무개는 "그 둘이 어둠 속에서 목소리만 듣고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그들에게는 위조지폐 매매가 오랜 시간에 걸쳐 익숙하게 이뤄진 일이라는 것.
A가 "그래. 어떻게 되었어?"라고 묻자 L은 "가져 왔수다"라고 대답했다. 그 때 북한측 인사 중 유일하게 군인이 아닌 N이 "이보라우 남조선 동무, 다음부터는 한 100장씩 하자우. 남조선이 잘 산다고 하는데 째째하게 10장이 뭐요"라고 말하며 품안에서 위조달러를 꺼내 "내 동무레 한 50장은 가져갈 줄 알고 50장을 다 가져왔는데 다 가져가라우"라고 말했다.
- ▲슈퍼노트 거래를 마치고 안전한 장소로 돌아가는 길
이에 B는 "형님, 우리 남조선에서는 그걸 쓰다가 잡히면 영창이오. 남한은 북한보다 법은 더 세요"라고 말했다. 이 때 말하는 1장은 100달러짜리 한 장, 슈퍼노트를 뜻한다.
N은 "그런데 이걸 가져다가 무엇을 하려우"라고 물었고, B는 "아. 이걸 연변 관광기념으로 가져가려는 거지요"라고 답했다. 이에 N은 "남조선 동무들은 먹고 할 일도 없다. 뭐 이런 걸 다 기념으로 가져가려는구만"이라고 말했고, B는 "자. 이제 시간이 없으니 먼저 10장을 주시오"라고 했다.
N은 "내가 먼저 확인하고 주겠소"라고 말한 뒤 확인을 마치고 위조지폐를 건넸다. 거래 가격은 1:1. 즉, 100달러 슈퍼노트 한 장에 100달러를 지불했다.
황 아무개에 따르면, 원래는 100달러 슈퍼노트 한 장에 50달러를 주는 게 원칙이지만, 기본단위(?)인 50장이 아닌, 10장만 사는 관계로 비싼 금액에 거래가 이루어졌다. 이 때문에 100달러를 지불하고 100달러짜리 슈퍼노트를 사는 이유를 B가 ´기념´이라고 답한 것이다.
북한군, 슈퍼노트 매매차익 나눠먹기
100달러짜리 위조지폐 10장을 건네준 뒤 N은 "우리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아시면 큰일나오. 그러니 조심하시오"라고 말했다. 이에 B는 걱정말라며 혹시 명함이라도 있으면 달라고 말했다. N은 "명함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오"라고 답했고, 이름을 말한다고 알려주자 "내 이름은 알 필요가 없소. 그저 더 요구되면 이 선으로 연락하시오"라며 서둘러 거래를 끝냈다.
그리고 각자 돌아서 자기네 영역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A·B와 N의 흥정을 지켜보던 북한 군인 L과 M이 N에게 "가만, 우리 몫은 지금 주시오"라며 N에게 제동을 걸었다. 이에 N은 "아, 넘어가서 제가 드리지요"라고 말했고, L은 "야, 이 새끼야. 넘어가면 중대장·정치지도원이 다 빼앗는데 여기서 지금 달라"고 언성을 높였다.
황 아무개에 따르면, 갑자기 튀어나온 군인들의 상소리에 N은 그 자리에서 무엇인가를 두 군인들에게 건넸고, 군인들은 급히 신발을 벗어 신발 밑창에 받은 물건을 집어넣었다.
그렇게 두만강가에서 거래를 끝낸 양측은 각자 온 길로 되돌아갔다. 황 아무개의 대리인인 A와 B는 무사히 위험지역에서 벗어났다. 이후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자 A는 B에게 "아저씨, 이젠 성공적으로 했으니 저에게도 수고비를 주셔야죠"라고 말했다.
B가 "예. 약속대로 200달러를 드리지요"라고 말하자 A는 "아니, 먹고자고 또 차로 움직이는데 400달러는 줘야하지 않아요?"라고 언성을 높였고, B는 하는 수 없이 400달러를 건넸다.
B가 돈을 건네자 A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잠시 후 중국 공안 순찰차가 나타났다. B가 깜짝 놀라 물어보자 A는 "자, 이젠 근심하지 않아도 되요. 돈이면 다 해결되는 게 우리 중국이니까"라고 말했다.
황 아무개는 "A가 순찰차를 타고 시내로 들어오면서 ´정말 기막힌 세상이구나. 북한에서는 위조지폐를 만들고, 중국에서는 위조지폐를 팔아주는 이 기막힌 현실이 내 눈앞에서 벌어질 줄이야´라는 생각을 했다더라"고 당시 A가 느낀 점을 전했다.
"장군님에게 들키면 큰일난다"
황 아무개가 밝힌 당시의 대화 내용은 굉장히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하나씩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일단 북한 위조지폐를 1천 달러(10장)든, 1만 달러(100장)든 마음대로 유용할 수 있는 N이란 인물. N이 "더 요구되면 이 선으로 연락하시오"라고 말한 데서, N은 북한 위조지폐를 원하는 대로 빼돌릴 수 있을 만큼의 위치에 있는, 위조지폐 제작의 핵심인물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위치에 있는 N이 실질적 거래를 진행시킬 때는 북한군의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N은 두 명의 북한 군인과 함께 접선장소에 나왔다. 문제는 N이 단순히 두 명의 말단 군인을 포섭해 사적으로 거래를 진행시킨 게 아니라는 것.
흥정을 지켜본 두 명의 북한군은 거래가 끝나자 N에게 자기네 몫을 그 자리에서 줄 것을 요구했다. 돌아가면 중대장과 정치지도원이 빼앗는다는 이유였다. 황 아무개는 "N이 위조지폐 매매로 받은 금액은 북한군 윗선에서 골고루 나눠 가지게 된다. 접선 장소에 나온 L과 M은 계급이 낮기에 자기네 몫이 없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수수료를 요구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북한군의 고위층이 위조지폐 제작과 거래에 밀접히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북한군의 어느 선까지 위조지폐와 연계된 것일까? 미국이 주장하는 바대로 북한의 위조지폐는 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인가? 이에 대한 황 아무개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황 아무개는 "N이 B에게 위조달러를 넘겨주며 장군님에게 들키면 큰일나니까 조심하라고 했다. 북한에서 장군님은 김정일 위원장을 말한다"며 "이 말이 김정일 위원장도 북한의 위조지폐 제작에 관여돼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했다.
황 아무개에 따르면, 당시 N이 내뱉은 말은 "위조지폐를 제작해서 팔아 넘기고 있다는 걸 들키면 안되니까 조심하시오"가 아니라, "위조지폐를 장군님 몰래 개인적으로 매매하고 있다는 걸 들키면 큰일나니까 조심하시오"란 뜻이다. 황 아무개는 김정일 위원장이 위조지폐 제작을 모르고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리고 그 증거로 황 아무개는 한 장의 위성 사진을 공개했다. 북한의 위조지폐 제작 공장을 담은 사진이었다.
김정일 지시 없이 공장도 없다
황 아무개는 이 위성사진을 일본의 대표적 주간지 ´Friday´를 통해 장당 400만원에 구입했다. 자료 사진에서 볼펜 끝이 가리키는 직사각형 건물이 문제의 위조지폐 제작 공장이다. 사진이 가리키는 공장은 평양시 중구역 동흥동에 위치해 있다.
- ▲위성 사진으로 찍은 북한의 슈퍼노트 제작 공장. 평양시 중구역 동흥동. 볼펜 끝이 가리키는 직사각형 건물이 공장이다.
황 아무개는 "북한의 실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면, 김정일 위원장이 지시하지 않고서는 공장이 만들어질 수 없다는 걸 잘 안다"며 김정일 위원장이 정부 차원에서 위조지폐를 제작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지난 2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승규 국정원장은 현재 북한이 위조지폐를 만들고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정보위원회 간사인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도 "1998년까지는 확실한 증거가 있지만 이후의 위폐 제조나 유통에 대해서는 확인된 것이 없다는 게 국정원 측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 ▲위성 사진으로 찍은 슈퍼노트 제작 공장. 평양시 중구역 동흥동. 볼펜 끝이 가리키는 직사각형 건물이 슈퍼노트 제작 공장이다.
그러나 황 아무개라는 개인이 일본을 통해 관련 위성사진을 제공받고, 북한에 전화 한 통으로 위조지폐를 구입하는 현실에서(물론 황 아무개가 ´북한통´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국정원과 우리 정부가 정말로 북한의 위조지폐 제조 사실을 몰랐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슈퍼노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전 세계적인 논란 속에 우리 정부, 북한 정부, 중국 정부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지…. 슈퍼노트 직접 매입 및 제작 공장 사진까지 공개된 지금, 향후 대북 관계가 어떻게 흘러갈 지에 관심이 쏠린다.
첫댓글 김정일정권의 한계이다 미국을 자극하지 마라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는 격이다 미국이 선제 공격을 감행한다면 이는 한반도 전체의 불행이다 정일아 정신차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