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지호수를 둘러
겨울방학에 들어 설 이전까지 한 달은 산행이나 산책으로 꾸준한 트레킹을 다녔다. 설 이후는 생활리듬이 흐트러지지 않았으나 행선지가 달라지고 지인들을 만나는 일정이 잦았다. 올봄 새로운 근무지가 되는 거제를 다녀왔고 남은 이월에 한두 차례 더 걸음이 예정되어 있다. 바쁜 와중에 어제는 울산에서 지인 혼사가 있어 하객이 되어주면서 친한 벗을 불러내 자리를 같이 하고 왔다.
생활권과 다소 떨어진 곳으로 부임지가 정해지니 지인으로부터 걱정 반 격려 반 전화를 몇 통 받았다. 작년에 떠나온 학교에서 평교사로 정년을 맞은 동료가 이웃에 산다. 나를 일부러 찾아 반송시장 삼겹살을 구워놓고 잔을 같이 기울이면서 그간 궁금한 안부를 나누기도 했다. 몇 해 전 퇴직한 선배도 얼굴을 한 번 보자는 연락이 와 반송시장 골목에서 칼국수로 점심을 같이 들었다.
이월 셋째 일요일이다. 번잡한 생각을 지우려면 인적 드문 산자락을 무념무상 걸으면 좋으련만 그럴 수가 없었다. 며칠 전부터 지인이 밀양을 한번 다녀가십사는 연락이 와서다. 이십여 년 전 그곳 근무할 때 만난 학부형으로 칠십대 노인이다. 현역 활동은 접고 재능기부로 시간을 보내는 분이다. 나하고 오랜 교류가 있는 지인과 잘 통하는 사이라 셋이 얼굴을 보자고 재촉 받았다.
주말 일정이 미리 잡혀 어디 산행이나 산책을 나서지 못했다. 아침나절은 책상에서 밀린 원고들을 정리하면서 보냈다. 점심을 들고 일단 산책을 먼저 마치고 저녁 약속이 된 밀양으로 가려고 마음먹었다. 집에서만 갑갑하게 지내기보다 일단 용지호수를 두르는 발걸음을 나섰다. 일요일 한낮 용지호수 산책로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꼬마를 데리고 나온 젊은 주부들이 몇몇 보였다.
날씨가 아직 풀리지 않아 볼에 스치는 바람은 차가웠다. 물결이 일지 않은 호수 수면엔 겨울 철새로 찾아온 깃이 새까만 물닭들이 오글거렸다. 엄마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이 제가 먹을 과자를 던져주자 지상의 비둘기처럼 한군데로 모여들었다. 야생성이 있는 철새들이 먹잇감에 끌려 사람한테로 다가옴이 신기했다. 꼬마 녀석들은 신이 나서 봉지가 비도록 과자를 계속 던져주었다.
용지호수를 한 바퀴 돌아 문화공원으로 올라갔다. 거기는 산책객이 드물었다. 시든 잔디밭에는 전에 보이지 않던 조각품이 설치되어 있었다. 자연과 인공이 결합된 설치미술이었다. 중앙로 노변에는 여러 해 전 창원부 설치 600년을 기념해 여기저기 흩어진 송덕비를 한 곳에 모아 놓았다. 조선시대 창원을 거쳐 간 부사들의 재직 중 치적을 기리는 불망비였다. 부풀린 내용도 있을 듯했다.
KBS방송국 곁으로 건너가 경남신문사 앞을 지났다. 노변에 심겨진 매실나무에는 매화가 피어나고 있었다. 내친 김에 도청 뜰로 가보았다. 휴일 관공서 정원에는 휴대폰을 들려다보는 초중고 학생들이 다수 보였다. 무슨 회사에서인지 프로그램에서인지 게임 이벤트 행사가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연못가에 피어나는 매화꽃을 살펴보고 도립미술관 앞을 지나 창원대학으로 건너갔다.
대학 정문을 들어서니 학과별 공무원 시험 합격자를 알리는 현수막에서 지역 대학의 취업난을 실감하게 했다. 사회과학대학을 지나 공학1호관 앞으로 갔다. 볕바른 자리 목련나무에선 솜털 붙은 꽃망울이 도톰하게 부풀어갔다. 피고 있는 매화가 지고나면 연이어 하얀 꽃잎을 펼치지 싶었다. 중앙역으로 오르는 지름길 계단이 있었지만 대학 동문을 빠져나가 역세권 개발 현장을 지났다.
창원중앙역에 이르니 휴일을 맞아 열차를 이용하려는 승객들이 많았다. 나는 그 틈새에서 밀양으로 가는 무궁화호를 타고 터널을 지나 철교를 건넜다. 삼랑진을 돌아 밀양역에 닿으니 지인이 차를 몰아왔다. 삼문동 강촌횟집에 들어 지역 어른이기도한 예전 학부형을 만났다. 민물 향어회가 차려져 나와 맑을 술이 몇 잔 오갔다. 나는 매운탕이 나오기 전 자리에서 일어나 역으로 갔다. 19.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