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 도심의 28 메이역 근처의 허름한 호스텔 프리덤 하우스에 8명의 한국사람이 모였다. 이번 여행을 같이 하는 사람들 5여자와 3남자.
당초 우리는 타지크스탄에 있는 파미르고원과 이란등 에 교통 시스템이 잘 갖춰지지 못해서, 승용차 합승을 많이 이용 해야 되기 때문 교통비 부담을 줄일 목적으로 지난 1월 부부 1팀만 동행할 목적으로 여행 사이트에 동행을 모집 하였다.
그러자 12 명이 신청을 했고 일단 만나보고 그중 한 쌍만 골르자고 했다, 장소는 강남의 어느 음식점에서 회동한 결과 부부 커플은 없고 전부 싱글인 사람들만 모였다. 그 때 모인 사람중 8명이 합류하는 것. 우린 두바이 경유해서 트빌리시, 그리고 바쿠에, 두명은 모스코바 경유, 나머지는 이스탄불을 경유해서 바쿠의 프리덤하우스에 집결.
가장 젊은 사람이 58년 여자, 최연장은 47년생 남자, 수원,부산,강원,평택,통영에서 출발 바쿠에 약속된 날인 4.1일 집결하고, 다음날은 시내를 보고 3일부터는 차를 빌려서 시외로 나가기로 했다. 렌트카 업체와 연락해서 승합차를 빌리기로 했으나 승합차는 수동만 있고 자동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다소 8명이 타기엔 무리지만 자동인 토요다 SUV 차를 빌리기로 했다. 우리 현대의 산타페 정도되는 차,
하루 150마낫 10만5천원에 3일 쓰기로 하고 빌렸다.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은 캅카스에 위치한 공화국으로, 수도는 바쿠, 공용어는 아제르바이잔어, 주민의 다수는 터키인과 유사한 아제르바이잔인이다,, 이사진은 조지아의 트빌리시 자유광장 .
조지아 트빌리시 자유광장의 평화의 다리
아제르바이잔은 터키와 문화가 비슷하며, 아르메니아의 남서쪽에는 아제르바이잔의 고립 영토이자 아제르바이잔의 자치 공화국인 나히체반 공화국이 있다. 트빌리시의 시내에 있는 동상.
아제르바이잔은 터키의 지배를 받았으나 러시아-터키전쟁 결과 러시아에 편입되었으며 1922년 소련에 가입했다. 1991년 독립하였으며, 1993년 CIS에 가입했다. 나라의 3면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중앙은 넓은 쿠라 아라쿠스 저지로 되어 있다. 산지에는 강수량이 있으나 중앙 저지는 건조하여 스텝지대를 이루고 동남쪽 구석의 렌코란 평야는 아열대 기후이다.
트빌리시에서 바쿠가는 길의 메마른 평야지대
동쪽은 카스피해와 접하고 있으며 북쪽은 러시아의 다게스탄 공화국, 서쪽으로는 조지아와 아르메니아, 남쪽으로는 이란과 접경하며, 바다 없는 내륙국으로, 아제르바이잔 영토 내에 있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 공화국은 아르메니아와의 전쟁 이후로 사실상 독립 상태에 있다.
1991년에 대통령제 국가로 독립하였으나 1993년에 갑자기 과거 아제르바이잔 SSR 의 지도자였던 헤이다르 알리예프가 2대 대통령이었던 아뷜파즈 엘치바이를 몰아 내고 강권적인 정치로 아제르바이잔을 통치해 왔다.
2003년 말에 헤이다르 알리예프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대통령직을 맡을 수가 없게 되자 장남 일람 알리예프가 총리에서 대통령 후계자로 지명되고 대통령 선거에 승리해 권력이 세습되었다. .
주민은 아제르바이잔인이 90%, 러시아인이 3%, 아르메니아인이 2%, 다게스탄인이 3% 있으며, 터키인도 소수 있다. 이 나라는 석유와 석유제품, 기계제조, 면화, 과수, 포도의 재배, 포도주 양조, 양잠업이 뛰어나다. 에너지원은 석유, 천연가스, 수력전기인데 석유는 바쿠 부근의 육상과 카스피해의 해저에서 산출된다.
바쿠는 아제르바이잔의 수도이다. 카스피 해 서쪽에 뻗어 있는 압셰론 반도에 위치하고, 시가지는 반도 남쪽의 바쿠 만에 접한 항구 도시이다. 카스피 해의 최대 항구 도시이다. 행정적으로는 11개 구와 48개 마을로 분할되고 있으며 2003년 시점의 총인구는 182만 9천 명이다. 바쿠 카펫박물관
바쿠는 아제르바이잔에서 가장 큰 도시인 동시에 자캅카스(남캅카스) 지역에서도 대도시이다. 대규모 유전 지대가 위치해 있고, 러시아 제국 시대부터 석유의 생산지로 발전해 왔다. 석유 가공업, 석유 기계 제조, 시멘트, 목면, 식료품 등의 공업이 성하다,
1804년부터 1813년까지 바쿠는 러시아 제국과 페르시아 카자르 왕조 사이에 일어난 러시아-페르시아 전쟁의 격전지였다. 1813년에 체결된 굴리스탄 조약에 따라 바쿠를 포함한 자캅카스(남캅카스)가 러시아 제국에 편입되었다.
1846년부터 대규모 유정 굴착이 시작되었다. 1872년에는 러시아 제국이 석유 산업의 국가 독점을 폐지시키고 유정을 매각했다. 이를 계기로 영국, 프랑스, 벨기에, 독일, 스웨덴, 스위스, 미국의 투자자들에 의해 석유 자본이 유입되면서 바쿠는 급속히 발전했다.
바쿠의 올드시티 풍경
특히 페르시아 만의 유전이 개발되기 이전이었던 20세기 초반까지 바쿠의 석유 생샨량은 전 세계의 석유 생산량의 과반수를 차지했다. 바쿠의 올드시티 풍경
1917년 10월 혁명을 계기로 바쿠는 바쿠 코뮌의 지배를 받았으며 1918년에는 아제르바이잔 민주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 러시아 내전이 진행 중이던 1920년 4월 28일에 볼셰비키 세력이 바쿠를 점령했고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하게 된다.
바쿠의 올드시티 풍경
제2차 세계 대전이 진행 중이던 1942년에는 나치 독일 군대가 바쿠 유전 지대를 점령하기 위해 바쿠를 침공했지만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패전하면서 좌절되고 만다. 바쿠의 올드시티 풍경
고부스탄 암각화 지역에서 10키로지점에 있는 진흙화산, 세계 700여 개의 진흙 화산 중 아제르바이잔과 카스피해 연안에 약 400여 개의 진흙화산이 집중돼 있다.
진흙화산은 지구 방출 유동체와 가스에 의해 생긴 지열 현상으로 진흙 화산에서 나온 가스의 86%가량은 메탄이며 방출 물질은 물과 탄화수소 유동체를 함유하는 미세한 고체의 현탁액(懸濁液)이다.
앞서 2001년 수도인 바쿠 외곽 15㎞ 지점에서 진흙화산이 폭발한 적이 있으며 지난2015, 3월에도 고부스탄 지역에서 진흙화산이 폭발해 불꽃이 50m 이상 솟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부스탄 암각화 문화 경관은 아제르바이잔 중부의 반사막에서 나온 바위투성이들의 표석(漂石) 평원으로 이루어진 3개 지역을 총칭한다. 이 지역들에는 40,000년에 이르는 바위 예술의 증거가 되는 6,000개 이상의 뛰어난 암각화 컬렉션이 있다.
또 인간이 살았던 동굴, 정착지와 묘지 유적이 있으며, 이 모든 것은 해당 지역에 빙하 시대 말기의 장마 기간부터 후기 구석기, 중세까지 이어지는 동안 거주자들이 살았음을 반영한다. 이 장소는 537㏊에 달하며 고부스탄 보존 지역의 많은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4.4 고부스탄 알타숙소에서 9시출발 268키로 북쪽 산중에있는 흐날릭 민속촌으로. 4시간 만에 산중에서 눈을 만나다. 싸인 눈때문에 산길을 더이상 진행할수 없어. 흐날릭 민속마을은 포기하고 돌아서서 쿠사르의 숙소로 감.
우리가 코카사스 산중 흐날릭에 갈땐 눈이 많이 쌓여 도중에 차를 돌려 내려 와야 했다. 고도가 2천미터가 넘는 지역 이라 4월 중순인데도 아직 눈이 내린다.
우리가 들었던 쿠사르 숙소의 할머니,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