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마스커스 칼 외 2편
함태숙
저는 무결로부터 왔는데요 아버지
당신처럼 두 개의 심장입니다
저항할 수 없는 미학처럼 저를 이끌고 가는
미지가 몸속에는 있습니다
급냉각한 화산의 부유물처럼 겨우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존재란,
자기가 인식한 자기 두려움의 외연입니다
강함과 무름을 똑같은 밀도로 채워 넣고
찌름과 찔림을 하나의 사건 속으로 껴안고
서서 우는 지평선입니다
새로 돋는 별들을 다 떨구어 버리는
해체와 봉합의 밀크웨이를
저는 또 한 번 걸어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제게는, 주검만이 당도할 극지가 있으므로
쌍별을 찾듯이 원수를 찾아 헤매는
기이한 사랑이 있습니다
입술을 열면 비명의 입구에서 얼어버리는 언어가
축문을 읽듯이 그 스스로를 애도하며
올라오는 첫 잎사귀가
거듭거듭 오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봉헌하는 순간이
곡선으로 이으면 춤이 되는 시간이 주검에서 뽑아 올린 치아처럼
미지를 뒤덮는
우리의 너머에는
우리가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진실을 토막 내고 돌아오는 망각의 모습으로
다시 무결해지는 아버지
저와 같이 당신도 두 개의 심장입니까
토성에서 생각하기
어디서 이 간극은 발견된 것일까
생이 여러 번이었다면 가장 단순한 곡선이 되었을 거다
부피를 삭제한 바다처럼
깊이란 건 수평의 개념이 되는 거지
끝없이 길어지는 양팔을 봐
무릎을 가슴에 싸안듯이
우리는, 우리의 바깥으로 튕겨져 나가지 않게
우리의 감옥을 자처하며
하나의 둥근 질량을 얼음과 먼지의 고리로 에워싼
당혹스러운 아름다움을
노이로제에 걸린 연인의 눈 속에서 번쩍! 이는 섬광을
떨어진 부싯돌을 주워 들듯이 이게 맞나? 망설이며 모든
생애의 허리를 굽히듯이
그때 다시 리셋 되는 시계처럼
혼자만의 유일한 설득으로 다시 나를 데려오는
너는, 다정한 나의 몰락
근접하면 타버리는 표면을 끝까지 다이빙하며
너는 영혼 속에 어떤 간극을 포함시켰다 네가 사라지며
재생되는
사랑의 기술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생활 위로
폭우가 내린다 미친 듯이 소멸하는 피사체를 따라잡으며
끝없이 전송하는
전소하며 내려앉는 음악이 되어
초록에 대한 해석
너와 빗줄기는 무주고혼이라는 폭우에는 강을 돌아보고 오는 일 몸속을 파고들고 물뱀을 끄집어내고
습기를 다 놓을 때까지 세상과의 일을 멈추지 않을 거야 흙탕물을 튕기며 우리가 모르는 전투가 시작되었다
한 번의 화해가 있었을지 모르지 우글거리는 초록 뱀들의 터널에서 최초의 감정을 숨기고 흉해지기로 한 마음이
배를 까뒤집으며 피크닉 박스 안의 생이 쏟아진다 퉁퉁 불어 풀려 나온 검정 구두들
주검을 품고 무거워지는 적란운들
함부로 부러지고 떠내려 오는 것들은 누구의 잠으로 흘러가나 핀셋으로 끄집어 올리는 꿈속의 꿈 피부 아래에 꿈틀거리는 빗줄기와 말하기 위해 존재를 구부리는 최초의 환형 문자들
사랑이란 말을 고안하기 위해 인류가 공들여 온 섬세한 죄악들
왜 이렇게 된 건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인지
답변보다는 질문이 하고 싶어져 오래 견딘 지옥이 있었지
눈과 음부에 사이좋게 나눠 갖고서 급류를 만들어가는 기필코 충돌하고야마는
에덴의 내부가
―함태숙 시집, 『토성에서 생각하기』 (시인동네 / 2022)
함태숙
강원 강릉에서 태어나 중앙대 심리학과 및 동대학원 임상심리 전공. 2002년 《현대시》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새들은 창천에서 죽다』 『그대는 한 사람의 인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