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ㄹ) 훈습
□海東疏□
無明染法者 是不覺義 良由一識含此二義 更互相熏 徧生染淨
무명의 염법은 불각의 뜻이다. 진실로 一識에 두 뜻이 들어 있으면서 서로서로 훈습해서 염정을 만들어 낸다.
사람들은 고작 우리 마음에 선과 악이 들어 있다는 것만 안다. 선한 마음이 환경에 따라 악한 마음이 되고 악한 마음이 환경에 따라 선한 마음이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좋은 세상을 만나면 악심이 일어나지 않고 모진 세상을 만나면 악심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이다. 이 말은 그들 마음속 내면에 이미 악한 마음을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이 자리잡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 악한 마음의 씨가 바로 불각이다. 이 불각이 들어 있는 한 무명이 작동하고 그 무명이 작동하는 한 자연업지가 막혀서 악심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때 누가 반드시 이런 질문을 한다.
"그렇다면 불교는 성악설을 주장하는 것입니까?"
한 수 더 나아가면 불교는 이런 이분법적 사고를 뛰어넘도록 가르친다. 무명에 의해 중생이 있게 되었고 그 중생에 선악이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선악을 짓는 중생은 원래 없는 것이다.
중생이 원래 없는데 어떻게 악심이 있고 선심이 있겠는가. 단지 지금 생사에 고통받는 중생의 상태를 설명하다보니 선악을 드러낸 것일 뿐 원래 우리의 마음엔 선과 악은 없는 것이다.
일식은 아려야식이다. 그것이 중생의 마음이다. 거기에 두 뜻이 들어 있어서 각자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하나는 중생세계고 다른 하나는 부처세계다. 어디로 향하는가는 그 중생 본인의 결정에 달려 있다.
출처:대승기신론 해동소혈맥기5_공파스님역해_운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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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원효센터
대승기신론해동소 혈맥기 5권_훈습 p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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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감사드립니다.🙏나무아미타불 ~~~~~~~~~~~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선과 악의 이분법적 사고를 뛰어넘는 不二의 가르침.
선과 정의의 깃발에 가려진 허구의 해악성을 너머
선악을 짓는 중생은 원래 없다고 하시는 말씀은 넘어져도 혼신의 힘을 다해 일어서게 하는 위대한 가르침입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나무아미타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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