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라고 증거된 것과 같은 아래 본문의 말씀에 있어서 한편으로는 어찌 원론적으로는 오늘날의 예배와 같은 제사와 번제보다 하나님께서 더 원하시는 것,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이 있을 수 있는가 라고 의문이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실상은 7절에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것에서 잘 확인할 수 있듯이 하나님 앞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고 반역하면서 아무리 제사와 번제에 열심을 낸다고 하더라도 그리 소용이 없다는 것이고..
사실 그 전에 인애를 원하시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하고 우선인 것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께 하나님의 백성들의 예배가 열납이 되고, 그 기도가 응답이 되며, 그와 함께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힘과 역사와 복들 등의 실제와 누림에 있어서 아무렇게나 이거나 아무나에게 나 일 수가 없다는 것이고, 그 전에 필수적이고 절대적인 전제와 요건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집 한 채로 하나님께 헌물을 드리고, 새벽을 깨우거나 밤새 간구하며, 심지어 40일간을 특별 작정 기도를 한다고 해도 결코 아무 소용이 없고 하나님께 기쁨이 될 수 없으며 응답과 열납이 되기는커녕 반대의 경우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 속에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와 악들을 먼저 각성하고 부끄러워하며 뉘우치고 회개하지 않은 채 오히려 깊이 숨기고 몰래 품으며 계속해서 반복하는 상태로 사람들 앞에서, 근본적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가장 선한 듯, 신실한 듯 보이고 행하며 구하는 위선과 외식 등의 경우인 것으로..
진정 그 이유에 있어서는 조금도 어렵거나 복잡할 수 없는 없는 것입니다..
바로 그 위치와 역할 상 그러한 예배의 열납, 기도의 응답, 특별 작정의 감안 등과 같은 모든 역사들을 주장하시고 통치하시며 그의 시간에 따라 이루시는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근본적으로는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이기에 실질적으로 죄악이 아닌 말씀, 말씀의 신앙이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모든 일들에 합당하고 그 전제와 기준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 인생들은 그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때 구원자이시고 중보자이시며,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과 같은 위치와 역할의 구주이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어떤 식으로든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해야 하는 것인데..
바로 그 예수님께서도 본질적으로는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말씀대로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신 그 목숨값으로 십자가에서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과 같은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어 정말 예배로 인한 임재와 권능을 실제로 경험케 하시고 기도로 인한 응답, 헌신과 작정으로 인한 복과 화답을 생생히 맛보게 하시는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 아니실 수 없는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그렇듯 우리 인생들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변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바로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말씀이신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든 제사와 번제들, 경배와 예배들, 기도와 특심들, 헌신과 작정들 등에 있어서 죄와 세속과 정욕들 등으로 병들고 죽은 듯한 신앙이 아닌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과 생각 이상으로 직결되고 절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누구라도,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그러한 예배와 기도 등에 있어서야 말로 그 무엇보다 먼저, 사실은 더 나아가 그러한 영역과 시간 속에서 뿐 아니라 모든 신앙과 삶의 영역과 자리들에 있어서도 날마다 순간마다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의지하면서, 특히 사도 바울과 같이 오직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악들과 싸우고 범한 죄악들에서는 즉시로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다른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로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이 최우선적으로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며, 그로 인해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의 충만하심으로,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특히 온갖 응답과 승리와 복들 등을 갈수록 더 갈망하고 더욱 구하며 더더욱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호세아6:6~7)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3월 8일(금)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