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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냇골 통신 - 여름에 쓴 시 모음 / 최병무
쇠냇골 통신 71 - 호박꽃
푸른 줄기를 따라 노란 궁전에 당도하였다
채송화도 시가 있는 나라에서 호박꽃도 꽃이냐?고 무시당한 세월보다 소담하다
몇 잠 자고나면 넌출대는 가슴 매달을 어쩌면 저렇게 꾸민 것 없는 몸, 수모의 흔적이 없다
내년에는 집안으로 너를 끌어 들이겠다
2010. 7. 3
* 국적불명의 외래종 꽃도 좋지만 엄마같이 소박한 호박꽃이 좋더라. 큼직한 盆 하나 마련하여 내년에는 호박꽃을 보아야 겠다
쇠냇골 통신 78 - 비오는 밤
태양을 가려놓은 채 종일
내가 우울한 것을 알고 계시는
바다에 모였다가 승천을 하여
지금쯤 우리도 바다에 가까우려니
2010. 7
* 이 밤중, 하느님은 우리의 갈증을 아셨다
쇠냇골 통신 81 - 백일홍
한여름 아침, 건너편 효성아파트 1단지 화단에 백일홍 피었다
지금 저 꽃이 예쁜 이유는 내가 어렸을 때 당신이 소녀였을 때 우리 아이들이 더 어렸을 때 그 자리에 피었던 꽃이기 때문이다
곱기도 해라, 식구같은 꽃
2010. 7. 10 아침에
* 아파트 숲속의 척박한 花壇이 겨우내 백일홍을 품었다가 다시 꽃을 피워준다. 어디서 왔을까, 이 원색의 빛이여
쇠냇골 통신 84 - 밤과 시 그리고 별
잠이 달아나는 밤엔 불을 끄지 않는다 지상에 시인이 있어서 나는 참 좋다
* 박영신 시인의 시에서 인용
2010. 7
쇠냇골 통신 217 - 까치내를 지나며
오늘 까치내를 지나왔다 젊은 날 아득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는 곳, 깊은 관계가 이루어지기 전에 각자의 길을 갔던 사람이 살던 곳, 우리는 그때 눈길을 걸었다
내 序頭에, 동승한 김室長이 첫사랑의 이야기냐고 물었다 나는 즉각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라고 수정을 해주었다 생의 모퉁이에는 불쑥 나타나는 사람이 있으니까
우리는 소복한 눈길을 걸었다 그때도 여관은 밀회의 장소였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정말 언 몸만 녹이려고 거길 찾아 들었고 정말 언 몸만 녹이고 다시 걸어갔다 (전적으로 나를 믿어준 그대에게 때늦은 감사를!) 후일, 갑순이로 발신된 익명의 편지- 그 사람이 약혼한 날 밤 내게 보내준 送辭를 나는 잊고 있었다 미숙한 청춘이었고 그래서 아름다운 날들, 선악과를 따지 말라는 계명을 나는 지금도 믿고 있다
푸른 여름 들판에 눈이 내린다 지금 그 사람 걸어간다 사랑은 두 사람만의 비밀, 모든 사랑 이야기는 닮아 있다*
* 모든 사랑 이야기는 닮아 있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에 나오는 말
2011. 6. 11
- 지금 그 이름을 불러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 하나가 세월 건너 편에 있네, 내가 한 말이 떠오르네 우체국에 다녔던 그 사람, 지금 할머니가 되어있을 그 사람이 생각나네
쇠냇골 통신 221 - 탁란
먼동 주유소 앞산에서 뻐꾸기 소리가 들렸다
작은 새의 둥지에 탁란하는 뻐꾸기, 대리모를 두고 태어난 뻐꾸기는 대를 이어 이 습성을 다시 계승하고
건달같은 뻐꾸기의 모성에 대하여 조류학자의 견해를 들어 보아야 겠다
2011. 6. 17
* 뻐꾸기가 새끼를 키우는 방식은 오목눈이나 딱새 박새 등 조그만 새의 둥지에다 몰래 알을 낳아 놓았다가 다 크면 데려오는 탁란의 방식으로 유명하다
쇠냇골 통신 223 - 우기가 왔다
처음엔 좋았다가 만날수록 시들해지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만날수록 더 좋아지는 사람이 있다
스치듯 지나간 사람이 巨人처럼 다가설 때가 있다
우기가 왔다, 종일 비 내리고 비의 은총을 생각하다가 비의 난폭을 생각하다가 나는 비하고는 상관도 없이 아는 사람들을 곰곰히 생각했다
感性辭典을 써야겠다 로봇에게 애정을 느낄 수 없듯, 우리는 감성이 발달한 靈長類이니까
완벽하지 않은 사람, 헛점이 있어 더 인간적인 사람, 만나면 행복한 사람, 날이 갈수록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
2011. 6. 26
쇠냇골 통신 232 - 분꽃
아침에 쇠냇골 집 앞을 나서면 언덕에 '시온城' 표지석이 있고, 그 교회당 손바닥만한 화단에서 분꽃이 여름내 나팔을 불었다
여름이 끝나갈 때 붉은 유니폼을 입고 염소똥만한 사리 한 알 물었다
2011. 8. 25
Mindanao 가는 길, 2010
쇠냇골 통신 284 - 역마살
집사람 말에 의하면 (그 사람은 四柱에 정통하다) 내 사주에는 역마살이 있다는 거다 나는 상당한 경지에 오른 그의 말을 믿는 편인데 역마살이라, 나는 그 시절 驛馬처럼 길 위에서 살아간다는 것인데 해설을 들을 때마다 그럴 듯하다 신혼의 단꿈이 깨기도 전에 그 馬는 십 수년 혼자서 해외로 떠돌고 지금도 길 나서는 꿈을 꾸며 산다 그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언제는 바람을 일으키라고 부추길 때도 있었다 내가 억압된 관계를 못견뎌 한다나? 지금은 死語가 된 방랑이라는 말, 나는 家出을 하면 헷세의 책 한 권 가지고 간다 지금이라도 책임질 일만 없다면 길 위에 서고 싶다
淸韻詩堂으로 분가를 허락해준 그대에게 축복을! (어제 우리는 차 안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2012. 6. 18
쇠냇골 통신 285 - 백일홍
날아갈 듯한 백일홍 저 꽃씨의 어디에 센서가 장착되었나,
죽은 듯 살아 있다가 올여름 꽃대를 다시 내밀고 100일 동안
효성아파트 손바닥만한 화단에서 地上을 관찰할 것이다
2012. 6. 24 아침
쇠냇골 통신 288 - 비를 기다리는 동안
100일 동안 비가 내리면 노아의 방주가 되고, 100일 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사람들은 사막이 되어간다 100년만의 가뭄이라는데, 보도에 의하면 수박만 신이 났다 내가 먹어본 수박 중에 제일은 오아시스에서 경작한 수박이었는데 화살같은 햇살이 꽂혀 있었다 눈부신 햇살은 지상의 원소를 실어 나른다 사막엔 양떼가 살고 그래서 젖과 꿀이 흐른다 어떤 시인은 수박이 자라는 것과 우주가 팽창하는 것은 같은 현상인지 모른다*고 했다 비사야 諸島엔 오늘 밤 비가 무진장 내릴 것이다 熱帶夜의 밤은 깊고 그때 비 구경을 하다가 그리운 날 있어 침몰한 적이 있다 이 별의 氣象을 주관하는 구름과 비의 神은 위대하시다
2012. 6. 30
* 김용길 시인의 '수박밭에서' 첫 행
쇠냇골 통신 291 - 여름밤의 꿈
이번 여름은 성급히 찾아왔다 장맛비가 대접받은 여름의 기억이 없는데 나는 한여름 밤 퇴행을 한다 유년의 여름은 언제나 푸르다 곤충채집과 식물채집은 여름방학 전통의 과제물이었는데 아이들은 산과 들과 냇가를 싸돌아 다녔다 장마가 지면 봇도랑으로 송사리떼 몰려오고 간혹 거슬러 오르기에 빠진 녀석들은 학교 운동장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그때 우리는 물고기가 하늘에서 떨어졌을 거라는 말을 믿었던 것 같다 나는 등까지 까맣게 타가지고 저녁 먹으라는 전달이 올 때까지 돌아다녔다 한 세월 흐른 후 나는 사막으로 갔는데 사막엔 두 개의 여름이 있다 바다가 없는 사막은 소금밭 같아서 땀이 흐를 시간도 없이 증발해 버린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옷마다 염전의 지형이 그려져 있다 (한여름 난로를 쬐이는 상상을 하면 이해가 쉽다) 여기서는 긴 옷을 입어야 하고 머리까지 햇빛을 가려야 산다 또 하나의 여름은 바닷가 사막, 그때 나는 모세가 出애굽을 하였다는 홍해변 사막에 있었는데 여긴 숨이 턱, 막히는 한증막이다 그래서 사막의 밤은 아름답다 사막의 별은 사명감이 있고 눈물이 나도록 총총하다 그 많은 별들, 사다리만 있으면 지붕에 올라가 따올 수도 있다 별자리에 관한 한 사막의 원주민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다시 한 세월 흐르고 마젤란 항로를 따라 도달한 熱帶夜의 밤, 자고 나면 여름, 常夏의 이 나라에서는 20여년을 살았는데 12월이 오면 한여름의 크리스마스에 적응하지 못했다 겨울은 상상이다 어느 날 내게 깨달음이 왔다 그 생일파티의 기원은 사막의 작은 마을이 아니었던가, 내 성탄의 추억은 수입품이었던 것
여름밤의 꿈을 다시 써야겠다 盛夏의 끝자락에 소슬바람이 가을의 진군을 알려주기 전에
2012. 7. 8 아침
* 일요일 아침, 모처럼 늦잠에서 깨어나 한 줄 스치는 생각에 써내려간 본문이 다 날아가 다시 복기하는 이 글은 아무래도 놓친 고기를 더듬는 듯하다 놓친 고기는 언제나 크다
쇠냇골 통신 293 - 여름을 지나갈 때
매미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올 때 나는 뜬금없이 근착 우주개발 뉴스가 떠올랐다
(우선, 매미가 운다고 할 수가 없어 그냥 '소리'로 적었다 그리고 신기하기는 하지만 천문학적인 그 개발비용이 아깝다는 생각, 그 돈의 다른 용처를 생각해 보다가 미안하지만 우주쇼가 싱겁게 느껴졌다)
달에 갈 기회가 왔다고 해도 나는 별로 가보고 싶은 생각이 없다 모르긴 해도 거긴 집도 아직 없을 것이고 혹 神들의 실험실 같은 유적이 남아 있을 것인데 우선 의식주가 걱정이 되고 어찌하여 내가 적응을 했다 하여도 여기 같으랴, 미리 와 있었을 꽃의 精靈은 대체 무엇부터 손을 댈 것인가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이 별이 우리의 전능하신 조물주의 표본적인 실험실일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행여 더 아름다운 행성이 개척되어 있다 해도 나는 지구별이 마음에 든다
지구의 초창기 원시림 같은 다른 별이 또 있을까 사막에서 나는 푸른 것을 얼마나 그리워 했나, 나는 창조설과 진화론을 똑같이 숭배한다
우주에서 지구인의 행사가 있으면 UFO가 떴다고 했다 혹 다른 별에 살고 있을 형제들의 방문을 위해 우주통신이나 개발하시길,
2012. 7. 22
* 지상에서 리모콘 하나로 우주정거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는데, 나는 이 별에서 殺傷의 무기만은 폐기되었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한다
쇠냇골 통신 297 - 열대야
올림픽도 끝나가고 다시 시나 읽어야 겠다
약한 편을 응원하다가 가난했던 기계체조 선수의 우승을 축하하다가 그 선수 어머니의 인터뷰를 보다가 눈물 훔치고
말의 盛餐, 5년마다 찾아오는 이 땅의 계절풍을 측량하는 중이다
2012. 8. 12
쇠냇골 통신 299 - 비오는 날
호우주의보, 예보처럼 비가 온다 종일 시를 읽다가
시를 너무 많이 읽어 오늘은 그냥 소리내어 울고 싶은 해거름,
2012. 8, 15
쇠냇골 통신 301 - 가문의 영광
시인께서 보내주신 아내의 전성시대*를 읽다가 124쪽 '허공의 바다'에서 가슴이 쿵쾅거렸다
몇 해전 청주를 떠나실 때 南國에서 수집한 貝類를 몇 점 드린 적이 있는데 적요의 밤*에 시인께서는 이 조개들과 대화를 하며 이 시를 쓰셨다 거기 註까지 달아 나를 청주에 은거하고 있는 시인이라 하셨다
시인이 드믈던 시절로 돌아가 꼭 등단추천을 받고 싶었던 존경하는 노시인으로 부터 시인의 호칭으로 불리운 것이 순간, 좌불안석이지만 活字로 공증해 주셨으니 하, 가문의 영광인거라
이민을 가더라도 <아내의 전성시대>는 꼭 챙기겠습니다
2012. 8. 26
* 아내의 전성시대 임보 시인님의 근작시집 * 적요의 밤 임보 시인님의 시, 나의 애송시 1호
Haris Alexi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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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淸韻詩堂, 시인을 찾아서 원문보기 글쓴이: 동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