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조 가계 빚 이은 시한폭탄
이자율 높은 제2금융권 대출 많아
신용 떨어져 상환 여력 안 될 수도
최종구 “관리 강화할 것” 밝혔지만
‘자영업 고통-대출 부실’ 사이 고민
복병은 두렵다.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탓이다. 자영업자 대출이 그렇다. 자영업자는 사업자 등록을 한 뒤 개인사업자 대출을 받거나 개인 자격으로 가계 대출을 낼 수 있다. 개인사업자 대출과 가계 대출을 모두 받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금융감독원이 자영업자의 개인사업자 대출(기업 대출)에 가계 대출(개인 대출)을 합산해 규모를 추정하는 이유다. 물론 한계는 있다. 개인사업자 대출을 받지 않은 자영업자의 가계 대출은 ‘숨은 빚’으로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긴장한 곳은 금융 당국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29일 서울 예금보험공사에서 열린 ‘금융발전심의회 전체 회의’에서 “자영업자의 부채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싸워야 할 적은 분명한데 섣불리 칼을 빼 들 수는 없다. 경기 부진에 부담스러운 각종 제도 도입으로 자영업자의 면역력이 떨어져서다.
최 위원장은 이날 “자영업자 대출에는 상반된 두 가지 측면이 있다”며 “대출을 해주지 않으면 자영업자들이 굉장히 어려워지고 대출을 하면 부실화할 수 있어 적정선을 찾기 쉽지 않다”고 밝혔다.
자영업자 대출의 속내를 살펴보면 당국의 고민이 읽힌다. 금감원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 자영업자 1인당 평균 대출금액(3억2400만원)은 비자영업자(6600만원)의 5배에 이른다. 대출의 질도 좋지 않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전체 개인사업자 대출 차주 중 이자 부담이 큰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은 차주 비중은 66%나 됐다.
더 큰 문제는 자영업자의 상환 능력이다. 2016년 말 기준 자영업자 차주(160만2000명) 중 개인사업자 대출과 가계 대출을 동시에 받은 사람은 전체의 81%(129만명, 440조원)였다. 이들은 개인사업자 대출만 받은 차주에 비해 평균 대출금액도 많고, 저신용 및 고금리대출, 잠재연체차주 비율도 높았다. 돈을 갚을 능력이 떨어지고 부실화할 가능성도 높다는 뜻이다.
업종별 온도 차도 크다. 자영업자 대출 증가를 주도하는 것은 전체의 40%를 차지하는 임대사업자 대출이다. 노후 소득을 목적으로 상가형 부동산 매매에 나선 사람들이 늘어서다. 임대사업자 대출은 담보 비율이 80%가 넘어 부실 위험이 낮다. 그런 탓에 연체율을 낮추고 전반적인 대출 건전성을 실제보다 더 나아 보이게 할 위험도 있다. ‘통계 착시’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자영업자 대출은 가계 대출에 비해 문턱이 낮다 보니 빠르게 늘었다”며 “임대사업자 대출의 효과를 걷어내고 보면 음식·숙박업 등 생계형 자영업 대출의 부실화는 이미 표면적 수치보다 더 심각해졌을 수도 있는 만큼 당국이 보다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