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6:10-12 디모데가 가면 두려워하지 않고 사역하도록 신경을 써 주고 업신여기지 말고 돌아올 때는 평안히 돌아올 수 있게 하라. 아볼로는 현재 갈 마음이 없지만 때가 되면 갈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은 주님이 허락하신다면 여러분에게 가서 한 동안 머물 예정이지만 오순절까지는 에베소에 있어야 되는 이유는 복음 전할 문이 활짝 열려있고 효과적으로 일할 기회가 있기 때문이며 그 결과 방해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라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디모데가 그리고 가면 물질적으로 지원해주고 존경해주고 떠날 때 비용까지 지원해 주라며 아볼로에게 고린도로 가라고 했지만 안가겠다고 했다는 내용이다.
10-12절은 디모데와 아폴로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앞으로 고린도에 올 목회자들이다. 따라서 이 부분의 핵심은 앞으로 방문할 목회자나 선교사들을 경제적으로 잘 지원하라는 뜻이다.
사도행전 16:1-3에 보면 디모데는 신실한 유대인 어머니와 그리스사람 아버지가 낳은 사람이었다. 바울은 디모데가 유대인들에게 다가가서 복음 전할 수 있게 하기 위해 할례를 주었다. 디모데는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적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바울은 그가 고린도에 가거든 그가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게 도우라고 말하고 있다. 원어는 "만약 디모데가 가거든" 이라는 뜻인데 갈지 말지 불확실하다는 뜻이 아니다. 바울은 이미 디모데를 보냈기 때문에 언제 도착할지 모르지만 디모데가 도착하거든 이라는 뜻이다.
이어서 디모데가 너희를 향해 두려워하지 않게 되도록 조심하라고 명령하는 내용이 나온다. 어째서 디모데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두려워했을까? 고린도 교회에는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런 사람들은 바울에게도 공격적이었기에(예: 고후 10:10) 젊은 디모데에게 거칠게 대할 가능성이 있었다. 또 고린도 교회가 바울에게 적대적이었고 디모데는 바울의 길들을 상기시키는 사람(4:17)이었기 때문에 바울에 대한 반감이 있는 사람들이 디모데를 무시하거나 냉대할 가능성이 컸다.
고린도 교회에서 바울을 무시하고 냉대하던 사람들은 고린도 교회에 있던 부유층 귀족들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바울이 자신들의 죄를 지적하고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처럼 느끼고 그렇게 행했을 가능성이 높다.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다니던 바울의 조력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에 있던 부유층들은 디모데도 역시 싫어했을 것이다. 따라서 두려워하게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은 반대자들이 이런 디모데를 무시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10절 끝부분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하며 왜 디모데가 두려워하게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왜냐하면 디모데도 바울과 마찬가지로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디모데도 바울처럼 목숨 걸고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을 무시하고 위협한다면 결국 주님을 위협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11절은 그러므로 아무도 그를 업신여기지 말고 평안한 가운데 그를 내게 보내라고 말한다. 첫번째 명령은 업신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그들이 디모데를 무시한 이유는 아마도 경험이 부족하고 나이가 어리다는 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다른 사도들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사역과 죽으심과 부활을 직접 목격한 증인이 아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쩌면 아버지가 유대인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자신들이 높고 존귀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아닌 디모데를 멸시한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바울은 단호하게 멸시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다.
또 그를 평안히 내게로 보내라는 명령은 에스코트하라는 뜻이다. 디모데가 고린도 교회에 도착해서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 무시하지 말고 존중해 주고 떠날 때는 가는 여비와 음식을 주고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모든 배려를 다 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6절에서 바울 자신이 고린도에서 사역을 마치고 떠날 때 여비와 음식을 줘서 보내달라고 한 것과 같은 말이다.
다음에 나오는 사역자는 아폴로이다. 아폴로는 바울이 편지를 쓰는 당시 에베소에 있었을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에 가라고 권면했다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또 사도행전 18:24-28절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사도행전 18장에서 아폴로가 어떤 사람이라고 했나? 아폴로는 회당에서 담대히 복음을 전했지만 요한의 침례만 알 따름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오직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 라고만 말했을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는 말이다.
이런 아폴로를 평신도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데려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가르쳤다고 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가르친 것은 아폴로가 기다리던 그리스도가 이미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함께 계시다가 승천하셨다는 것과 곧 다시 오실 것이라는 것이었을 것이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서 양육받은 아폴로는 그 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이 되었다. 또 아폴로는 성경을 잘 알고 있던 사람이고 언변이 탁월한 지식인이었다. 그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룰 통해서 영접한 예수를 전했다. 그는 구약성경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던 성경학자였기 때문에 자신의 성경지식을 이용해서 그리스도라는 것을 유대인들에게 증명하여 이기었다고 했다.
바울이 아폴로에게 고린도에 가서 사역하라고 권했지만 아폴로는 싫다고 했다. 거절한 이유는 아마도 그곳에 있는 지식인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1:12절에는 아폴로파가 있기에 아폴로는 이미 고린도에서 사역을 했던 사람일 것이다. 아폴로는 고린도 교회의 상류층 사람들의 교만함을 잘 알기에 거절했을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고린도 교회 하층민들은 아폴로가 그리스 철학과 수사학에 능한 사람이었기에 고린도 교회 상류층 사람들과 한 통속이라고 비난할까 염려했을 가능성도 있다. 자신이 가면 오히려 타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것처럼 고린도 교회가 더 심하게 분열될 것을 염려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12절에 보면 지금은 안간다고 하고 있지만 적절한 때가 오면 갈것이라고 바울은 확신하고 있다.
디모데는 나이가 젊고 경험이 부족한 사역자였다. 아폴로는 나이는 많았겠지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보다 훨씬 늦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에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다. 둘 다 경험은 적지만 둘 다 바울처럼 목숨 걸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전하려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아폴로를 무시하지 말고 목회비용을 대주라는 말은 안 나와 있다. 아폴로는 철학과 수사학에 능하고 구약에도 등통한 당대 최고의 학자였기 때문에 함부로 무시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마지막 단락을 오늘날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여러 차례 본인이 언급했지만 다시 한번 되새기고자 한다. 많은 미국 남침례회 교회에서는 이미 신학교 운영과 신학교 학생들을 돕는 일에 많은 예산을 쓰고 있다. 미 남침례회 교회들은 개별적으로 선교사나 신학교와 신학생들을 돕지 않고 함께 돈을 모아서 지원하고 있다. 이것이 Cooperative Program이다. 서로의 약속은 교회의 총 예산의 10-30퍼센트의 예산을 Cooperative Program에 보내자는 것이다.
Cooperative Program 에는 세가지 주요 사업이 있다. 첫째는 해외 선교와 국내 선교(미지립 교회 지원)이다. 둘째는 6개 교단 신학교 운영비 지원이고 셋째는 은퇴 목회자 생활보장(Guidestone)이다. 한국 교회나 미국의 타 교단 교회들은 교회가 이러한 지원을 자체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미남침례회는 개인적으로나 개교회가 하는 것을 금하고 Cooperative Program을 통해서 지원하고 있다. 바울도 개인적으로 영광을 받기 위해 헌금하는 것을 금하고 있고 교회를 통해서 하라고 했다. 교회도 역시 교회의 이름이 드러나는 것보다 교단차원에서 모아서 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교회 차원에서 하다 보면 특정 선교사들에게 많이 전달되고 어떤 선교사들은 굶주리다 못해 선교를 포기하게 될 수 있다.
2010년 본인이 처음 부임했을 때 본인이 시무하던 교회는 2퍼센트를 Cooperative Program에 보내고 있었다. 이는 미자립 교회들에게 권하는 최소한의 참여이다. 그 때 당시 우리 교회는 55명 정도 주일에 출석했다. 그런데 당시 성도 수가 절반 정도 밖에 안되던 라피엣 교회는 총 예산의 12퍼센트를 보내고 있었다. 선교비 보내는 것에 놀랐고 총 헌금액도 우리 교회보다 더 많았던 것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다. 그 뒤 본인이 시무하던 교회도 4퍼센트 6퍼센트로 점차 늘려달라고 요청을 했다. 교회가 아직도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면 2퍼센트 참여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예산으로 자립이 된다면 총 예산의 10-30 퍼센트를 선교비로 보내는 것이 남침례회에 속한 교회들의 약속이다. 개인이 십일조 하듯 교회도 십일조를 하자는 것이다.
남침례회 6개 신학교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모든 전공에 Ph.D. 과정이 있는 신학대학원이 세 개가 있는데 뉴올리언즈 신학대학원이 그 셋 중 하나에 속한다. 일반대학의 석박사 과정 학생들은 대부분 장학금과 Stipend라는 생활비 지원금을 준다. 그래서 어렵게 생활하면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다. 하지만 남침례회 교단 신학대학원들에서는 이러한 지원이 없다. 신학교 예산의 절반 정도를 교단에서 직접 지원하여 학생들의 학비를 줄여주는 일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Nortre Dame 대학교나 Georgetown 대학교나 Duke 대학교 같은 대학의 신학부들이나 Prinston Seminary같은 곳은 석박사 과정 학생들에게 장학금과 생활비 지원금을 주는 학교들이다. 그러나 현재 Prinston과 Duke에는 아직도 신약 구약 전공이 남아있지만 대부분의 학교들은 고대 종교, 문헌, 문화 연구의 한 분야로 재편을 했다. 그래서 신약학은 항상 그레코-로만 종교나 제 2성전기 유대교 연구의 일부로 들어갈 뿐이다. 그 이유는 순수한 신약학이나 구약학 전공을 개설하면 학교에 기부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가면 갈수록 강해질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학교들이 장학금과 생활비 지원금을 줄 수 있는 이유는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이 막대한 금액을 학교에 지원하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은 선교사나 목회자들을 도우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두가 바울처럼 주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물질적으로만 선교사나 목회자들을 도우라는 뜻은 아니다. 존경해 주고 따르면서 함께 배워가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이 사역을 그만두는 것은 물질 때문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질보다 더 큰 것은 공감해주고 존중해 주는 마음이다. 그게 된다면 물질적으로 힘든 것도 참고 버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