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협력자 가이오스
3요한 5-8; 루카 18,1-8 / 연중 제32주간 토요일; 2024.11.16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의 일기장에 남겨진 메모를 가사로 하여 만들어진 성가('아무것도 너를')에 의하면, 하느님은 불변하십니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적 경험에 의하면, 사람의 본성은 수시로 변합니다. 하느님의 이끄심에 따르지 않는 한 사람들의 본성은 변화무쌍한 가운데에서도 거기서 거기일 뿐 제 자리 걸음입니다. 누구라도 어려움에 처하면 자기 방어적 심리에서 표독하게 악할 수 있고, 그와는 정반대로 유리한 처지에 놓이면 아무렇지도 않게 갑질을 저지를 만큼 교만할 수 있습니다. 태초부터 별들의 궤도가 일정하듯이, 사람의 본성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변덕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에게는 물론이거니와 자기자신의 본성에 대해서도 너무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것이 현명합니다. 사람은 사람일 뿐 하느님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차지한 사람은 모든 것을 되찾을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만으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진리의 협력자'(3요한 8)는 '불의한 재판관'(루카 18,6)에 비해서 구원을 얻는 데 훨씬 유리합니다.
오늘도 독서로서 요한의 편지를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수신인이 '가이오스'라는 평신도 남성인데, 이미 당시에 곳곳에 공동체들이 세워져 있는 상황이 반영되어 있고, 이 공동체들을 순회하러 ‘길을 나선 사람들’이 그의 공동체에도 방문하고 있었다는 정황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을 도와주라는 사도의 당부를 통하여 우리는 그들이야말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길을 나선 선교사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도움을 실첨함으로써 가이오스 같은 진리의 협력자가 되라는 뜻입니다.
또한 오늘 복음에서는 불의하고 완고한 재판관을 상대하여 끈질긴 청원으로 끝내 올바른 판결을 받아낸 과부의 이야기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를 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렇게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를 해야 하는 실질적인 이유는 기도하는 당사자가 기도하는 의미를 우선 분명하게 의식해야 하고, 또 그 기도의 청원이 이루어질 때 맞갖은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이들에게, 하느님께서 일부러 뜸을 들이실 이유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평신도들이 진리의 협력자로서 올바른 의식과 준비를 통하여 하느님께 기도할 수 있게 하는 과정으로서 부활에 대한 신앙 감각을 지니고 교회적인 생활양식을 알려주는 모형으로서 우리가 참여하는 미사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복음적 가치관이 흔히 외면당하는 문화적 상황이기 때문에 미사를 참여하기에 앞서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컴퓨터라는 전자 기계 장치를 이용하려고 해도 그냥 코드를 콘센트에 꼽아 전원만 연결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부팅이라는 과정이 필요하듯이, 세속적인 환경에서 하느님 없이 지내던 사람이 하느님을 만나자면 마음의 부팅이 필요한 것입니다. 평소에도 저녁기도에서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하고, 소죄라면 미사의 앞부분에서 참회예절로써 족하고 대죄라면 고해성사를 통해서 영성체를 하기 전에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시켜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이미 이 세상에서도 부활에 대한 희망을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미사에서 들려오는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 자신에게 들려주시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강론은 독서와 복음의 말씀을 평신도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이므로, 강론을 참조하여 말씀을 마음에 새겨 한 주간 동안 살아갈 각오를 해야 합니다. 이 말씀이 우리네 영혼을 먹여 살리는 영적인 양식인데, 말씀을 새기지 않으면 영혼이 굶주릴 수 밖에 없습니다. 굶주린 영혼이 생기있기는 어렵습니다.
말씀을 들어서 준비가 되었다면 영성체를 통하여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말씀 전례도, 성찬 전례도 하느님과 당신 백성이 서로 대화를 주고 받는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사제가 제병과 포도주를 성체와 성혈로 축성하면서, ‘신앙의 신비여!’하고 외치는 것은 바로 이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심으로써 거룩하게 변화될 신앙인들을 두고 외치는 환호입니다. 세상의 죄에 물들기도 하는 죄인들이 참회를 통해 깨끗해지고, 게다가 성체와 성혈을 받아 먹고 마심으로써 예수님을 닮으려 노력하는 과정이야말로 신앙의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미사의 끝인사로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 세상에 파견되는 평신도들은 복음을 전하러 가겠다는 감사의 인사로 응답합니다. 성찬에서 실현된 주님과의 친교는 선교라는 실천 행동을 촉구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부분을 건성으로 응답하고 미사를 끝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우리 교회와 신자들에게서 보여지는 신앙의 활력이 턱없이 모자라고 착 가라앉은 원인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하나된 기쁨을 이웃과 나누도록 파견되는 새로운 부르심이 미사 후에 시작됩니다. 미사로 시작된 한 주간은 평신도들 스스로도 하느님께로부터 와서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갈 자신의 존재목적을 명심하면서 이웃들에게도 그 존재목적에 따른 생활양식과 협동양식으로 연대하여 이 복음을 알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을 경축하는 의미에서 주님의 날이라고 부르는 주일은 우리도 그분 안에서 부활하는 날입니다. 우리가 받아 모신 성체와 성혈은 새로운 생기로 가득차서 새로운 각오로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도록 재촉하는 하느님의 기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신도들은 주일의 미사를 중심으로 생활계획을 짜고 움직여야 하고, 우리를 살리는 음식이 되시어 우리에게 오신 그분처럼, 우리도 가정과 세상에서 세상을 살리고 기운을 채우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부활의 신앙 감각으로 교회를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먼저 하느님 나라를 찾는 삶으로서, 우리가 청원하는 바는 이 삶을 통해 자연히 준비되고 채워져서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알맞은 때에 가장 좋은 모습으로 들어지게 됩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인생의 새로운 길을 나선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가이오스처럼 진리의 협력자로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