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쌍화차 코코아 원문보기 글쓴이: 티벳고양이
울고있는 조선 여인을 일본 순사가 달래주고 있고, 여인은 깨진 항아리를 들고있다.
[조선은 힘이 없으므로 일제가 보호해줘야 한다고 주장(제국주의적 시각)]
풍자화에 등장하는 한국의 이미지
'풍자화로 보는 러일전쟁' 석화정
시앙스포 교수/카롤린 포스텔 비네 대학
일본도 유럽처럼 식민 지배를 할 권리가 있다고 유럽 사람들은 인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한일합병 기념엽서
화려한 봉황으로 꾸며진 일본 왕의 사진
초라한 순종의 사진
가난한 나라를 연상하게 하는 사진들
오른쪽에 있는 기모노 전통의상을 입고 있는 여자는 성인이고요
그 다음에 왼쪽에 있는 한복을 입은 아이는 어린 아이입니다
어린아이와 성인의 대비를 통해서 큰 나라인 일본이 작은 나라인
어린이 나라인 조선을 보호한다는 , 타이틀도 보호로 되어 있고요
일제가 제작해서 배포한 어린이 나라인 조선을 보호한다는 타이틀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기모노 입은 여자는 꽃을 들고 있습니다.
아직 겨울에 동면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하지만 여자는 꽃을 들고 화사한 봄 의상으로
봄과 겨울의 대비를 통해서 또 한번 보호조약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일제가 배포한 한인풍속 사진엽서중 잠자는 한국인
조선을 놓고 벌인 열강들의 싸움
드루치 뉴스 트리뷴
1910년 합병 당시 유럽의 한 언론인이
일본과 조선을 방문하고 나서 그린 삽화
일본인의 연주에 따라 춤을 추는 조선인
대다수는 이제 조선은 일본의 병합을 통하여
다시는 독립을 얻지 못할 것이다
우리로서는 다분히 식민주의적이고 치욕적인
그런 진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근대적인 풍경을 놓치지 않고 한일합병과 시점을 맞춰 바로 영국에서 만든 화보신문. 그 속에는 근대화되기 전과 후의 모습이라고 비교하고 있다
보물찾기를 했습니다 경북궁 구석구석 숨겨져 있는 보물을 찾게끔 하는
어떻게 보면 정말 조선 오백 년의 전통과
역사가 깃든 유서 깊은 공간을
하나의 유흥공간으로 만들었던,
하나의 일제의 놀음이라고 할까요
일제의 경북궁 보물찾기..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에 동원된 기생들
조선의 기생들을 지배국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대상으로 만듬.
(기생은 월래 창녀나 매춘의 개념이 아니다)
이제 조선은 일제에 의해 기생의 나라로 전락한다.
조선 기생 엽서 세트
이제는 조선에서 매춘 관광을 위한 소재로 소개되는 기생들 . .
경성관광협회 발간(1915년)
첫째날
조선상류 또는 기생의 사택을 사찰하며
밤에는 종로 야시장 방문한다
담배 광고 엽서
조선총독부 전매국 발행
가와무라 미나토 교수/'말하는 꽃 기생'저자
이 세 장의 사진을 한번 보세요
여성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붙들고 껴안고 있습니다 이쪽은 한 사람이
어딘가에 기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 당시의 힘의 관계와
연계하여 풀어보면 이 여성들은 보호받고
의지할 곳이 필요한 조선을,지배하고
보호해주는 권력은 일본이 되는 것입니다
근대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지배하면서
일본 유곽 제도를 조선에 도입하여 기생을
제도화 했습니다 근대 식민지 지배 하에서 기생을 통한
성적 산업 시스템 정착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고코카즈오/일본 근대 사진 고고학자
같은 일본인으로서도 용서할 수 없네요
시대를 불문하고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됩니다
조선인을 겁주려고 의병들을 공개 사형을 시킨다
한철호 교수/동국대학교 역사교육학과
일본이 가장 무서워했던 것이 민의 반발이고 특히 국가가
자기들한테 별로 해준 것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의로서 일어난 국가를 지키겠다는 민의 마음을
진압하지 않고서는 한국에 대한 올바른 지배가
한국민들의 저항 의지를 꺾는 것이 자신들의 잔악성을
입증하는 것보다 더욱 더 중요했기 때문에
아마 의도적으로 사진을 찍고 공개를 하고
경계심을 갖도록 조장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라카와 카즈야 학예사 / 사가현립 나고야성 박물관
이것은 한국의 영웅으로 불리는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자인 안중근입니다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범인의 얼굴은
어떻게 생겼는지 당시 일본인이
알고 싶어 했을겁니다 그래서 이런
엽서를 만들어 팔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토 히로부미 암살자 안중근
카노오 미키요 특임교수 / 케이와학원 대학
8월 15일 천황은 종전방송으로
전쟁은 끝났다, 끝내주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천황이 힘든 전쟁을 끝내주어서
감사하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8월 15일 항복이 아닌 종전기념일로 만들어
일반화 시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당시 일왕 궁궐
옥음에 먹구름이 드리우다
전국이 뜨거운 눈물로 떨다
(궁궐을 향해 조아리는 장면을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내보낸건 의도적인 이유에서)
제롬 게스키에 큐레이터/기메 박물관
때로 우리는 한 장의 사진을 통해
우리가 어떠한 대중이나 문화에 퍼뜨렸던
'진실'과 '진짜 진실'과는
매우 동떨어져 있음을 발견하곤 합니다
사진은 진실을 말한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그러나 그 진실을 이용해 또 다른 거짓된 진실이 만들어 진다.
일제 강점기라는 그 시대를 증언해 온 사진과 삽화, 문서 기록들은 진실을 말하고 있을까?
일제가 만들어낸 조작된 조선의 사진들... 그 속에는 어떤 비밀과 거짓말이 담겨져 있는지
* 일본이 만들어낸 조선의 표상들, 세계에 소개되다
가슴을 드러낸 채 카메라 앞에 선 조선의 여인...
헐벗고 굶주린 아이들의 모습... 미개하고 게으른 조선의 남성들...
100년 전 카메라로 찍힌 조선의 모습들, 그리고 이 사진들로 제작된 엽서들은
아시아를 넘어 영국과 프랑스 등 전 세계 각지로 팔려 나간다.
19세기 말부터 사진엽서는 세계적으로 유행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엽서의 유행이 아닌 식민지에 대한 호기심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조선의 이미지는 제외된 채
미개하고 가난한 모습만을 골라 인위적으로 조작해 지배국의 시선을 투영 시킨
조선의 엽서는 식민지배가 박애주의적인 선택이었다는 타당성을 부여 시킨다.
한 자루의 총이 지닌 위력보다
조선의 여인이라 자주 올라오는 사진 중 하나인데 밑을 보면
사실 잘 보면 위에 가슴을 드러내고 있는 여인과 쓰개치마를 뒤집어 쓰고 있는 이 여인은
같은 사람이다
마찬가지, 같은 곳에서 같은 사람이 촬영한 사진이다.
위의 두 사진 또한 일본이 스튜디오에서 작위적으로 촬영된 사진이다
위의 모델이 조선인인지 조차 의심스럽다
이것 역시 다분의 의도적인 연출이다 스튜디오에서 일제가 촬영한 사진
의도적으로 가슴을 드러내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역시 하위층의 모유 수유나 노동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일제는 이것을 일반적인 조선의 모습 또는 미개함의 상징으로 묘사한다
두 여인이 아이를 안고 젖을 들어내 먹이며 카메라를 응시하는 모습은
다분히 촬영자에 의해 의도된 연출이다
퍼시벌 로웰, <내 기억 속의 조선, 조선 사람들> (예담, 2001)
(259쪽)
여성의복으로는 매우 짧은 저고리에 풍성한 속곳과 속치마가 있다. 속치마는 서구 여성의 것과 비슷한 형태에 기다란 치마끈이 달려 있다. 이 끈은 인간의 신체 구조를 무시한 채, 치마를 될 수 있는 한 높이 올려 묶게 만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고리와 치마 말기 사이에는 종종 2내지 3인치 가량의 틈이 벌어져 유방이 약간 노출되는 경우도 생긴다. 한 가지 반드시 덧붙일 말은 이런 뜻하지 않은 일은 우물가에서 물을 길어 머리에 인 평민 계층에서나 볼 수 있는 우연일 뿐이다.
아손 그렙스트, <스웨덴 기자 아손, 100년전 한국을 걷다> (책과함께, 2005)
(175쪽)
부산에서 서울까지 오는 도중에나 서울에 있는 동안에도, 밖에 나와 있는 여자들이 드물다는 사실이 이상에 생각되었다. 밖에 나와 있는 여자라 할지라도 대부분이 독특한 방식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얼굴을 가리지 않은 여자일 경우에는 젖가슴까지 드러내놓고 있었다. 얼굴을 가리지 않은 여자들은 대부분이 매무 박색인 까닭으로 처음에는 이 사실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까를로 로제티, <꼬레아 꼬레아니> (숲과나무, 1996)
(112~113쪽)
세상의 어느 나라에도 한국에서처럼 엄격하게 여인들의 생활을 격리시키는 곳은 없다. 양반층의 여인이건 중류층의 여인이건 간에 집에서 나가는 일이 결코 없으며 할 수 없이 외출해야 할 때에는 반드시 완전히 차단된 가마를 이용해야 했다. 길에서 볼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여인들은 모두 사회적으로 최하층에 속하는 사람들이며 이들 또한 대체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서울 여인들의 얼굴을 가리는 것은 머리에서부터 덮어씌운 초록색 비단외투로서 비록 소매 자락이 달려 있기는 하나 어떤 경우에도 그것을 입지는 않는다. 한편 도시 주변 농촌의 여인들은 이러한 외투 대신 흰 앞치마로 얼굴을 가리기도 한다. 이것이 한국 여인의 의복 중 가장 신기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독창적이며 어느 한국의 의상에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이 책에 실려 있는 사진들을 보면 된다. 한편 가슴을 드러내놓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인들은 모두 예외 없이 최하층 계급인 칠반에 속하는 사람들인데, 지금은 영국과 미국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거리에서 이들을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일제가 지난 1911년 경성사진관을 통해 펴낸 `조선풍속풍경사진첩'에 담겨있는 사진들이다. 가슴 노출 사진은 엽서로 제작돼 서구 유럽으로도 팔려나가면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이 덕택인지 20세기 초 서구유럽에 알려진 조선의 컨셉트는 바로 가슴 노출이었다.
아무리 일제 강점기라고 하지만, 유학의 나라 조선에서 어떻게 이런 사진이 촬영됐을까. 얼마 전 한 방송사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에서 그 비밀이 밝혀졌다. 사진에 등장하는 각종 소품들 역시 동일한 것이었다. 조선의 어느 시골길에서 만난 아낙네를 촬영한 것으로만 알았던 이 사진들이, 실제로는 스튜디오에서 모델을 고용해 의도적으로 조작된 것이었다.
일제의 조선풍속풍경사진첩에 담긴 사진은 가슴을 노출한 조선여인의 사진만 있는 게 아니다. 헐벗고 굶주린 아이들, 게으른 남성들, 기생들, 총살당하는 의병들, 목에 칼을 쓰고 미소를 짖고 있는 죄수들 사진들도 있다. 하지만 이 사진들 모두가 가슴노출 사진과 같이 조작되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왜곡된 것들이다.
일제는 왜 이런 조작과 왜곡을 했던 것일까. 일제는 조선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상징 조작이 필요했다. "조선은 미개하고, 야만스럽고, 낙후된 나라다. 그래서 일본이란 강대국의 보호를 받아야한다"는 논리 전개를 위해 이미지 조작을 해야했던 것이다.
젖이 드러나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지만 결코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였으며
하위층에나 있던 모유 수유의 경우나 가사노동에서나 볼 수 있을 뿐이였다
조선의 아름다움과 수많은 전통과 문화 근대화 모습을 지우고 가사노동이나 모유수유의 모습을 다분히 미개하게 묘사해 조선의 모습으로 일반화 시킴으로 식민통치의 정당성을 부여하던
더럽고 비열하고 악랄한 행동이라 하겠다
첫댓글 진짜 죽이고 싶다 멸종되면 좋겠다 개새끼들
개 음침한 조.팔새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