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8ㄴ~9)
'저는 자격이 없습니다'로 번역된 '우크 에이미 히카노스'(uk eimi hikanos; I am not worthy; I do not deserve)에서 '히카노스'(hikanos)는 '고려할 만한', '많은', '가치있는', '적합한', '알맞은'의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는 예수님의 '유대인인 내가 굳이 너에게 가서 고쳐 주어야 하느냐'(마태8,7참조)는 질문에 대해, '저는 주님께서 저희 집에 들어오실 만한 가치조차도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또한 당시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거나 그들과 식사를 함께하는 등의 이방인과의 친교를 금지한 유대인의 관습을 잘 알고 있었던 이방인 백부장의 사려깊은 배려이기도 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러한 내용을 통해 마태오 복음의 주독자층인 유대인들을 향해 그들의 믿음 없음을 간접적으로 책망하면서, 백부장과 같은 큰 믿음을 가질 것을 촉구하고 있다.
마태오 복음 8장 8ㄷ절의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에서 '그저'에 해당하는 '모논'(monon; only)은 '단순히', '오직', '다만'의 의미를 가지고서 수식하는 문장의 의미를 제한하고 있다.
또한 여기서 '한 말씀'에 해당하는 '로고'(logo; a word)는 '말씀'이라는 뜻을 가진 '로고스'(logos)의 수단을 나타내는 여격 단수형이다.
따라서 이 구절을 직역하면, '다만 한 말씀으로 말해 주십시오'이다.
그는 주님의 '말씀'(로고스) 자체에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참 믿음의 소유자였다.
말하자면, 이방인 백부장이 바란 것은, 이방의 우상 숭배자들이 주문을 외운다거나 주술적 기원을 하는 행위가 아니라, 스스로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고침을 입으리라'는 단 한마디의 말씀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백부장도 마태오 복음 8장 9절에서 남을 다스리는 권세가 있었는데, 이러한 권세로 인해 교만하거나 방종하지 않고, 오히려 더 큰 권세를 가진 분을 분별할 줄 알고, 그분에게 그 권세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구하는 지혜를 소유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종이 겪고 있는 질병이나 이 세상 만물의 원리에 대해서는 자신이 아무런 권세를 행할 수 없었기에, 세상 모든 만물에 대해 진정한 권세를 가지고 질병까지도 복종시키는 예수님 앞에서 그분의 권세를 인정하고 도움을 청해야만 했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은 질병이나 고난이 마귀로부터 온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백부장은 자신이 자신의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면, 자신의 부하들이 그 명령을 듣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모든 만물의 주권자이신 예수님께서 질병을 유발시키는 더러운 영들을 향해 명령하시면, 그 세력이 예수님의 명령에 복종할 수 밖에 없다는 영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는 이방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예수님의 메시아적 권위와 위상과 그 능력을 깨달아, 그분께 대한 참된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임언기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