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관하여 _오탁번(1943-2023)
1
왼쪽 머리가
씀벅씀벅 쏙독새¹ 울음을 울고
두통은 파도보다 높았다
나뭇가지 휘도록 눈이 내린 세모에
쉰아홉 고개를 넘다가 나는 넘어졌다
하루에 링거 주사 세 대씩 맞고
설날 아침엔 병실에서 떡국을 먹었다
수술 여부를 결정하는 의사가
첩자처럼 병실을 드나들었다
수술받다가 내가 죽으면
눈물 흘리는 사람 참 많을까
나를 미워하던 사람도
비로소 저를 미워할까
나는 새벽마다 눈물지었다
2
두통이 가신 어느 날
예쁜 간호사가 링거 주사 갈아주면서
따뜻한 손으로 내 팔뚝을 만지자
바지 속에서 문득 일어서는 뿌리!
나는 남몰래 슬프고 황홀했다
다시 태어난 남자가 된 듯
면도를 말끔히 하고
환자복 바지를 새로 달라고 했다
― 바다 하나 주세요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엉뚱했다
― 바다 하나요
바지바지 말해도 바다바다가 되었다
언어 기능을 맡은 왼쪽 뇌신경에
순식간에 오류가 일어나서
환자복 바지가
푸른 바다로 변해 버렸다
아아 나는 파도에 휩쓸리는
갸울은² 목숨이었다
[2002년 발표 시집 「벙어리 장갑」에 수록]
¹쑥독새: 몸의 길이는 29cm 정도이며, 검은 갈색이고 복잡한 무늬가 있다.
입이 크고 부리와 다리는 짧다. 5~8월에 한 배에 두 개의 알을 낳는다.
시베리아에서 일본에 걸치는 동부 아시아에 분포하고 동남아시아에서 겨울을 보낸다.
²갸울다: 비스듬하게 한쪽이 조금 낮아지거나 비뚤어지다.
쑥독새
G. 푸치니(1858-1924)가 1899년(41세) 작곡한 오페라 Tosca 中
《E lucevan le stelle, 별은 빛나건만》이며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1935-2007) 아리아입니다.
https://youtu.be/HUUIVh3O9zs?si=OYUwaHr-VRo1rjs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