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감 직선제 폐지하라'… 안양옥 한국교총 회장]
"이번 선거는 '프로' 전교조와 '아마추어' 보수 후보의 대결
선거에 나온 보수 후보들은 대부분 대접받으며 살아와"
"명색이 교육감 뽑는 선거라면 '교육적'이어야 하지 않나
'공작정치'라는 말까지 나와… 감옥 간 교육감이 몇 명인가"
안양옥(57) 한국교총 회장에게 솔직한 느낌을 묻자,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만 올 것이 왔다"고 말했다.
서울·경기·인천 등의 광역단체장이 누가 될지 관심을 모았던 지방선거에서 대부분 허(虛)를 찔린 것이다. 17개 시ㆍ도 교육감 중 13개를 진보 진영에서 석권했다. 이 중 7명이 전교조 지부장 출신이었다. 선거 결과가 난 뒤 본지(本紙) 1면의 톱 제목은 '여(與)도 야(野)도 아닌 전교조의 압승'이었다.
전교조와 맞선 한국교총의 충격이 가장 컸을 것이다. 등록 회원이 16만명인 보수 성향의 최대 교원단체…, 전교조 회원의 4배쯤 된다. 하지만 이날 교총이 할 수 있는 것은 성명을 내는 것뿐이었다. 패자의 항변처럼. '교육감 직선제 폐지하라!'
―진보 교육감들이 석권했다고 이런 성명을 내는 것은 너무 속 보이지 않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 교육의 장래를 위한 것이다."
서울·경기·인천 등의 광역단체장이 누가 될지 관심을 모았던 지방선거에서 대부분 허(虛)를 찔린 것이다. 17개 시ㆍ도 교육감 중 13개를 진보 진영에서 석권했다. 이 중 7명이 전교조 지부장 출신이었다. 선거 결과가 난 뒤 본지(本紙) 1면의 톱 제목은 '여(與)도 야(野)도 아닌 전교조의 압승'이었다.
전교조와 맞선 한국교총의 충격이 가장 컸을 것이다. 등록 회원이 16만명인 보수 성향의 최대 교원단체…, 전교조 회원의 4배쯤 된다. 하지만 이날 교총이 할 수 있는 것은 성명을 내는 것뿐이었다. 패자의 항변처럼. '교육감 직선제 폐지하라!'
―진보 교육감들이 석권했다고 이런 성명을 내는 것은 너무 속 보이지 않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 교육의 장래를 위한 것이다."
- 안양옥 교총 회장은“교육계에서‘야당’이 된 게 보수 교육을 돌아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형주 기자
"그랬을 것이다. 2010년 내가 교총 회장이 된 뒤로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주장해왔다."
―이번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그렇다.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교총을 방문했을 때도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하거나 적어도 개선하겠다는 공약을 해달라'고 했다. 한 시간 뒤 그쪽 캠프에서 '직선제의 문제점에 관한 자료를 보내달라'고 해서 보내줬지만, 반영이 안 됐다."
―무슨 문제가 있나?
"전교조가 일선 교육 현장에 정치 바람을 불러왔다면, 교육감 직선제는 정치 종속화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
―정치 종속화의 꽃이라?
"교육이 정치에 종속되는 결정판이라는 것이다. 선거로 교육감을 뽑으면서 교육 현장을 정치로부터의 중립이 아니라 완전히 정치에 예속시켰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명시한 헌법 조항(31조 4항)에 위배된다. 그래서 교육감 직선제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겠다는 것이다."
―당초 교육의 정치 중립성을 위해 교육감 직선제가 도입된 게 아니었나?
"교육이 중앙정부에 예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교육 지방자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때 예산과 인사권을 지방정부에 내려주는 선에서 그쳐야 했다. 그런데 '학교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교육감까지 선거로 뽑게 된 것이다."
―교육감을 직접 뽑는 게 민주주의 원칙에는 맞는데.
"명색이 교육감을 뽑는 선거라면 '교육적'이어야 하지 않나. 선거 과정에서 흑색선전이 난무한다. 이번에는 고승덕 후보의 입으로 '공작정치'라는 말까지 나왔다. 불법 자금을 받거나 경쟁 후보를 매수해 감옥에 간 교육감이 몇 명인가. 정치선거보다 더 비교육적인 선거가 됐다."
―왜 교육감 선거가 유독 혼탁할까?
"교육감 선거는 정당조직 선거가 아니다. 광역 단위의 선거운동과 경비를 후보 개인이 해결해야 한다. 당선된 뒤 비리에 연루되거나 대가성 인사(人事)를 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
"전교조는 그동안 조직적인 정치 투쟁으로 단련돼왔다. 현 정권에서 해직 교사들의 노조원 가입 문제로 '법외(法外) 노조' 공방까지 치르면서 위기감으로 결속력은 더 강해졌다. 마치 '계백 장군의 5천 결사대'처럼 말이다. 일선 학교에서는 전교조 교사 한 명만 있어도 교장이 꼼짝을 못한다. 그러니 이번 선거는 마치 '프로' 전교조 후보와 '아마추어' 보수 후보의 대결과 같았다."
―교총은 전교조보다 회원 수가 4배나 더 많지 않나?
"교총에는 일반 교사들뿐만 아니라 교장과 대학교수도 회원으로 가입돼있다. 우리가 회원 수는 많아도 교육 현장에서 영향력은 전교조보다 훨씬 떨어진다. 내가 교총 회장이지만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응집력도 소속감도 약하다. 보수 진영 안에서의 대접도 그렇다. 교총을 이용만 해먹으려고 하지, 심지어 교총 존재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전교조의 활약도 있었겠지만, 진보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된 원인은 보수 후보의 난립과 단일화 실패로 분석됐다.
"그동안 선거에서 학습 과정이 있었다. 그런 경험을 통해 진보 진영에서는 보이지 않는 단일화 추진 세력이 있었다. 그 핵심이 전교조였을 것이다."
―똑같은 학습을 했는데 왜 보수 진영에서는 후보들이 난립됐나?
"진보 진영은 조직 간의 정서적 연대감이 있다. 이념 스펙트럼에서 편차가 있어도 필요한 순간에는 결집이 된다. 큰 목표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양보하고 희생할 줄도 안다."
―간혹 보수의 '탐욕'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다.
"선거에 나오는 보수 후보들은 대부분 대접을 받으면서 살아왔다. 심하게 말하면 자신 위주로만 생각하고 자신밖에 볼 줄 모른다. "
―특히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보수 진영 고승덕 후보와 문용린 후보의 이전투구로 여론조사에서 3위였던 조희연 후보가 어부지리를 얻었다.
"이게 천심(天心)이다. 이들이 서로 싸운 것에 대해 하늘이 심판해준 것이다. "
―당초 시민들은 지방선거에서 교육감을 뽑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고승덕 후보 딸의 편지만 없었다면 말이다.
"교육감은 '교육 소통령'이다. 이에 비하면 교육부장관이 오히려 허수아비다. 수천억원에서 7조원에 이르는 예산을 집행한다. 유치원ㆍ초ㆍ중ㆍ고 교직원의 인사권과 정책결정권을 쥐고 있다. 아마 이번 선거 결과로 일선 학교 교장들은 '멘붕' 상태에 빠졌을 것이다."
―진보 교육감들의 대거 당선으로 좌파(左派) 태풍이 교육 현장에 불 것으로 보나?
"과거에 실패한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처럼 막 몰고 가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진보 교육감들도 좌파 성향을 드러내기보다는 중도로 옮겨갈 것으로 본다. "
―왜 그렇게 보나?
"당선된 진보 교육감들의 총 득표율은 약 39%였다. 난립된 보수 후보들 표의 합산보다 적었다. 그런데도 교육계 전반을 장악했다. 이는 지역 주민들이나 교육계의 바람과는 다른 성향의 교육감이 당선됐다는 뜻이다. 표면에서 보면 물살이 빠르고 회오리치지만, 막상 물밑에는 느리고 변치 않는 흐름이 있다. 진보 교육감들도 이런 물밑 흐름을 읽을 것이다."
―지난 주말 진보 교육감들끼리 모여 정책연대나 행동 통일을 논의했다고 한다. 교육부와의 정책 갈등으로 교사·학생·학부모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교육감으로서 권력을 갖게 되면 자기의 이념과 생각을 현실에서 실험하려고 한다. 학교나 학생은 실험 대상이 아니다. 교육감은 학교가 주체적으로 할 수 있게 지원하는 데 그쳐야 한다. 만약 학교 현장을 자신의 이념대로 개조하겠다면, 우리 교총이 전교조처럼 돼서 투쟁할 것이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선거 이틀 전에 "이번 교육감 선거는 친일ㆍ독재 미화 교과서가 다시 부활하느냐, 아니면 올바른 역사교육을 새롭게 시작하느냐를 가르는 분수령"이라고 했다. 다른 진보 교육감들도 여기에 동조해 교육청 단위로 교사 교과서를 만들어 수업 시간에 활용하겠다고 했다. 국사 교과서 논쟁이 재점화될 듯하다.
"현재 역사학계나 국사교과서 집필진은 진보 성향 교수와 교사들이 장악하고 있다. 여기에 교육감까지 가세하겠다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다. 건전한 상식의 일반 시민들과 다시 충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보수 정권 때 도입된 자율형 사립고나 특목고가 폐지 혹은 축소될 것으로 보나?
"몇몇 자율형 사립고가 입시 위주나 귀족학교처럼 흘러갔다는 것에 대해 나도 비판적 입장이다. 하지만 한 번 도입된 정책에 대한 폐지 결정은 신중해야 한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하는데 교육감이 바뀔 때마다 학교 현장을 들쑤시는 것은 옳지 않다. "
―진보 교육감 중에는 '평준화 교육'를 내세우면서 자신의 자녀는 특목고나 외국 유학을 보내는 이율 배반적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조희연 후보가 서울시교육감에 당선된 데는 그 아들이 페이스북에 '우리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다'며 글을 올린 게 큰 역할을 했다. 고승덕 후보의 딸이 올린 편지와 비교됐다. 그 조 후보의 아들이 외국어고 출신이었다. 수월성 교육정책의 혜택을 본 셈이다. 평등을 강조했던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도 아들은 외국어고에 보냈다."
―진보 교육감들은 '학생인권조례'에 유독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학생 인권이 아니라 '학생 인성(人性)'이 중요하다. 배우는 학생들에게 개인이 누릴 권리만을 강조하는 것은 위험하다. 오히려 학교에서는 개인의 책무를 가르쳐야 한다. 그렇게 해야 건전한 시민을 배출할 수 있다."
―진보 진영에서 '학생 인권'을 내세울 때, 교총은 '교권(敎權) 수호'를 말했다. 하나를 고른다면 학교의 주체는 학생인가, 교사인가 ?
"교육 실천의 주체는 교사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는 교사 쪽으로 너무 기울어 있었다. 이제는 학생과 학부모로 넘어갔다. 공교육은 일대일 가정교육이 아니라 교사가 한 명이 학생 약 30~40명을 상대한다. 교사에게 합리적 권위를 주지 않으면 교육이 이뤄질 수 없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이 내세우는 '학생인권' '무상 복지' 등은 잘 먹혀드는 반면, 보수 진영의 '교권 수호' 등은 마치 '꼰대 말씀'처럼 받아들여지는 이유가 뭘까?
"솔직히 보수가 지향하는 교육적 가치는 정립이 안 돼 있다. 보수 교육의 실체가 무엇인지…, 대중에게 어필할 이슈를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어쩌면 교육계에서 '야당(野黨)'이 된 게 보수 교육을 돌아볼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