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봉 정도전, 사복시, 그리고 이마빌딩
삼봉 정도전(1342~1398)은 조선 왕조의 설계자다.
조선이 1395년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면서 수도의 설계를 담당했다.
경복궁, 종묘와 사직 그리고 한양도성을 축성했다.
<경복>은 <시경>에 나오는 "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기취이주 기포이덕 군자만년
개이경복 / 이미 술에 취하고 덕에 배불렀어라 임금이여 만련토록 큰 복을 누리소서)"에서 끝의 두
글자를 딴 것이다.
군주가 정사를 처리하고 나라의 법령을 반포하는 곳은 근정전(勤政殿), 군주가 근무하는 곳은 사정
전(思政殿), 군주가 거처하는 곳은 강녕전(康寧殿) 등 삼봉은 초기 경복궁의 주요 건물들의 이름을
지었다.도성의 성문 이름은 5덕의 원리에 따라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넣어 흥인문(興仁門), 돈
의문(敦義門), 숭례문(崇禮門), 소지문(昭智門, 나중에 숙정문 肅靖門으로 개명)으로 짓고, 중앙에는
보신각(普信閣)을 지었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남북 간 축선상에 육조거리(광화문광장)를, 동서 간 축선에 운종가(종로)를 뒀다.
삼봉은 한양을 5부 52방으로 행정구역을 나눴고, 이름도 직접 지었다.
삼봉의 집은 수진방(壽進坊)에 있었다.
육조 거리 바로 뒤편이어서 의정부는 물론이고, 궁궐과도 가까워 요지 중의 요지였다.
수진방(壽進坊)은 '장수하는 동네’라는 뜻이다.
수진방에는 수동과 송동이 있었다.
삼봉은 장수하라는 의미에서 ‘오래 살 수(壽)’를 써 수동이라 했고, 송동은 이 일대에 소나무가 많아
‘소나무 송(松)’을 썼다. 삼봉의 집은 수동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수동은 수진방 아래쪽이고, 송동은
위쪽이다. 종로구청(현재 리모델링 중)과 소방서, 서울지방국세청, 석탄회관, 이마(利馬)빌딩이 있는
곳이 수동이고, 트윈트리타워(옛 한국일보사 건물), 도화서길 건물, 일본대사관, 서머셋호텔이 있는
곳이 송동이다.
종로구 수송동에는 일대가 삼봉의 집터였음을 알리는 표석이 설치돼 있다.
광화문광장에서 종로구청 앞을 거쳐 우정국로까지의 도로 이름은 정도전의 호를 따온<삼봉로>다.
수송동은 수동(壽洞)과 송동(松洞)의 첫 자에서 따왔다.
조선 건국 이데올로기를 정립한 삼봉은 재상의 권력이 왕권을 제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삼봉의 구상에 가장 걸림돌이었던 인물이 이방원이었다.
그래서 삼봉은 태조의 후계로 태조의 두번째 부인 신덕왕후 강씨의 소생 방석(1382~1398)을 세웠다.
인재 가운데 선발된 재상이 중심이 돼 정치를 펴는 신권주의를 주장한 삼봉은 방석의 세자 책봉을
기회라고 여겼다. 방원에게 피살됐을 당시 삼봉은 측근들과 남은의 첩 집에서 술자리를 하고 있었다.
트윈트리타워 자리라고 한다. 삼봉이 수진방 수동의 집에서 산 것은 3년 남짓이었고, 역성혁명 불과
6년 후였다.
삼봉은 죽음과 동시에 역적이 됐고, 삼봉의 집은 조정에 몰수됐다.
이후 궁중에서 사용하는 수레, 말, 마구 등을 맡아보던 관청인 <사복시>, 지금의 중고교에 해당하는
관립교육기관 4부학당 가운데 하나인 <중학당>이 들어섰다.
조선후기 한양 인문지리서인 <한경지략>에는 "정도전의 집이 수진방에 있었는데 중학이 자리잡은
서당 터는 정도전가의 서당 자리요, 제용감(왕실용 옷감과 의복의 염색·직조를 담당한 관청) 터는 정
도전가의 안채 자리요, 사복시는 정도전가의 마궐(마구간) 자리인데 모두 풍수설에 맞춰 지은 것"이
라고 돼 있다.
삼봉이 명예를 회복한 것은 400여년이 흐른 뒤였다.
정조 15년(1791년)에 <삼봉집>을 수정·편찬토록 했고, 고종 2년(1865년)에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
건하면서 한양 건설의 공을 인정해 시호(문헌)를 내렸다. 정도전가의 서당자리에 세워진 중학당은
일제강점기인 1922년 수송초등학교가 들어섰다가 1976년 화재로 폐교됐고, 이후엔 종로구청이
들어섰다.
안채는 불교관리기구인 사사관리서,황성신문 사옥,농상공학교, 수진측량학교 등 수많은 기관과 단
체가 흔적을 남겼다. 정도전가의 마구간에 세워진 궁중 마구간 사복시는 일제강점기 이후 경찰기
마대로 사용됐고,광복 후 서울기마경찰대로 이름만 바뀐채 지속되다가 1972년 성동구로 이전했다.
이후 이곳에는 빌딩이 들어섰는데, 그 이름은 '말을 이롭게 한다'는 뜻의 '이마(利馬)빌딩'이다.
이마빌딩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왼쪽 상단 부분에 한자로 ‘이마(利馬)’라는 건물 이름이 표시돼 있다.
원래는 ‘이로울 이(利)’자가 아닌 ‘말 이름 이(駬)자를 쓰려 했다고 한다.
이 글자는 중국 주(🠿)나라 목왕(穆王)의 팔준마(八駿馬)의 하나였던 '녹이'(騄駬)에서 가져온 것이다.
하지만 한자가 너무 어려워 바꿨다고 한다.이마빌딩 일층 로비에 들어서면 커다란 말 조각상을 볼
수 있다.예전 말을 기르는 장소였던 점을 상기시킨다.
이마빌딩 후문 쪽엔 삼봉의 스승이었던 목은 이색의 영당(牧隱先生影堂)이 있다.
고려 말 조선 초 대학자인 목은의 영정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삼봉은 당대 지성을 대표했던 목은
에게 성리학을 배웠다. 그러나, 목은은 현상 유지를 바랐고 삼봉은 스승과 달리 변혁을 꿈꿨다.
삼봉은 목은을 죽이려고도 했다.
매주 금요일 오후엔 TV조선 유튜브에 출연하러 광화문에 간다.
차 한 잔 하자는 지인의 연락을 받고 방송 후 이마빌딩 1층 커피숍에서 보자고 청했다.
광화문대로에서 몇 걸음 들어온 것뿐인데, 조용해 편하다. 태종 이방원은 계모(신덕왕후)의 능(정릉)
병풍석을 헐고 청계천 광통교 아래에 깔아 사람들이 밟고 다니게 했듯 삼봉의 집도 짓밟았다.
비정해야 권력을 쟁취할 수 있는 것인가. 삼봉의 집터를 스쳐 간 숱한 역사를 생각했다.
ㅡ사진 이마빌딩 1층 로비에 전시된 말 조각상.
(조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