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길 듯 이어지는 진리의 소리 '에밀레~' # 마음의 종소리
'아~아 신라의 밤이여 불국사의 종소리 들리어온다'
나는 이 노래의 '불국사의 종소리'란 구절이 '봉덕사의 종소리'로 들려오곤 한다.
우리들은 '꿈꾸는 백마강'으로 꽃잎처럼 떨어진 백제의 부여 고란사 종소리를 들었고,'황성옛터'로 월색만 고요한 폐허의 고려 개성을 생각하였고 '신라의 달밤'으로 봉덕사의 종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봉덕사의 종(지금은 경주박물관 서쪽 뜰에 있다)을 삼국유사에는 "경덕왕은 황동(黃銅) 12만근을 들여 선친 성덕왕을 위하여 큰 종 하나를 주조하려 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다. 그의 아들 혜공대왕 건운이 경술년(770) 12월에 종을 완성하고 봉덕사에 모셨다. 이 절은 바로 효성왕이 738년에 성덕대왕의 복을 빌기 위해 세운 것이다. 그래서 종의 이름을 '성덕대왕 신종지명'이라 하였다. 종은 본래 경덕왕이 그 아버지 성덕대왕을 위해 시주한 금으로 주조했기 때문에 성덕대왕의 종이라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위에서 알수 있듯이 이 종을 분명하게 성덕대왕 신종이라 했고 성덕왕의 복을 빌기 위해 아들들(효성왕,경덕왕)이 만들다 완성하지 못하고 죽고 손자(혜공왕)대에 이르기까지 33년 만에 완성했다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들은 어떤가. 너무 너무 빠르다. 예전에는 하늘엔 새가 땅에서는 동물이 빨랐지만 지금은 하늘엔 비행기가 초음속으로 날아가고,땅에는 자동차,기차가 쏜살같이 달려서 그러한가. 우리 민족이 빨리 빨리하여 성공한 것이 IT산업이지만 명작들은 시간에 구애 받아서는 안 된다.
황룡사를 짓는 데는 진흥왕 때 시작하여 선덕여왕까지 93년이 걸렸고,불국사를 짓는 데는 24년 또는 39년 걸렸던 것이다.
이웃 일본만 하더라도 혼슈에서 시코쿠를 잇는 다리를 세우는 데만 해도 24년이 걸렸다. 우리 시대는 집권자가 청와대 있는 동안에 완성하려니까 다리가,건물이 와장창 무너지지 않던가.
# 봉덕사의 흔적과 에밀레종
나는 경주에 와서 온갖 역사의 흔적을 건져 올리면서 이 봉덕사는 어딜까 많이 상상해 보았다. 봉덕사 종이 북천(보문단지서 경주시내로 흐르는 하천)가에 뒹굴었다니 봉덕사도 분명 지금의 하천가 언덕에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큰 홍수가 났더라도 무거운 종이 멀리 떠내려갈 수가 없으니까. 매월당 김시습이 '봉덕사종'이란 시에 '절 무너져 돌 자갈에 묻히게 되니/ 종 홀로 황량하게 버려졌었네/ 아이들은 두들기고 소는 뿔을 비볐다네'라고 이미 과거형으로 쓴 것으로 보아서 매월당은 그렇게 전해 들었을 것이다. 매월당이 경주에 은거한 것은 31살부터 38살 때까지(1465~1471)이고 경주부사 김담이 북천 가에 뒹굴던 봉덕사종을 영묘사에 매단 것이 세조 6년(1460)이라 불과 몇 년 차이가 안난다.
이 종은 아직도 우리들에게는 성덕대왕신종이라는 공식 명칭보다 일설의 에밀레종으로 더 알려져 있다.
우리시대 사찰 건물 한 채를 짓는 데 드는 300억원도 주로 시주받아 하듯이 신라 때 이런 종을 하나 만들려면 온 신라인들의 시주가 필요했을 것이다. 어느 가난한 집에서 시주할 것이 없자 아이를 바쳤고 끓는 쇳물에 아이를 같이 넣었기 때문에 종소리가 울릴 때마다 어린아이가 엄마를 찾는 구슬픈 울음이 에밀레- 에밀레-하고 울린다는 것이다.
이 전설 때문에 가부장적 남존여비의 조선시대에 종이 수난을 당한다. 사내 아이 못 낳는 사람들이 비천상을 봉덕이의 형상으로 잘못 알고 봉덕(비천상)이가 꿇어 앉은 아래쪽의 쇠를 긁어 먹으면 사내 아이를 낳는다고 떼어갔던 자국이 지금도 선명히 남아있다.
# 감동의 명문은 가슴을 울리고
무엇이 명품이고 감동인가.
돈이 세상을 지배한 우리 시대는 자기의 옷이나 소지품과 액세서리엔 온갖 치장과 물건을 명품으로 소유하려 한다. 오직 돈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믿는 돈벌레가 자꾸 많아져 한국은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마음의 문만 열면 돈으로 얻으려는 감동과 행복이 도처에 널려 있다.
이 종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이라 하는데 무엇 때문일까를 거듭 자문자답하면서 나는 이 종을 보고 또 보고,종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다.
한국의 법종 테이프를 들으면 다른 종들은 학교종이 땡땡 울리는 경박한 소리를 내는데 이 종의 소리는 단연 돋보였고 장중하고 맑았다. 그러나 테이프는 아무리 많이 들어 보아도 끊어질 듯 이어지는 미세한 울림의 여음을 못 잡아 기계의 한계를 분명히 느끼게 하고,옆에서 이 종의 소리를 직접 들어보니 웅장하고 맑은 소리는 내 가슴을 후벼 팠고 끊어질 듯 미세하게 떨리는 여음은 잔잔하게 내 마음에 스며들었다.
보통 종은 10만 번 치면 수명이 다하는데 이 종은 2천400만 번 넘게 쳐와도 건재한 것은 무슨 비법 때문일까.
이제는 미끈하고 유려한 종의 모습만 보아도 절세의 미인을 보는 듯하고 300여 자의 명문을 읽을 때는 감동의 신음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문학적으로 유려한 글을 쓴 삼국유사의 일연 스님은 명문의 글이 번잡하여 싣지 않는다 했는데 나는 이 명문에서 짜릿한 감동을 받았다.
"무릇 지극한 도(道)는 형상 밖에 있어 이를 보려해도 그 근원을 볼 수 없으며 진리의 소리는 천지간에 진동하나 이를 듣고자 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러므로 비유의 말을 내세워 오묘한 진리를 알게 하듯이 신종을 달아 일승(一乘)의 원음(圓音)을 깨닫게 한다. 부풀어 속이 비었어도 능히 소리 내어 그 메아리를 끊지 않고 장중하여 굴리기 어렵고,그 몸체는 말려들거나 구겨지지 않는다. (중략) 경술년(770) 12월 해와 달은 한층 빛나고 음양의 기운이 고르며,바람은 부드럽고 하늘은 조용하여 신종을 이루었다. 그 모습은 태산이 우뚝 선 것 같고,그 소리는 우렁찬 용의 소리 같았으며 위로는 지극히 높은 하늘과 아래로는 지옥에 이르기까지 막힘없이 울리어,보는 이는 기이함을 칭송하고 듣는 이는 모두 복을 받을 것이다. 모든 중생이 지혜의 바다에서 함께 파도를 타고 티끌 세상을 벗어나 깨달음의 길에 이르게 하소서."
신라인들은 이때 이미 진리의 근원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을 만들 수 있었으리라.
종의 몸으로 부처의 몸을 삼았고 종소리를 부처의 음성으로 삼았기에 모양과 소리로써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였던 것이다. 나는 이 명문을 언제 읽어도 감동의 신음소리가 흘러나온다.
- 지역의 빛으로 독자의 희망으로 (부산일보 창간 60년) -
첫댓글 에밀레종의 사연자체가 감동을 뭉클하게 한 옛적이 생각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