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자유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셨다.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形象)을 따라 지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각기 자신이 선택한 바에 대한 책임은 각자가 온전히 져야 만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자유의 속성이다. 책임이 없는 자유는 자유가 아닌 방종으로 방종은 모두를 파멸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고로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하여 하늘의 축복을 누리고자 한다면 반드시 세상의 온갖 유혹을 극복하고 진리의 길로 들어서야만 한다. “오직 각 사람이 유혹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야고보서 1장 14-16절).
그러므로 사망에 들지 않는 근본적인 방도는 바로 우리의 욕심 즉 탐심(貪心)을 극복해내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의 탐심 즉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승의 자랑을 극복하려 한다면 반드시 그 마음을 갈고 닦아 지키는 길 외에는 없다. “삼가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 이는 잠언 4장 23절의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내 마음을 갈고 닦는 일은 그 무엇보다 소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연고로 백강 이경여(李敬輿) 선생은 국가의 원로로서 효종대왕에게 자신은 물론이요 나라를 잘 이끌기 위해서는 임금의 마음을 스스로 수양하여 성심(聖心)을 길러야하고 이를 위해서 평소에 성학(聖學)에 힘쓸 것을 가장 강조하여 다음과 같이 권면한 것이다.
『이른바 성심(聖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대개 본심이 지켜지지 않으면 덥지 않아도 답답하고 춥지 않아도 떨리며 미워할 것이 없어도 노엽고 좋아할 것이 없어도 기쁜 법이니, 이 때문에 군자에게는 그 마음을 바루는 것보다 중대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바로 잡히고 나면 덥더라도 답답하지 않고 춥더라도 떨리지 않으며 기뻐할 만해야 기뻐하고 노여울 만해야 노여우니, 주자(朱子)가 이른바 대근본(大根本)이라는 것이 이것입니다. 함양하는 방도도 불씨(佛氏)처럼 면벽(面壁)하거나 도가(道家)처럼 청정(淸淨)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발동되기 전에 지키고 발동된 뒤에 살피며 미리 기필하지 말고 잊지도 말아 보존해 마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비고 밝은 한 조각 마음이 그 속에 거두어져 있어 북돋는 것이 깊고 두터우며 이(理)가 밝고 의(義)가 정(精)하여 경계하고 삼가고 두렵게 여기는 것이 잠시도 떠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근본이 이미 굳어져서 어느 것을 취하여도 본원(本源)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지키고 버리는 사이에서 주재(主宰)하는 것이 없으면 마음이 이미 없는 것이니, 어찌 외물(外物)에 대응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인(仁)을 숙련하는 공부가 어찌 일조일석에 되는 것이겠습니까.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천덕(天德)·왕도(王道)는 그 요체가 홀로 있을 때를 삼가는 데에 있을 뿐이다.’ 하였습니다. 홀로 있을 때를 삼가지 않아서 유암(幽暗)하고 은미(隱微)한 데에 문득 간단(間斷)되는 곳이 있다면 어떻게 날로 고명(高明)한 데에 오르겠습니까. 당 태종(唐太宗)이 일찍이 ‘임금의 한 마음은 공격받는 것이 많다. 조금이라도 게을리하여 그 하나만 받아들이는 날이면 위망(危亡)이 따른다.’ 하였는데, 이는 대개 그 자성(資性)이 밝고 트여 이 마음이 희미한 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인(聖人)의 극치(極治)라는 것도 결국은 이 길 외에 따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중주(中主)의 소강(小康)도 이를 빌려서 다스렸을 것이니, 다니기가 험한 산길에서 애쓰고 초목이 무성한 곳에서 배회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이른바 성학(聖學)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덕을 밝히려는 옛사람이 마음을 바루는 것을 근본으로 삼기는 하였으나, 본심의 착함은 그 체가 지극히 작은 반면 이욕(利欲)이 공격하는 것은 번잡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성색(聲色) 취미(臭味)와 완호(玩好) 복용(服用)과 토목(土木)을 화려하게 하고 화리(貨利)를 불리는 일이 잡다하게 앞에 나와 거기에 빠지는 것이 날로 심해집니다. 그 사이에 착한 꼬투리가 드러나 마음과 몸이 고요한 때는 대개 열흘 추운 중에 하루 볕 쬐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 학문을 강명(講明)하여 이 마음을 개발(開發)하지 않으면, 또한 어떻게 이 마음의 바른 것을 회복하고 이욕의 사사로운 것을 이겨 만화(萬化)의 주재가 되고 끝이 없는 사변(事變)에 대응하겠습니까.
이른바 강학(講學)은 장구(章句)나 구독(口讀)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성인의 가르침을 깊이 몸받고 그 지취(旨趣)를 밝혀서, 자신에게 돌이켜 의리의 당연한 것을 찾고 일에 비추어 잘잘못의 기틀을 증험함으로써,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참으로 아는 동시에 미리 생각하여 익히 강구하고 평소부터 대책을 세워두어야 합니다. 그러면 경중을 재제(裁制)하는 일을 거론하여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신기한 것만 일삼고 고원(高遠)하기를 힘쓰며 몸과 마음에 절실한 생각이 없이 옆으로 굽은 길을 달려간다면, 버려두고 게을리하는 자와는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이치가 이미 밝지 못하니, 어찌 정치에 보탬이 있겠습니까.
또 시강(侍講)하는 관원은 실로 옛 사부(師傅)와 같은 직임입니다. 이 때문에 세종(世宗) 때의 집현 학사(集賢學士)인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김종직(金宗直) 같은 무리는 다 한때의 선발을 극진히 하여 진심으로 맡겼으므로 물고기와 물처럼 합치하여 예절은 간이(簡易)하면서 성의는 서로 미더웠습니다. 총명이 어찌 넓어지지 않을 수 있으며 위 아래가 어찌 믿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지금은 인재가 적어서 그러한 몇몇 신하들을 갑자기 얻기는 쉽지 않겠으나, 또한 마땅한 사람이 없다 하겠습니까. 임금이 늘 유신(儒臣)을 가까이하지 못하는 것은 그 예절이 엄격하여 접견할 때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군신은 부자와 같은데 어찌 번잡한 격식으로 대해야 하겠습니까. 세종 때의 옛일처럼 때 없이 출입하고 강독할 때에는 조용히 모시고 차분히 점점 닦아가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날마다 궁녀 환시를 가까이하는 것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이상은 1653년 효종4년 7월2일 백강 이경여 선생이 “재변(災變)을 이겨내는데 힘써야할 21항의 상차문(上箚文)”중에 으뜸으로 나오는 말씀이다. 오늘날에도 어찌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2024. 3.24. 素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