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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인터넷 전자족보
 
 
 
카페 게시글
자유 게시판 스크랩 문암 외가(진주강씨)의 역사에 대한 고찰 <칼럼니스트 문암 박관우>
姜明求(통계공-청풍공-忠烈公종회) 추천 0 조회 145 17.07.14 01:57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운영자 破天荒 공지입니다..

이 곳은 진주강문 현종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장입니다.

많은 활동만이 진주강문의 기상을 높히는 길임을 명심하시고 활동 많이 해 주세요..

계사년 뱀의 해! 

 비상하시어 진주강문의 대명을 드높히는 한 해 되길 진정으로 바랍니다.. ^^

 

홈페이지:http://www.jinjukang.org
 

 

문암 외가의 역사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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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晉州姜氏) 문중의 후손인 참판공(參判公)은 통계공(通溪公) 휘 회자 중자(淮仲)의 차남이며, 휘는 안자 복자(安福)이시며 9형제를 두셨는데 전부 이(利)자 항렬로 되어 있어서 흔히 9리파라 하였는데 바로 이러한 9리파 후손들이 번성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여기서 필자의 외가는 장파(長派)에 해당되며, 휘는 영선군(永善君) 이자 찬자(利纘)가 되시니 필자의 외20대 조부가 되신다.


여기서 영선군의 5대손이 수자 곤자(秀昆)라는 분이신데 이 분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護從)하였으며 벼슬은 돈녕부 첨정(敦寧府 僉正)에 이르렀다.


아울러 이 분의 증손자가 바로 병마절도사를 역임하셨던 만자 석자(萬碩)라는 분인데 족보의 기록을 보면 외11대 조부는 우암 송시열 선생이 천거를 하셨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으셨다고 하며, 당당히 무과에 급제하시어 종2품인 병마절도사에 이르셨는데 흔히 병사라고도 불리는 이 벼슬은 오늘날에 군단장에 해당하는 고위직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외11대 조부 이전의 선조들은 서울 근방인 양주에서 대대로 거주하신 것으로 되어 있는데 어떠한 유래인지는 모르겠으나 바로 병사를 역임하신 외11대 조부께서 양주에서 당시 평택군 포승면 석정리 행락동 (현재 위치-평택시 안중읍 성해리 행락동)으로 이주하시면서 외가댁이 행락동에 거주하시게 된 것이다.


한편 외11대 조부는 사후에 병조판서의 증직을 받으셨는데 이러한 판서공의 손자인 계자 주자(啓周)는 호조좌랑에 이르렀으며, 그 아들인 문자 현자(文顯)는 호가 농은(農隱)이며, 벼슬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이르렀는데, 현재 유고(遺稿)가 전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필자의 외5대 조부에 대하여 소개한다면 휘가 동자 영자(東永)이시며,

1824년생으로서 처음에 선공감역(繕工監役)으로 벼슬을 시작하셨으며, 이후 정3품 돈녕부 도정(敦寧府 都正)과 종2품 지돈녕사(知敦寧事)를 역임하셨다.


외5대 조부는 1901년에 향년 78세로 임종하셨는데, 여기서 정확한 시기는 모르나 안타깝게도 외가댁의 터전이었던 행락동 한옥 99칸에서 화재가 일어나 당시 외고조부께서 가솔들을 이끄시고 당진군 신평면 남산리 궁터라는 곳으로 이주하시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몇백년 동안 세거하시던 행락동에서 화재가 일어나서 정든 터전을 떠나야 하셨으니 외손으로서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가 없다.


끝으로 필자는 이러한 가문의 외손이라는 점에 대하여 무한한 자부심을 느끼며, 앞으로 당진으로 이주하기 전의 세거지였던 행락동의 역사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추적할 생각이다.

<칼럼니스트 문암 박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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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첫댓글 문암 박관우 선생께서 우리카페에 최근 며칠전 가입하셨는데 어이없게도 뜻밖의 오해와 박대를 받으셨군요
    강기중 회원님께선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사실확인도 하시지 아니하고 이런 실례의 글을 올리셨는지?
    속히 올린글 삭제와 사과의 글을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저의 폰엔 <문암> 선생은 <박관우 : 외가 진주강씨>라 뜨고 있지요
    진주강씨박사공파대동보 1994년판 24권P839의 참판공(安福)파 후손 姜信萬의 사위 朴贊道(반남인)님의 아들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카페글 전카페지기 강호흔님께서 16.03.15 소개하신 적이 있는
    <17세기 병마절도사 강만석 연구 - 통계공/참판군/영선군 5대손 수곤의 증손자>글도 있지요

  • 문암 선생의 <외가 진주강씨>글을 인터넷에서 찾다가
    우리 진주강가 법전문중의 파천황님께서 스크랩해 두신 글을 다시 옮겼습니다.

    저도 가끔 타성 싸이트에 외가/진외가/처가등 해당카페와의 인연을 밝히며
    회원가입을 신청하게되면 대개의 사이트마다 반갑게 환대와 정회원자격도 주셔서
    그 곳의 좋은 자료를 열람 또는 스크랩등 자료수집을 수월하게 하기도 합니다.

  • 17.07.15 08:56

    @姜明求(통계공-청풍공-忠烈公종회) 저의 칼럼을 카페에 소개하여 주신 강명구 선생님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 뿌리 찾기는 존재의 근원에 대한 탐닉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근원을 찾는 의구심이야말로, 자신을 바로 아는 일입니다. 좋은 글을 이제야 읽었습니다.

  • 17.08.22 15:14

    저의 칼럼을 읽어 주시고 좋은 댓글을 올려 주신 강주원 선생님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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