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처(到處)에 지옥이 있고 극락이 있지
불락이변거(不落二邊去) 도무착각처(到無着脚處)
홀봉무위인(忽逢無爲人) 정시본여래(正是本來汝)
양변[兩邊]에 떨어지지 않고 발붙일 수 없는 곳에 이르러
홀연히 함-이 없는 사람을 만나면 그것이 바로 본래 “너”니라.
금강산(金剛山) 보운암(普雲庵)에서 석두(石頭)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스님은
오로지 “생사의 고뇌에서 해탈하겠다”라는 일념으로 수행 정진에 몰두했다.
1927년 여름. 금강산 신계사(神溪寺) 미륵암에서 안거(安居)에 들어갈 때
스님은 대중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반야의 인연이 엷은 데다가 늦게 중이 되었으니 한가한 정진은 할 수 없습니다.
입방선(入放禪)도 경행(經行)도 하지 않고 줄곧 앉아 정진(精進)하겠습니다.”
이후 스님은 한 철 동안 미동도 없이 화두를 참구(參究)했다.
어느 날 공양 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엉덩이 살이 헐어 진물이 흘렀다고 한다.
‘절구통 수좌(首座)’라는 별칭이 생긴 것도 이 무렵이다.
1931년 스님은 오도(悟道) 경지(境地)에 이르렀다.
깨닫기 전에는 나오지 않겠다며 흙으로 입구를 봉했다.
하루 한 끼 공양(供養)을 들여보낼 창문 하나와 용변을 처리할 수 있는 구멍을 뚫었을 뿐이다.
방석 석 장과 입은 옷 하나로 18개월의 ‘전투’를 거쳐
화두(話頭)를 타파(打破)한 후 당시 심경을 시(詩)로 옮겼다.
해저연소녹포란(海底燕巢鹿抱卵)
화중주실어전다(火中蛛室魚煎茶)
차가소식수능식(此家消息誰能識)
백운서비월동주(白雲西飛月東走)
바다 밑 제비집에 사슴이 알을 품고
타는 불 속 거미집엔 고기가 차 달이네.
이 집안 소식을 뉘라서 알랴.
흰 구름은 서쪽으로 달은 동쪽으로.
효봉(曉峰)의 사상은 1958년 동화사(桐華寺) 금당선원에서 내린 법어(法語)에 잘 드러나 있다.
"계(戒) 없이 혜(慧)만 닦으면 건혜(乾慧)이므로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고,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은
고불고조(古佛古祖)의 출입문이므로 이 길이 아니면 외도법(外道法)이다.
또 정중(定中)에 화두를 참구(參究)하는 사람은 정과 혜를 함께 닦는 것이고,
정력(定力)이 없으면 화제가 자주 끊어진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아란 존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백 년 동안 혜(慧)를 배우는 것이 하루 동안 정(定)을 익히는 것만 못하다
[百年學慧不如一日習定]고 하셨으니, 부처님 말씀을 믿지 않고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가.
정중(定中)에 화두를 특별히 깨쳐야만 생사를 벗어날 수 있는데,
정력(定力)이 없는 혜(慧)는 공중의 누각과 같다."
1959년 7월 15일[陰] 동화사 금당선원(金堂禪院)에서
효봉 스님은 수좌들의 용맹정진(勇猛精進)을 당부한 법어를 했다.
“그대들은 밥도둑이 아닌가. 두 도둑이 집안의 보배를 훔쳐 가려고 하니
취모검[吹毛劍]으로 육문[六門]을 지키되 용감하기 적병을 대하듯 해야 한다.
적(賊)을 막지 못하면 저들로부터 나 자신이 피해(被害)를 당할 텐데
어찌하여 스스로 방일(放逸)한 고. 졸음과 망상(妄想) 두 마구니가 침입하지 않던가.
남의 시은(施恩)을 지고 그 은혜를 갚겠는가.
그림의 떡이 능히 배부르게 하던가?
범부가 성인이 되려고 하는데 누가 막던가?
삼도(三途)의 괴로움이 그대의 집인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닦지 않는가.
신도들은 듣고 믿으라. 믿음[信]이 도(道)의 근원이요 공덕(功德)의 어머니이니라.
그리고 비구니들에게 한마디 하겠는데, 무행승(無行僧)을 따르지 말라.”
효봉 스님께 한 신도가 여쭈었다.
“스님, 사람이 살아생전에 좋은 일 많이 하면 극락(極樂)에 가고,
나쁜 일 많이 하면 지옥(地獄)에 간다고들 하는데 정말인가요?”
“아무렴 그렇고말고.”
“그러면 정말로 극락과 지옥이 있다는 말씀입니까요? 스님?”
“아무렴 있고말고.”
“사람이 죽은 뒤에 저세상에 가면 거기에 지옥도 있고 극락도 있다, 그런 말씀입니까? 스님?”
“아니야. 지옥과 극락은 저세상에 있는 게 아니고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있어.”
“아니 스님, 이 세상 어디에 지옥과 극락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어디긴 이 사람아. 도처(到處)에 지옥이 있고 도처(到處)에 극락이 있지.”
효봉스님이 금강산에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이 당시에도 불가(佛家)에서는 참선하는 수좌들은
교학(敎學)을 공부하는 승려들을 ‘학승’이라 부르며 업신여기는 경향이 있었고,
교학을 공부하는 스님들은 참선(參禪)하는 수좌(首座)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어떤 것인지, 교학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가부좌만 틀고 앉아 부처가 되겠다니 참선만 해서 어떻게 깨달을 것이냐?’ 하는 그런 시선이었다.
바로 이런 분위기가 팽배했던 때, 하루는 유명한 교학승(敎學僧)이 효봉 스님께 말을 걸었다.
말하자면 ‘참선만이 제일이다’하는 선승에게 학승이 시비를 한 번 걸어본 셈이었다.
“스님, 소승이 알기로 부처님의 가르침인 교학을 익히는 것이나,
참선 수행을 해서 불도(佛道)를 깨닫는 것은
큰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 것과 같다고 여겨지옵니다.”
“그, 그래서요?”
“저희가 교학을 공부하는 것은 그물을 쓰는 법을 익히는 것과 같다고 생각되옵니다마는
선가(禪家)-에서는 어찌하여 교학(敎學)을 도외시한 채
그물 쓰는 법을 배우지 아니하고 고기를 잡을 수 있다고 고집하시는지요?”
“스님께서 비유를 아주 잘 드셨소이다.”
효봉 스님은 우선 긍정(肯定)하셨다. 그리고 천천히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교학만 고집하는 분들은 그물로 고기를 잡으려 들겠지요.
헌 데, 선가(禪家)-에서는 바닷물을 통째로 한입에 삼켜버리니 무슨 그물이 따로 필요하겠소이까?”
“예, 예…? 바…바닷물을 한입에 삼켜버린다고요?”
효봉 스님 - 시중법어(示衆法語)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