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공포는 왜 올까요?
모든 선각께서는 이렇게 가리키셨습니다.
두려움과 공포의 정체는
그 대상에 대한 ‘정보와 지식의 부족’이라고요
죽음에 대한 공포는 죽음에 대한 정보와 지식의 부족에 해당합니다.
‘의식이 있는 장소’와 ‘의식의 개수’에 대한 앎은,
삶의 무의미와 죽음의 공포를 녹여버립니다.
의식은 몸 안에 있지 않고,
오히려 몸이 의식 안에 있다는 사실, 이것이 진실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의식의 개수는 분할이 불가능한 하나입니다.
우리는 벗어나기가 매우 힘든 크나큰 최면에 걸려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전에도 사람이었고
지금도 사람이고
앞으로도 사람일 것”이라는 최면입니다.
이렇게 묻겠지요.
“그럼 우리가 사람이 아니고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반문합니다.
“그럼 ‘의식하는’ 우리가
겨우 20만 년 전에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했다는
시중의 말을 믿으라는 것인가요?”
“의식하는 우리가 공룡이 지구를 걸어 다닐 때는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것인가요?,
빅뱅이 일어날 때 우리는 없었다는 것인가요?”
“우리가 바로 공룡이었고, 빅뱅이었고, 빅뱅 이전이었고,
인류 멸종 후 나타날 의식 존재가 바로 우리가 아닌가요?”
“이것이 우리의 직관 아닌가요?”
우리 진짜 정체는 비육체적 의식입니다.
We are nonphysical consciousness.
우리는 곧 빅뱅 이전이고,
빅뱅이고, 공룡이고, 인류이고,
인류 이후의 그 존재입니다.
우리가 사람 인류도 아닐진대,
무슨 관찰자니
개인적 깨달음이니 체험이니
견성이니 그런 것이 다 무슨 소용입니까?
꿈도 꾸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것은 있지도 않은 엉터리입니다.
선남선녀를 잡아먹는 귀신입니다.
듣지도 않았습니까?
모든 붓다께서는
“무아”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오시기로 한
바로 그 메시아입니까?”라는 물음에,
다만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눈먼 사람이 보고,
귀먹은 사람이 듣고,
죽은 사람이 일어나고,
좋은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라고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선각은
일체 善을
하나인 님께 돌렸습니다.
“내가 했다, 내가 깨달았다, 내가 관찰자다,
내가 부처다, 내가 메시아다”라고 하지 않으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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