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본당 사목 소임을 맡고 보니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두렵고 떨린다. 지난날 보좌 신부로 2년, 시골 본당의 주임으로 1년을 보낸 것이 본당 생활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전주시와 완주군의 경계에 놓인 문정본당(전주교구)은 도농 복합 공동체로서 구역이 상당히 넓고 연령층이 다양하다. 코로나19 상황에도 불구하고 성당의 빈자리를 메꾸어 주시는 나이 지극하신 열렬한 형제자매님들에게 마냥 고맙다. 하지만 여느 본당들처럼 이 본당도 재정 문제뿐만 아니라 분위기도 녹록치 않다.
오랫동안 방치된 움푹 파인 콘크리트 마당, 표면에 불안정하게 노출된 철사, 화단으로 가려진 성당 입구로 향하는 계단 턱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어느 날 콘크리트 마당에 차를 주차한 후에 미사에 참례하고 와서 보니 자동차 바퀴에 바람이 빠져 있더란다. 아, 노출된 철사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자동차 바퀴! 위험하다고 큰 화분으로 계단 턱을 가려놓았더니 겨우내 성당에 오르내리는 나이 지극하신 자매 몇 분이 그 너머를 보지 못하여 미끄러지고 넘어져 다쳤단다.
사회의 약자에 대한 교회의 배려는 언제나 변함이 없다. 코로나19 상황을 들먹이면서 본당 예산이 없다는 몇몇 신자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어르신들과 어린이들, 특히 전동휠체어에 의지하는 장애인들이 다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마당을 아스팔트로 포장하고 계단을 데크로 설치하였다. 그러고 나니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환호하며 기쁘게 맞이하는 수많은 군중처럼(마태 21장 이하) 많은 이들, 특히 나이 드신 분들과 어린이들, 그리고 장애인들이 무척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다.
장애물이 없어지면서 안전하고 편안하게 성당에 오르내릴 수 있고 드나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 16,23). 1930년생의 임○○ 아우구스티노 형제는 이웃 본당에 속해 있지만 데크가 설치된 우리 성당으로 나오신다. “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창세 12,1ㄴ) 하신 주님의 말씀에 따라 길을 떠난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을 지니신 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고향을 떠나 신앙을 전하기 위해 열성적으로 활동하신 분이란다. 젊은 날에는 본당 신부의 지시대로 회랑 선교사처럼 한곳에 머물지 않고 오지를 다니며 신앙을 전하였단다.
무려 200여 명에 가까운 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받게 하였단다. 구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일곱 번이나 성경 필사를 하였고 또다시 필사에 도전하신단다. 그분은 입을 뗄 때마다 ‘감사! 감사! 또 감사!’를 외치신다. “신부님, 데크를 설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늙은이들이 성당에 안전하게 드나들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홀로 기초 수급자로 임대주택 아파트에 살면서도 며칠 전에는 그동안 생활비를 꼬박꼬박 모아 성당 건립에 보탬이 되고 싶다며 몇 백만 원을 사무실에 기부하셨단다.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모두 다 헌금함에 넣었던 가난한 과부의 이야기(마르 12,41-44 참조)가 떠오른다.
이 어렵고 힘든 코로나 상황에도 하느님께 모든 영광과 찬미와 감사를 드리고 가진 것을 모두 하느님께 봉헌하며 기쁘게 사신다는 그분 말씀을 귀담아들으며 갑자기 얼굴이 부끄러워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 안봉환 신부는… 1997년 사제품을 받은 후 교황청립 우르바노대에서 교의신학 석사, 교황청립 성 안셀모대에서 전례학 석·박사, 교황청립 라테라노대 아우구스티노 교부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주 가톨릭신학원장, 광주가톨릭대교수,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홍보국장 등을 거쳐 현재 전주교구 문정본당 주임으로 사목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