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6:15-16 거룩한 자들을 섬기는 일에 자신들 스스로를 배치한 스데바나 가문과 같은 사람들에게 복종하고 함께 수고하는 사람들에게 복종하라.
이전 말씀에서는 "깨어 있으라! 믿음 안에 굳게 서 있으라! 남자다우라! 힘을 내라! 모든 일을 사랑 안에서 하라!"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거룩한 자들을 잘 섬기는 일에 몸을 바친 사람들에게 순종하라는 내용이다.
15절은 그러나 형제들아 내가 여러분에게 권한다는 말로 시작한다. 여기서 권면한다는 말은 1:10절과 마찬가지로 부탁한다는 의미이다. 15-16절은 원어에서 한 문장이기에 그 부탁은 16절에 나오는 이 같은 자들에게 복종하라는 것이고 스데바나의 가문에 복종하라는 뜻이 아니다. 새번역은 가정으로 번역했는데 가정보다는 가문이라는 말이 적합할 것이다. 스데바나의 가문은 하나의 본보기이기에 이 같은 사람들에게 복종하라는 것이다.
스데바나의 가문이 어떤 사람들인가? 먼저 아가야의 첫 열매라고 했다. 아가야는 여기서 아가야는 아테네와 고린도를 포함하는 그리스 남부 지역을 말한다. 당시에는 고린도가 아가야 지방의 중심도시였다. 스데바나의 가문은 고린도 인근에서 맨 처음 주를 영접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첫 열매라는 말은 그 이후에 계속해서 많은 열매가 맺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스데바나의 가문은 많은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는 첫 열매라는 뜻이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여기서 거룩한 자들이란 문맥상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다니며 배웠고 죽으심과 부활을 목격한 유대인 신자들이 흩어져 지중해 연안에서 교회 지도자들이 된 사람들을 뜻한다. 만약 거룩한 자들이라는 말이 모든 성도를 뜻한다면 형제들이라고 했을 것이다. 또 새번역에서 “몸을 바친 가정”이라고 번역하고 개역에서는 작정한 사람들이라고 번역한 말은 원어에서는 명령하여 배치했다는 뜻이다. 군대에서 상관이 부하들에게 명령하여 각각 적절한 장소에 배치하는 장면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을 명령하여 배치한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들을 배치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복음 전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을 섬기는 직무에 스스로 자신들을 배치했다는 뜻이다.
스데바나의 가문은 분명히 1:16에 나온 바울이 침례를 준 사람들이다. 아마도 이 사람들은 바울에게 고린도 교회의 분쟁의 소식을 알려 준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또 이 사람들은 바울이 돌아오기 전에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스데바나 가문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존경받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빌립보서 4:22절에서도 가이사의 집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집이라는 말은 가족과 노예들까지 모두 포함하던 개념으로 쓰던 말이기 때문이다. 물론 집이라는 말만으로 그렇게 추측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고 단순히 스데바나의 가정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맥을 보면 스데바나의 가문은 사회적으로 높은 사람들이었지만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 종의 자세로 거룩한 자들을 섬겼다는 의미일 수 있다.
스데바나 집 사람들은 하나의 예로 든 것이다. 스데바나 가문 사람들 같은 사람들 모두에게 복종하라는 것이다. 왜 이 사람들을 소개하면서 이런 사람들에게 복종하라고 하는가? 그 이유는 사회적으로 존귀한 신분인 그들이 종의 모습으로 거룩한 자들을 섬기는 일에 전적으로 헌신했기 때문이다. 만약 스데바나의 가문이 평범하거나 낮은 신분의 사람들이었다면 당시 사람들의 관점에서 섬기는 일을 당연하게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은 모두에게 특별한 본보기가 되었기에 한 말일 것이다. 바울은 스데바나의 가문 사람들처럼 종의 모습으로 거룩한 자들을 섬기는 자들에게 복종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바울은 모든 성도들에게 이런 사람들을 높여줘야 한다고 부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를 위하여 자신들을 스스로 낮추고 복종하였으므로 교회 안에서 지도자로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스데바나의 가정 사람들에게만 복종하라는 말이 아니다. 스데바나와 같이 자기를 낮추고 거룩한 자들을 섬기며 교회를 아름답게 세워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종하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고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복종하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겸손하라는 말씀을 들으면 자신이 겸손해져야 하는데 남을 가리키면서 겸손하라고 하니까 문제이다. 스데바나의 가문 사람들 같은 경우는 사회적으로 존귀한 사람이 스스로 겸손히 종의 모습으로 교회를 섬기고 거룩한 자들의 사역을 도왔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스스로 자신을 낮춘 사람들이다. 오늘날 우리도 세상에서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에게 스스로 낮추라고 해서는 안된다. 그들 스스로 주를 위해 낮춘 사람들이기에 우리는 그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높여주어야 하고 그들의 권위에 복종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돈이 많거나 학식이 높거나 세상 지위를 가진 사람들은 교회에서도 스스로 높은 자리에서 섬김을 받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경우 스스로를 높이려 하다가 다툼이 생기고 교회의 분열이 생긴다. 이런 세상적인 사회 질서가 교회 안에서도 그대로 통한다면 그것은 교회의 모습이 아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높고 존귀한 자들이 스스로를 낮추어 섬김의 본을 보이는 곳이다. 이것이 높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낮은 이 땅에 오셔서 스스로 종의 모습으로 섬기시되 죽기까지 하신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주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따르라고 한 것이 바로 이런 의미이다. 이렇게 주님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들이 존경을 받는 곳이 교회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세상에서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에게 복종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한 형제요 자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세상적으로는 높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거룩한 사람들을 도와 겸손히 섬길 때는 그런 사람들에게 반드시 복종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의 본을 따라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낮춘 자들은 나중에 하나님께서 높이실 것이기 때문이다.
본인이 목회자가 되기 전 한국에서 다니던 교회에서는 사회적으로 정말 잘 나가던 분들이 많이 있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과학자들이 있었고 의사들과 특허청의 고위직 공무원들도 상당수 있었다. 하지만 이분들이 교회에 오면 형광색 조끼를 입고 안전 지시봉으로 주차 안내를 했다. 어떤 분들은 동료들이 선망하는 보직을 갖고 있었는데 제자훈련에 빠지지 않기 위해 해외출장이 잦은 보직을 포기한 이들도 있었다.
세상적으로는 잘 나가는 분들이라고 해서 교회 안에서까지 복종할 필요가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 주님 안에서 모두가 형제 자매이고 우리 주님께서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 질서가 교회를 지배하도록 두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그런 분들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자기를 낮추고 복음 전하고 교회를 섬기는 자들을 도와 헌신적으로 봉사하신다면 그런 분들에게 복종해야 한다. 교회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곳이다. 하지만 주님께서 본을 보이신 것을 따라 스스로 자기를 낮추고 교회를 헌신적으로 섬기는 분들이라면 복종해야 한다. 장차 우리 주님 다시 오실 때에 우리 주님께서도 이런 자들을 높여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주님 오시길 기다리면서 사는 성도들이 실천해야 할 사랑의 의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