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79년 전 오늘(7월 19일) 독립운동가 여운형 선생이 암살당했습니다.
몽양 여운형(1886~1947)은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에 헌신하고
광복 뒤에는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좌우합작운동을 주도한 분입니다.
선생은 1919년 도쿄를 방문해 일본 고위 관료들과 내외신 기자들 앞에서
조선 독립의 정당성을 당당히 연설하여 큰 반향을 일으킨 대단한 분이었습니다.
선생은 1945년 8월 15일 광복 직후 조선총독부로부터 행정권을 이양받아
건국준비위원회(건준)를 조직하고 치안과 행정을 담당하여 초기 혼란을 수습했던 분입니다.
▲ 광복 직전의 여운형 선생(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제공)
그러던 선생은 1947년 7월 19일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극우파 청년의 흉탄에 맞아 세상을 떴습니다.
선생의 죽음은 온 겨레에게 큰 슬픔을 안겼으며,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인민장으로
장례가 치러져 약 60만 명의 인파가 운집했을 정도였습니다.
“조국의 품에 안겨 모두가 평등하게 사는 것, 내가 그게 바라는 소원이었다.”라고 했다는 선생은
당시 김구와 이승만을 앞서는 대단한 겨레의 지도자였습니다.
당시 미군정 관리였던 리처드 로빈슨은
“미 국무부는 여운형을 당시 광복 이후 조선에서 인기 있고 유능한 지도자로 봤다.
그는 권력을 추구하지 않고, 국민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라고 했으며,
1946년 3월 소련 정보 보고서는 ”통일 임시정부의 수상 후보는 여운형이다.“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또 이기형 시인은 ”미군이 들어오기 전까지 건국준비위원회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어.
그때 군정청에서 여론조사를 할 때도 몽양이 1등을 할 정도였으며,
건국준비위원회의 인기는 대단했어.“라고 2005년 KBS 다큐에서 말했습니다.
▲ 여운형 선생 장례식 모습. 광화문 네거리에서 동대문 운동장 장례식장까지 인파가 넘쳐났다.
우리 겨레 처음이자 마지막 '인민장'으로 치러졌다.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