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r5QRyuU0fRg?si=2Rse8cF58VDhXrrq
초기 기독교의 두 거두인 터툴리안(Tertullian)과 오리겐(Origen)은 에녹서(1 Enoch)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취했으나, 그 정도와 방식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 1. 터툴리안 (Tertullian, 약 155~220년)
터툴리안은 에녹서를 사실상 성경(Scripture)과 동등한 권위로 인정하려 했던 가장 강력한 옹호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인정 근거: 그는 유다서가 에녹서를 인용했다는 사실을 가장 큰 근거로 삼았습니다.
유다서가 성경이라면, 그가 인용한 에녹서 역시 권위가 있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주요 주장: 그의 저서 『여성의 복장에 관하여』(De cultu feminarum)에서 에녹서를 "성령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 언급하며, 유대인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그리스도에 대한 예언 등) 때문에 이 책을 정경에서 제외했다고 비판했습니다.
## 2. 오리겐 (Origen, 약 184~253년)
오리겐의 입장은 터툴리안보다 훨씬 복잡하고 신중했습니다.
인용과 권위: 오리겐은 자신의 저술에서 에녹서를 자주 인용했으며, 일부 대목에서는 영적 유익이 있는 책으로 평가했습니다.
정경성에 대한 유보: 하지만 그는 에녹서가 당시 교회들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정경(Canon)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입장 변화: 그의 저서 『원리에 관하여』(De Principiis)에서는 에녹서를 권위 있게 인용하기도 했으나,
후기 저작인 『셀수스에 반대하여』(Contra Celsum)에서는 "교회에서 에녹서가 성경으로 온전히 읽히지 않는다"며 그 권위를 낮게 평가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 요약 및 결론
결과적으로 두 교부 모두 에녹서를 깊이 연구하고 인용했으나,
터툴리안은 **'성경'**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파격적인 입장이었고,
오리겐은 '참고할 만한 중요 문헌' 정도로 대우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이후 4세기경 정경화 과정이 확정되면서 에녹서는 에티오피아 정교회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독교 전통에서 외경으로 분류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