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기일에는 혼자 산소에 다녀왔다. 오늘은 할머니 기일이라 또 산소 가려고 마음 먹었는데......
이상하게 움직이기가 싫어서 아침 9시경에 할매 영정 사진 세워놓고 위령기도 바치고 묵주기도 바치고 점심먹고
노닥거리다 15시경에 위령기도 바치고 묵주기도 바치고 저녁 먹고 또 위령기도 바치고....
영정사진을 자세히 보니 이마 부위가 여동생과 비슷하고 눈매와 입은 아버지 비슷하고 그냥 차분하고 얌전하게 생기셨다.
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625가 나고 아버지는 혼자 서울에 머물다 어찌 기회가 되서 대전으로 가셨고 할머니는 대군가 어디
계시다 피난을 가느라고 차를 타고 가시다 공격을 받아 차가 다리 아래로 굴러내렸고 그래서 대구 어느 병원에 입원해 계시다고
연락이 와서 아버지가 가서 뵈니 아버지를 알아보시고 웃음을 지으셨단다. 근데 겉에는 상처가 하나도 없는데 이상하게 배가 볼록
올라왔고 의사 말로는 내출혈이라고 하더란다. 아버지를 알아보시고 웃음 지으신게 마지막 의식이 있는 순간이었고 조금있다 스르륵~가셨단다. 50대 중반이셨다고 했다. 나보다 젊은 나이에 그렇게 가신 것이다. 아버지는 가끔 할머니 이야기를 하시면서 할머니 생각에 잠기시곤 했다. 장례 치루고 조금 있다 바로 광주로 가서 보병학교 들어가서 교육 받고 소위 계급장 달고 참전 하셨는데 대부분이 최전선에 보내져서 훈련 중에 어제 갔는데 오늘 죽었다고 연락이 오더란다. 그래도 모두들 열심히 훈련 받고 소위 계급장 달고 전선에 투입되는데 아버지는 이상하게 강원도 화천에 병참장교로 배치되어서 죽지 않고 살아난거 같다고 하셨다. 아마도 서울대생이라 나라에서 후일을 위해서 그리한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아버지께 내 생각을 말씀 드리니 그게 맞는거 같다고 하셨다.나라에서 배려를 한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도 만나고 나도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윗대로 수직으로 올라가는 조상님 중에 한분이라도 중간에 돌아가셨으면 나라는 존재는 없다. 어머니 윗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사람들은 돌아가신 조상님들을 기리며 기일을 지내고 한식과 추석 때 산소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분들이 없었으면 내가 존재하지 않기에.....
아버지 말씀~~ (어머니가 노상 너처럼 묵주를 들고 사셨어)
묵주기도 하는 것도 조상님 내력인가 보다.
할머니의 신심으로 인해서 할배도 영세 받고 큰엄마로 이어지면서 할배 할매 밑으로 줄줄이 영세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그러니 우리 집안의 천주교 내력은 시작점이 할머니 셨다는 말이다.
한 여인의 조용한 묵주기도의 은은한 사랑의 빛이 온 가족을 감싸고 돈 것이다.
알파칸 올림.
첫댓글 옛날 우리 할머니들은 젊어서는자식들키우고 시집 가서는 시어머니 시아버지 모시느라고 고생 고생 하셔 일찍 가셨습니다
내력이라면 엄청 좋은 내력입니다.
조용히 부모님을 위해 묵주기도를 바치면 이상하게 부모님이 같이 있는것 같은 생각이 들곤 한답니다.
편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