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즈 티어스 고 바이'로 유명한 영국 가수 겸 배우 마리안느 페이스풀이 30일(현지시간)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BBC가 그녀의 대변인 발표를 인용해 보도했다.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마리안느가 오늘 런던에서 사랑하는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면서 "그녀가 무척 그리울 것"이라고 밝혔다.
1946년 12월 29일 런던의 햄스테드에서 대학 교수 아버지와 오스트리아 귀족 가문 출신 어머니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위 노래로 1964년 영국 톱 10에 들었으며 1968년 알롱 들롱과 공연한 영화 '그대 품에 다시 한번'(The Girl On A Motorcycle)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1960년대 롤링스톤스의 리더 믹 재거의 여자친구로도 유명해 이 그룹의 히트곡 'Wild Horses'와 'You Can't Always Get What You Want'의 영감을 제공했다. 1970년대 헤로인 중독 시기를 이겨내며 팝 계에서 클래식으로 여겨지는 앨범 'Broken English'으로 성공적인 부활을 알렸다.
재거는 고인을 "대단한 친구, 아름다운 가수이며 위대한 배우"라며 "무척 슬프다"고 밝혔다. 밴드 동료인 키스 리처즈도 "매우 슬프다"며 "고인을 그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타리스트 로니 우드는 인스타그램에 두 차례 글을 올렸는데 한 번은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자신과 리처즈와 고인이 함께 찍힌 사진을 올리며 "친애하는 마리안느와 작별", 그리고 좀 더 최근 두 사람과 찍힌 사진을 올리고 "마리안느가 많이 그리울 것이다. 그녀의 xx에 축복을"이라고 설명을 달았다.
마리안느는 폭식증, 유방암과 수십년의 흡연이 불러온 폐기종 등 여러 건강 문제로 고통스러워했다. 2020년에는 코로나 19 전염병에 감염돼 22일 동안 입원 치료를 받았다. 의료진은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그녀는 이겨낸 뒤 이듬해 21번째 앨범 'She Walks in Beauty'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녀는 크고 아름다운 갈색 눈을 가져 1960년대 전형적인 핀업(포스터) 걸이었다. 열여섯 나이에 롤링스톤스의 매니저가 그녀를 발굴해 재거와 리처즈가 처음으로 함께 작곡한 '애즈 티어스 고 바이'를 선사했다. 밝고 숨이 새는(breathy) 것 같은 그녀 목소리로 들려준 포크팝 스타일의 이 노래는 흔들리는 1960년대를 표방하는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데뷔 앨범 '마리안느 페이스풀'과 'Come My Way'(이상 1965)와 'North Country Maid'(1966)으로 그녀는 미국 팝 차트에 대한 "영국 침공'의 일부가 됐다. 반면 재거와의 교제는 타블로이드 매체들의 각광을 받았다. 재거와 헤어진 뒤 약물 중독에 빠져 뉴욕 소호의 길거리를 홈리스로 떠돌기도 했다. 하지만 1976년 앨범 'Dreamin' My Dreams'로 돌아와 사람들을 놀래킨 뒤 뉴웨이브 풍의 'Broken English'(1979)로 음악적 평가마저 새롭게 받았다. 그녀는 창백한 목소리와 어렵게 터득한 지혜로 자신의 인생 2막을 규정했다. 이 앨범은 그래미상 후보로 지명됐다.
최근에는 PJ 하비, 닉 케이브 같은 싱어송라이터들과 함께 했는데 두 사람 모두 그녀에게 영감을 받았다고 말하곤 했다. 그 전에 협업했던 스타로는 데이비드 보위, 루 리드, 자비스 코커, 데이먼 알반, 에밀루 해리스와 메탈리카 등이 있다. 메탈리카의 드러머 라르스 울리히는 고인의 "우리 음악에 대한 그녀의 기여는 믿기지 않고 독특했다. 그리고 항상 우리와 함께 연주하고 싶어했다"며 감사를 표했다.
음악 활동과 연기를 병행했다. 연극으로는 글렌다 잭슨과 함께 체호프의 '세 자매(Three Sisters)' 무대에 섰고 햄릿의 오펠리아 역을 연기했다. 나중에 밤마다 광기에 젖어 화학의 힘을 얻었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하기도 했다.
시트콤 'Absolutely Fabulous'의 두 편에 하느님 역할로 등장했고, 윌리엄 버로와 톰 웨이츠의 뮤지컬 'The Black Rider'에도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나 음악이 그녀의 본령이었다. 그녀의 마지막 두 번째 앨범 'Negative Capabilty'(2018)은 나이듦, 외로움과 위안을 명상하는 내용이었다. 오랜 친구이자 롤링스톤스 멤버의 연인이었던 애니타 팔렌버그의 죽음과 그녀의 자택이 있었던 파리 바타클랑 나이트클럽에 대한 테러 공격이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생 전체를 돌아보듯 그 앨범은 '애즈 티어스 고 바이'를 날것의, 감정적으로 다시 녹음했는데 프로듀서 롭 엘리스에 따르면 스튜디오의 모든 이를 눈물 흘리게 했다.
고인은 2009년 위민스 월드상의 세계평생성취상을 받았으며, 프랑스 정부가 서훈하는 문화예술훈장을 받았다.
고인은 세 차례 결혼과 이혼을 경험했다. 화가 존 던바와 1965년, 펑크 밴드 바이브레이터스의 벤 브라이얼리와 1979년, 배우 조지오 델라 테르자와 1988년 결혼했다. 아들 니콜라스 던바가 유족으로 남았다.